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고향 거문도

故 박옥규 제독 - 해기사 명예의 전당에 헌정

by 삼도갈매기 2010. 3. 6.

 

 

'해기사 명예의 전당' 헌정 인물에 박옥규 제독
1953년 해군 참모총장 역임

 
올해 '해기사 명예의 전당' 헌정 인물로 해군 참모총장을 지낸 박옥규(사진) 제독이 선정됐다고 선정위원회가 4일 밝혔다. 헌정식은 오는 5월 '바다의 날' 기념행사 때 열릴 예정이다.

전남 거문도 출신인 박옥규 제독은 조선총독부가 설립한 해원양성소(2기)를 졸업한 뒤 다양한 승선 경력을 쌓아 최고의 선장으로 인정받는 등 우리나라 해운의 선각자임과 동시에 해군의 창설자로, 1953년에는 해군 참모총장을 맡기도 했다. 또 그는 현역 해군 제독 신분으로 처음 태극기를 게양하고 태평양을 횡단 항해한 첫 상선(극동해운 고려호) 선장으로도 기록돼 있다.

부산 태종대공원 내 영도등대 부근에 자리잡은 해기사 명예의 전당은 우리나라 해운 발전의 초석이 된 해기사들의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지난해 3월 6일 세워졌다.
(위 기사는 2010년 3월 6일 모 일간지에서 퍼 왔슴다)
 

 

 

             ♣  박옥규 제독의 약력
                      *1901. 12 전남 거문도 출생
                      *1949. 3  해군중령 임관
                      *1949. 4  해군본부 작전국장
                      *1949. 10  도미 함정인수단장
                      *1950. 5  도미 함정인수 지휘관
                      *1950. 9  P.F 62 함장
                      *1950. 11  해군대령
                      *1951. 6  해군본부 감찰감
                      *1951. 12  도미 함정인수단장
                      *1952. 1  해군 준장
                      *1952. 4  해군본부 인사국장
                      *1953. 1  해군 작전 참모부장
                      *1953. 4  해군소장
                      *1953. 6  해군총참모장
                      *1953. 10 해군중장
                      *1957. 7  예편
                      *1971. 1  타계

 

★ 박옥규 제독의 "생애"
  1919년 일본 관서대 전문부 예과를 졸업한 장군은 고국으로 돌아와 인천상선학교 석상학과(席上學科)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실습과에서 3년에 걸쳐 선박 및 항해에 관한 실무를 익혔다. 이후 갑종 2등 운전사자격을 취득하고 일본의 고베-가와사키 기선주식회사에 입사하여 해운인으로의 길에 들어선 그는 조선 우선(郵船)주식회사에서 갑종 일등운전사 면장과 갑종 선장 면장을 취득하고 조선선박운항통제주식회사 부산지점 주재 선박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해방 이후 조선선박운항통제주식회사의 사장으로 취임한 그는 남조선과도정부의 요청에 의해 사장직을 사임하고 부산항 수선인(水先人)으로 종사하면서 부산하역주식회사 사장을 겸임하였다. 1947년 11월 남조선과도정부 운수부 추천으로 해상운수국 부국장 겸 부산항만청장에 취임하였고, 다음해 12월에는 교통부 부산 조선창장(造船廠長)에 임명되었다.
  1949년 3월 1일 해군에 입대하여 80479의 군번을 부여받고 해군 중령(군번 80479)으로 임관된 박옥규 제독은 해군본부 작전국장에 보임되어 작전참모로 활동하면서 10월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함정을 인수해 오는 함정인수단장에 임명되었으며, 다음해 5월에 다시 도미 함정인수단의 지휘관으로 선정되었다. 


  1952년 해군본부 인사국장에 이어 해군 작전참모부장으로 발령된 그는 1953년 해군 소장으로 진급하는 한편 6월에는 해군의 수장인 총참모장에 임명되어 1954년 10월말까지 휴전에 따른 전쟁의 마무리와 해군발전에 정열을 쏟았다. 총참모장 재임 중 해군 중장으로 진급한 박옥규 제독은 1957년 7월 30일 참모총장직을 마지막으로 10년 가까운 군 생활을 종결하였다.
  해상봉쇄를 위시한 상륙작전과 군수물자 수송, 적진 포격 등 한 치의 차질 없는 전시임무 수행으로 제독은 은성태극무공훈장(훈기번호 제 158호)과 충무무공훈장을 수여받았고, 이어 미 동성훈장마저 수여받는 영예를 차지하였다. 그는 1971년 1월 28일 향년 71세를 일기로 타계하였으며, 현재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장군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 박옥규 제독의 "공적"
  6.25전쟁이 발발한 후 9월에 P. F 62함의 함장으로 전보된 박옥규 해군 중령은 1951년 3월까지 해역(海域)에서 적의 해상침투를 저지하기 위한 해상봉쇄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였다. 약 3개월간의 고등군사반 교육을 마치고 해군본부 감찰감으로 부임한 그는 연말에 또다시 도미 함정인수단장으로 임명되어 임무를 차질 없이 수행하고 1952년 1월 해군 준장으로 진급하였다.


  이후 1953년 1월 해군 작전참모부장에 임명된 박 제독은 원산 영흥만 일대와 동북 해안선을 중심으로 하는 해역에서의 소해작전과 경비작전을 계획추진토록 하는 한편 서해에서는 옹진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도서작전을 실시토록 하였다. 이러한 작전계획에 따라 연평도 근해에서 PC급 함정이 기함(旗艦) 임무를 띠고 경비항해를 계속하면서 PCS, YMS, JMS, LSSL급 함정 등을 지휘하여 적의 해안에 대한 포격과 소해, 경비, 수송 등을 실시하였다. 특히 PT 편대를 이용한 해안선 기습작전은 함정 전력이 열세인 적의 해상경비를 노출시킨 일전이었다. 또한 휴전을 앞두고 적절한 시기에 분계선 이북의 각 도서주민과 부대 병력에 대한 후방 철수작업도 병행 추진하였다.


  이 기간 중에 실시한 주요활동은 1953년 3월 11일에 LSSL 109정, YMS 507정과 503정이 강교동(江橋洞)에 함포사격을 실시하여 화력거점 2개소와 병사(兵舍) 5동을 격파하였으며, 3월 21일에도 YMS 505정은 서해의 육도대안인 목동(牧洞)의 적진을 포격하였으며, PT 편대는 1월 1일부터 2월 19일까지의 기간에 백령도-순위도간의 해역을 수시로 출몰하여 적의 진지를 분쇄하거나 위협하는 전과를 거두었다.(박옥규 제독 생애에서 펌) 

 

 

 故 박옥규 제독의 고향인 전남 여수시 거문도 덕촌리에 세워진 송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