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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삶의 흔적들

20년간 사용한 낡은 미싱을 바꾸며....

by 삼도갈매기 2011. 6. 27.

 

 

 

몇일전 나는 컴퓨터에 열중하고....아내는 거실에서 미싱을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미싱 돌아가는 소리가 예전 소리와는 다르게 맥이 빠지고 기운이 없는 소리다

미싱사로 일해 본적은 없지만 아내가 돌리는 미싱소리를 자주 듣다 보니 소리로 대충 감을 잡는다.

 

"윤경씨....미싱소리가 우째서 그렇노?" 

"글씨유....비실거리며, 힘없이 돌아가는게 쥔장을 닮아서 그런것 같은데유?..."

(비리무글....내가 처음부터 비실거렸나?....몇십년 동안 힘들게 일해서 먹여 놨더니....직이뿔라.....ㅋ)

 

속으로 투덜거리며 미싱을 살펴보니, 왠걸 미싱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있다   

"오메....뭔 일이랑가?.....소방차 부를일 있는감?".....하면서 후다닥 전기 콘센트를 뽑아 버렸다.

그도 그럴것이 박음질에 열중했으니 미싱 몸체에서 연기가 나는것을 알지 못했던가 보다 

찬찬히 살펴보니 미싱속에 있는 트랜스(AC를 DC로 바꿔주는 장치)가 과열되어 연기가 났었다.

 

 

(20년간 사용한 미싱으로 한땐 우리집 보물이였으나, 고장으로 인하여 쓸쓸히 퇴장하게된 미싱)

 

 

수리점에 문의했더니 위 제품(Brother - B970)은 오래된 제품이라 부품이 없다고 새로 장만하라고 한다

미싱이 고장날때 마다 수리점에 문의하면 매번 듣는 이야기지만 오랫토록 아내와 정들었던 제품을 버린다는게

무슨 죄를 짓는양 결코 쉬운일이 아님을 나도 그리고 아내도 알고 있으니 용하게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아내의 표정이 심각해지며 뭔가 결심한듯 혼자서 중얼중얼 거린다

 

결혼후 지금까지 기록한 가계부를 뒤적거리더니 "20년간 사용했구만?.....이제 정말 바꿔야 되겠네" 한다

그랬었다......위 미싱은 1991년 2월, 거금 240,000원을 주고 구입한 걸로 가계부에 기록되어 있었다.(아래 사진)

달랑 24만원 짜리를 무슨 거금이라고 호들갑이냐 할지 모르지만, 그때 내 월급이 50만원도 되지 않았으니.....

50만원도 되지 않는 월급에서 24만원을 주고 구입했다면, 월급의 반(1/2)인데....그 당시엔 거금임에 틀림없는 액수였다.

 

 

빠듯한 살림에 고가의 미싱을 구입한 후 아내는 큰 부자라도 되는 양 무척 좋아했었다

물론 그시절엔 모두가 힘든 시기였으니....그렇게 구입한 미싱으로 어린 두딸의 옷을 손수 만들어 입혔고,

집에서 가볍게 입는 아내옷에서 부터 가족들의 잠옷, 그리고 집안의 커텐에서 부터 이부자리까지...

최근엔 손녀가 사용할 용품에서부터 손녀 옷까지 만들었으니 그 미싱이 우리집의 살림밑천이였고

가보(家寶)라 해도 과언이 아니였으며, 아내에겐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 애장품이였다....

그렇게 긴시간을 우리와 함께 했는데....

 

 

(이제부터 아내와 평생을 함께할 최신형 미싱, 우리집 거실 한자리를 꿰차고 있다)  

 

 

몇년전부터 잦은 고장으로 이것저것 부품을 바꾸어서 사용했지만

이미 단종된 제품이라 부품이 없어 수리도 되지않고, 제 부품이 아니라서 본래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였으니....

한편으로 생각하보면 세월의 뒤안길로 쓸쓸히 퇴장하는 쥔장을 그대로 닮아가는 미싱의 신세가 처량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어쩌랴....세상사 영원함이 없으니 퇴장할때를 알고 뒤로 물러나야.....그것도 아름다움이라 했으니 말이다.

 

옛 말에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였으니 이번 기회에 신 제품으로 바꾸기로 결심하고 집 근처 대리점에 문의 했더니

위 미싱의 장점을 침이 마르게 이야기 하면서 권하길래 몇번을 망설이다가 눈 딱 감고 구입하였다.

새로 구입한 미싱이 부드러우며, 소리도 경쾌하고 다양한 기능을 가졌다니 진즉 바꾸지 못한것 또한 아쉬웠다 

"윤경씨....이 녀석과 좋은 작품 많이 만들고, 오랫토록 행복하게 지내시구랴?".....

 

 

 

외국 함선                      19 세기의 범선                 

 

 

증거 1 ;  그 시절(1991년 2월) 공무원 월급봉투

 

 

 

남에게 보일 수 없을 정도로 챙피한 20년전 월급봉투

"세원있는 곳엔 세금있다"라는 대한민국 세금 징수원 국세청인데 

갑근세, 방위세, 주민세를 징수하지 않는것만 보아도 그 시절 월급이 적었다는것을 알 수 있다.

 

쥐꼬리만한 월급에 기여금(퇴직금)은 41,680원이라는 큰 돈을 매월 적립했으니 지금의 노후가 있는듯....

그렇게 힘든 생활이였지만 그래도 저축(재형저축)은 꼬박꼬박 100,000원씩 했으니, 다시보아도 대단하다

그 시절땐 아마도 3개월에 한번씩 상여수당(보너스)이 나왔으니, 그땐 본봉(410,500원)만큼 더 받을수 있었다.

(월급봉투가 하도 창피하기에 이름은 지웠다.....ㅋ)

 

혹자는 그 시절에 위 월급이 그래도 큰 돈이라고 할것 같아서,

그 시절(1991년) 생활 물가가 적힌 우리집 가계부를 함께 보여 드리니 비교함이 좋을듯 하다.(아래 사진)

 

증거 2 ; 그 시절(미싱 구입하던 시절) 가계부

 

 

위 가계부가 흐리게 보이기에

미싱을 구입한 1991년 2월 5일과 그 뒷날 몇일의 가계부를 이곳에 옮겨 본다

 

구분 및 일자

 

2월 5일(화)

 

2월 6일(수)  2월 8일(금)  2월 9일(토)  2월 10일(일) 
        부식비

 고등어    1,000

 빨간고기 1,000

 두부          300

 시금치       300

 풋마늘       300

 당근          100

 소세지       500

 비엔나 소세지

               1,050

 오뎅        1,000

 쥐포        1,000

 햄           1,600

 비엔나 소세지

               1,700

 장어         4,500

 시레기        200

 미역           200

 무우           200

  쥐고기(회) 1,000

  버섯             350

  두부             250

  봄배추          300

  미더덕          500

  달걀(30개) 2,400

  외간장          720

  음료수          870

  빨간고기    1,000

  삼치           1,000

  무우             150

  콩나물          300

  빵              1,000

  주거, 비품, 광열

 재봉실    2,900

 이태리타월(20장)

              2,000

   주민등록등본

                  120

   
  의복  

 아빠양말 (2장)

                 2,200

     
  건강, 미용         목욕비   4,000

  (아이들 2명 포함)

 
  육아, 교육

 수,나연일기장(2권)

              400

       
  문화, 오락  

 수연이 학교 꽃

                3,000

 

 

 
  가족용돈 및 기타

  수연     1,000

  나연        100

 나연           100

  나연          100

  나연          100   나연        100
  세금, 공과금  

  적십자 회비

                2,000

     
  육아메모

 

 미싱(240,000원)

  구입하다

 

  참고; 이땐 아이들이

  집에서 도시락을

  준비 했었다 

     

 

 

아래 가계부는 그해(1991년) 5월에 쓴 가계부로

5월 3일(금) 부식비 중 쌀 2말 45,000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쌀 2말이라면 약 32Kg쯤 되니 지금 값으로 환산하면(10Kg = 25,000원으로 계산)

80,000원쯤 되는듯 싶은데.....20년전의 물가로 환산한다면 쌀값은 거의 2배수준으로 오른듯 싶다

 

 

 

생각해 보면.....글을 쓴다는게 내 주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 

좋은점 보다는 남에게 밝히기 곤란하고 창피한 점이 많음을 오늘 글에서도 느낀다.

 

위에서 보듯 우리집엔 아주 오래되고 낡은 물건(물품)들이 몇가지 있다

그 중엔 처음 직장생활하던 1975년도에서 부터 33년간 모은 월급 봉투와

1978년도 결혼한 이후 아내가 기록한 가계부가 한권도 빠짐없이 보관되어 있다.

 

종이가 누렇게 변질되어 너덜거리는 40년전 아버님에게서 받은 편지에서 부터

7살 연상이며, 1965년도에 입대하셔서 힘든 병영생활을 하신 형님의 편지도 고스란히 보관 되어있다

난 가끔 그런 편지들을 꺼내놓고 보면서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들을 생각하며 한숨 지을때가 종종있다

나이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으니....난 그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며 그 시절을 회상하곤 한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도 오래살다 보면 이곳 저곳 망가져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하듯

가정에서 쓰던 물건도 오래 사용하다 보면 어쩔수 없이 낡아서 폐기 처분하는걸 보면서

세상의 모든것은 영원함이 없이 그 자리를 물려주며 돌고 돌아 간다는 윤회설을 생각하게 한다

모 가수가 부른 유행가 가사처럼......"호박같은 세상 돌고 도는......물레방아 인생" 이라 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