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변 이야기/미디어 이슈

박인희의 만추연가(晩秋戀歌) - 끝이 없는 길, 세월이 가면

by 삼도갈매기 2013. 10. 18.

 

 

 

 

 

 

몇년전 고딩 친구들과 단풍이 곱게 물든 "문경세재" 옛길에서 ....

 

 

 

우리들 가슴에 주옥같은 노래를 들려준 "가수 박인희"...

 

언제까지 소녀의 이미지로 남아 있을 것 같던 가수 박인희씨가 60세가 넘어버렸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인생과 사랑이야기를 속삭이듯 노래하고, 그리움을 떠올리게 하는 목소리는 70년대의 문학적 이야기와 함께

조용히 그 시절을 회상하게 만들어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들어도 그녀의 노래는 전혀 빛깔이 바래지 않은 것 같다. 

그녀의 음악은 성악적으로 빼어난 것은 아니지만 품위와 자존심 그리고 감정을 통제하는 격조 같은 것이 느껴진다.

 

숙명여대 불문과에 재학 중이던 그녀는 명동에서 디스크 쟈키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이필원과 혼성 포크 듀오

"뚜와에 무와"를 결성하여 활동을 시작하고 '약속' '스카보로의 추억' 등이 담긴 1집을 발표하면서 인기를 얻는다.

(아마도 그때가 내 고딩시절인 1969년~1970년 정도인듯 하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남성 듀오 "트윈폴리오"가 거의 번안곡만 불었던 반면 "뚜와에 무아"는 번안곡에다

자신들의 자작곡을 같이 불러 인기를 끌게 되는 점도 주목을 받을만 했으니, 그후 남성 맴버였던 이필원과의

스캔들에 휘말린 박인희는 1년여 짧은 활동을 정리하고 솔로로 나서게 되면서 더욱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하던 낭만을 놓아버리기에는 아직은 아쉬우며....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앉아 이야기하고 싶은 낙엽지는 계절에 그녀의 "만추연가"(晩秋戀)를 감상하는 것도 좋을듯 하다.

 

 

그녀의 희트곡 중 "끝이 없는 길" 

 

 

      위 버튼( ) 클릭하면 노래가 멈추고, 다시 클릭하면 시작합니다

 

 

박인희/끝이 없는 길(1975)

 

 

 

 



길가에 가로수 옷을 벗으면
떨어지는 잎새 위에 어리는 얼굴
그 모습 보려고 가까이 가면
나를두고 저 만큼 더 멀어지네
아 ~ ~ 이 길은 끝이 없는 길
계절이 다가도록 걸어가는 길

잊혀진 얼굴이 되살아나는
저 만큼의 거리는 얼마쯤일까
바람이 불어와 볼에 스치면
다시한번 그 시절로 가고 싶어라
아 ~ ~ 이 길은 끝이 없는 길
계절이 다가도록 걸어가는 길
걸어가는 길

 

 

 

 

 

 

 

 

 

 

 

 

 

 

 

 

 

 

 

 

 

 

 

 

 

http://www.lp25.com/shopimages/sally07/0010010010342.jpg 

 

가수 박인희

 

 

박인희는 1970년대를 풍미(風靡)한 지성파 여자 포크가수. 별명은 '노래하는 시인'이다.

숙명여자대학교(淑明女子大學校) 불어불문학과(佛語佛文學科)에 재학당시 숙명여자대학교 최초 방송국장을 지내면서 교내 방송을 지휘한 경력이 있으며, 1970년에 혼성 듀엣 뜨와에 무와로 데뷔하면서 「약속」「세월이 가면」으로 인기를 얻었고 많은 팬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참고} ; 'Toi et Moi'(뚜아에 무아) 프랑스어로 '너와 나'라는 뜻이다.

1972년 솔로로 독립하고서 1976년까지 앨범 6장과 시를 낭송(朗誦)한 음반을 내놓았다. 정서를 대단히 듬뿍 담고 있고 시의 정취(情趣)가 있으며 여성스럽고도 기품이 있는 여러 곡을 담아서 대중가요(大衆歌謠)인데도 음반이 발매될 때마다 문학을 사랑하고 고전음악과 샹송을 사랑하는 다수한 팬에게 많이 찬사(讚辭)받았다.

그녀의 음색은 매우 청아(淸雅)했고 노래할 때 감정은 극도로 절제되어 있었으면서도 그녀가 추구한 음악은 촉촉한 감수성으로 가득하고 문학다운 낭만(浪漫)이 넘치는 매력(魅力)이 있었다. 매우 쉬운 단어로 인생과 사랑을 속삭이는 듯하였으나 그 노랫말은 매우 유식하면서 뜻이 깊은 특색이 있었다. 대표곡은 「모닥불」인데 1980년대까지 대학생들이 membership training할 때마다 즐겨 부르던 노래로, 어느 누구든지 이 노래를 한 번도 불러보지 않은 사람이 없고 「방랑자」, 「얼굴」, 「하얀 조가비」, 「끝이 없는 길」「그리운 사람끼리」도 크게 사랑받았으며, 이런 노래는 가사나 멜로디에 불필요한 겉멋이나 너절한 장식이 들어가 있지 않은 탓에 21세기인 지금에 다시 들어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시집 『지구의 끝에 있더라도』, 『소망의 강가로』등 수필집을 출간하는 등 문학가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그렇게 글 솜씨에 일가견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심야 방송에서 라디오 DJ로도 명성을 떨쳤다. 수녀 이해인과 여자중학교 동창으로서 서로 친하게 지냈다. 가수 활동을 접고서 미국(米國)으로 건너가서 한인 방송국장으로서 일하면서 살았는데 지금 그녀의 아들이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라는 소문도 있다. 그녀는 연예계를 떠나고서는 언론에 노출되기를 싫어하여 현재 알려진 근황이 거의 없다.(펌)

 

 

 

  풍문 여중 재학시절...왼쪽 끝이 박인희씨 그리고 한분 건너에 詩人, 이해인 수녀님

 

 



      

                 위 음악을 들으려면 "끝이 없는 길" 동영상을 멈춘 후에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녀의 희트곡 중 - "세월이 가면"

 

한국전쟁 이후 문인들의 사랑방이었던 명동쌀롱에 모인 예술가들이

박인환의 시에 즉석에서 멜로디를 붙여 만든 노래로 소위 「명동 엘레지」로 불리기도 했던 곡.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취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혀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몇년전 어느 가을날 단풍이 곱게 물든 "내장산" 우화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