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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장거리 여행

서울 나들이(1) - 경복궁에서

by 삼도갈매기 2008. 5. 11.

 

2008년 5월 8일, 

작은 딸내미의 서울생활이 다시 시작 되었다

10개월간 해외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였기에...어버이날에 이사를 했다 

1박 2일 일정으로....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무서운 서울로 차를 몰았으니...

코가 베어져도 그리고 전셋값이 비싸도....모두가 서울이 좋다고 하니 미치고 자빠질 일이다 

 

한양 천리라고 하더니, 멀기도 딥다(?) 멀다....ㅎ

딸내미방을 대충 정리해주고 서울 모 병원에 입원한 사촌동생 병문안을 마치니 하루가 지나간다

다음날, 참말로 코 베어가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서울의 한복판 "경복궁"에 나들이를 갔다

 

 

흥례문(興禮門) ; 경복궁의 궁성 안쪽에 있는 첫번째 문이다

도착하자마자 붉은 옷을 걸친 병사가 무시무시한 장검을 들고 우리를 쳐다본다

참말로 일마들이 코를 베어 갈려고 하나보다 하면서 젭싸게 코를 쥐고 줄행낭을 치려고 준비자세를 취했다....ㅎ

 

 

흥례문 앞에서 "수문장 교대의식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2008년 1월 ~ 12월까지 매일 행사가 진행되며, 10;00부터 매 시간마다

약 30여분씩 당직 수문장과 교대 수문장의 교대의식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수문장(守門將)은?

조선시대 수문장은 도성문과 경복궁 등 국왕이 임어(생활)하는

궁궐의 문을 지키는 책임자로 엄격한 절차에 따라 궁성문을 여닫고 근무를 교대함으로써

왕실의 안녕은 물론 국가의 안위를 수호했던 막강한 위치에 있었던 장수이다

영국 여왕이 기거하는 버킹검 궁전의 근위병 교대의식보다 훨~씬 멋있었다....ㅎ

 

 

 

수문장 교대의식 행사중인 무서운 근위병

콧수염을 멋지게 붙이고 위엄있는 자세로 장검과 활을 쥐고있는 근위병옆에 겁도 없이 아내가 서있다

"윤경씨.... 그 양반 손에 칼 들었는데...코 베어가면 우짤려고 겁도없이 웃고 있는교?"....ㅎ

근위병 아재가 눈도 깜짝하지않고 앞만보고 있다....뭘 생각하고 있을까?...ㅎ

   

 

근정문(勤政門) ; 보물 812호

흥례문을 통과하여 영제교를 지나면 위의 사진에  보이는 근정문이 보인다

근정문을 통과하면 임금이 정사를 보았던 사진아래에 보이는 근정전이 나온다

 

 

근정전(勤政殿) ; 국보 223호,

흥례문과 영제교를 지나 근정문에 들어서면

국가적 행사를 치르던 근정전 마당으로 조정(朝庭)이라 불렀다.

근정전은 행각의 동남쪽 모퉁이에서 바라볼 때 북안산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국가 의식을 치르고 신하들의 하례와 사신을 맞이하던곳이다....현존하는 한국 최대의 목조 건축물이다.

 

 

 

 

 

 

▼ 임금님이 정사를 보았던 근정전 내부 모습이다 

   "여봐라!!....부산갈매기가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했는데 진수성찬에 예쁜 궁녀들과 하룻밤.......ㅎ"

    하는 임금님의 목소리가 들리는듯 하다.....ㅋㅋ

 

 

  

경회루(慶會樓) ; 국보 224호

왕이 주재하는 잔치를 벌이던 곳으로 높은 누마루에 오르면

서쪽 인왕산의 풍경이 병풍처럼 펼쳐지며, 외국 사신의 접대나 연회장소로 사용되던곳이라고 한다

 

 

경복궁을 처음 지을 때의 경회루는 작은 누각에 지나지 않았다.

1412년 그 건물이 기울자 이를 수리하면서 위치를 서쪽으로 옮기고,

원래보다 크기도 크게 하였으며 땅이 습한 것을 염려하여 둘레에 못을 박았다.

새 건물이 완공될때 태종은 종친, 공신, 원로 대신들을 불러 기뻐하며 경회루라는 이름을 지었다.

  

경회루는 임진왜란에 불탔다.

오늘날 경회루는 1867년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다시 지은 것이며

경회루는 정면 7간, 측면 5간 해서 35간이나 된다.이층 누마루집인데 아래층은 돌기둥을 세우고 위층은 나무로 지었다.

 

  

  

 

 

 

 

멀리 보이는 산이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이라고 한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파란 청기와(청와대)가 보인다

눈이 밝은분은 그곳 안에서 미제 쇠고기로 밥 묵고있는 높은분이 보인다고 한다

나도 쬐금 얻어 묵을라꼬....눈을 부라리고 봐도 뵈질 않았다....천만다행이였다

 

 

 

 

 

사정전(思政殿)

왕이 아침에 출근하여 저녁에 퇴근할 동안 일상적인 업무를 보는 곳이다.  

사정전은 왕이 외국 사신을 맞이하거나, 우리 사신을 외국으로 보낼 때 하직 인사를 받던 곳이다.
한양으로 돌아온 지방관을 맞아 그 지방의 소식도 듣고,

멀리 파견되는 지방관과 장수들을 격려하고 친히 당부하는 곳이기도 하다.

 

사진 아래 : 사정전 내부

 

 

 

 

강녕전(康寧殿)

왕이 거처하던 침전(寢殿)으로 정면 11칸, 측면 5칸 규모의 초익공 팔작 지붕이다.

 

강녕전 일곽은 1920년 창덕궁의 복원을 위해 헐려 없어진 것을 1995년에 복원하였다.

강녕전은 왕이 거처하던 곳인만큼 화재가 나지 않도록 신경을 썼는데,

굴뚝을 건물 가까이에 지을 수 없고 그렇다고 멀리 떨어진 곳에 굴뚝을 지을 수도 없었기에

강령전 뒷편의 교태전으로 가는 양의문 좌우에 굴뚝을 붙여 지었다고 한다.

 

 

 

온돌방으로 꾸며진 강녕전 내부 모습

사진 상 ; 임금님이 침전하였던 침대가 보이며(건물 우측 방) 

사진 하 : 임금님이 식사하셨던 수라상이 보인다(건물 좌측 방)

 

 

 

 

  

 

 

 

아미산(峨嵋山) 정원과 굴뚝 : 보물 811호

왕비의 침전 뒷쪽에 인공으로 단을 쌓아 계단식 정원을 만들고,가운데 단에 육각형 굴뚝 4개를 나란히 세웠다.

연한 주황색 전벽돌을 쌓은 몸체위에 서까래가 달린 기와지붕을 얹고 그 위에 4개씩의 작은 굴뚝을 모았다.

굴뚝 몸체에 매화와 국화, 십장생 등 여러 무늬의 조각을 새겨서 생태계를 상징하였으며,

아미산 정원은 신선이 사는 자연의 세상이였다고 전한다(왕비의 쉼터쯤인것 같다)

 

 



 

조선의 으뜸 궁궐...."경복궁"

경복궁은 조선 왕조의 법궁이다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창건하였고, 1592년 임지왜란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고종때인 1868년 흥선 대원군이 중건하여 330여동 7,225칸의 건물이 들어선 웅장한 모습이였다

 

궁궐 안에는 왕과 관리들의 정무시설, 왕실가족들의 생활공간, 휴식을 위한 후원 공간이 조성되었다

또한 왕비의 중궁, 세자의 동궁, 고종이 만든 건청궁 등 궁궐안에 다시 여러 작은 궁들이 복잡하게 모인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거의 대부분의 건물들을 철거하여 근정전등 극히 일부 중심 건물만 남았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어 궁궐 자체를 가려버렸다고 한다

 

다행히 199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사업이 추진되어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흥례문 일원을 복원하였으며

왕과 왕비의 침전, 동궁, 건청궁, 태원전 일원이 그 모습을 되찾았다고 한다

 

현재 경복궁의 외곽의 정문인 "광화문"은 원래의 위치와 모습을 찾기위해

복원공사중이며 2009년쯤에 다시 만날수 있다고 한다

서울나들이 2편은 경복궁내부에 있는 전통과 현대문화의 진수인 "국립 민속 박물관"편이다

 

딸내미 덕분에

서울의 한복판에 자리한 경복궁도 구경하고....횡제한것 같다

금년도 어버이날은 딸내미 덕분에(?) 서울에서 보냈다

근데...이녀석들 그 흔한 카네이션꽃 하나 달아주지않았다.....음 ~~ 괘씸한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