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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삶의 흔적들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지나갑니다

by 삼도갈매기 2009.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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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딸내미가 결혼하면서

아빠 선물로 "로션"을 사다주는걸

고맙고 아까워서 쬐끔씩 사용했는데

몇일전부터 로션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윤경씨...내 로션이 떨어졌는데?"

"잘 되었네...내 화장품도 구입할겸...겸사겸사 외출합시다”


시내 백화점에 간다고하니 모처럼 얼굴 광내고,

양복입고, 구두신고 아내와 함께 지하철을 이용하여

부산에서 제일 번화하다는 서면의 L백화점에 쇼핑 나들이를 하였다

(사실은 아내의 뒤를 비실비실 따라나섰다는게 맞는 이야기다)

 

연일 메스콤에서 세계 금융위기가 어떻고,

일자리가 없어지니 살기가 힘들다는 소리가

실감이 나지않을 정도로 부산의 L백화점은

많은 쇼핑객들로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잠깐만 한눈을 팔면

아내를 놓칠 수밖에 없을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백화점 입구에서부터 각 층마다 발디딜 틈이 없을정도이니

과연 이래도 경제가 어렵다고 할수 있을려나? 하는 생각이 든다


넓은 1층 매장이 전부 화장품 코너이다

아내는 물만난 고기처럼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닌다

아마도 많이 다녀본 솜씨며, 어디를 가면 무슨 화장품을 팔고

어디쯤엔 샘풀을 얼마만큼 받을수 있고...휀히 꿰고 있는듯하다

예쁜 판매사원 아가씨랑 이런저런 이야기 하며

이것저것 고르는데 아무리봐도 쉽게 끝날 것 같지를 않는다

그렇다고 남자인 내가 어디 앉아서 딱히 쉴곳도 없는 곳이다

 

백화점의 후끈한 열기와

모처럼 얼굴에 광내고 양복입고 구두를 신었으니

땀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더위가 서서히 밀려오는걸 느낀다

이러한 내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의 쇼핑은 끝날줄 모른다

시간을 보니 매장에 입장한 후 무려 1시간이 지난 것 같다

덥다.....아내의 쇼핑이 짜증이 나면서 더워지기 시작한다

매장을 한번 쭉 둘러본다 그런데 참으로 묘하다...

매장에 사람은 많지만 전부가 여자이고 남자는 나를 비롯해서

가뭄에 콩 나듯이 몇 명 보이지를 않는다

 

"남정네 들이여!!

 아내와 함께 쇼핑하러 다니지 마이소?"

 

         (L 백화점에서 아내가 구입한 화장품, 값을 물어봐도 알면 다친다고 절대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아내의 성화에 못이겨 6층에도 들렸다

6층엔 각종 생황용품을 판매하는곳이다 

"우리집 낡은 쇼파도 바꿔야하고, 카페트도 바꿔야하고...."

아내가 혼자서 중얼거리며 이곳저곳을 연신 헤집고 다닌다

그래도 돈 못버는 남푠 바꿔야한다는 소리가 없으니 천만다행 아닌가?....ㅎ 

 

1층에서 6층 까지는 “에스카레이터”를 이용하니 힘들지는 않는다

문제는 아내가 나에게 맡긴 쇼핑빽을 들고 다니는데 문제가 있다

아내 뒤를 무거운 쇼핑빽을 들고 졸졸 따라 다녀야한다

그런대 이곳에서 본 남정네들이 모두가 나처럼 쇼핑빽을 들고

여자들 뒤를 졸졸 따라 다니고 있는것이 아닌가?

남자 체면에 정말 할짓이 아니다(이하 생략)


“여보 당신 오늘 시다바리하면서 고생 많았으니

내가 점심 사줄테니 따라 오이소..."

자기하고 싶은대로 쇼핑하였고 난 군말없이 따라다니면서

시다바리 하였으니 점심을 사 준다고 한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가 지났다...정말 배가 고픈것도 모르고...ㅠ


백화점과 연결된 지하 식당에 도착하였다

여기도 전쟁터다 그 넓은 식당홀에 앉을 자리가 없다

무거운 쇼핑빽을 들고 줄을서서 식사를 주문하고 번호표를 받고

겨우 자리를 잡고 앉으니 배고픈것도 잠깐 잊는것 같다

 

이곳에도 여인네들 천국이다

뒤를 봐도 앞을봐도 옆을봐도 남자는 몇 명 보이지 않는다,

밥 먹고 이쑤시는 여자, 거울보며 입술에 루즈 바르는 여자,

테이블을 치워달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여자,

함께 왔던 애기가 운다고 달래는 여자, 서로 계산하겠다고 다투는 여자....여자여자여자

아~~대한민국이 여인네들만 살고 있단 말인다?

 

              (화장품 구입한후 사은품으로 받은 이불(뒷쪽)과 파커 그라스(오른쪽)와, 화장품 쌤풀들)

 

겨우 식사를 마치고

지하로 연결된 출입문을 통하여 지하도로 나왔다

시다바리 노릇하고 얻어먹는 밥이 맛이 있을리 없다
아내가 화장실을 간다며 자기 핸드백까지 맡기며

잠깐 기다리라고 한다 쇼핑빽에 아내 핸드백까지....이게 뭡니까?

 

지하도 간이 의자에 앉아서

가련한 내처지를 생각하니...서글픈 생각이 든다

약 10분을 기다려도 화장실에 간 아내는 오지 않고

춘곤증이 발동하여 왠걸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그도 그럴것이 약 2시간 동안 아내 뒤를 따라다니다가

전쟁 치루듯이 점심을 얻어 먹고 의자에 앉아있으니 졸음이 왔던가보다

나중에 확인 되었지만 화장실에도 여자들이 너무 많아

줄을 서서 기다리며 뒷 일을 처리하였으니 늦을수 밖에.....ㅎ


“가방을 이곳에 두고 잠을자면 어떻게 하노?”

아내의 비명에 깜짝 놀라서 눈을 뜨니....

세상에 지하도 간이 의자에 앉아서 꼬박 졸고 있었으니....ㅠ

“비싼 화장품에 맛있는 점심까지 사줬더니 무슨 낮잠인교

남들보기 창피하게 가까이 따라오지말고 좀 떨어져서 오이소“

벼락같이 한마디하고 휭하니 앞장서서 지하철입구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부시시하게 눈을 부비고 쇼핑빽을 들고 아내 뒤를 졸졸 따라가는데

뚱뚱하게 살이오른 무섭게 생긴 여인이 나에게 오더니

“아저씨 L백화점에서 물건산 영수증 있으면 주고 가이소”

나중에 아내에게 들어보니 이런 여인들이 백화점 입구에 몇몇 있다고 한다

영수증을 모아서 이곳에서 사은품이나 상품권으로 바꿀수 있으니

남정네 혼자서 쇼핑빽을 들고 지나가니 영수증이 있을성 싶어 접근하였던 것이다 


멀리서 아내가 그 장면을 무섭게 째래보고 있었다

“방금 저 뚱땡이 예편네랑 무슨 이야기 했는교?"

“오늘 저녁에 시간 있느냐고 물어보길래.......?"

“내가 잠깐 한눈을 팔면 이런다니까?...

 남정네들이란 집에 두고오면 근심 덩어리요

 같이 나오면 짐 덩어리요, 혼자 내보내면 걱정 덩어리

 그리고 마주앉아 있으면 왠수 덩어리라고 하더니......몬산다 카이?"


순진하던 아내가 우짜다가 이렇게 변했는지?

어제도 오늘도 아내의 잔소리가 자꾸 늘어가는걸 느낀다

그 잔소리를 들으며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지나감다...

 

남정네들이여!!!

좋았던  남정네들 시절은 지나가고

여인네들이 큰소리치는 묘한 시절이 온것 같소

모쪼록 살아남으려면 아내들 말 잘 들으시소?....비비디 바비디 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