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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우리집 보물

딸들아, 친정 엄마는 봉이 아니란다

by 삼도갈매기 2008. 4. 29.

 

** 아래의 글은 2008. 4. 17일 모(某) 신문에 실렸던 글 입니다 **

 

 

"참, 그런데 애기는 지금 누가 보고 있어?"

 

5년 전, 첫 아이를 낳고 직장에 복귀한 어느 날, 저녁 모임에서 대뜸 받았던 질문이었다.

저녁시간에 애기엄마가, 그것도 갓난아이를 두고 밖에 나와 있다는 것이 희한하다는 듯

그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물었다.

 

"시어머님이 보고 계세요. 시부모님이랑 함께 살거든요."

 

직장에 복귀하고 한 달 동안 하루 평균 3번 이상은 되풀이했음직한 대답이었다.

 

"음… 그래? 그럼 시어머님께 정기적으로 얼마씩 드리고는 있나?"

 

뜨거운 국물을 떠서 막 입으로 가져가던 나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갑자기 말문이 막혀서 숟가락을 든 채 그 사람 얼굴만 빤히 보고 있었다.

 

"글쎄요. 정기적으로 드리는 건 아니지만… 용돈은 드리죠."

"용돈 가지고는 안돼. 월급의 반절을 드려도 부족하지.

  그 거 젊은 사람들은 대충 넘기는데 아주 중요한 거야. 꼭 그렇게 해. 알았지?"

"……."

 

나는 대충 얼버무리며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나 국물 맛은 느낄 수 없었다. 꼭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할머니 육아는 무지 중에서도 최악의 '무지'

 

지금도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날의 충격이 워낙 셌는지 나는 지금도 그분 말씀이 떠오른다.

그때는 사실 좀 불쾌하기까지 했다. 월급의 절반을 시부모님께 양육비 명목으로 드리라니….

나는 당시 내 월급을 떠올리고 또 거기에서 반절을 쪼개어보고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시어머님이 아이를 돌보게 된 경위는 간단하다.

결혼하면서 시부모님과 자연스레 한 집에서 살게 되었고,

요즘 사회는 여자도 직장생활을 반드시 해야한다는 시어머님의 지론에 따라

아이는 당연히 어머님이 봐주겠다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당시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시어머님의 말씀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할머니 나름의 노하우도 있고, 친밀감도 있고, 믿을 수도 있고 또 할머니 입장에선 손주들 재롱을 볼 수 있어서 좋고….

할머니 육아는 여러모로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단언하건대 그것은 무지 중에서도 최악의 무지였다.

 

둘째를 낳기 전 나는 직장에 사표를 냈다.

둘째부터는 더 이상 어머님께 맡길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누구처럼 다달이 150만원에 달하는 용돈을 드리지 못해서도,

어머님의 육아방식이 마음에 안 들어서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자식 둔 게 무슨 죄라고... 엄마들의 '측은한' 인생

 

  

더 이상 '딸'이라는 신분을

히든카드로 내세우며 친정엄마의 시간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아들과 며느리 역시 마찬가지다.

주위에서 할머니 육아를 하는 분들을 많이 보아왔다.

가깝게는 시어머님 그리고 손주를 키우는 나의 친정엄마 그리고 주위의 많은 분들. 대개는 50대 후반부터 60대 초반이며 그들의 위치는 흔히 그렇듯 '친정엄마'들이었다. 

 

친정엄마가 아이를 맡게 되는 스토리는 대충 이렇다.

어리디 어린 핏덩이를 놀이방에 맡긴다고 하면 '에구~ 뭐하러 어린 것을 생판 모르는 남에게 맡긴다냐. 그냥 내가 데리고 있으마. 어린 것이 무슨 죄라고….'

 

대개 할머니 육아는 이렇게 측은한 마음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조금 지나면 몸과 마음이 예전만큼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당신이 자녀를 키운 시점으로부터 무려 강산이 서너 번은 족히 바뀌었으니 말이다.

 

그 뿐이랴. 가장 힘든 것은 아마 이것 아닐까.

특히 요즘같이 날씨도 좋은 날.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요즘 벚꽃축제한다는 데 한 번 가자, 주꾸미철이라는데 우리도 이제 몸생각해서 맛있는 거 먹고 다니자'고 여기저기 부르는 모임에

"에구… 집에 어린 것이 있어서 안돼"라고 거절하는 것도 한두 번이다.

 

그러한 모임에 자꾸 빠지다보면 자연히 왕따가 된다.

그렇게 일년, 이년 지내다보면 "에구~ 이년의 팔자… 내 인생은 뭐람…. 에구구"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된다.

처음 손주와 딸을 향한 측은함은 어느새 자기 자신으로 향한다. 

그걸 지켜보는 입장도 마음 편할 리 없다.

 

딸, 아들, 사위가 먼저 "엄마는 안 된다"고 못박자

 

또 있다.
"언니 애는 봐줬는데 왜 내 아이는 안 봐 줘"
"엄마, 친손주보다 외손주가 더 중요해? 외손주도 봐줬는데 친손주는 당연히 봐줘야되는 거 아니유?"
"어머님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 제가 아가씨보다 어머님 용돈을 드려도 두 배는 더 드리는데…."

 

설마 이렇게까지 하는 자식들은 없으리라 믿고 싶지만 현실은 바람과는 다르다.

자식들이 그렇게 너도나도 A/S를 외치기 시작하면 골치 아프다. 누구는 해주고 누구는 안 해줄 수도 없기 때문.

 

더 이상 "딸"이라는 신분을 히든카드로 내세우며 친정엄마의 시간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사위'라는 어려운 위치를 상기시키며 '장모님'의 여가시간을 방해해서도 안 된다.

아들, 며느리 역시 마찬가지다.

 

수입 빵빵한 며느리라면 자신의 아이는 전문 육아기관에 맡겨야 한다.

부모님께 드릴 용돈에 돈을 조금 더 보태어 양육비를 지출하는 한이 있어도

시부모님이나 친정부모님에게 아이를 맡겨서는 안 된다.

조금 비약해서 말하면 그것은 보이지 않는 폭력과도 같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묘하고 간사해서 친정부모님이나 시어머님이 애를 봐주신다고 하면

한편으로는 죄송하고 고맙지만 반대로 그들이 먼저 '나는 절대 애 못봐준다'라고 못박으면 그것만큼 서운한 게 없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친정엄마들이 '울며겨자먹기'로 아이를 봐주는 것이다.

손주가 예뻐서가 아니라, 딸이 측은해서다.

따라서 그들을 편하게 해주는 길은, "난 엄마한테 애 안 맡겨"라고 먼저 확실하게 못 박는 것이다. 

 

이래도 '나는 그래도 친정엄마한테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생각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모녀지간을 떠나, 고부지간을 떠나서 같은 여자로 대등하게 볼 때 그들은 이미 육아라는 관문을 한 번 넘었다.

한 번이면 족하다. 왜 자신의 몫을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떠넘기려고 하는 것인가. 두 번하기에 그들은 너무 지쳤고 고단하다. 

 

하여, 결론은 언제나 하나로 귀결된다.

백일된 아이라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저렴하고 편안한 보육시설이 더 많이 많이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나라에서 지원을 확실히 해주어야 한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 어느 전문직 못지않게 월급도 많이 받아야 하고, 근무조건도 뛰어나야 한다.

그래서 보육시설 근무 희망자가 넘쳐나서 그 안에서 엄격하게 선발해야 한다.

그 길만이 모든 여성이 마음놓고 일하고, 여유를 즐기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길이다.

 

보육시설 근무자를 고소득전문직종으로 육성해라! 

 

어린 시절, 어느 만화에서 으스스한 성에 사는 마녀가

보글보글 끓는 무쇠솥에서 한 숟갈의 액체를 떠서 병에 넣어주는데 그것을 마시면 한순간에 폭삭 늙는 장면이 기억난다.

50~60대 한창 인생을 즐겨야하는 그녀들에게 '양육'이라는 것도 그렇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물론 아이를 키우는 게 괴로운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즐거움보다는 스트레스가 더하다.

"(손주가)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내게도 딸이 둘이나 있다.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전문직에서 인정받으면서 잘 나가는 딸이 어느날 갑자기 아이를 들쳐업고

"엄마, 나 엄마밖에 맡길 데가 없어. 어떡해… 오늘만" 이라고 울먹인다면 어떡할 것인가.

말은 야무지게 해놓고도 자신이 없다.

그때까지 보육정책이 확실히 정착되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난 두 번은 자신없으니.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