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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장거리 여행

경북 경주시 "불국사(佛國寺)" 단풍구경

by 삼도갈매기 2010. 11. 14.

 

경주시내의 아름다운 보문호수를 구경하고

동쪽으로 10여분쯤 승용차로 가다보면 다보탑과 석가탑이 있고

신라불교미술의 뛰어난 조형미를 보여주는 최고의 걸작품인 "불국사(佛國寺)"에 도착한다.

 

불국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1교구 본사로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찰이며,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경주(慶州) 토함산에 자리잡은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짓기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다.

이후 조선 선조 26년(1593)에 왜의 침입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렸다. 이후 극락전, 자하문, 범영루 등의 일부 건물만이 그 명맥을 이어오다가 1969년에서 1973년에 걸친 발굴조사 뒤 복원을 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경내에는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다보탑과, 석가탑으로 불리는 3층 석탑, 자하문으로 오르는 청운·백운교, 극락전으로 오르는 연화·칠보교가 국보로 지정, 보존되어 있다. 이러한 문화재는 당시 신라 사람들의 돌을 다루는 훌륭한 솜씨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아울러 비로전에 모신 금동비로자나불좌상과 극락전에 모신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을 비롯한 다수의 문화유산도 당시의 찬란했던 불교문화를 되새기게 한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 12월에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이상 인터넷에서 발췌)

 

(참고 ; 불국사 경내 위치도)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 국보 23호

토함산(吐含山)에서 뻗어 내려오는 한 줄기를 잘라 남향으로 석단(石壇)을 만들어 고대(高臺)를 이루고 불국사를 세웠는데, 이 석단 앞면 두 곳에 석제(石梯)를 가설하여 당탑(堂塔)에 오르도록 되어 있다. 곧, 동쪽에 있는 2단의 석제(石梯)가 이것인데, 밑의 것을 청운교(靑雲橋), 위의 것을 백운교(白雲橋)라 한다.

 

17단의 청운교는 등항(登桁)에 의하여 좌우로 구분되었는데, 등항(登桁)에는 중앙에 능선을 두었고, 좌우쪽 끝의 등항(登桁)에는 원래 난간이 가설되어 있었던 모양이나 지금은 아래위에 돌기둥만 남아 있다. 다리밑은 작은 돌을 가구(架構)하여 궁륭형(穹융形)을 만들어 사람이 다닐 수 있게 되어 있다. 그 위쪽 양단(兩端)에는 등항(登桁)까지 내밀린 갑석(甲石)이 있는데, 우각(隅角)의 반전수법(反轉手法)은 다보탑(多寶塔)이나 석가탑(釋迦塔)의 반전수법과 일치한다. 청운교를 올라서면 보도(步道)가 마련되어, 서쪽의 환상적인 범영루(泛影樓) 돌기둥을 지나 극락전(極樂殿) 앞에 이르게 된다.

 

청운교 위의 백운교는 16단으로, 구성양식은 규모가 작을 뿐 청운교와 같은 양식이다. 이 다리 밑에도 작은 궁륭형(穹융形) 통로가 마련되어 있고, 그 양쪽에서 길게 옆으로 뻗은 얇고 넓은 갑석(갑석)의 수법도 청운교에서와 같다.

백운교를 올라서서 자하문(紫霞門)을 지나면 앞에 대웅전(大雄殿)이 나서고, 동서로 두 탑이 서 있다. 약 45도의 경사를 보이는 이 석제(石梯)는 설계에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서 만들어졌으며, 좋은 화강석을 써서 다듬은 수법도 정교하다. 세부양식에서도 서쪽의 석제(石梯)나 기타 당탑(堂塔)과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불국사(佛國寺)의 중창(重創)이 경덕왕대(景德王代) 김대성(金大城)의 발원(發願)으로 이루어졌다고 전하는데, 이 석제(石梯)도 그 당시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이상 인터넷에서 발췌)

 

 

중, 고등학교때 이곳 경주로 수학여행 오면

위 사진 청운교와 백운교 석탑계단에 앉아서 친구들과 사진을 찍었던 기억들이 있을것이다

지금은 백운교, 청운교 석탑계단의 안전을 위해서 이곳 계단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불국사 다보탑> - 국보 20호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에 김대성의 발원으로 창건된 사찰로, 과거·현재·미래의 부처가 사는 정토(淨土), 즉 이상향을 구현하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정신세계가 잘 드러나 있는 곳이다.『삼국유사』에는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석굴암을,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가 목숨을 다할 때까지 짓지 못하여 그 후 나라에서 완성하여 나라의 복을 비는 절로 삼게 되었다.

 

다보탑과 석가탑(불국사삼층석탑,국보 제21호)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높이도 10.4m로 같다. 절내의 대웅전과 자하문 사이의 뜰 동서쪽에 마주 보고 서 있는데, 동쪽탑이 다보탑이다. 다보탑은 특수형 탑을, 석가탑은 우리나라 일반형 석탑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할 때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탑으로 구현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석가탑을 보면 2단의 기단(基壇)위에 세운 3층탑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만, 다보탑은 그 층수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십(十)자 모양 평면의 기단에는 사방에 돌계단을 마련하고, 8각형의 탑신과 그 주위로는 네모난 난간을 돌렸다.

탑을 세운 시기는 불국사가 대규모로 새롭게 단장을 한 경덕왕 10년(751)으로 추측된다. 목조건축의 복잡한 구조를 참신한 발상을 통해 산만하지 않게 표현한 뛰어난 작품으로, 4각, 8각, 원을 한 탑에서 짜임새있게 구성한 점, 각 부분의 길이·너비·두께를 일정하게 통일시킨 점 등은 8세기 통일신라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안타깝게도 다보탑에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설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1925년경에 일본인들이 탑을 완전히 해체, 보수하였는데, 이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또한 탑 속에 두었을 사리와 사리장치, 그 밖의 유물들이 이 과정에서 모두 사라져버려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기단의 돌계단 위에 놓여있던 네 마리의 돌사자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좋았을 듯한 3마리가 일제에 의해 약탈되어, 이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아직까지 그 행방을 알 수가 없다.(이상 인터넷에서 발췌)

 

 

<불국사 삼층석탑> - 국보 21호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 김대성의 발원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과거·현재·미래의 부처가 사는 정토(淨土), 즉 이상향을 구현하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정신세계가 잘 드러나 있는 곳이다.『삼국유사』에는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석굴암을,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혜공왕 10년(774) 12월 그가 목숨을 다할 때까지 짓지 못하여, 그 후 나라에서 완성한 후 나라의 복을 비는 절로 삼게 되었다.

 

불국사삼층석탑과 불국사다보탑(국보 제20호)은 절의 대웅전 앞 뜰 동서쪽에 각각 세워져 있는데, 서쪽탑이 삼층석탑이다. 탑의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으로, ‘석가탑’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것을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에 따른 것이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석탑으로, 감은사지삼층석탑(국보 제112호)과 고선사지삼층석탑(국보 제38호)의 양식을 이어받은 8세기 통일신라시대의 훌륭한 작품이다. 탑 전체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2층의 기단이 튼실하게 짜여 있으며, 목조건축을 본따서 위·아래층 기단의 모서리마다 돌을 깎아 기둥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탑신에도 그러한 기둥을 새겼으며, 지붕돌의 모서리들은 모두 치켜올려져 있어서 탑 전체에 경쾌하게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더한다. 탑의 머리장식(상륜부)은 파손되어 1973년 남원 실상사삼층석탑(보물 제37호)의 머리장식을 본따서 복원하였다. 탑 주위로 둘러놓은 주춧돌 모양의 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이를 부처님의 사리를 두는 깨끗한 곳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탑이 만들어진 시기는 절을 창건한 연대인 경덕왕 10년(751) 이후로 보고 있다. 그 후 원래 모습대로 잘 보존되었으나, 안타깝게도 1966년 9월 도굴꾼들에 의해 탑이 손상되는 일이 있었다. 그해 12월 탑을 완전하게 복원하면서 2층 탑신의 몸돌 앞면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던 사각형의 공간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서 여러가지 사리용기들과 유물을 찾아냈는데, 그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국보 제126호)이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닥나무 종이로 만들어졌으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 탑은 ‘무영탑(無影塔: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여기에는 석가탑을 지은 백제의 석공(石工) 아사달을 찾아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 온 아사녀가 남편을 만나보지도 못한 채 연못에 몸을 던져야 했던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이상 인터냇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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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역사가 살아쉼쉬는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경주(慶州)

그 아름다운 경주를 제대로 구경하려면 몇날 몇일이 걸릴지 모른다

예전에 이곳 불국사를 구경하고 근처에 있는 석굴암까지 구경했던 기억이 있다

 

석굴암은 1995년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되었으며

또한 석굴암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석굴사원이며,

석공인 "김대성"이 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창건하였고,

경주의 대표적인 사찰인 불국사는 전생의 부모를 위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너무나 잘 알려지고 가까운 곳에 자리한 신라의 고도 경주(慶州)....

봄은 봄대로 시가지가 벗꽃과 함께 노란 개나리와 유채꽃이 경주의 봄을 알리며

여름엔 안압지를 가득 메운 연꽃과 함께 많은 사람들에게 부처의 자비를 선사하는 곳이니

가까운 경주시내로 사계절 나들이 할것을 권하며, 가을이 아름답게 물든 경주 이야기를 마침니다

(참고 ; 위 사진은 2010. 11. 11 경주 불국사 경내에서 담은 사진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