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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장거리 여행

서울 나들이(2편) - 남산공원, 남산골한옥마을 그리고 인사동 거리에서

by 삼도갈매기 2011. 6. 9.

 

 

 

어제밤 늦게 맥주를 한잔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니 머리가 무겁다

근처 해장국집에서 뜨끈한 국밥으로 뱃속을 채우니 머리가 한결 맑아지고 살것 같다

"집 떠나면 개 고생이다"라고 하더니....하룻밤 서울에서 잠자리가 편하지 않았던가 보다

 

아내와 함께 남산을 가기 위해서 준비하는데, 곁에서 지켜보던 딸내미가 동행하겠다고 한다

서울지리에 익숙하지 못해 지하철에서 헤매이는것 보다는 딸내미가 나서니, 안심도 되고 보기에도 한결 좋다.

부산에서 타고 갔던 승용차는 딸내미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 주차장에 두고 편리하다는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 남산 구경



 


케이블카를 타고 남산에 오르기로 하였다

케이블카를 타려면 위 사진에서 보듯이 지하철 4호선 명동역 3번 출구로 나오면 갈림길이 보이고

오른쪽으로(페시픽 호텔쪽으로) 10여분 오르막길을 걷다보면 "남산 케이블카"라는 건물이 보인다. 

 

 

남산은 그렇게 높지않는 산이라서 걸어서도 오를수 있고, 산을 타고 오르는 순환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오늘 날씨도 덥고, 또한 가장 재미있게 올라가는 방법이 케이블카로 남산을 오르는 방법이라고 했으니.... 

휴일이라서 많은 시민들이 가족단위로 남산을 찾아 케이블카 매표소 입구에는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드뎌 케이블카에 탑승하였다, 무더운 날씨를 예보하듯 서울시내가 안개로 덮여있다(아래 사진)

 

 

 

남산 케이블카는 1962년에 개통 되었으며,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케이블카라고 한다

복잡한 명동거리에서 남산 정상까지 3분만에 도착하니 편리하기도 하지만 주변구경이 그만이다

265m의 남산 정상에 오르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게 위 사진에서 보듯 조선시대의 통신수단인 "남산 봉수대" 모습이다.

봉수대를 지키는 포졸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는것도 이곳을 찾는 즐거움중의 하나일듯 하다.

 

남산 케이블카 길이가 605m, 매 1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케이블카 한칸에 45명을 태울 수 있다니

케이블카를 이용하여 남산숲과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게 또 하나의 장점이기도 하다


 

 

남산의 본래 이름은 "인경산"이었으나

1394년 조선조 태조(이성계)가 풍수지리에 의해 도읍지를 개성에서 서울로 옮겨 온 뒤에

남쪽에 있는 산이므로 "남산"으로 지칭 되었고, 풍수지리상 안산으로 중요한 산이었다.


임진왜란때는 일본군의 주둔지였으므로 주민들은 이곳을 '왜장터'라 불렀고

일본인들은 남산을 자신들의 성역처럼 여겨 1897년 그 일대 3,000여평을 '왜성대공원'이라 이름짓고

도로개설과 함께 벚꽃 600그루를 심었으며, 이듬해인 지금의 숭의학원 자리에 '대선궁'이라는 신사를 세웠다.


1908년 일제는 회현동 일대를 한양공원 (현재 석재표석이 3호터널입구 위에 있음)으로 정하고,

이후에도 전(前) 안기부 자리에 통감부를, 현 남산골 한옥마을 자리에 헌병대 사령부를 설치하는가 하면

조선신궁, 동본원사등을 잇따라 지어 잠식을 계속했다.
그후 장충단공원을 조성한 뒤 그 일대에 벚꽃 수천 그루를 심는 등 민족정신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남산을 훼손,

우리 민족의 정신적 혼을 없애려 했다. 일제시대인 1940년 3월 12일 총독부고시로 남산을 '남산도로공원'으로 지정,

이때부터 '남산공원'이란 이름이 등장하게 되었으며. 광복이후 6.25를 전후해 월남한 사람들이 남산 주변에 집단으로 거주,

이 일대가 '해방촌'이라 불리기까지 했다.

그 후 서울시에서는 남산의 잠식시설을 이전하여 자연경관을 회복하고 공원시설을 보완정비하여

시민공원으로 기능을 높이기 위하여 1991년부터 1998년까지 8년간 '남산 제모습가꾸기' 사업을 시작하였으며.
1994년 11월 30일 남산주공외인아파트가 최초로 발파 철거하는 모습을 구경하러 많은 인파가 몰리기도 하였다,

남산제모습가꾸기사업으로 철거된 외인주택단지 지역에 야외식물원이 조성되는 등

중구 예장동, 회현동, 용산구 한남동 일대 등 남산공원을 복원 정비하여 시민의 공원으로 지금껏 가꾸어 왔다.

(Daum백과사전에서 부분 발췌)

 

 

남산팔각정(위 사진)

예전엔 남산 꼭대기에 국사당이 있었는데, 이것을 목멱신사(木覓神祠)라 불렀다고 한다.

이곳은 조선시대 고종왕 이전까지 제사를 지냈는데, 그후 1925년 일본인들에 의해 국사당이 헐렸다.


광복 후 이승만 정부에 의해 그곳에 팔각정이 건립되고 그의 호를 따서 우남정(雩南亭)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이승만 초대 대통령 동상도 새워졌으나. 그후 1960년 4.19 의거때 이승만 동상과 우남정이 철거 되었고

1968년 11월 다시 건립된 것이 현재의 남산 팔각정의 모습이란다.  

 

최근 모 TV 방송국의 예능 프로인 무한도전에 남산 팔각정이 등장할 정도로 각종 매체에 소개되기도 했단다


 

 

예로부터 남산에는 오래된 사당이 있었는데 그 사당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었단다

이곳 남산에 선남선녀가 데이트 와서 서로의 사랑을 약속하는 징표로 자물쇠를 걸기 시작하였고

그후 MBC "우리 결혼했어요", SBS "골드 미스가 간다" 등 방송에 소개되면서 프로포즈의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내눈엔 이런 지저분한 모습이 못마땅하며, 조금은 흉하게 보이는 것은 어쩔수 없다)

 

 

이곳 의자에 앉으면 자연적으로 두사람의 몸이 밀착이 된다

그도 그럴것이 의자 중심부가 아래쪽으로 기우러져 있으니 몸이 쏠릴 수 밖에 없다

다정하지 않는 사람도 이 의자에 앉으면 자동으로 몸이 접촉되어 다정할 수 밖에 없으니

뒤에 걸린 "사랑의 열쇠" 가 그 힘을 발휘하는 듯 하다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는 서울 한복판에

아빠 엄마가 염려되어 따라 나선 딸내미가 엄마와 함께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이 녀석....남친과 함께 이곳에 놀러올것이지....뭐 한다고 더운날 따라 나서서 고생하는지 모르겠네?....ㅎ

 

 

남산 타워(236m)에 올랐다,

엘리베이터를 타니 천장에서 음악과 함께 동영상이 나오는가 싶더니 "도착"을 알린다 

이곳 남산타워는 1975년 7월에 완공 되었으며, 대인 이용요금 9,000원이였다.

 

N타워 1, 2, 3층은 전망대로 활용하고 있으며, 4층은 회전 전망대라고 한다(회전속도 ; 1회전 48분) 

초속 56m 강풍에도 견딜수 있다고 하지만 예민한 사람은 타워가 약간 흔들린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전망대에는 각종 기념품을 팔고 있는 가게에선 가볍게 마실수 있는 커피와 각종 음료수를 판매하고 있었다.

 

 

서울시내가 발아래로 보이는 타워의 한쪽 유리창에는 세계 주요 도시와의 거리를 표시해 두었다(사진 위)

(미국샌프란시스코 ; 9,040.09Km, 미국 시카고 ; 10,525.62Km, 미국 LA ; 9,596.52Km.......)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전망대에도 세계 주요 도시와의 거리를 표시해 두었더니 남산타워에도 표시되어 있었다.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는 "남자화장실"(2층 전망대)을 찾았다(사진 아래)

이곳 화장실은 서울에서 가장 높은곳에 자리한 "하늘 화장실"이라고 이름 붙여진 곳이다,

아름다운 서울 풍경을 보면서 시원하게 배설하는 기분은 결코 잊지못할 쾌감을 느끼기에 충분하였다.....ㅎ

 

 

 

 

남산타워에 오르기 위해서 엘리베이터 앞에서면 "포토죤"이라는 사진 찍는 코너가 있다.

그 앞에 서면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그 사진을 찾는데는 일정액을 지불해야 한다.

아내와 함께 남산에 왔으니 기념으로 사진을 찾아....그 사진을 내 카메라로 다시 찍어서 이곳에 올려 보았다

본래 사진은 제법 크고 아주 선명했는데...시원찮은 디카로 다시 찍으니 작게 보이며 약간 흐리게 나온다

(액자에 담아서 집에 걸어 두었더니....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남산야경이 너무 아름답다)

 

 

서울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남산타워(236.7m)에서 20여분 머물다 내려왔다.

4층 전망대가 회전한다고 했는데 구경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테디 베어(Teddy Bear) 인형과 함께

이곳에 보이는 인형 오른편에 "테디 베어 박물관"이 있었다.

아마도 어린아이들이 곰 인형을 좋아하니 남산을 찾는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서

곰 인형을 이곳에 새워두고, 아이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을수 있게 배려한듯 하다 

(남산 타워 내부에도 테디 베어 박물관이 두개의 전시관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원래 계획은 케이블카를 타고 남산에 올라서 남산 팔각정을 구경하고 엘리베이터로 남산타워에도 오르고

관람후 내려올때는 남산의 둘레길을 천천히 걸어 내려오면서 애국가에 나오는 남산의 명물인 아름드리 소나무와

남산공원에 자생하는 190여종의 울창한 수목과 360여종의 식물들을 구경하면서 근처에 자리한 안중근 동상과

남산박물관, 남산분수대, 남산도서관 그리고 십만여종의 식물이 살고 있다는 남산야외식물원을 구경하려고 하였는데.....

 

어떻게 알았는지...서울에 살고 있는 둘째 처남과 셋째 처남이 매형과 누님이 모처럼 서울에 오셨다고

이곳 남산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싶으니 빨리 내려오라는 핸드폰 전화연락 때문에 일정을 앞당겨

위에 보이는 순환버스를 타고 가까운 곳의 "남산한옥마을"에서 처남들을 만나기로 하고 버스에 탑승하였다.

 

바쁘게 남산 구경을 마치고,

처남들과 함께 남산 근처에 자리한  "남산골한옥마을"의 이모저모를 구경하기로 하였다.

 

 

 

 

- 남산골한옥마을 구경

 

 

순환버스를 타고 이곳에 내려오는데 한참이나 걸렸다

예정대로 걸어서 내려왔더라면 족히 1시간 이상은 걸었을것 같아 더위에 아찔한 생각이 든다

 

남산 북쪽 산자락에 위치한 남산골한옥마을은 "서울천년타임캡슐"이 묻혀 있으며

또한 한옥마을은 나무와 황토, 한지로 지어진 한국의 전통가옥이며 가문의 계급에 따라

초가나 기와지붕으로 지어졌으며, 이곳 한옥 마을은 조선 시대의 전형적인 마을처럼 보이도록 

내부를 조선 시대 가구와 장식으로 꾸며 놓아 전통 마을의 삶의 양식을 엿볼 수 있게 해 놓은게 특징이라 한다.

 

 

 

입구에서 10분쯤 좌측으로 올라가면 "서울천년타임캡슐광장"이라는 팻말과 함께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 커다란 석축안으로 입장하면 아래 내용이 석축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아래내용 요약 ;  서울 정도(定都) 600년을 기념하는 타임캡슐을 1994년 11월 29일 지하 15m 지점에 매설하였다.

               보신각종 모형의 타임캡슐 안에는 서울의 도시모습, 시민생활과 사회문화를 대표하는 각종 문물 600점을 수장함으로써

               현 시대의 사회상이 400년 이후인 2394년 11월 29일에 후손들에게 공개될 것이다.

 

 

 

작은 처남 내외와 초등학생인 아들과 딸,

날씨는 더운데...시원한 것은 사주지않고 고모부란 사람이

사진기 드리대니 엄청 불만스럽고 짜증스런 모습으로 쳐다보고 있다

(사진 오른쪽에 둥그런 캡슐이 지름 7.5m의 분화구 모형인 서울천년타임캡슐)

 

 

타임캡슐광장을 내려오며 남산의 산세를 살려 계곡을 완만하게 조성하고 소나무 등을 식재 하였으며,

간간이 설치된 누각과 함께 멀리 펼쳐지는 시내 전경이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보게 한다.

전통 정원의 한켠엔 5동의 한옥 가옥들이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남산골 한옥마을 내의 2,400여 평에 조성한 이곳은 순수 혈통의 전통가옥 5채를 이전 복원한 곳으로,

종로구 삼청동의 오위장 김춘영 가옥(구 김홍기 가(家)와 관훈동의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구 이진승 가),

옥인동의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구 서용택 가), 동대문구 제기동의 해풍 부원군 윤택영댁 재실(구 정규엽 가),

그리고 중구 삼각동의 도편수 이승업 가옥(구 조흥은행 관리) 등이다.

이 중 건물 이전이 불가능할 정도로 낡은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만 새 자재를 사용해 복원하고

나머지는 모두 건물을 하나하나 뜯어내 이전 했으며, 재활용이 불가능한 목재는 설악산의 자생육송으로 대체 하였다 한다.

 

 

전통혼례가 열리고 있는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사진 위)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에서는 마침 오늘 전통 혼례식이 열리고 있었다.

전통혼례를 올리려면 예약을 하면 되는데 남산 한옥마을 관리사무소에서

상담 후 접수하며, 비용은 기본(미용, 사진, 폐백 등 제외한)이 80만원쯤 된다고 함

 

남녀가 혼례를 올림으로써 일심동체(一心同體) 부부가 되어 백년동안을 함께 살아가는 것이니

밖은 소란스러웠으나 구경하는 친지들과 결혼하는 신랑 신부는 엄숙할 수 밖에 없었다

(사진 왼편에 신부가 다소곳이 앉아있고, 신랑은 오른편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박영효는 조선의 25대 철종의 딸 영혜옹주와 결혼하여 왕의 사위인 부마도위가 되었는데.

영혜옹주는 결혼한후 3개월 만에 세상을 뜨고 박영효는 고종때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후

갑신정변의 주역이 된다. 갑오개혁 때도 개혁에 몸담았지만, 나중에 친일로 돌아섰으니.....

박영효의 집은 넓은 안채 그리고 별당채, 사랑채 까지 남산 한옥마을에서 가장 큰 집이다.

 

 

 

서울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의 가옥(사진 위)

이집은 1890년대에 지은 것으로 조선시대 말기 포수(砲手)였던 김춘영(金春永)살았던 곳이다

이집은 원래 종로구 삼청동 125-1번지에 있었던 가옥으로 김춘영의 손자 김홍기에 이르기까지 사용되었다.

안채의 서쪽 벽이 골목에 직접 면하는 점, 대문간이 바로 트이지 않고 꺽어 들어가게한 점 등이 특징이다.

 

김춘영 가옥은 원래 'ㄷ'자형의 안채와 'ㄱ'자형의 사랑채가 한 줄로 연결된 집으로,

한정된 대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지은 당시의 개량 도시형 주택의 배치수법을 보여준다.

벽체의 아랫부분을 네모난 화강석으로 쌓은 화방벽, 잘 다듬은 사각주춧돌 등으로 집의 격조를 높인 수법은

조선후기 서울지방 전통가옥의 일반적 경향이라고 함.

 

 

서울 옥인동 윤씨 가옥(사진 위)

1910년대에 지은 것으로 알려진 옥인동 47-133번지 가옥은 조선 마지막 왕비인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로 알려졌으나,

실제로 왕후의 일가이자 친일파인 윤덕영이 인왕산 아래 종로구 옥인동에 조성한 별장형식의 건물이였다.

친일파 윤덕영이 첩을 위해서 지은 건물로 일반적인 양반 가옥과는 약간 다른 폐쇄적인 분위기를 주는 집이다.

위 건물을 이곳으로 옮기려 하였으나 너무 낡고 손상이 심해서 원래 모습을 본 떠서 새로 신축한 것이라고 한다.

 

건물은 "ㄷ" 모양으로 이루어진 안채 위주로 되어 있으며 전체적인 건물은 크고 화려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내부는 방과 건물칸의 수가 많으며 건물 앞쪽 기둥 머리에 익공을 치장하는듯 상당히 화려하게 지은집의 구조라고 함

 

 

 

 

서울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순종(1874~1926)의 장인인 해풍부원군 윤태영이 

그의 딸 순정황후가 창덕궁에 들어갈때 지은것으로 일반적인 주택이 아닌 재실이라고 한다

원래는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던 것을 이전, 복원하였으며 집의 평면은 우리나라에서 보기드문 "元"자 모양이다

이 가옥은 순종이 제사하러 왔을 때의 불편을 덜기 위해 경운궁(慶運宮)을 헐 때 나온 부재를 이용하여 지은 것이라고 한다.

 

 

주인없는 집에 여염집 처자가 대청마루에 걸터 앉아 무슨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재실은 4·19혁명 때 화재로 소실되어 초석만 남은 것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할 때 함께 복원했으며

정면 가운데에 계단을 설치한 화강석 기단 위에 세운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이 특징이라 함.

 

 

단체로 관람하면서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단체관람객들의 면면을 훓어보니 한국사람인게 틀림없고, 안내자도 한국어로 말하였다

나중에 알아보니, 단체로 여럿이 모이면 관광해설자가 무료로 이렇게 설명도 해준다고 한다
 

 

만물이 소생한다는 나른한 봄날 오후

창문밖엔 낯선 처자가 글방 도령을 사모한다고 미소를 보내는데도

젼혀 개의치않고 글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선비의 모습이 아름답고 한편으론 측은하게 보인다

 

 

위 사진의 전통공예관에서는 공예품을 한자리에 전시하는 공간으로

전통공예의 멋과 아름다움, 전통생활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며

또한 관광문화상품도 판매하고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체험현장이 열리고 있었다

전통 국악기의 하나인 "단소"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는 막내처남과 그의 가족들(사진 아래)

 

  

 

남산골한옥마을은 본래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 부지로 군사보호구역이었던 곳이었으나

1989년 남산 제모습 찾기사업에 따라 서울시가 수방사와 합의하에 이 부지를 인수하고

군사보호구역에서 해제되면서 서울시 민속자료와 한옥 5개동을 복원하여 1998년 공식 개장하였다.

이곳은 매년 명절마다 세시풍속 및 전통 민속행사가 열리기도 하는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한옥마을이 들어선 이곳(필동)은 조선시대에는 여름철 피서를 겸한 놀이터로 이름있던 곳이며.

청학이 노닐었다고 하여 청학동으로도 불렸으며 신선이 사는 곳으로 불릴 만큼 경관이 아름다워

한양에서 가장 경치 좋은 삼청동, 인왕동, 쌍계동, 백운동과 더불어 한양 5동으로 손꼽히던 곳이였다 한다

이곳의 옛 정취를 되살려 골짜기에 물을 흐르게 하였으며, 정자를 짓고, 나무를 심어 아름다운 정원을 조성하고

옛 정취를 되살려 전통한옥을 옮겨 놓았고 가옥의 걸맞게 가구들을 예스럽게 배치하여 선조들의 옛 모습을

엿볼수 있는전통한옥마을 구경을 아쉽게 마치고 근처 인사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 인사동 구경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서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가까운 인사동으로 이동하였다

인사동은 밤낮 구분없이 붐비는곳으로 휴일을 맞이하여 연인들과 가족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근처 식당에서 시원한 막걸리 한사발과 맛있는 "여자만(灣) 꼬막"을 안주삼아 주린배를 채웠다.

두명의 처남도 고마웠지만 함께 동행한 처남댁들도 고마웠고, 재미없는 어른들 따라 다닌다고 고생한

꼬맹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금년 여름휴가때 바닷가 휴양지에서 다시 만날것을 약속하고 아쉽게 헤여졌다. 

 

 

인사동의 유래

지금의 인사동 거리는 종로 2가에서 인사동을 지나 관훈동 북쪽의 안국동 사거리까지를 말한다.

인사동의 명칭은 조선시대 한성부의 관인방(寬仁坊)과 대사동(大寺洞)에서 가운데 글자인(仁)과 사(寺)를 따서 부른 것이라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대사동, 이문동, 향정동, 수전동, 승동, 원동 등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인사동이 되었으며,

같은 해 9월 출장소 제도 신설로 경성부 북부출장소 인사동이 되었다가 1915년 6월 경성부 인사동이 되었다.

1936년 4월 동명이 일본식 지명으로 변경됨에 따라 인사정이 되었으며, 1943년 4월 구제(區制) 실시로 종로구 인사정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정(町)이 동(洞)으로 바뀔 때 인사동이 되었다.

법정동인 인사동은 행정동인 종로1·2·3·4가동 관할하에 있다.

 

인사동 변천사

조선시대 북촌과 종로사이에 위치하여 주로 중인들이 살았던 주거지역으로 조선초기 이래로 조선 미술활동의 중심지로 형성되었다. 현재의 인사동 명칭은 일제 통치시기인 1914년부터 불리워 졌다.


1930년대에 이르러 인사동길 주변에 서적 및 고미술 관련 상가가 들어서기 시작해서 골동품 거리로 자리잡게 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지금의 낙원상가 아파트 자리에 낙원 시장이 형성되었고, 평양떡집이 들어선 이후 현재와 같은 떡집 골목이 형성되었다.


1970년대에는 최초의 근대적 상업 화랑인 현대화랑이 들어서면서 상설 전시판매장 형식의 화랑들이 모여들어 미술문화의 거리로 성격이 강화 되었다.


1980년대에는 골동품, 화랑, 고가구점, 화방, 민속공예품 판매 점포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서울의 명실 상부한 전통문화 예술 활동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http://tour.jongno.go.kr, 종로구청 홈피에서 옮김)


 

 

 

 

 

2년전 서울에 와서 조선왕조 제일의 법궁인 "경복궁"을 구경하면서 궁궐 사이로 우뚝솟은 남산타워를 보며

'다음에 서울에 오면 남산을 구경하며 지금 보이는 남산타워에 오를것이다' 했었는데 오늘 그 뜻을 이루었다.

 

평소 생각했듯이 남산은 90만평의 면적으로 서울특별시 중구와 용산구의 경계를 이루는 거대한 명산이였다.

우리나라 애국가에도 나오듯이 남산엔 아름드리 소나무를 비롯하여 190여종의 식목이 자라고 있으며

360여종의 식물이 자생하고 있고, 또한 60여종의 날, 들 짐승들이 서울시민들과 함께 공생하고 있다고 한다.

 

600년 고도(古都) 서울에도 '4대문안 도보관광코스'가 만들어져 시민들로 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하며

'서울시티투어버스'를 이용하여 연로하신 부모님과 가족단위 주말여행객들에게 좋은 호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티투어버스'는 도심순환코스와 고궁코스 두가지로 나뉘어 운행되고 있으며, 요금도 저렴하단다.

 

다음에 서울에 온다면 근대문화 중심지이며, 대한제국의 살아있는 역사공간 '덕수궁, 정동길' 을 걸어보고싶다

우리나라 근대사의 가장 치열했던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정동', 우리의 대중가요에도 등장하여 사랑을 받았던 

고즈넉한 덕수궁 돌담길 풍경과 잘 정비된 산책로, 그리고 곳곳에 남아있는 근현대식 건물에서 대한제국의 생생한

기운을 느낄 수 있으며, 또한 대한문 앞에서 바라다 보이는 시청앞 광장에서 예전 월드컵의 열기와 함성을 느껴 보리라

이것으로 1박 2일의 재미난 서울구경을 마칩니다, 함께하신 모든분들......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