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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먼나라(해외)여행

동유럽 여행 - 체코 "프라하"(전편)

by 삼도갈매기 2011. 5. 7.

 

 

 

 

제 2차 세계대전 비운의 현장인 폴랜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유태인 15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28개동(洞)의 붉은 벽돌로 지어진 슬픔을 안고있는 현장의 모습

197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현재는 박물관과 전시관으로 꾸며진 비극의 역사를

관람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을 숙연하게 했으며, 더러는 눈물까지 훔치게 한, 아픔을 간직한 역사의 현장이였다.

 

무거운 마음을 뒤로하고 폴랜드 크라카우에서 전용버스로 6시간을 달려 체코의 수도 "프라하"로 이동하였다 

 

프라하는 동유럽의 유명한 관광 도시며, 동시에 슬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과 1968년 "프라하의 봄"이라 불려지는 개혁운동 당시의 구소련군에 의한 침입과

1989년 구 체코슬로바키아 체제 전환인 "벨벳 혁명" 까지 프라하는 수많은 역사의 아픔을 겪어야 했던 곳이다

거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텨 온 강인성이야 말로

오늘날 프라하를 세계 관광도시로 거듭나게 하는 힘의 원동력이 된 계기가 되었다.


 

 

이른봄 유럽여행을 하다보면

길거리나 들판에 노랗게 피어있는 꽃이 있었으니

유채꽃과 더불어 사진에서 보듯이 민들레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 이렇게 민들레꽃이 핀다면 약초로 사용하기 위해

너도나도 채취해서 이런 아름다운 모습은 볼수 없을것이다 (사진 위 아래 : 민들레 꽃)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도착하니 늦은 저녁 시간이였다

전편에서 언급했듯이 "유럽의 3대 야경"중 하나인 체코의 프라하 야경을 구경하기 위해서

"바츨라프광장"에서 구시가지까지 그리고 체코의 젖줄인 "블타브 강"을 가로지르는 "카를 교(橋)"를 경유하여

거의 1시간 30여분 정도 체코 프라하의 중심지인 야경에 흠뻑 젖어보기 위해서 바쁜 걸음을 채촉하였다

 

 

아름다운 "프라하 야경"

구 시가지와 카를교(橋), 그리고 프라하 성(城)을 중심으로 은은하고 아름다운 조명이 환상적으로 펼쳐진다

특히 카를교에서 바라보는 프라하 성은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

위 사진에서 보듯이 구시가지 광장의 "틴 교회(틴 성당)도 첨탑주위로 아름다운 조명을 쏘아올려 장관을 이룬다.

틴 교회는 구 시청사 맞은 편, 킨스키 궁전 바로 옆에 위치한 성당으로 하늘을 찌를 듯한 멋진 첨탑이 인상적이다

위 사진에서 보듯....한 낮에 보는 틴 교회도 아름답지만 야경으로 보니 은은한 기운이 감돈다

 

아래 사진은 블타바(우리에겐 몰다우(Moldau)로 알려져 있음) 강 위에

돌로 만들어져 세워진 "카를교(橋)" 입구에 있는 박물관의 아름다운 야경 모습 

 

 

 

프라하 구시가지쪽에서 카를교를 건널때 만나게 되는 탑으로

14세기 경에 지어진 유럽 고딕양식의 최고봉에 속한 첨탑으로 이 탑은 원래 통행료를 징수하거나

다리를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졌으나, 현재는 일반인에게 무료로 개방되고 있었다.(사진 위)

 

카를교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프라하 성(城)의 야경"(사진 아래)

체코를 찾는 관광객들이 대부분 프라하 성을 보기위해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프라하 관광의 핵심이 되는 프라하 성의 야경 모습

 

 

블타바강의 카를다리에서 바라본 프라하 성과 카를교의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나

야경을 담기엔......내가 가진 똑딱이 카메라가 너무도 빈약해서 제대로된 사진이 없는게 아쉬웠으니

마음속에 프라하의 야경을 담아둘 수 밖에 없었다.(목수가 연장탓만하고 있으니....한심하다)

 

  

 

체코 프라하의 Albion Hotel에서 하룻밤을 지낸후

아침일찍 창문을 통하여 밖을 내다보니 안개가 자욱하다(사진 위)

 

이곳 체코는 도로 곳곳에 한국의 유명한 기업의 이름을 딴 도로가 몇 군데 있었다

우리나라의 대기업인 "삼성"과 "현대" 회사 로고가 새겨진 깃발들이 도로 곳곳을 점령하고 있었는데

이름하여 "현대거리", 그리고 "삼성거리"로 명명되어 있어, 이역만리 먼곳에서도 대한민국의 위상이 

빛나고 있음에 우리 모두로 하여금 자부심을 느끼게 하였다.(체코에 현대자동차 생산공장이 있다고 함)

 

 

프라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외관은 독일의 쾰른 대성당과 흡사하다는 "성 비트 성당"을 일행과 함께 찾아간다

 

 

성비트 성당에서도 근위병들이

매 시간 교대로 성문을 지키고 있었으니....

잘 생긴 체코 병사를 향하여 어김없이 아내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예전에 남편의 복장과 닮아서 그런지 아내는 이런 복장만 보면 포즈를 취한다.....ㅎ)

 

 

성 비트 대성당

총길이 124m, 폭 60m, 천장 높이 33m, 탑 높이 100m로

프라하에서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건축물중 하나로 현재 대통령 궁으로 쓰이고 있는 프라하 성곽안에 위치해 있다.

 

건축이 시작된것은 1344년 카를 4세에 의해 짓기 시작하였으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것은 1929년이다.

성당이 완성되었을 때는 초기 비투스 성당의 최초 설립자이자 보헤미아의 수호성인 웬체슬라스 왕자가

사망한지 천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였으며, 오랜 세월에 걸쳐 증개축되어 건물은 중세의 고딕양식을 바탕으로 하여

점차적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워낙 크고 웅장하여 화각이 좁은 똑딱이 카메라로는

대성당 전체를 담을수 없어서 부분적 나누어서 사진을 담았으니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성비트 대 성당으로 입장하는 육중한 청동문에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조각되어 있다

 

11세기경 체코 역대 왕 중 가장 위대한 왕으로 꼽히는 바츨라프 대왕은

이복동생들의 시기로 인해 살해 위협을 느끼고 자객을 피해 도망치다 마지막으로 이 성문앞에 도착했으나

육중한 성문은 끝내 열리지않았고, 왕은 이곳에 있는 문고리를 잡은채 결국 처참하게 살해 당했다.

그후 그의 무덤에서 기적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고 놀란 암살자는 932년 그의 유해를 이곳에 옮겼다고 한다

암살직후 부터 보헤미안의 수호성인 추앙을 받아온 바츨라프 1세로 인하여 이 성당은 오랫동안 순례지로 사랑을 받았다.

 

 

성당내부엔 아치가 그려진 그물형 천장모습을 보인다.

아름다운 리브가 기둥을 타고 마치 실크 드레스 자락이 흘러 내리는 듯 부드럽고 우아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모습을 보인다

내부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인간의 손으로 빚은 가장 성스럽고 훌륭한 조각품을 신에게 받치는 형상이다.

아침 일찍 찾아갔더니 참배객들은 보이않아 정적함이 감돌아 더욱 엄숙한 느낌이다

 

또한 이곳은 밝지도 어둡지도 않는 자연광과 함께

장엄하게 울려퍼지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는 모든 이의 가슴 속까지 파고들것 같은 예감이다. 

 

 

 

성당 안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환상적인 색채와 형채로

보헤미안 특유의 푸르고 붉은 유리공예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내부에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는 체코의 화가 "알폰소 무하"의 그림으로 1936년에 만들어 졌다.

 

 

 

대 성당을 관람하고 오른편 광장 밖으로 나오니

좌우에 카다란 박물관이 있으며, 성비트 대 성당의 우람한 모습이 이곳에서도 보인다

 

 

성당 광장에서 본 "성 비트 성당"의 전경

전면에서도 카메라에 전부를 담을수 없더니 옆면에서도 마찬가지로

카메라에 담을수 없을 정도로 우람하고 웅장한 모습이다

 

 

 

프라하 성

건축의 도시 프라하 심장이 되는 곳이 프라하 성이다

성비트 성당을끼고 나오면 넓은 광장이 나오는데 이곳을 "흐라트챠니 광장"이라고 하며

위 사진에서 보이는 건물이 1918년 이후 부터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프라하 성은 길이 570m, 폭 128m로 전 세계의 현존하는 중세양식의 성 중 가장 큰 규모다.

동서로 길게 펼쳐진 이 성의 입구는 흐라트차니 광장에 면한 서쪽 정문과 말라스트라나 쪽의 동문, 성 정원쪽의 북문이 있다.

각 문에는 위병 2명씩이 지키고 서 있으며, 위병은 오전 7시부터 밤 11시까지.....1시간마다 교대하며

이 중 정오에 펼쳐지는 교대식이 가장 볼만하다.

 

 

1526년 합스부르크 왕가가 보헤미아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했을 때부터

르네상스 적인 건축이 프라하 성을 점점 복잡하고 정교한 것으로 만들었다.

1753년~1775년 사이에 외관은 현재와 같이 결정되었고, 건축가 Josip Plecnik에 의해 성의 내부장식과 정원이 새로 정비되었다.

 

프라하 성은 수많은 건물들이 모여 하나의 로열 타운을 이루고 있는데, 중심 건물은 성 비토 대성당이다.

 

 

 

프라하 성의 흐라트차니 광장에 자리한  대주교 궁전(사진 위),

대주교 궁전에서 위로 올라가면 슈바르첸베르크 궁전이 있다.(사진 아래)

 

 

 

광장 한켠에서 아름다운 선율소리가 들린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음악을 감상하며 한푼두푼 자발적으로 수고료를 지불한다

앞에 보이는 가방에는 유명한 음악인들의 CD가 빼곡히 들어있으며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었다.

 

 

프라하 성의 흐라트차니 광장에서 성벽아래를 쳐다보면

위 사진처럼 체코 프라하 도심을 유유히 흐르는 블타바강과

아름다운 프라하 시내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다.(안개가 끼어 사진이 선명치 못한게 아쉬웠다)

 

 

프라하 성에서 아름다운 다리인 카를교를 향하여 10여분 걷다 보면 만나는 건물로

어린시절 모짜르트가 이곳에서 최초로 연주했던 건물이라고 한다(사진 위)

 

 

황금소로(黃金小路)

좁은 길로 만들었다는 황금소로는 16세기 작은 집들이 모여 있는 거리로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프라하성에서

내려오는 좁은 길을 말한다, 허리를 굽혀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정도로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길인데

원래 이곳은 프라하 성에서 일하던 집사와 하인들이 살던 곳이란다.

 

 

 

이곳이 유명해진 것은 그 집들 사이에 실존주위 대표적 작가인 "카프카"가 작품을 집필했던 곳이 있기 때문이며

벌써 5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곳은 여전히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고 이제는 서점이나 레코드 가게,

기념품 등의 상점들이 손님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카를교(橋)

블타바(우리에게는 몰다우로 알려져 있음)강 위에 서정과 낭만이 가득한 배경으로 펼쳐진 다리가 카를 다리이다.

카를교는 1357년 건설하기 시작하여 1406년 카를 4세에 의해 완공되었으며.

동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로 현존하는 유럽 최고의 다리로 손꼽힌다.

 

길이 520m, 폭 10m의 보행자 전용으로 차량통행이 금지되어 언제나 노점상과 거리의 예술가, 관광객들로 붐 빈다.

다리의 가장 큰 특징은 조각상이 양측 난간에 15개씩 합계 30개가 늘어서 있다는 것이다.

 

로마 산탄젤로 성에 있는 베르니니의 조각에서 힌트를 얻어

1683년부터 프라하의 기독교 순교 성자인 네포무크의 조각상을 시작으로

기독교 성인 30인의 조각상(사암을 사용)을 다리 난간에 세우게 되었으며

성서를 주제로 만들어진 예술작품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다리를 건널 때는 프라하 성 쪽을 향한 난간을 주의 깊게 살펴보자.

다리 중간쯤의 난간에 30인의 조각상 중 한곳에 독특한 모양의 부조가 새겨져 있는데,

그 위에 손을 얹고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한번씩은 만지고 가기 때문에 그 부분만 반들반들 윤이 나는 곳이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물론 아내도 이곳을 만지며 소원을 빌고 있었다....

설에 의하면, 소원을 빌었던 내용을 1년간 발설하지 않아야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였으니

아내가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지금은 알수 없었다.

 

 

 

 

카를교 다리 중간쯤에 서서 멀리 프라하 성을 바라다 보니 성비트 대성당의 뾰쪽한 모습이 보인다

이곳 카를교에서 국내 모 TV방송에서 방영된 "프라하의 봄" 촬영지로도 유명세를 떨쳤다고 한다

 

 

 

카를교 다리에서 반대편의 강을 보면 조그마한 운하가 있다

물을 가득 채운후에 선박을 강물에 띄워 보낸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대통령이 이곳의 운하를 본따서 4대강 운하를 만들려고 하는지?.......?

 

 

 

카를 교에 석양이 비칠때 멀리 프라하 성에서 내려다보면 아름다운 광경이 연출된다고 한다.

여름 밤에는 다리 곳곳에서 흥겨운 노래와 춤이 벌어지기도 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며

세계 각지의 젊은이들은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함께 우정을 나누기 위해 이 곳을 찾는다고 한다.

 

카를교에서 바라다본 체코의 젖줄인 블타바 강의 모습이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카를교가 끝나는 곳의 탑은 14세기에 만든 것으로 유럽 고딕양식의 최고봉에 속한다.(아래 사진)

원래 이 탑은 다리 건너편에도 두개의 탑이 서있으며, 이곳엔 외롭게 한탑만 서있다

탑이 설치된 목적은 건너편 탑이나 이곳 탑 모두가 통행료를 징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곳을 지나서 조금만 걸으면 구시가지의 화려한 첨탑 등이 나타난다

(구시가지 이야기는 후편에 계속.....)

 

 

 

(참고) : 체코와 수도 프라하는 어떤 도시인가?

동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변하고 있는 나라가 체코이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는 흔히 "유럽의 음악학원", "북쪽의 로마"등으로 불리어지며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히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가진 프라하는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로 자리를 잡은 9세기말부터 천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중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신비의 고도이다. 작은 골목 하나 하나에도 중세의 향기가 베어있어 프라하를 여행하다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오랜 역사는 도시 전체를 아름다운 건축물로 채우고 있다. 사실 프라하만큼 다양한 건축물을 볼 수 있는 도시도 드물다.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아루누보 등의 다양한 건축 양식이 제각기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어 도시 전체가 박물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현대적인 건물과 좁은 골목 사이사이에 은백색 고대 건축물이 웅장하게 자태를 드러내며 넓은 광장으로 이어질 때는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황금빛 돔과 유럽의 건축, 미술사를 대표할 만큼 프라하는 아주 오래 전부터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잡고 있었다.


시내 중심을 구비구비 흐르는 블타바 강은 우뚝 솟은 프라하 성과 맞은편으로 펼쳐진 구시가와 대비를 더욱 강조해 준다.

구시가는 1989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좁은 골목이 거미줄 처럼 얽혀 있고, 이 곳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카를 다리가 있다. 블타바강과 어우러져 다리위에서 프라하 성쪽을 바라보는 풍경은 프라하 도시의 절정에 달하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프라하는 한해 1억명 외국인이 찾아드는 세계 6대 관광도시로 2000년「유럽 문화도시」중 하나이다.

유럽을 여행하는 사람들, 특히 배낭여행자들이 사랑하는 도시가 프라하이다. 오스트리아의 빈과 더불어 관광수익으로 국가 경제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1993년 체코 공화국과 슬로바키아 공화국의 분리 이후 개방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맥도날드, 버거킹, 밀카, 하겐다즈등으로 가득찬 시내는 온통 서구화의 물결이 출렁이고 있다. 서방의 어느 도시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베트로가 다니지 않는 변두리로 나가보면 프라하의 또다른 얼굴, 사회주의의 어두운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체코에는 3개의 종합대학이 있는데 그 중 하나인 프라하 찰스 종합대학교(Charles University of Praha)가 이곳 프라하에 자리잡고 있다.
 

중부 유럽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대학으로 1348년 룩셈부르크가의 카를 4세가 설립한 것으로, 설립 당시에는 파리대학을 모방하여 신학, 법학, 의학, 철학의 4분 과제를 채용하였으며, 보헤미아·바이에른, 폴란드, 작센에서 모인 교사조합을 중심으로 한 4개의 국민에 의해 자치적으로 운영되었다.
1920년 체코대학이 챨스대학으로 개칭되었으며, 나치스 지배 때에 폐쇄되었다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분할되면서 독일대학은 폐지되었다. 이후 16개 학부와 13개소의 부설 연구소를 두고 있는 중부 유럽 최대의 대학으로 발전하였다.
특이할 만한 점은 이 대학에 한국어 과도 있다는 것이다. 1, 3, 5학년 총 30여명의 외국 학생들이 우리 한국어를 전공으로 선택하고 수학하고 있다. 이들도 입학시험에서 한국에 대한 역사, 정치, 지리 등의 기초 테스트를 통해 입학한다. 프라하에는 챨스 종합대학교 외에도 프라하 경제대학교, 프라하 화학 공과대학교, 프라하 미술대학교, 프라하 음악, 연극, 영화대학교가 있다.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어 체코의 수도가 된 프라하는 공업도시로 발전하였다.

식품 공업으로는 스미호프의 맥주, 프라하 햄이 유명하고, 그 밖에 의복, 제지, 화학(주로 타이어) 공업등이 영위되고 있다. 농업은 프라하 북쪽 엘베 강 유역과 블타바 강 유역 및 모라바 강 저지에서 가장 활발하다.
주요 작물로는 사탕무, 밀, 보리, 감자, 귀리, 호밀, 아마, 채소 및 사료용 옥수수이다. 보헤이마 북부는 홉으로 유명하며, 남서쪽의 구릉지대, 북동부 지역에서는 임업도 활발하다. 돼지, 소, 양, 가금류 등이 사육된다. 프라하의 특산물로는 크리스털 제품(보헤미안 크리스털)과 맥주가 손꼽히고 있다.

프라하에서는 오페라· 음악회·연극 등을 쉽게 감상할 수 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관광하기에만도 바빠서 오페라나 연극감상은 쉽게 지나치기 쉬운데 이곳의 문화수준은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뛰어나다. 일년 내내 콘서트가 열리며 프라하 시내에만 40여 곳의 공연장이 있다. 더욱이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배낭여행객들에게는 좋은 기회이다. 특히 프라하 실내오락의 진수인 오페라는 겨울철이 시즌으로 공연작중에는 유명한 작품들도 꽤 많으며 대부분이 볼만한 것들이다. 오페라 팬이라면 프라하와 인연이 깊은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놓치지 말기 바란다. 자세한 정보는 프라하 인포메이션 서비스(PIS, Praha Information Service)가 제공하는 무료 팜플렛을 통해 볼 수 있다. 프라하만큼 저렴한 요금에 수준 높은 작품들을 접할 수 있는 곳도 드물 테니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감상하길 바란다.(이상 인터넷에서 발췌)

 

 

 

 


 

한편에 체코 프라하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하였으나, 내용이 너무 많아서 전편과 후편으로 나누었다

체코 프라하는 많은 역사를 간직한 신비스러운 곳으로 내 작은 상식으로 이곳 이야기를 대변할 수 없다.

이곳은 작은 골목 하나에도 중세의 향기가 배어있으며, 시내 곳곳엔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이 산재해 있는 방대한 곳이다. 그러다보니 199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과학 유산으로 지정된 역사의 중심지다.

또한 EU가 지정한 2000년 유럽 문화의 중심지로 명명된 9개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다음편은 체코 프라하의 후편으로 "구시가지 전경"과 그곳에 세워진 "천문시계"와 "틴 교회" 등의 모습을 보여 드리며

체코의 남동쪽에 자리한 중세의 성(城)도시인 "체스키 크룸로프"의 아가자기한 모습을 함께 보여드리겠습니다

체스키 크룸로프는 13세기때 한 지주가 성을 건설하면서 도시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의 모습을 간직한 곳입니다.....많은 기대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폴랜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슬픈 이야기는....이후에 보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