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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삶의 흔적들

친구 어머님의 명복을 빌며...

by 삼도갈매기 2009. 4. 4.

 

재미있는 이야기도

글의 내용이 길면 재미가 없다고 하는데

어제 있었던 이야기를 이곳에 짧게 남기고 싶다

 

 

17

 

2009년 4월 3일 오전

핸드폰에 문자가 날아든다

“모친 별세,

 수원시 성 빈센트병원 영안9호실, 발인 4월4일...친구 Y로부터”

고등학교 친구 모친님이 수원의 성 빈센트병원에서 별세했다는 내용이다


부산에 살고 있는 고교친구들을 급히 모아 보았다

모두가 살기 바쁘니 삶의 현장에서 나올수가 없다고 한다

사업하는 친구 L군과 함께 부산갈매기 승용차로 수원으로 달렸다

 

             (우리집 베란다에 핀 봄 꽃들 - 몇일전 근처 시장에서 구입하여 화분에 옮겨 심었더니 이렇게 꽃이 활짝 폈다)

 


사는게 뭔지

친구 모친님 살아계실 때

꼭 한번 뵈어야겠다고 수없이 다짐을 했는데

결국은 별세했다는 슬픈 소식을 접하고

이렇게 달려가는 내 자신이 한 없이 원망스럽다


여기서 잠깐.....

고교 Y친구 모친님 이야기를 짧게해야 될 것 같다

처음 모친님을 뵌 것이 1968년, 내 나이 18세, 고교 1학년때

고향을 떠나 객지인 부산에서 힘들게 공부하며 자취하던 시절

하루에 겨우 두끼를 해결하고 거의 굶다시피하면서 살아갈 때

 

토요일 오전 학교 수업을 마친후 친구집을 찾아가면

어서 오라고 손잡아 주시고 반갑게 맞아 주며

김이 무럭무럭 나오는 하얀 쌀밥에 그 당시에 엄청 귀했던 돼지고기,

맛있는 두부를 썰어넣고 끓인 김치찌게를 만들어 주시며

“어린 나이에 혼자 객지에서 얼마나 힘드냐”하시며

안타까워 하시고 머리 쓰다듬어 주시던 모친님

함께갔던 친구들보다 유독 나에게 애정을 쏟으시고

더더욱 챙겨주셨던 나에겐 정말 잊을수 없는 모친이셨다

 

일요일 아침

어김없이 성당에 가시면서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친구집에서 놀고 있는 우리들이

일요일 하루 종일 배고플것을 염려하여 따신밥 지어 놓으시며

공부는 언제하고 그렇게 놀기만 하느냐고 꾸중도 하시던

우리들에겐 친 어머님보다  더 살가우셨던 모친님이셨다 

 

 

 

Y친구는

일찍이  아버님을 여의고 홀로 계신 어머님을 모시고

결혼하여 분가한 형님과 근처에서 장사하던 누님 등 3남매 였는데

그러나 어쩌랴....그러부터 10여년 후 그 형님도 돌아가시고,

예쁜 조카들 남긴 누님도 뭐가 급했던지 일찍 세상을 떠나셨으니

가슴아팠던 이야기들을 이곳에 모두 할수 없는게 안타까울 뿐이다


수원의 성 빈센트병원 영안실에 도착하여

모친님께 하얀 국화꽃 한송이를 헌화하고

슬픈마음으로 엎드려 절을 하면서 다시한번 내자신을 원망하였다

빙그레 웃고 계시는 영정을 바라보니 죄스러워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86세 였다네...몇개월전부터 힘들어 하시더니....ㅠㅠ”

친구의 넋두리를 들으며 덥석 손을 잡고 사죄하였다

“친구야...미안하다...내가 어려울때 어머님이 나에게 힘을주시고

 용기를 주셨는데, 진즉 찾아와야 하는데....ㅠㅠ“


전남 강진군(郡) 장지까지 모친을 따라 가려고 했으나

친구의 간곡한 만류로 늦은 시간인 밤 23;30분경 수원을 출발

다음날 새벽 4시에 부산으로 다시 내려왔다

(부산 - 수원간 왕복 9시간의 과속운전, 다시 생각해도 힘들었다)

 

함께 문상갔던 L친구와 함께 부산으로 내려오면서

학창시절 우리에게 힘이 되었던 모친님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아쉽게 떠나보내는 우리들의 삶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았다

 

“모친님....당신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하나님 곁으로 가셨으니

 이제껏 힘드셨던 모든일  잊으시고 편안하게 쉬시기 바랍니다“

 

내가 힘들어할때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주셨던

친구의 모친님을 먼 훗날까지 잊지않기 위해 이렇게 글로 남겨놓는다

 (참고 ; Y친구는 Yun Y. Heun이며, L친구는 Lee D. Chool 임)

 

 추신 ; 승용차로 수원을 바삐 가는데 핸폰이 울린다

          생소한 묘령의 반가운 목소리....뉘였을까?....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