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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먼나라(해외)여행

백두산 여행(종편) - 두만강, 류경호텔, 진달래 광장에서...

by 삼도갈매기 2013. 7. 16.

 

 

 

 

 

 

지난 6월 18일 백두산 여행을 위해 연길공항에 도착하여 4박 6일 동안 백두산 천지와

주변 관광지 여행을 무사히 마쳤으니, 오늘은 백두산 여행의 마지막 이야기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 중국과 북한의 접경 "도문(圖們)"으로 이동...

 

도문국경은 용정시에서 동쪽으로 1시간 거리(차량으로)의 두만강변에 위치해 있는 작은 도시로

두만강을 경계로 북한의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면과 마주하고 있는 도시다.

 

 

 

사진속 길 오른쪽 두만강변에 철조망이 세워져있고

건너편 강폭이 좁은 두만강이 유유히 흐르며, 그 너머에 나즈막한 북녁땅이 지척에 보인다...

 

 

 

 

 

전용 차량으로 이동하면서 버스 유리창 너머로 강건너 북한땅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말 그대로 지척에 북한땅이 시야에 들어오니 어렵게 살고 있는 북녁 동포들의 모습이 눈에 선한듯 하다.

 

 

 

 

두만강 기차철교 - 중국 연변자지주 도문시와 북한 함경북도 남양시를 잇는 철교

나중에 일행과 함께  땟목을 타고 위 사진속의 두만강 철교 아래를 지나갈것이다..

철길이 한가하지만 중국에서 많은 물자가 기차편로 북한땅에 수송된다고 한다...(사진속 초소에 경비병에 서있다.)

 

 

 

중국 도문시 강변공원에 도착하였다.

두만강 접경지역에 조성된 공원으로 북한과 중국의 경계를 나타내는

"중국도문변경(中國圖們邊境)"이 세워져 있으며, 이곳에는 두만강 뗏목을 탈수 있는 선착장이 있기도 하는곳이다.

 

 

 

두만강(豆滿江) 칠백리...

북한과 중국의 접경지역을 흐르는 강으로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흘러가는 강으로 길이는 610Km, 한반도 5대강 중 하나.

 

 

두만강 뗏목을 타기 위해서 나루터로 향하였다. - 강 건너편이 북한땅.

 

두만강 관광자원 개발에 나선 도문시는 2011년 조선과 중국을 오가던 이곳에

나룻배가 정박했던 두만강 나루터를 복원하였으며, 나루터를 소개하는 기념비를 세웠다고 한다.


 

 

강 왼편이 북한땅으로 강폭은 좁지만 깊이는 2m정도로 유속은 제법 빨랐으며,

사진속 두만강 철교를 한바퀴 돌아 선착장으로 되돌아온다.

 

 

 

위 사진은 두만강 뗏목선에 함께 탔던 임대장님이 찍어준 사진

단순한 땟목체험으로 두만강 위에서 북한땅을 마주보고 있다는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

 

 

 

4 ~ 5년전만해도 이곳 뗏목은 예전방식으로 운영되었는데

요즘은 많은 관광객으로 인하여 사진에서 처럼 편안하게 앉아 갈수 있도록 개조했다고 한다. 

 

 

 

 

두만강 푸른물에 뗏목이 흘러간다.(사실은 흙탕물이였다.)

 

 

    - 눈물젖은 두만강 -  (김용호 작사, 이시우 작곡)

 

1. 두만강 푸른물에 노젖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은 내님을 싣고

    떠나간 그 배는 어디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2. 강물도 달밤이면 목메어 우는데 님 잃은 이 사람도 한숨을 지니
    추억에 목메인 애닲은 하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고인이 된 김정구 선생의 목소리에 얹어 한민족의 가슴에 설움을 심어준 이노래를 따라 두만강에서 뗏목을 탔다.

강 건너편이 북녁땅으로 강변엔 총을든 병사만이 이곳 두만강의 슬픈 역사를 간직한 북녁땅임을 말해주는듯...

두만강은 말없이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유유히 흐를것이다.

 

 

 

 

이곳을 찾아 오면서 보았던 "두만강 철교"

철교에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데 중국쪽엔 붉은색 페인트,

북한쪽엔 파란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어 그색으로 경계선이 된다고 한다.

 

 

 

동력선이라 노를 저어야할 사공은 모터 핸들을 잡고 앉아 있다.

북녁땅을 보면서 사진 찍지말고, 말을 걸거나 소리를 지르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을 한다...

 

 

 

북한땅 모습으로 사진속엔 보이지 않지만

북한군 병사가 숲속에서 두만강쪽을 응시하며 앉아 있는 모습이 군데군데 보였다.

대략 30분정도 뗏목을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걸로 두만강 뗏목 체험을 마쳤다.

 

 

 

 

두만강 뗏목 나루터 입구에 세워진 "만춘려관" 앞마당에 분수가 물을 뿜으며 일행을 반긴다.

 

참고 ; 만춘려관은 1930년대에 세워진 여관으로 연변과학기술대학에 의뢰하여 제현해서 2011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도문시 향토 사학자들은 만춘려관은 독립운동이나 무역을 위해 두만강을 건너 간도를 오가던 조선인들이 즐겨 묵었으며

우리가요 "눈물 젖은 두만강" 노래가 이곳 만춘여관에서 탄생한 산실로 보고있다고 한다.

 

국내 대중가요 연구가들에 따르면 1935년 간도 순회공연에 나섰던 유랑극단 '예원좌(藝苑座)'가 만춘려관에 투숙했는데

이 극단의 지휘자 겸 작곡가였던 이시후씨가 밤새 흐느끼는 여인의 울음을 듣고 이튿날 여관 주인을 통해 사연을 물었다고 한다.
이 여인이 독립운동을 하던 남편을 수소문해 조선에서 두만강까지 찾아들었으나 이미 일본군에 의해 남편이 처형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밤새워 구슬피 울었다는 걸 알게 된 이씨는 밤을 새워 일제 강점기 두만강 유역에 서린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담아 눈물젖은 두만강을 작사, 작곡했다고 전한다.


예원좌의 소녀 가수 장성월(張城月)이 간도 순회 공연에서 이 노래를 불러 관객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으며 후에 서울로 돌아와 작곡가 김용호가 2, 3절의 노랫말을 짓고 1938년 고 김정구(1916-1998년)씨가 음반을 취입했다.
음반 발매 직후 조선총독부가 민족의식을 고취한다는 이유로 판매 금지 처분을 내렸던 이 노래는 해방과 함께 널리 불리면서 지금까지 변함 없는 사랑을 받는 국민 애창곡으로 자리 잡았다. 김정구씨는 1980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 북한이 운영하는 "류경호텔"에서...

 

류경호텔은 북한이 중국땅에 세운 호텔로 이번 여행에는 "류경호텔" 상품은 없었다.(옵션상품)

류경호텔에서는 진수성찬에 평양식 냉면 그리고 1시간동안 북한동포의 공연을 감상할수 있다고 했으니...

 

 

 

연길시내에 위치한 "류경호텔" 외부전경

같은 이름으로 평양에 짓고 있는 류경호텔은 평양의 랜드마크라고 하던가?...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식당을 가게 되다니 세상 많이 변했나 보다...허나 약간 설래기도 했다.

남남북녀라고 하던데 과연 북한아가씨들은 얼마나 아름다운 미모를 가졌을까.....그게 제일 궁금했다.

 

 

 

한국의 여느 음식보다 담백하고 깔끔했으며 맛도 기가 막혔던걸로 기억된다..

12가지 요리와 함께 북한산 "들쭉술" 그리고 "평양식 냉면"까지 곁들여....백두산여행 마지막 식사가 진수성찬이다.

 

 

 

음식 서빙하던 아릿따운 아가씨들이 춤과 노래로 공연을 시작하였다..

공연중 꽃다발을 선사할수 있는데 우리돈 1만원을 지불하여 꽃을 구입, 마음에 든 아가씨에게 선물할수도 있다.

 

 

 

 

 

 

 

 

하나같이 늘씬한 몸매에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공연을 하였으니

노래 그리고 춤 공연이 끝날때 마다 우뢰와 같은 박수 갈채를 받기도 하였다.

 

 

 

 

북한 처녀들의 고운 목소리에 춤 솜씨, 잠시 감상해 보세요

 

 

 

 

 

 

- 연길시내 "진달래 광장"에서...

 

저녁식사후 4시간 정도의 여유시간이 있기에 근처 진달래 광장을 구경하였다.

(현재시간 저녁 9시....다음날 새벽 1시경쯤 연길공항에서 김해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할 예정)

 

 

 

진달래꽃을 형상화한 "진달래 광장"의 랜드마크...

진달래 광장은 연길시를 대표하는 공원으로 각종 행사나 야외 결혼식 등이 많이 열리는 곳이다. 

 

 

 

공원 입구에는 진달래 광장을 조성한 배경을 아래와 같이 표지석에 새겨져 있었다..

 

“진달래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주화(州花)다. 엄동설한 이겨내고 언제나 남보다 먼저 봄소식을 알리는 전달래, 어디서나 다정히 모여서 온 산을 불태우는 진달래는 연변 여러 민족 굳은 의지와 송고한 품성 그리고 하나로 단합된 모습의 상징이다. 빛나는 연변의 50년 역사와 함께한 진달래는 앞날의 비약적인 발전과 더불어 더욱 아름답게 필것이다. 진달래는 연변의 자랑이다.

 

2002년 9월 3일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50돌에 즈음하여 연변 인민들의 소망과 애국 애향심을 담고 행복한 삶과 건강하고 희망찬 미래를 기원하여 진달래광장을 만들고 진달래 조각상을 세운다.“

 

 

 

 

진달래 광장에 연변시민들이 음악과 함께 춤을추며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근래에 아내와 댄스를 배웠으니 이곳에 합류하여 배운대로 연습삼아 신나게 춤을 추었다.

함께 여행온 일행들이 아내와 춤추는 모습을 보고 느무느무 부러워하면서....우뢰와 같은 박수로 호응해 주었다.

 

 

 

 

이곳은 매일저녁 연변시민들이 가족과 함께 휴식을 취한다고 한다.

특히, 이곳은 아이들과 함께 즐길수 있도록 각종 유기시설을 설치하였으며 간단하게 음식도 팔고 있었다. 

 

 

 

 

 

대략 1시간 동안의 진달래 광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연길공항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아래 사진은 이동중 흔들리는 버스안에서 연변시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현지시간 밤 12;00....연길공항에 도착하였다...위 사진은 연길공항 전경(야경)

새벽 02;20 연길공항 출발, 김해국제공항 06;10 도착(소요시간 2시간 50분, 한국 1시간 빠름), 4박 6일간 백두산 여행을 마쳤다.

 


          

 

                                  백두산 여행의 마지막 동영상이니 잠시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백두산 여행은 다른 여행과는 다르게 조국과 민족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것을 느꼈던 여행이였다.

 

늘 마음속으로 생각만 하고 실천을 못했던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 여행을 무사히 마쳤음을 천지신령께 감사드렸다.

년중 60일 정도만 백두산 천지를 볼수 있어 일반인에게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는 신령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백두산 천지,

3대(代)가 덕(德)을 쌓아야만 백두산 천지를 볼수 있다는 속설까지 있을 정도로 그 아름다운 모습을 감춘다는 백두산 천지..

이번 여행에서 북파(북쪽방향)에서 그리고 서파(서쪽방향)에서 두번에 걸쳐 천지의 성스러운 전경을 감상할수 있었으니..

그 성스러운 기운이 뇌리에 남아 영원히 잊지못할 추억이 되었음에 그날의 감동을 사진과 글로 남겨 마음속 깊이 새겨본다..

 

나는 오늘도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아내와 찍은(거실에 걸린) 사진을 바라보며, 가슴 뭉쿨함을 느낀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