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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고향 거문도

10년만에 찾아간 내고향 "거문도"(巨文島)는 변함없었다.

by 삼도갈매기 2017. 10. 20.

 

 

 



영상을 들으면서...

 

 10년만에 고향 "거문도"(巨文島)을 찾았다..

 

(고향에 사는 형님 건강이 좋지않아

남동생과 단둘이 형님을 뵈러 갔었다)

 

 

 

 

 

 

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 주차장에 승용차를 주차한 후

 2017년 10월 17일 13;10분 여객선(줄리아 아쿠아)에 승선

꿈속에서만 그리던 내 고향 거문도를 찾아갔었다.

 

참고 ; 모든 사진은 핸드폰으로 찍었다.

 

 

 

 

 

고향방문 첫날

 

 

부모님의 묘소를 찾아가면서...

태어나 꿈을 펼쳤던 고향마을(덕촌리)을 배경으로...

 

 

 

 

 

이곳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졸업하고..

18세 청년시절, 낯선도시 부산으로 유학을 떠나.. 

 반평생 부산에서 살았으니....닉네임 "부산갈매기"가 되었다.

 

 

 

 

 

부모님 묘소에 술 한잔 따르고..

못난 자식 이제야 찾아왔음을 아뢰었지만

무심한 바람은 나무가지만 맥없이 흔들고 지나간다...

 

 

 

 

 재너머에서 바라본 "유림해수욕장"

오른쪽 흰 건물은 모 종교단체 소속 호텔이며,

사진 중앙에 기와집을 닮았다는 "기와집 몰랑"이 보인다

 

 

 

 

우리마을(덕촌리) 가장 잘 보이는 곳.

예전 번창하던 시절엔 항구에 어선들이 가득했었는데...

 

 

 

 

마을 뒷산에서 내려와...

초등학교 운동장에 도착하였다.

 

내가 초등학생일땐 학생수가 2~300여명이였는데..

지금은 분교로 강등되어 10여명의 학생들만 이곳을 지킨다니...ㅠ

 

 

 

 

 잠실운동장 보다 넓게 보였던 운동장이였는데...

이곳 운동장에서 뛰어 놀면서 흘렸던 땀방울이 얼마였던가?..

학생들은 보이지 않고 무심한 잡초만 운동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졸업생이라면

누군들 이 나무(팽나무)를 잊지 못 할것이다.

이 학교의 역사를 말해주듯...늘 그자리에 변함없이 서 있다.

 

 

 

 

개구장이 소년이였을 땐

이 팽나무에 줄 메달아 그네를 뛰었고,

청년 시절엔 이 나무 아래서 사랑을 꽃피웠으니..

이 나무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고 있으리라..

 

 

 

 

 

팽나무 아래에서 우리  마을을 바라다 본다.

저기는 누구네 집, 저곳은 예전에 누구가 살던 집...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마음속으로 중얼거려본다.

 

 

 

 

저곳은 내가 태어난 우리집..

그땐 기와집이였는데...지금은 스레트집으로...

평생 고생만 하시다 세상 뜨신 내 어머님의 손때가 묻은 그 집.

 

 

 

 

 

고향방문 2일째...

 

거문도 동도리에 사는 누님을 찾아갔다..

(우리마을에서 이곳 동도리까지는 선박편을 이용)

 

 

 

 

동도리에서 바라다 본 "거문대교" 전경..

처음 계획은 우리마을에서 서도리를 경유 사진속 거문대교를 건너

동도리(죽촌마을)까지 걸어 가려고 했는데...동행한 남동생이 싫단다. 

 

 

 

 

 

사진 왼편에 누님이 사는 집이 보인다..

20세 꽃다운 나이에 이곳(죽촌)으로 시집을 가셨으니..

 

 

 

 

누님집 텃밭에 밀감이 주렁주렁..

커다란 함지박에 가득 따서...부산까지 가져 왔으니..

내 평생 이렇게 달고 맛있는 밀감은 처음 먹어본듯 하다..

(매형이 몸이 편치않아 여수병원에 입원해 계신다, 속히 쾌차 하시길...)

 

누님이 차려주신 점심으로 배를 채우고

사진속 밀감을 가지고 우리마을(덕촌리)로 되돌아 왔다

 

 

 

 

거문도 등대를 찾아 가며..."유림해수욕장"에서..

이곳 바다에서 모래망치(고기이름) 잡던 시절이 그립다..

어제 오늘 거문도 주변 해상에 풍랑주의보가 발효되더니..바람이 세차다.

 

 

 

 

등대 가던 길..."돌곡"에서..

약간 높은 언덕으로, 우린 이곳을 돌곡이라고 부른다.

동백꽃이 피려면 아직인데...근처에 동박새가 처량하게 지저귄다.

(청년시절...동박새를 키웠는데..혹시 그 새가 나를 반기는 것은 아니겠지?)...ㅋ

 

 

 

 

사진속 오른쪽 마을이 면소재지이며, 역사속 영국군 수병 묘소가 있다.

앞에 보이는 섬이..."안 노루섬"(안쪽에 있는 노루섬)으로 썰물땐 육지와 연결된다.

 

 

 

 

면소재지 마을(거문리) 뒷편 풍경으로...

사진속 오른쪽에 "밖 노루섬", 중앙에 희미한 섬은 "삼부도"

(오늘 여객선이 풍랑주의보로 여수에서 거문도로 오지 못했다)

 

 

 

 

거문도 등대 가는 길에 만난 표지판.

 

 

 

 

 

 

 

 

 

"목넘어"에 도착..

이곳을 건너 뒤에 보이는 산을 넘으면 "거문도 등대"가 있다.

시간을 보니...등대까지 가면 어두워져서 힘들것 같아 발길을 돌렸다.

 

 

 

 

 

우리마을 왼쪽에 "반자께"를 찾아간다..

지명에 대한 유래는 알수 없지만 마을을 한눈에 볼수 있는 곳이다.

사진속 초록색 지붕의 집은 내친구가 예전에 살던 집으로 지금은 낯선분이 살고 있다.

 

 

 

 

반자께에 도착하였다.

오른쪽 마을이 내가 태어난 덕촌리, 왼쪽 마을은 거문리..

사진 중앙에 섬을 잇는 "삼호대교", 건너편에 수월산(거문도 등대산),

사진속에 안노루섬과 밖노루섬도 보인다..

 

 

 

 

 

 

 

 

우리마을에 중학교가 있다(사진 오른쪽)

중학교 아래에 초등학교, 초등학교 아래에 우리집이 있다..

마을 한가운데 사람들이 떠난 빈집 터가 듬성듬성 많이 보인다.

 

 

 

 

 "거문대교"를 배경으로...함께 동행한 남동생.

이곳 반작께에서는 거문도 5개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참고 ; 거문대교는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의 서도와 동도를 잇는 사장교이다.

교량 길이는 560m이며 연결 도로까지 합하면 1.72km가 된다.

거문도의 가장 큰 두 섬인 서도와 동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며

2010년 10월 22일에 기공식을 가진 후, 2015년 9월 18일에 개통했다.

건설 당시에는 거문교라고도 불렸다.(위키백과에서 펌)

 

 

 

 

우리마을에 세워진 "박옥규 제독 송덕비"앞에서

박 제독은 거문도 출신으로는 가장 큰 인물(?)이 아닐까?

이분에 대한 기록은 부산 태종대 등대에 흉상과 함께 세워져있다.

 

 

 

 

거문도는 따뜻한 기후로 각종 유실수가 많다..

자연산 딸기에서 부터, 정금(블루베리), 빈둑(천선과), 뻘뚝(보리수), 하루박, 멍

그리고 사진속 "잣밤"...도토리와 비슷한 열매로 이맘때 잣밤나무 아래에서 줍는다.

잣밤은 일반 밤(栗) 맛과 같으며, 갈색 외피를 벗겨내고 흰 속살을 까 먹는다..

 

 

 

 

고향방문 3일째, (마지막 날)..

 

어제는 풍랑주의보로 여객선이 오지 않았는데...

다행히 오늘 오전 10시에 거문도에 도착하였으니...

형님과 내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아쉽게 거문도를 떠났다..

 

 

 

 

거문도 여객선터미널 실내 풍경..

지금은 여객선이 1일 2회 운항 하지만

한여름 성수기에는 1일 4회 운항한단다.

(한겨울엔 1일 1회 운항 함)

 

 

 

 

거문도를 떠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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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여객선은 갑판에서 손을 흔들며 이별을 노래 했는데...

지금은 쾌속선이라 위험하다고 갑판에 나오지 못하게 하니, 아쉽다.

60년대 고등학교 다닐때, 70년대 초 군(軍) 입대할때, 여객선에서 이별이 눈에 선하다.

손수건을 흔들며, 어머님과 눈물의 이별 그리고 사랑하는 분들과 헤여짐이 삼삼히 떠오른다..

 

10년만에 찾아간 고향...산과 들은 변함없이 나를 반기는데...

 사랑하던 그리운 얼굴들은 이제는 보이지 않으니 세월이 많이 흐른듯 아쉽다.

내년 이맘때 쯤 건강한 모습으로 고향에서 형님과 다시 만날것을 약속하고...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