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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부산,경남여행

부산의 갈맷길 - 가덕도(加德島) 둘레길을 걷다

by 삼도갈매기 2012. 10. 15.

 

 

 

 

2012년 10월 14일(일요일)

인도행(생길따라 보여)회원 60여명과 함께 부산시 강서구에 소재한 가덕도 둘레길을 걸었다.

부산의 갈맷길이 군데군데 21곳이 있으며 그 중 첫번째 갈맷길이 오늘 우리일행이 걷는 가덕도 둘레길이다.

 

가덕도(加德島)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천가동에 속한 20.78㎢의 섬으로 해안선 36km이며, 부산광역시에서 가장 큰 섬(영도섬의 1.6배 크기)으로 최고봉은 연대봉(烟臺峰)은 459.4m 높이다. 1989년 천가면 전역을 부산광역시에 편입하면서 신설된 강서구에 속하게 되었다. 행정동으로는 천가동 하나로 되어 있으며, 대항마을, 선창마을, 두문마을, 장항마을, 율리마을, 천성마을, 동선마을, 성북마을, 눌차마을이 있으며, 5개의 법정동과 10개의 자연마을이 있다. 거제도와는 직선거리 9km 떨어져 있으며, 천성마을은 가덕도와

거제도를 잇는 거가대교가 통과하는 곳이다. 한국 제2관문공항으로 조성되는 동남권신공항의 후보지로도 거론되는 곳이도 하다.

 

 

 

위 지도의 출발지인 선창마을에서 눌차도와 연결된 천가橋를 건너 - 동선방조제 - 방파제 - 동선새바지 - 가덕도 기도원 - 누릉령

- 어음포 - 희망정 - 대항새바지 - 대항마을(점심) - 지양곡 - 충혼탑 - 소양 보육원 - 천가초등학교 - 출발지인 선창마을로

원점회귀(총 18.7Km, 중식시간 포함 7시간 소요됨)

 

 

 

부산 북구 금곡동에서 출발하는 1009번 좌석버스를 이용하여 산행 출발지인 선창마을 버스정류장에 오전 10시에 도착하였다.

멀리 대구시와 경산시 그리고 가까운 진해에서 까지 가덕도 인도행을 위해 아참일찍 출발하여 이곳에 오셨으니 대단한 정성이다.

위 가덕도 갈맷길 이정표가 일행을 반긴다....

 

 

 

가덕도 둘레길 출발지인 선창(仙倉)마을

천가동의 관문역활을 하고 있는 성북동 선창마을은 예로부터 가덕도와 용원을 잇는 도선의 기점이었는데 

이 곳은 옛 수군 함정의 군항지로 병기고가 있었는데 왜란때 불타 없어졌고 지금도 병기 조각이 발굴되는 곳이다.

천가동의 관문답게 마을 풍경도 좋으며, 유자 등 특용작물 재배로 농가소득이 높은 풍요로운 마을이기도 하다.

가을에는 온 들판에 유자 향기가 가득하며 바다와 유자의 어울리는 풍경이 극치를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선창마을에서 위 사진에서 보이는 천가교(天加橋)를 건너 눌차도(訥次島)를 향하였다.

천가교 건너편엔 굴 양식장이 곳곳에 즐비함을 보니 이곳 해역이 청청함을 은연중에 알수 있다.

 

 

눌차도(訥次島)에 도착하였다.

눌차동은 가덕도 동북단의 섬마을로 섬의 형태가 본 섬과는 달리 유달리 완만하고 낮아 꼭 누워 있는 형태라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눌(訥)은 "눌어 붙다" 즉,'한 군데 오래있어 지리하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으로 볼 수 있고, 차(次)는 누우려 하는 형세를

보이는 동네로 풀이된다. 또한 눌차는 넘차를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넘차라는 말은 '넘치다'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볼 때 세찬 파도에 밀려 넘쳐나간 섬이라고 하여 가덕도의 본섬에서 떨어진 또 하나의 섬으로서 넘차로 불려져서 한자 표기로 눌차로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가덕도 닷컴에서 옮김)

 

 

 

동선방조제와 동선새바지 사이에 위 사진에서 처럼 길다란 방파제가 만들어져 있다.

 

 

 

길다란 방제제에 모여서 인원점검과 함께

오늘 도보하려고 하는 가덕도 산행의 주의사항을 길잡이  "돌하님"(사진 오른쪽)이 설명한다.

나중에 알았지만 산행 길잡이신 돌하님은 이고장 출신으로 몇년전엔 이곳 천가동장까지 역임했다고 한다.

 

 

 

동선새바지길은 바닷길로 잘 다듬어져 있었다..

허나 지난 여름 태풍으로 인하여 군데군데 깍이고 패어있어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동선새바지에서 바닷가 길을 따라 이곳 응봉산 기슭에 자리한 기도원까지는 대략 1Km거리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오늘 진행요원들이 준비한 가을의 진미인 "전어회"를 막걸리와 함께 먹을수 있었다.

60여명이 배부르게는 먹을수 없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먹었으니 준비하신분들의 성의가 대단함을 알수 있어....감사드린다.

 

 

 

 

일행중 여자분이 말뚝사진기를 가져오셔서 단체사진을 담아 카페에 올렸기에 이곳에 퍼왔다.(뒷줄 오른편....내모습)

분명 60여명인데....20여명이 보이지 않는다....그렇다면 가덕도의 명물 숭어를 잡으로 바닷물속으로 들어가신것은 아닌지?...ㅋ

 

 

 

 

가덕도 기도원을 지나서 부터 산길로 접어들었다.

해안선을 따라 동북쪽으로 눌차 ~ 동선 사이를 이어주는 방조제에서부터 기도원 앞 바닷가의 경관, 동남쪽으로 대항 새바지의 넓은 자갈밭과 용두암(龍頭岩)을 시작으로 펼쳐지는 동백숲 및 외동섬 일대와 동두말, 가덕도 등대 주위의 깍아지른 듯한 기암괴석, 서남쪽으로 돌아 외양포 해수욕장, 두문에서부터 길게 뻗은 솔섬, 천수말, 코바위 등의 아름다운 경관이 가덕도를 더욱 빛나게 한다.

 

 

 

 

 

 

 

누릉능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위 설명문에서 보듯이 "누런빛을 띄는 바위를 깨보면 혈관처럼 빨간 나이테가 보인다"하여 누릉능이라고 불리었단다..

바닷가에서 시원한 바람은 불지만 산길을 걸었으니 가을이라고 하지만 이마에 땀을 흘리며 한결같이 가뿐숨을 몰아쉰다..

 

 

 

 

물고기 소리가 많이 나는 포구인 "어음포"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산 위로 치고 오르면 가덕도의 최고봉인 연대봉(459m)이 나타난다.

출발지에서 이곳까지 4.25Km를 왔으며 대항새바지까지는 2.25Km가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수북히 쌓인 낙엽을 밟고 가뿐숨을 몰아쉬며 쉬지않고 걸었다.

지난날 가덕도를 아내와 함께 여러차례 다녀갔었다....이곳 불러그에도 가덕도 산행기를 3번쯤 기록한듯 하다..

 

섬에서 태어났으니 고향 그리울때 이곳을 자주 찾았으며 결정적인 이유는 이곳에 동박새가 많아서 그 울음소리를 듣기 위함이였다.

고향 떠난지 45년쯤 되었지만 아무리 작은 동박새 울음소리도 바로 알수 있으니, 지금 그 동박새가 이곳 숲속에서 나를 반기듯...

걷는동안 이곳저곳에서 열심히 지저귀고 있었다.

 

 

희망정이란 팔각정자에 도착하였다.

2009년 희망근로자분들이 동선새바지에서 대항새바지까지 6Km의 등산로를 개설한 후

경제위기 극복을 염원하는 모든분들의 마음을 담아 희망을 가지자는 의미로 희망정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처음 보는 아저씨가 시원찮은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니....누가 믿고 따라주겠는가?

그래도 이분들이 나를 믿고 이렇게 멋진 폼을 잡아주셨는데, 성원에 감사하게 사진을 담았는지 모르겠다..

다음번엔 더욱 멋진 모습을 담아줄것을 약속하며....특히 부산방 운영자인 "계수나무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가덕도 둘레길을 기획하고 손수 길잡이까지 하신 돌하(乭河)님과

두번째 인도행에서 저와 통성명하신 연두색의 모자를 쓰신 "크로바님"의 모습...두분이 어쩜 다정한 오누이 같은데?.......

 

 

 

위 사진의 대항 새바지(외양포 마을)에 도착하였다.

대항리(大項里)에는 본동의 응달, 양달 마을과 새바지(등받이)마을, 외양포 마을이 있다.

대항 본동에서 동쪽으로 1km지점에 언덕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동선 새바지 마을이 나오는데 샛바람을 받는다고 해서 새바지가 되었단다. 천수말에서 대항리까지 이어지는 해안 일대는 앞쪽으로 병산열도와 거제도, 진해만으로 이어지는 수로의 길목으로서 일제시대 포진지(砲陣地)와 땅굴흔적이 지금도 생생히 남아있다. 

 

외양포 해안 돌자갈 밭에는 일제 때 사용했던 화약 파편이 지금도 발견되고 있으며, 땅굴과 포대(砲臺)들이 원형대로 남아 있는데, 외양포는 일본군이 주둔하면서 주민들을 대항(大項)으로 쫓아내고 육군 포대 진지로 사용했던 곳으로 이 곳에는 일본 헌병들이 마셨다는 헌병샘도 있다고 한다 (가덕도 닷컴에서 옮김),  허나 우리일행은 시간이 없어 그곳까지 가지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대항 새바지(외양포 마을)에서 잠시 머물고 대항마을로 넘어간다..

넘어가면서 오른쪽 산등성이를 바라다 보면 아래 사진에서 보듯 여느 여인의 젖꼭지 처럼 가덕도 연대봉(459m)이 보인다..

예전에 연대봉 산행을 마치고 나면 이곳 대항마을로 내려와서 식사를 하고 도선인 "진영호"를 타고 부산으로 갔었다.

 

  

 

 

대항마을에서 유명하다는 "소희네집"에 도착하였다.

조그마한 섬마을 식당에 60여명이 과연 앉을수 있을까 걱정했는데....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식탁한곳에 4명씩 앉았으며, 1인당 7,000원으로 이렇게 푸짐한 밥상을 받을거라곤 생각을 못했는데.....

 

 

 

4명이 식탁하나를 차지했던 음식들로 미역국과 함께 푸짐한 회무침

그리고 조갯살과 고동, 꽁치구이, 새우, 조개로 만든 젖갈과 꼬막 그리고 각종 양념이 섞인 반찬들이 즐비하다...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대항마을앞에 세워진 숭어모형 앞에서 처음으로 포즈를 취해본다..

대항마을 어장에서는 매년 2월에서 5월까지 숭어잡이가 주된 업종인데, 겨울에는 명물인 가덕 대구도 많이 잡히고 있는 곳이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 3시에 대항마을에서 도보여행을 시작하였다.

대항(大項)마을에는 바위섬이 절경(絶景)을 이루고 있는데, 남서쪽  3km지점에 숭어잡이로 유명한 내동섬이 있고,

서쪽 3km 떨어진 곳에 달팽이처럼 생긴 바위섬이 있으며, 등대 앞에는 히녀라는하는 돌샘이 있고 대항 서쪽  2km 지점에 모양이

코같이 생긴 코바위섬과 남서쪽 4km지점에 농처럼 생긴 농바위섬 등이 있는 가덕도에서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란다.

 

대항마을 전경(위 사진)과 대항마을 방파제 모습(아래 사진) 

 

 

 

 

도보여행중 길가에 활짝핀 꽃을 보았다.

벗꽃이다 매화(꽃)이다 의견은 분분했지만 정확하게 무슨꽃인지 결론은 나지 않았다.

허나 봄이 아닌 가을에 이런꽃이 핀다는것은 맞지않으니 아마도 이꽃은 나를 닮아 정신이 없는듯 하다...

 

 

 

 

가덕도에서 바라다본 거가대교 사장교 모습

거가대교 총길이 ; 8504m, 폭 21.6m(왕복 4차선)

교량 ; 2주탑 사장교(경간 475m, 항로고 52m), 3주탑 사장교(경간 230m X 2, 항로고 36m)

국내 최초로 도임된 침매터널 ; 9.75m X 26.5m X 180m X 18항(3,240m), 인공섬 ; 2개소......투자비 ; 2조 2천억원

 

 

국군용사충혼비에 도착하였다. 이곳 충혼비에 새겨진 내용을 아래에 옮겨본다

 

그대 조국의 아들이여.....

맑은 하늘 푸른바다 지키기 위하여

 

파도처럼 일어나

전장으로 달려간 충절의 용사여

 

그대들은 이 수려한 강산에서

못다핀 꽃으로 한국 동란에 희생됐나니

고결한 그 넋, 아름다운 전설이 되어

그대의 고향 가덕도에 요새로 새로히 서리라

 

영원을 두고 잊을수 없는 자유 혼의 기념비..

우리 오늘 그 앞에 발걸음 멈추고 명복을 비나니

전쟁없는 나라의 간성된 영령에

그대 고이 잠드시라

 

호국 용사여,

고이 잠드시라

 

 

 

가덕도 국군묘지는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로서 6. 25전쟁때 조국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이 고장 출신 순국용사를 추모하기

위하여 1957년 6월 6일 가덕도 천성산 해발 200m 기슭에 묘역을 조성하여 1984년 묘비석을 세우게 되었다. 충혼비는 용감한

국군의 기상을 상징하며 호국영령들의 조국애를 기리는 추모사가 새겨져 있다. 이곳은 꽃다운 청춘을 조국과 겨레를 위해 목숨을

받친 호국영령들이 고이 잠들어 있는 소중한 현충시설로 후손들에게 역사적인 교육장으로 길이 보존되어야 할것이다.

 

 

가덕도 국군묘지에서 소양 보육원을 거쳐 천가동 마을로 내려왔다.

이곳 가덕도는 물이 풍부하여 벼를 많이 재배하는데 지금은 추수를 모두 끝냈고, 밭에서는 고무마를 케내거나 붉은 고추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이다.. 

 

 

 

천가초등학교 정문앞에 몇백년은 됨직한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 있고.

그 은행나무 뒤쪽에 흥선 대원군이 새웠다는 "척화비"가 세워져 있으니...아래에 그 내용을 기록해 본다..

 

 

 

가덕도 척화비(斥和碑)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 35호)

척화비는 조선말 고종때 섭정을 하던 흥선 대원군이 병인양요(丙寅洋擾)와 신미양요(辛未洋擾)를 겪은 뒤에 세운 비석이다.

대원군이 제국주의의 침략을 배격하고 쇄국을 강화하기 위한 귿은 결의를 나타내고, 백성에게 서양열강의 침략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기위해 신미양요 직후인 1871년(고종 8년) 4월에 서울과 전국의 중요한 곳에 세운 비석이다.

 

비문의 한자는 12자가 새겨져 있으며 재질은 화강암이다, 비문을 해석하면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였는데 싸우지 않으면 곧 화의하는 것이요, 화의를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라는 것이다, 그 옆에 "우리들의 자손만대에 경고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 라는 작은 글씨가 적혀있다. 이 비문은 강서구 성북동에서 건축공사중 출토되어 1995년 12월 이곳 천가초등학교 교정으로 이전 복원하였다. 척화비는 1882년(고종 19년) 임오군란때 대원군이 청나라에 납치되고 우리나라가 여러나라와 통교하게 되자 일본 공사의 요구로 철거되었다고 한다. 이 비석은 개항 당시의 절박한 사정을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이다.

 

 

 

근처 텃밭에서 이곳의 특산물인 고구마 수확이 한창이다.

10Kg 짜리 한박스에 25,000원에 판매하고 있었으나....유감스럽게 집까지 들고 오는게 힘들것 같아서....

 

 

 

출발지인 선창마을에 도착하여 오전에 걸었던 해질녘 눌차마을의 일렁이는 모습 담았다. 

오전 10:30분에 출발하여 오후 5시 30분에 이곳 출발지에 도착하였으니 꼬박 7시간 도보여행을 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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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는 녹산동의 보개산이 바다 가운데 침몰되었다가 다시 솟아서 이루어 졌다는 전설이 있는데....지형은 섬 남단의 동두말(東頭末)을 정점으로 2등변삼각형이고, 산들이 해안을 따라 최고봉인 연대산(459.4m)과 함께 북으로부터 국수봉(國守峰, 눌차), 문필봉(文筆峰), 갈마봉, 구곡산(九曲山), 삼박봉, 강금봉, 응봉산, 동묘산, 웅주봉, 매봉, 성토봉, 국수봉(대항), 남산 등의 많은 산들이 해안과 함께 펼쳐져 있다. 

 

가덕도를 오늘까지 십여차례 다녀온듯 하다...

예전엔 가덕도가 완전한 섬으로 지금처럼 개발도 되지않고 전형적인 어촌풍경이였는데 부산신항과 거가대교를 개통하면서 부산시

강서구 녹산동과 다리가 연결되어 많은 사람들이 쉽게 근접할수 있어 좋은점도 있겠지만 예전의 고왔던 어촌풍경이 점차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 더욱 많은듯 하다...더더욱 이곳을 매립하여 김해공항을 대체할수 있는 신공항을 만든다고 하니 지금 가덕도의

풍경은 영원히 사라질게 뻔하니....개발도 좋지만 정겹던 어촌풍경이 그리워짐은 어쩔수 없는 아쉬움으로 남을듯 하다.

 

오후 6시쯤 좌석버스(1009번)로 회원들과 함께 이동하여 부산시내에 무사히 도착했으며, 다음 세번째 도보여행을 기약해 본다,

끝까지 이번 여행에 많은 도움을 주신 돌하님과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도보여행기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