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추억 사진첩

어머님 그립습니다

삼도갈매기 2008. 1. 5. 12:09

 

2008년 1월 5일.

무자년 새해가 숨도 쉬지않고 흘러간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유수(流水)같은 세월을 원망할 수 도 없고...”

 

어제 저녁(1월 4일) 여느날 처럼 아내와 둘이서 저녁을 먹었다

아이들이 곁에 있을땐 느끼지 못했던 고독과 외로움이 엄습한다

2007년 큰아이 결혼, 작은 아이는 유학으로 우리곁을 떠나 집안에 쓸쓸함이 흐른다

세월은 소리없이 흐르고, 한살한살 나이는 먹어 가는데

내 부모님도 자식들이 하나 둘 당신곁을 떠나갈때 얼마나 고독하셨을까....

잠시 생각해 보니, 왠지 모를 서글픈 생각에 가슴이 아파온다

 

저녁 식탁에 맛있는 고등어 한 마리가 눈에 보인다

난 이녀석을 볼때마다 어릴때 어머님과의 아련한 추억이 떠 오른다

그 추억 때문인지 저녁밥을 먹다가 목이 메여서 사래가 들어 혼이 났다

 

오늘아침 식사에서도 이 녀석을 먹다가 사래가 들어....심한 기침을 하다가

아내가 건네는 물 한사발을 먹고 겨우 괴로움을 달랠 수 있었다

고등어를 보면 슬퍼지고, 슬퍼지다 보니 목이 메여서 사래가 드는 것 같다

어머님과의 아련한 추억을 아내가 알 수 없으니 한마디 거든다

“당신 늙어가니 목구멍까지 좁아지는교?.....왠 사래를 함까?..”

(그래...나 늙어 간다오.....그런 당신은 늙지 마시구려 ?....)

 

 

          

  ('60년대 거문도항 풍경....항구에 정박된 선박들이 고등어 잡이 어선들이다)

 

 

1960년대 중반쯤....고향 "거문도"에는 고등어가 풍년이였다

풍년이라고 해서 고향분들이 고등어를 많이 잡았다는게 아니라

외지 선박인 고등어잡이 어선이 거문도 근해에서 고등어를 많이 잡아 

고등어가 우리 눈에 많이 띄었다는게 맞는 표현이다

누구에게나 힘들었던 그 시절....시골에서 돈(錢)이 귀한 시절이였으니

내 어머님도 예외는 아니였을 것이다

 

고등어잡이 어선이 거문도 앞바다에 진을치고 떠있을때면

어머님은 하시던 일을 잠시 뒤로 미루고...밭에 가셔서 배추와 무우도 뽑고,

고구마와 감자, 푸성귀도 케고, 호박 그리고 콩, 깻잎 등을 따서

깨끗히 다듬어 조금씩 조금씩 묵어 소쿠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어김없이 날 찾으신다

“아가....저기 바다에 떠 있는 고등어잡이 배에 대려다 주라”

(어머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듯하여 지금도 목이 메인다....ㅠ)

 

어린 나이에 고등어잡이 어선에 가는게 무척 싫었다,

또한 어머님이 이런일을 하시는게 챙피하였고

주위 친구들이 볼까봐 어린 마음에 숨고싶은 마음인데....

그러나 어쩌랴 이렇게라도 해야 학용품을 구입하여 공부를 할 수 있었으니.....

어머님을 싣고 노를 저어 고등어 잡이 배를 향하여 물살을 가르며  나아간다

 

고등어 잡이 배에는 경상도 사람들이 무척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경상도의 투박한 말투가 거칠기도 하였으며

상스럽기까지했으니, 난 그 뱃사람들이 정말로 맘에 들지 않았다

허나 어찌하랴...... 어머님은 그분들에게 머리에 이고오신

농산물을 팔기위하여 한개씩 내려 놓으시며

“아저씨 배추나 무우 사세요.....싱싱 합니다

고구마도 호박도 손수 키운것이니 조금만이라도 사 주세요?”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난 또 목이 메인다....아 ~~ 왜 이렇게 슬플까? )

 

돈이 귀했던 시절이라 어머님은 그렇게 애원과 하소연을 하지만

거친 경상도 뱃사람들이 호락호락하게 푸성귀를 사주는것도 아니고

자기들끼리 희희덕 거리며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고 있는 내 마음은

너무도 가슴아픈 추억이였으니.....

이배 저배 건너 다니면서 푸성귀를 팔다보면 상품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고

이제 떨이를 준비하시면서 돈 대신 고등어와의 물물교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배추 한단에 고등어 2~3마리, 호박 한개에 고등어 2~3마리를 교환하신다.

 

시간이 흘러 소쿠리에 비릿내 나는 고등어가 가득 차면

그 소쿠리를 머리에 이고 집으로 돌아 가시는 어머님의 뒷 모습......

고등어에서 흐르는 고깃물과 어머님의 땀이 범벅이된 적삼(윗옷)은

왜 그리도 창피하고 서글펐던지 지금도 그 생각에 잠시 목이 메인다

도시생활을 하면서 그런 추억 때문에 한땐 고등어를 멀리 한적도 있었다

 

부모님과 형제분들의 이야기를 블러그에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어머님 생각이 나면 이렇게 혼자서 어머님을 회상해 본다

어머님은 내가 살았던 마을(거문도 덕촌리) 근처에서 시집 오셨으며

슬하에 5남매(3남 2녀)를 두셨고....그중 내가 4번째 이며

난 18세에 고향을 떠나,  40년 이상을 객지에서 살았으니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다른 형제보다 남 달랐던것 같다

우리 어릴때....그 시대에 부모님들은 왜 그리도 고생만 하셨을까

 

오늘 맛있는 고등어를 먹다가 사래가 들어 혼 난게

아마도 하늘나라에서 어머님이 나를 내려다 보시면서

“간덴놈아(가운데 놈아)...

 네가 보고싶구나, 언제 어메 찾아 고향에 올래...?”

하시는 것 같아 슬픈생각에 주절주절 넋두리를 하여본다

 

“어머님....용서하십시요?....

어머님 뵈온지 6년이 지났으니, 올해가 가기전에 좋아하시던

홍시를 한소쿠리 들고 찾아 뵙겠습니다....어머님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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