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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이야기/미디어 이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죄

by 삼도갈매기 2016. 12. 26.

 

 

 

 

 

아래 글은 2016년 12월 26일 박성희(이화여대 교수)님이 조선일보 칼럼에 게재한 글이다.

(추신 ; 아래 본문중 첫 소절과 마지막 소절은 생략했으며, 그외 본문 일체 수정치 않음)

 

 

 

(첫 소절 생략)

헌법재판소에서 세월호 7시간의 대통령 행적을 요구했고, 대통령 측 대리인이 그 답변서를 보냈다고 한다. 세간의 관심과 달리, 나는 대통령이 올림머리를 하는 데 20분이 걸렸는지, 90분이 걸렸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면도하면서도 기자들과 인터뷰했다. 내가 알고 싶은 건, 대통령이 그 시간에 '하지 않은 일'의 목록이다. 그리고 왜 주변 사람들이 그토록 침묵하는지를 찾아내는 일이다. 아마도 말보다는 침묵 속에서, 또 했던 일보다는 하지 않은 일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기가 더 쉬울지 모른다.

세금 내는 국민으로서 나는 대통령이 매일 제시간에 출근했는지가 궁금하다. 대통령은 무보수 명예직이 아니라 국민 세금으로 연봉과 연금을 받는 엄한 공직이다. '출근'하지 않았다면 그 자체로 직무태만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사건은 뉴스 속보와 동시에 거의 생중계되다시피 했다. 대통령이 사건의 발단과 전개 상황을 국민과 함께 인식하고 있었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즉각 회의를 소집했는지, 요로에 조언을 구했는지, 수장(水葬) 위기에 처한 생명을 구하기 위한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는지, 알고 싶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다녀온 후 적절한 후속 조치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도 알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죄'의 사례는 많다. 가벼운 접촉 사고라도 모른 척하고 현장을 뜨면 바로 뺑소니 범죄가 된다. 불씨를 떨어트려 놓고 그냥 놔두면 방화범으로 처벌받는다. 회사 안에서 비리를 목격하고도 침묵한다면 그 비리의 공범자로 몰릴 수 있다. 집안 식구 중 노약자나 장애인을 돌보지 않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도 살인죄가 성립될 수 있다. 외국에서는 특정 상황에서 '하지 않은 일'을 처벌하기 위해 '선한 사마리아인'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다. 힘없는 보통 사람도 사회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하는데, 힘 있는 위치의 사람이 그 힘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폐해는 더 클 것이다. 하물며 공적 의무를 위임받은 공직자가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게을리한 것은 심각한 범죄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의도적 무심함이 가공할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비롯해 비서실장, 안보실장, 각종 수석과 장관들에겐 주어진 복무규정과 각기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들이 단지 주어진 업무에만 충실했어도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하 생략)

 

헌재 "세월호 7시간 밝혀라" /TV조선 캡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죄"

 

 

 

위 칼럼을 읽어 보면서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프랑스 영화 "로베로 장군"의 이런 장면이 생각난다. 
 

나치에 저항했던 레지스탕스들이 처형을 당하게 되는데,

그 중에는 저항 운동과는 상관없이 얼떨결에 붙잡혀 온 장사꾼 한 명이 있었다.

그는 자신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나는 평범한 시민일 뿐이요.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결코 저항운동을 한 적이 없단 말이오.”

그는 억울했다. 평범하게 돈이나 벌며 살아왔는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이때 함께 처형당할 한 레지스탕스가 그에게 말했다.

“이보시오, 전쟁이 시작된 지 5년이나 흘렀소. 그동안 수많은 프랑스인이 피를 흘리고 도시들이 파괴되었소.

그리고 지금 조국은 멸망 직전에 놓여 있소. 그런데도 당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단 말이오?

바로 당신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당신이 죽어야 할 이유요.”


 

이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뜨끔하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죄,

봐야 할 것에 눈 감고, 들어야 할 것에 귀 막고, 말해야 할 것에 입 닫고,

행동해야 할 때 딴 짓한 죄는 훗날 예기치 않은 순간에 우리에게 책임을 묻는다.

그때는 바로잡기에 너무 늦었거나 운이 좋아도 백 배의 노력을 쏟아야 할 것이니...

 

세월호 침몰 7시간 -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죄

나라의 최고 책임자가 절대절명 순간에 본분에 충실치 못했다면 분명 무거운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