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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이야기/좋은글 모음

법륜스님 - 인생의 노후를 어떻게 보내야 되는가?

by 삼도갈매기 2013. 6. 6.





 

오늘 법회의 주제는 인생의 노후를 어떻게 보내야 되느냐?

이런 것을 중심으로 해서 즉, 직장이나 사회로부터 은퇴한 뒤에

나이가 70~ 80 이 됐을 때 어떻게 인생살이를 마감하는 게 좋겠냐?

이런 기본 주제하에서 다시 좀 정리를 하고 그리고 다시 질문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요즘 봄이니까 새싹이 돋습니다.

나무에도 움이 트고요. 또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 복사꽃 앵두꽃, 도롯가로 공원으로,

산으로 희고 노랗고 붉고 온갖 꽃들이 피어납니다.

이런 꽃들은 아름답다 하죠.

또 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봄철에 새로 움터나오는 새싹들 보면

어쩌면 꽃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이런 새싹들도 여름을 지나면서 무성하게 검푸르다가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들고 결국은 가랑잎이 돼서 떨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봄의 새싹을 예쁘다 그러고 아름답다 하고 가을의 가랑잎은 쓸쓸하다고 그래요.

외롭다 그러고. 그러나 반드시 그렇기만 한가. 봄의 꽃도 예쁘고 새싹도 예쁘지마는

가을에 잘 물든 단풍도 너무너무 곱고 예쁘다.

봄에 꽃놀이도 가지마는 가을에 단풍놀이도 많이 간다.

우리 인생도 그렇다. 아이가 태어난 그 어릴 때 살결도 부드럽고 얼굴도 곱고.

또 이팔청춘이라고 10대 후반이 되면 복사꽃처럼 피어난다. 그러죠.

젊음은 아름다운 거다. 

그런데 늙으면 눈도 잘 안 보이고,

귀도 잘 안 들리고,

목에 가래도 생기고, 걷지도 잘 못하고,

머리는 허옇게 세고, 얼굴에 주름살은 지고,

그러면 늙으면 추하다.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그것도 반드시 그러냐? 그렇다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인생을 논하는 법문을 할 때 새파랗게 젊은 스님이 법상에 올라서 얘기하는 게 그게 좋은가?

머리가 허연 노승이 법상에 올라와서 인생을 얘기할 때 그게 더 좋아 보이는가?

역시 법문은 노장이 해야 이게 법문이 맛이 있어요.

제가 요즘 하는 얘기나, 20년 하는 얘기나 똑같은데

20대 후반 30대 했을 때는 별로 설득력이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영감이 다 돼가서 하니까 조금 설득력이 있는데.

그때까지 살지는 모르겠지만 70~ 80 되면 구수하게 들린다.

술도 익어야 맛이고 된장찌개도 채소에 된장 국물이 배어야 그게 제맛이 나고,

밥도 뜸이 푸욱 들어야 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라면 끓일 때도 물 붜서 꼬실꼬실하게 해서 그냥 먹기는 합니다마는

그래도 좀 삶아야. 밀가루 냄새가 좀 빠져야 그게 맛인데.

그처럼 우리 인생도 나이가 좀 들어야 삶의 맛이 있습니다.

그런데 늙음이 초라해지느냐?

아니면 늙음이 아주 원숙해지느냐?

이거는 몸뚱이 갖고 얘기되는 게 아니에요. 마음의 문제다.

그래서 봄에 피는 꽃이나 세상만 예쁜 게 아니고 아름다운 게 아니고

가을 단풍도 잘 물들어놓으면 은행 나뭇잎이 노랗게 물들 듯이

단풍나무 잎이 빨갛게 물들 듯이 잘 들어 놓으면 꽃보다 더 예쁘다.

날씨까지 쌀쌀한데 단풍잎 보면 얼마나 예뻐요.

그것처럼 잘 늙어놓으면 무지무지하게 예쁘다. 이 말이오. 아름답다.

머리가 희끗희끗해 있고 그래도 얼굴에 주름살이 좀 여기저기 좀 지고.

그래야 훨씬 더 좋아 보인다.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인생의 많은 경험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에 정말 들을만하다.

그 애들처럼 떠들고 조잘대는 말 그거 시끄럽기만 하지 별로 영양가가 없는데,

노인들이 한마디 하면 참 말의 의미가 깊다.

그렇게 단풍이 잘 물들어서 아름답듯이

사람이 잘 늙어서 그런 멋을 부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첫째 "늙어도 어느 정도 건강해야 된다".

젊은이처럼 팔짝팔짝 뛰고 힘이 있고 그런 건강을 말하는 게 아니라.

눈이 좀 안 보이고 귀가 좀 안 들리고 다리가 좀 걷기 힘들어도

기본적으로 정신이 맑고 몸뚱이를 좀 움직일 수가 있어야 된다.

정신이 혼미하고 중풍이 들어 드러누워 있고 똥오줌 받아내고

그러면 아무리 정신이 맑아도 힘들어요.

또 정신이 아주 맑으면 그렇게 돼지도 잘 않습니다.

그래서 첫째는 나이 들수록 건강에 유의해야 된다.

젊을 때는 좀 아파도 또 약 먹으면 되고, 부러져도 수술하면 되고 그래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 한번 아프면 난리입니다.

가을비 오면 올 때마다 추워지듯이 한번 아프고 나면 팍팍 늙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몸을 무리하게 써서는 안 된다.

막 억지로 젊을 때 기분으로 이렇게 쓰면 안 된다.

그래서 과로하면 안 된다. 과로라는 건 다 욕심 때문에 하는 거거든요.

억지로 하는 게 과로 아니오. 그래 나이가 들었으니 억지로 뭘 자꾸 하려면 안 된다.

어느 정도 몸에 맞게 해야 된다.

두 번째 젊을 때는 맛있다고 많이 먹고

살도 좀 쪘다가 또 뺐다가 또 토하기도 하고 그래도 되지마는

연세가 들면 그렇게 안 돼요.

그래서 과식하면 안 된다. 아무리 맛있어도 적당하게 먹고 숟가락을 놔야 된다.

맛있다고 또 달라 그러고 또 달라 그러고 이렇게 먹는 거는 안 좋다. 독이 된다.

 

세 번째 술을 먹더라도 과음을 하면 안 된다.

연세가 들어서 과음을 하면 계단이라도 굴러떨어지기가 쉽죠. 몸져누우면 회복되기가 어렵다. 그

래서 과로, 과식, 과음, 이 세 가지. 과하면 안 된다.

자기 몸을 자기가 딱~ 조절을 해야 돼.

요즘 우리나라에서 못 먹어서 영양실조 걸려서 일찍 죽는다. 이런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대부분 과식하든 과로하든 과음해서 몸을 망치고 명을 단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여기 하나 필요한 것은 운동은 적당하게 해야 돼.

그 운동이라는 건 헬스클럽에 다니고 이런 게 아니라 노동을 해야 된다.

설거지도 하고 방 청소도 하고 시골에 사신다면 농사일을 하셔야 돼.

조금만 몸이 안 좋다고 아야야야 그러면서 내~ 방에 가서 누워있고 이러면 오히려 건강에 나쁩니다.

약간 몸이 힘들더라도 무리는 하지 않는 수준에서 자꾸 움직여야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많이 움직여야 됩니다.

어쨌든 꼼지락 꼼지락 자꾸 움직여야 돼. 다리가 아파도 조금 걷고. 그렇게 자꾸 움직여서 운동해야 됩니다.

운동에서 제일 좋은 게 뭐요? 제일 좋은 운동은 노동이오.

그러기 때문에 숨넘어갈 때까지 일해야 돼. 노는 건 좋은 거 아니에요.

뭐 조그마한 일들을 해야 됩니다. 꼭 돈 벌려고 하라는 게 아니라 소일거리 삼아. 그렇게 조금씩.

그런데 보면 젊을 때 과로한 습관이 있어서 시골노인들 특히 일을 욕심내서 해서 하다 그만 못 두거든요.

그냥 뭐 심다가 해지면 놔놓고 내일 심으면 되는 데 그게 안 된단 말이오.

깜깜한데도 끝까지 해놓고 밤에 끙끙 앓더라도 하는 이런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적당하게 하고, 놔놓고 내일 또 하고 이래야 돼.

 

두 번째 "자기 먹을 재산은 적당하게 갖고 있어야 된다".

자식이 예쁘다고 다 주면 안 된다.

만약에 내가 100 이라는 재산이 있다면 한 70이나 80은 살아있을 때 나눠주는 게 좋습니다.

미리 딱 배분을 하고 한 30이나 20이나 적으면 비율을 좀 높여야 되고 재산이 조금 많으면 비율을 낮춰야 되고.

그건 딱 자기 몫으로 해서 갖고 있어야 되요.

그것이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오래도록 아름답게 하는 법이고 내가 늙어서 추하게 살지 않는 법이다.

방 한 칸 시골 같은 집 한 채 도시 같으면 방 한 칸은 자기가 살 집은 가지고 있어야 돼.

그게 자기 소유든 전세든 자기 거는 하나 가지고 있어야 돼.

물론 부처님 법 따라 수행 떡 해서 다 놔버리고 빈털터리로 사는 수준이 돼도 괜찮아요.

그런데 그 보편적으로 그 정도는 안 되니까 하는 얘기에요.

즉 보통 사람을 위해서 하는 얘기에요.

여기 수행하는 보살님들 수준이면 그거 내거라고 하는 거 1푼이라도 필요 없어요.

몸뚱이 하나 어디 누일 방만 있으면 돼요. 절에 와서 어디 대중 방에 그냥 몸만 누이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도인이고 그러지 못한 일반 사람들은

제 몸을 누일 방 하나 시골집 한 채 그다음에 소일거리 할 만한 밭떼기 반찬 심어 먹을 밭떼기.

그다음에 양식할 논 몇 마지기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게 좋다.

도시 사람이라면 자기 용돈 쓸 만한 거는 넣어놓고 일 년이자 계산해서 한 달에 20만 원이면 20만 원, 10만 원이면 10만 원 얼마 쓸 돈 나오게 딱 해 놓고 있는 게 나아요.

늙어서 몸 누울 자리도 없어지고 이렇게 되면 추해져요.

젊은 사람은 오히려 괜찮아요. 노가다해서 벌면 되니까.

그런데 늙었는데 어디 가서 노가다를 하겠어요?

자식 쳐다보고 자꾸 용돈 안주나 이렇게 생각하면 자식을 원망하게 돼.

그럼 자꾸 늙어가지고 다 큰 자식 보고 욕해야 되고 원망해야 되고 이웃사람한테 자식 욕하기가

그것참 쉽지가 않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안 하려면 제 밥 먹을 거, 최소한도 먹을 거를 딱 가지고 있는 게 좋아요.

 

세 번째 "이제 자식에 대한 집착을 놔야 됩니다. 자식에 대한 집착을 놓는다".
자식이 뭐 어떻게 좀 잘 돼야지.

이런 집착을 놓는 거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식한테 바라는 마음을 버려야 돼.

자식한테 바라는 게 있기 때문에 자꾸 자식을 욕하게 돼요.

자식을 욕하면 결국은 내 욕이에요. 누가 낳았노?

그럼 할 말이 없어요. 누가 키웠는데? 그럼 할 말이 없어. 누구 자식이야? 그럼 할 말이 없어.

제 얼굴에 침 뱉기야. 그래서 자식에게 바라는 게 없어야 돼.

인사 오면 그저 자식이라도 고맙고,

“아이고 그래도 어릴 때 키웠다고 이렇게 찾아와서 인사해주니 참 고맙다.

” 용돈을 주면 “아이고 고맙다.” 액수에 관계없이 만 원을 줘도 고맙고 2만 원을 줘도 고맙고.

 또 안 찾아와도 고마워.

부모가 늙은 데도 자식 찾아와서 부모한테 손 벌리는 사람 있잖아.

그지? 그럼 안 찾아올수록 좋아. 자식이 안 찾아오면 달라는 거 없다는 얘기야.

내가 바라지만 않으면 자식이 안 찾아오면 아무 문제가 안 돼.

저그끼리 잘 산다는 얘기야. 그거 섭섭해하면 절대로 안 돼. 독립시켜서 내 보내야 합니다.

안 돌아와도 상관없어요. 그게 자연의 이치입니다. 새가 새끼를 낳아서 날려 보냈는데

나중에 어미 새가 자식새끼 안 찾아온다고 원망하는 거 봤어요?

돼지도 새끼 낳고 송아지도 새끼 낳고 개도 새끼 낳고. 그런 경우는 없어요.

바라는 마음이 없으면 자식을 다 효자 만듭니다.

자식 원망할 일이 없으니까 다 내 자식 효자요.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건강과 그리고 제 먹을 것. 그리고 자식에 대해서 원망하지 않는 그런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하고,

그다음에 하나 덧붙이면 자식에게든 아니면 젊은 사람에게든 잔소리를 안 해야 돼.

이러쿵저러쿵, 입을 꽉 다물어야 돼. 입에서 자꾸 욕이 나오든 말이 나오려 하거든 염불을 해야 돼.

그러면 젊은 사람들하고 같이 있으면 늘 보살핌을 받습니다.

자식하고 같이 살아도 부모를 늘 자식들이 보살펴요.

대부분 자식들이 부모들을 떠나고 잘 안 찾아온다. 그러면 부모한테도 원인이 있습니다.

내가 좀 잔소리가 많구나. 남의 인생을 간섭을 하는구나.

20살 딱 넘어서부터는 가능하면 간섭 안 하는 게 좋아요.

그런데 벌써 내 나이가 70~ 80 이 되면 자식 나이가 40이 넘고 그 자식이 바로 20살 다 돼가는데

그 간섭을 하고 욕을 하로 이래라저래라 그러고.

이게 부모의 특징이기도 하고 노인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이 노인을 모실 때는 잔소리를 기꺼이 받아야 되요.

그러나 노인이 자기 인생을 아름답게 살기 위해서는 잔소리를 안 해야 된다.

항상 입에서는 말이 나오면 염불만 나와야 돼. 으음.

그러니까 “얘야 밥 먹어라.” 든지.

“뭐 가자.” 든지. 이런 얘기 하지말라는 거 아니에요.

의사전달을 위한 말은 다 해야 돼.

그러나 남의 안생에 간섭하는 그런 얘기는 안 해야 된다.

“잘했니? 못했니?” 시비분별은 하지 마라.

이 정도면 족한데 그래도 세속에 사는 사람은 자손이 잘되기를 바래요.

나만 이렇게 인생이 행복하면 안 되고 자손이 잘돼야 된다. 이런 생각이 있어요.

자손이 잘되려면 복을 지어야 됩니다.

그래서 적은 돈이지마는 틈나는 대로 여기저기 보시를 해야 돼.

어려운 사람한테 이런저런 행사 있을 때 다만 천원이라도 이천 원이라도 보시를 자꾸 해야 돼.

이게 복을 짓는 거다. 자손 잘되라고 자꾸 빌지 말고 복을 지어야 돼.

그래야 손자 때부터 복을 받아서 잘 된다.

이 말이오. 두 가지 결국 생을 마칠 때 바라는 게 있다면

하나는 내가 죽어서 좋은 데 가는 거고. 하나는 남아 있는 자손들이 잘되는 거 아니오.

그죠? 그 이외에 딴 거 없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죽어서 좋은 데 가려면 염불을 많이 해야 돼.

자손이 잘되려면 보시를 해야 돼. 욕심내고 보시라는 뜻이 아니에요.

천 원 있으면 900원짜리 밥 먹고 100원 보시하고. 이렇게 하는 마음을 말한다.

마음이 조금 너그러워져야 된다. 인색하면 안 된다.

연세가 들었는데 돈에 너무 집착하고 물건에 집착하고 이러면 좀 초라해 보입니다.

젊은 애들은 막 뭐든지 악착같이 모여서 살려고 그러면 예뻐 보이고 오히려.

나이 든 사람이 물건이든 돈이든 움켜쥐고 이러면 추해 보여. 그래서 나이가 들면 조금 너그러워야 돼.

물건 가지고 있더라도 옷도 누가 좋다 하면 형제간에든 친구지간에든 주고,

가면 어차피 다 털끝만 한 것도 못 가져갑니다.

죽고 난 뒤에 그런 옷들 다 남으면 어떻게 합니까?

사람이 죽기 전에 주면 선물인데 죽고 난 뒤엔 태웁니다. 아무도 안 가져가요.

자식도 안 가져가. 이거 아셔야 되요. 사람이 딱 죽으면 쓰던 거 다 갖다 태웁니다.

그분이 아주 유명해 박물관에 갈 게 아닌 이상은 다 태워요.

그러기 때문에 살아있을 때 다 미리 나눠줘야 돼. 살아있을 때 나눠주면 전부 선물이 됩니다.

자식한테든 친구한테든 후배한테든 주면 다 선물이 되고,

죽고 난 뒷면 똑같은 물건인데 귀신 붙었다 해서 아무도 안 가져가려고 그래.

그래서 불에 다 태우는 거요. 아까운 물건 불에 태우면 안 되잖아. 그죠?

그러니까 미리 나눠줘요. 나눠주는 거 자체가 집착을 놓는 거거든.

복짓는 거고. 그런 방식으로 딱 인생을 살면 은행 나뭇잎이 노랗게 물들어서 예쁘듯이 떨어져도 주워가잖아요.

보셨어요? 나뭇잎이 떨어졌는데 주워가는 건 단풍밖에 없어요.

아무리 꽃이 예쁘고 새싹이 예쁘다 하지마는 꽃 떨어지는 거 주워가는 거 봤어요.

꽃 떨어지는 거 아무도 안 주워 가요.

파릇파릇한 잎 떨어지는 거 주워가는 거 봤어요? 없어요.

떨어졌는데도 주워가는 건 오직 잘 물든 단풍잎만 그래요.

굉장히 중요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렇게 잘 물들면 자식한테 버림받을 일 절대 없고,

자식이 없어도 이웃한테 세상에서 버림받을 일이 없습니다.

주워간다니까 예쁜 단풍잎은. 그렇게 아름답게 늙기 위해서는 수행을 해야 된다.

꼭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마음공부를 해야 된다.

으음. 그렇게 해 가셔서 인생의 마무리를 아주 아름답게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