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15일(일요일),
역사와 문화의 향기가 가득한 예향의 도시인 충청남도 예산군(禮山郡)을 여행하였다.
부산 유유자적클럽회원분들과 함께 오전 07;00 부산을 출발하여 오전 11;00경, 예향과 문향의 고장인 예산에 도착하였다.
옛부터 예산군은 평야가 넓어 농사가 풍족하여 살기좋은 곳으로 교역의 중심지였으며 상거래가 활발하던 곳으로.
일제 초기때 "예산가서 옷 잘입는체 하지말고, 홍성가서 말 잘하는체 하지말라"는 말이 있을 만큼 충남의 경제 중심지였다.
- 의좋은 형제상이 세워진 "효제비(孝悌碑)"관람
옛날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친숙한 이야기...
형은 아우의 볏단에, 아우는 형의 볏단에 밤중에 벼를 나르다 서로 만난다는 내용으로
조선 세종대왕 시절 이곳 예산군 대흥면에 실제 살았던 형제의 이야기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는
의좋은 형제의 우애를 기린 "의좋은 형제상"과 효제비가 있는 공원에 도착하였다.
예산군 대흥면 봉수산 자락에 의좋은 형제 테마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옛날 옛적...우리세대때 초등학교 다니면서 배웠던 내용으로 형과 아우의 우애를 다룬 가상 이야기인줄 알았더니
예산군 대흥면의 실존인물인 이성만, 이순 형제의 우애를 기리기 위해 세운 조형물로 두 형제의 이야기를
복원하여"이성만 형제 효제비"(충남 유형문화재 제 102호)를 세워두고 많은 청소년들에게 교육자료로 활용하고 있었다.
의좋은 형제상 바로 옆에 세워진 효제비(위 사진)와 효제비의 얽힌 설명(아래사진)
효제비가 이곳 근처 가방교(橋)에 있었는데 예당저수지가 생기면서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효제비 근처에 수령 240여년된 느티나무가
장엄한 모습으로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을 말없이 반기고 있다.
임성아문(妊城衙門)이란 현판이 새겨진 출입문으로 입장하였다.
임존성은 백제 부흥군의 주요 거점으로 백제가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하여 축조한 성이라고 한다.
위 문에 들어서면 역대군수들이 집무를 보던 대흥동원이 있으며, 뒤에 보이는 봉수산 정상엔 약 2.4Km의 성곽이 축성되어 있다.
대흥동헌(충남 유형문화재 제 174호)은 역대군수들이 집무를 보던곳이다,
이곳 대흥동헌은 정면 6칸, 측면 3칸의 "ㅡ"자형 건물로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오늘 우리일행에게 해설을 담당한 이곳 출신 "하금수" 해설사님의 설명이 장황하게 이어진다.
대흥동헌 뒤뜰에 대원군의 척화비와 함께
영조 임금의 2번째 딸 아지옹주의 태실이 보관되어 있었다(뒤에 보이는 산이 봉수산으로 실제 성벽이 축성된 곳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흥초등학교"전경
해방후 비운의 정치인으로 남로당 출신인 박헌영 선생이 이 학교 제 1회 졸업생이라고 한다..
형제애의 귀감이 된다 하여 2002년 대흥 동헌 앞에 의좋은 형제상을 건립하고,
2004년 테마공원을 조성하기 시작하여 2011년 이곳에 "의좋은 형제 공원"을 개장하였다.
이곳 공원의 주요시설로는 형제의 집, 한마음마당, 대흥관아 그리고 물레방아와 연못 등의 시설물들이 조성되어 있었다.
- 우리나라 제 1의 호수 "예당저수지(예당관광지)"관람
예당저수지는 1964년에 만들어졌으며 330만평의 우리나라 제일의 저수지다.
예당지를 중심으로 조성된 중부권 수자원 환경의 보고로 한폭의 거대한 수묵화를 펼쳐 놓은 듯 시원한 물과 하늘의 광활한 여백미,
그리고 사시사철 변하는 호수주변의 꽃과 나무와 물안개가 피워내는 생동감 넘치는 자연경관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곳이다.
예당저수지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저수지로
면적 약 9.9㎦, 둘레 40km, 너비 2km, 길이 8km, 해방전인 1929년 착공하여 1964년에 완공된 호수로
우리 일행은 이곳 근처인 "돌고래 가든"에서 예산의 5미(五味)중 하나인 맛있는 "어죽(漁粥)"으로 점심을 해결하였다.
예당저수지는 중부권 수자원 환경의 보고로
상류 집수면적이 넓어 담수어의 먹이가 풍부하여 오래전부터 낚시터로 유명한 곳이다.
한폭의 거대한 수묵화를 펼쳐놓은듯 시원한 물과 산과 하늘의 광할한 여백의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는 곳이다.
앞에 보이는 저수지 근처엔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었으며 우리일행은 이곳 산책길을 따라 유유자적하였다.
이곳에는 관리사무소를 비롯하여 주차장, 야영장, 취사장, 공연장, 족구장 등 각종 부대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조각공원과 함께 공연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공연장 무대에서 큰 소리를 질렀더니 음향시설이 있는듯 우렁차게 반응한다
조각공원에 세워진 "하나"라는 작품명
자연과 인간이 영원히 하나되는 형상을 표현한 것으로
얼굴형태는 인간을 상징하며, 사과 형태는 자연을 상징하고 있는 작품인듯.
우리 일행은 전용차량으로 이곳 예당저수지의 주변길을 감상하였다.
예당지(池)의 주변길 신양면 무봉교를 건너면서 "도덕골 낚시포인트"를 경유하였으며
동산교를 건너면서 "동산권 낚시포인트" 그리고 "상중권 낚시 포인트"를 각각 거쳐오면서 이곳이 유명한 낚시터임을 알수 있었다.
- 조선후기의 실학자이며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고택 관람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며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가 태어난 집이다
원래는 서울 적성동에 있었으나 추사의 증조부(할아버지) 김한신이 현재의 위치인 신암면 용궁리 오석산 선영아래에 건립하였다.
사랑채와 안채로 꾸며진 추사 김정희 선생의 고택 조감도(사진 위)
추사 선생으로 인하여 이곳 예산을 문향(文鄕) 또는 묵향(墨鄕)이라고 부른단다...
아마도 추사 김정희 선생이 이고장 출신이라서 얻은 예명인듯 하다,
이곳 추사 옛집은 그가 태어난 곳이자 그의 남달랐던 행적이 있는 곳으로 그의 무덤도 이곳 근처에 조성되어 있다.
추사 고택중 아래에 있는 "사랑채"의 모습(위 사진)
"ㄱ"자를 이룬 사랑채는 모든 문짝을 들어 쉽게 열수 있도록 만들어졌으며 대청은 매우 넓은 육간대청이다.
추사는 세도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김한신은 영조대왕의 딸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임금의 사위가 되었으며
그의 아버지 김노경은 병조판서를 지냈으며 추사 역시 병조판서 벼슬을 했다고 한다
추사고택은 그의 할아버지가 임금의 사위가 되어 그에 따른 별양전으로 이곳 용궁리 일대 토지를 하사 받으면서
충청도 53개 고을에서 한칸씩 부담해 53칸에 이르는 대저택을 지었다고 한다.
추사 고택 입구에 활짝핀 순백의 백목련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위 사진 "죽로지실(竹爐止室)"
겉을 뜨겁지 않게 대나무로 감싸서 만든 차 끓이는 화로가 있는 방이란 뜻이다.
추사가 친구인 황상에게 써 준 다실 글이며 예서체 글씨체로 진본은 호암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사랑채엔 3개의 온돌방이 있었으며 온돌방 위엔 추사 선생의 필체인 위 아래 현판이 걸려있었다.
짧은 내머리로 위 편판의 글씨를 읽고 해석하는게 쉽지않으니 많은분들의 이해가 있기를......
추사 선생이 제주도 유배때에 직접 그렸다는 "세한도(歲寒圖)"
"날이 차가워진 뒤에라야 소나무 잣나무의 푸름을 안다"라는 뜻의 세한도는
그의 나이 59세 때(1844) 제주도 대정에서 8년여의 유배생활을 하고 있을 무렵 자신의 심의를 형상화 시킨
격조높은 뛰어난 작품으로 겨울의 텅빈 공간에 서 있는 노송 몇그루는 바로 선생 자신을 비유한 것이기도 했던 그림으로
국보 제 180호로 지정되어 있는 완당 생애 최고의 명작이란다.(완당이란 추사 선생의 또다른 호(呼)
"ㅁ"자를 이루고 있는 안채의 모습
여섯칸 대청과 두칸의 안방, 두칸의 건너방 그리고 안방 부엌, 안대문, 협문, 광 등을 갖춘 "ㅁ"형의 안채이다
안방과 건너방 밖에는 각각 툇마루가 있고 부엌천장은 다락이다, 육간 대청은 그리 흔하지 않는 큰 마루로 대갓집 형태를 띤다.
(이고장 출신의 해설사 김기선님의 해설을 열심히 경청하고 있는 유유자적 회원님들의 모습)
계절은 어김없이 이곳 추사 고택에도 봄을 알리고 있다.
고택 정원엔 노란 수선화와 고목인 벚꽃이 활짝피어 관람객을 반기고 있다.
추사고택의 관람을 마치고 근처 "추사 기념관"으로 발길을 옮기는중에 만나는 추사의 묘소(사진 아래)
71세로 생을 마감한 추사는 첫째 부인인 한산 이씨 묘에 추사 묘와 둘째 부인인 예안 이씨 묘를 이장하여 3위를 합장하였다고 한다.
추사고택과 선생의 묘지 그리고 추사 기념관은 서로 인접해 있었다.
- 추사 기념관 관람
추사기념관은 선생의 드높은 서예정신과 위대한 업적을 새롭게 조명하고
후세에 남긴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보존, 전시하여 추사선생의 다양한 면모와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해 2008년에 건립하였다.
조선 후기 서화가이자 금석학의 대가인 추사 김정희 선생의 모든것을 한눈에 볼수 있는 예산군의 새로운 명소이다.
이곳 기념관에는 각종 전시실과 영상실, 체험실 등으로 꾸며져 있으며,
특히 상설 전시실에는 추사 작품 46점이 연중 전시되어 격조 높은 문화유산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추사의 학문에 대한 왕성한 욕구와 열성적인 탐구는 40대의 나이에 일군의 추사파를 형성할 만큼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나
끝내는 권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녀 9년이란 긴 세월 동안 제주도 귀양살이를 하게 된다, 추사 개인으로는 모든 희망이 무너지는
일이지만 이 귀양으로 인하여 "추사체"라고 부르는 독특한 경지의 글씨가 완성되기도 하였다.
추사선생이 사용했던 도장은 그의 호를 따서 추사, 완당, 예당, 담재, 시암 등 200여개 이상 되었으며,
붓은 평생에 1,000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일부 남아있는 도장, 붓, 벼루 등 유물 56점(보물 제 547호)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위 내용중 설명자료 일부와 그와 관련된 사진(3장)을 유유자적 카페에서 옮겼음.
다음 후편은 추사 선생이 청나라에서 씨앗을 가져와서 심었다는 "백송(白松 - 흰 소나무)"의 특이한 모습과
호서지방의 소금강이란 예산군 덕숭산의 아름다운 경관속에 자리한 유명한 사찰 "수덕사(修德寺)" 고즈녁한 전경,
그리고 화가(畵家) 고암 이응로 선생이 오랫토록 머물렀다는 사적지 "수덕여관" 등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 ; 예산 8경(禮山 八景)}
제 1경 ; 수덕사
위치 :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소개 :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에 위치한 사찰로 서해를 향한 차령산맥의 남맥이 만들어낸 덕숭산 동부로서는 가야산, 서로는 오서산, 동남간에는 용봉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중심부에 우뚝 서 있다.
제 2경 ; 가야산
위치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소개 : 가야산은 차령산맥의 한 줄기로 덕숭산도립공원의 일부에서 뻗어나간 줄기가 솟구쳐 일으킨 산으로 규모는 작지만 주변에 많은 문화유적을 간직한 명산이다. 신라때는 가야산사를 짓고 나라에서 제사를 지냈으며조선시대까지도 덕산현감이 봄, 가을로 제를 올렸던 곳으로, 능선을 따라 피어있는 진달래와 억새풀은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제 3경 ; 충의사
위치 :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충의사는 사적 제229호(72.10.14)로 지정되었으며 1967년에서 1974년까지 윤봉길 의사의 위업을 선양하고 충의정신을 후세에 기리 보존하고자 성역화 사업을시행하였고, 매헌 윤봉길 의사 의거를 기리기 위해 매년 4월27~29일에 매헌문화제가 거행되고 있다. |
제 4경 ; 삽교평야
소개 : 삽교천을 따라 길게 펼쳐진 평탄지가 조성된 곳으로 삽교읍 용동리, 성리, 고덕면 용리, 구만리, 상장리, 대천리까지 길게 펼쳐져 있어 삽교 꽃산 봉우리에서 내려다 보이는 이른 가을 아침 햇살에 비치는 넓은 삽교평야는 마치 출렁이는 황금물결과 같아 장관을 이룬다. 예당호의 맑은 물과 풍부한 용수를 바탕으로 황금벌판의 기름진 땅에서 생산된 벼를 최신설비가 완비된 미곡종합처리장에서 가공 선별한 고품질 청결미로 신선도가 높고 밥맛이 좋은 황금쌀이 생산된다. |
면적 : 2,650㏊
제 5경 ; 추사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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