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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장거리 여행

경북 영주시 "부석사(浮石寺)" 은행나무 단풍길을 걷다...

by 삼도갈매기 2013. 11. 8.

 

 

 

 

 

 

2013년 11월 6일(수요일),

인도행회원 30여명과 경북 영주시에 자리한 "부석사(浮石寺)"로 가을 단풍여행을 떠났다.

08;00 부산을 출발하여 3시간 30여분 소요되어 영주시내 북쪽에 자리한 부석사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부석사(浮石寺)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의상조사(義湘祖師)가 창건한 사찰로 당시 의상스님은

이 절에서 40일동안 법회를 열고 화엄(華嚴)사상을 설함으로써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화엄종지(華嚴綜旨)를

펼쳤으며, 그 후 이절은 화엄종의 근본 도량으로 수많은 고승 대덕을 배출한 사찰이다.

 

 

 

 

 

부석사 관람에 앞서

잠시 인원점검과 주의사항을 전달하고 계신 길잡이 달마루님.

 

 

 

부석사 입구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연못엔

폭포와 함께 분수 그리고 물안개가 자욱한 모습이 경이롭기도 하고....

 

 

 

매표소 입구에 세워진 부석사 안내도

어느 사찰이나 그렇듯이  일주문이 나온다, 집으로 치면 대문이다..

당간지주천왕문이 나온다...우리나라 절 대부분이 이 순서로 나온다..

은행나무길 지나 가파른 돌계단 오르면 좌우로 동탑 서탑의 3층 석탑이 나온다.  

 

그리고 2층으로 되어있는 범종각(목어와 북이 있는) 을 지나면 역시 2층 누각인 안양루가 나타나고

안양문을 지나면  국보인 석등무량수전이 나타난다...그리고 좌측에 떠있는 돌....부석(浮石)이 자리하고 있다.

 

 

 

인도행 카페에 부석사 여행을 공지할때

"부석사 은행나무 단풍길"이라고 하더니...

입구 좌우엔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길 왼쪽엔 매년 10월 축제로 유명한 영주 풍기 인삼밭이고

길 오른쪽엔 위 사진에서 처럼 영주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태백산 부석사 일주문

길 양쪽으로 은행나무가 노랗게 펼쳐져 있으니 보기엔 그만인데

은행의 향기짓은 냄새가 진동을 하니 모두가 코를 감싸고 길을 걸을정도였다....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榮州 浮石寺 幢竿支柱) - 보물 제 255호

꾸밈이 없고 소박한 느낌을 주는 지주인데, 가늘고 길면서도 아래위에 다소 두께 차이가 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안정감을 주며, 간결하고 단아한 각 부분의 조각으로 보아 통일신라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입구에서 점심을 해결하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우선 배를 채워야 부석사를 구경할게 아닌가?

 

 

 

두 번째 문, 천왕문(天王門).

석축 위에 있는데 이 터는 원래 조계문 터였다고 한다. 1978년에 발굴하여 노출된 유구를 정비하고,

1980년에 복원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에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다포계(多包系) 건물이다.

 

 

 

부석사 삼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130호) - 입구에 세워진 쌍탑

이 탑은 통일신라 후기 3층 석탑이다, 높이는 동탑이 360Cm, 서탑이 377Cm로 두탑의 크기와 양식은 거의 같다.

이중기단(二重基壇)위에 3층의 몸돌을 올린것으로 무량수전(無量壽殿)의 동쪽에 있는 석탑과 같은 형식이다. 전체적으로 짜임새

있고 정제된 모습으로 신라 석탑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윗부분은 없어졌는데 지금 놓여져 있는 것은 뒤에 보충한 것이다

 

 

 

봉황산 부석사란 현판이 보이고....

 

 

 

 

2층 누각 중 1층은 안양문,

2층 부석사라는 현판은 초대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이란다.

 

무량수전 쪽 나오는 곳엔  2층의 누각은 안양루라고 쓰여져 있다  

즉 하나의 2층 건물이 출입문과  누각의 기능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안양(安養)은 곧 극락을 뜻한다.

 

 

 

부석사무량수전(浮石寺無量壽殿)

1376년에 지은 목조 건축물로 국보 제18호이다.

경북 안동의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

정확한 건조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중기 후반경의 건축물로 추측된다.

 

부석사의 본전(本殿)으로, 무량수불(아미타여래불)이 모셔져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주심포식 팔작집이다.

내부에는 서쪽 가로 불단(佛壇)을 두고, 그 위에 장륙(丈六)의 석가여래상을 동쪽으로 향하여 안치했다.

배흘림기둥, 삼중으로 맵시 있게 겹쳐진 포작(包作), 이중연(二重椽)으로 인한 지붕의 가벼운 곡선,

철상명조(徹上明造)의 내부 천장 등이 무량수전의 특색이며, 전체적으로 장중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모자를 벗고 내부에 들어가서 잠시 합장한후 사진을 찍으려니 찰영금지란다

내부 천장에 목각과 그림도 문화재급이라고 하였는데...나오면서 겨우 부처님 존안만 살짝 담았다.

무량수전이 몇가지 특이한점이 있다고 하더니, 전각은 남향인데 내부에 불상은 동쪽을 바라다 보고 계셨으니...

 

 

 

무량수전(無量壽殿) - 고려 공민왕의 필체라고 하는데..

무량수(無量壽) 는 수명이 영원하다,  즉  "죽지 않는다"는 라는 뜻이다...

 

 

 

 

유명지에 왔으니 인증샷은 기본

유감스럽게 내가 일행을 찍었으니 내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부석사무량수전 앞 석등(浮石寺無量壽殿 - 石燈) - 국보 제17호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있는 신라의 석등으로 높이는 2.97m이다.

8각을 기본형으로 하며 화강암으로 만든 것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워 신라시대의 석등 가운데 최고로 꼽는다.

 

 

 

하대석에 8엽 복판 연꽃잎이 조각되어 있는데, 잎의 끝마다 귀꽃이 달려 있다. 

상, 하대석 모두 연꽃잎 사이에 마디 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간주석 받침에 굽이 있다.

상대석 연꽃잎 안 보상화(寶相華) 무늬에 떡잎이 장식되어 있으며, 화사석의 벽마다 보살 입상이 조각되어 있다.

 

 

 

 

안양문(루)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엎드려 모여 있는 경내 여러 건물들의 지붕과 멀리 펼쳐진 소백의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스라이 보이는 소백산맥들이 마치 정원이라도 되듯 부석사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경관이다.

그래서 예부터 많은 문인들이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소백의 장관을 시문으로 남겼고 그 현판들이 누각 내부에 걸려 있다..

 

 

 

 

선묘 낭자의 전설이 깃든 선묘각(善妙閣)

부석사 사찰과 건립과 관련된 의상대사와 선묘 낭자의 애뜻한 사랑이 전해진다

현재 수리중이라 전각 내부를 볼수 없지만 내부엔 선묘낭자의 초상화가 걸려있단다...

 

 

 

무량수전 뒤편에 자리한 "조사당"을 찾아가면서 뒤 돌아본 풍경

왼편 건물은 안양루(문)이며, 오른편 건물이 무량수전 건물임...평일이라서 관람객은 많지않아 다행이였다.

 

 

 

부석사3층석탑 - 보물 제249호,

부석사 무량수전 동쪽 언덕 위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탑. 높이 526cm.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이 놓여 있는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형식이다. 하층기단은 8매의 돌로 구성되었는데 중석 각 면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撑柱)를 표현했다.

하층갑석은 6매의 돌로 되었고, 그 윗면에는 상층기단을 받치기 위한 호형(弧形)과 각형(角形)의 2단 굄을 두었다. 상층기단은 각 면에 우주와 탱주 1개씩을 새겼으며, 2매의 돌로 구성된 갑석 밑에는 부연이, 위에는 각형의 2단 굄이 있다.

 

탑신부는 옥신석과 옥개석을 각각 1개의 돌로 만들었는데 옥신석은 우주만 표현했고 옥개석의 받침은 5단으로 되어 있다. 상륜부에는 노반(露盤)과 복발(覆鉢)만 남아 있다. 1960년 석탑을 해체·수리했을 때 3층 옥신에 있는 사리구멍에서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으나 기단부에서 철제탑·불상파편·구슬 등이 수습되었다.(출처:다음백과사전)


 

 

 

영주 부석사 조사당(榮州 浮石寺 祖師堂)

고려시대의 건축물로 내부엔 의상 대사의 초상을 모시고 있다. 국보 제19호로 지정되었다.

부석사 조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작은 건물이지만 고려시대 건축의 특색을 잘 나타낸다. 

 

1916년 개수시에 발견한 묵명(墨銘)에 의하면 우왕(禑王) 3년(1377년)에 건립된 것으로 밝혀졌다.

무량수전이나 조사당 모두 송(宋)을 통해 들어온 천축계(天竺系) 양식이거나 그것을 절충한 건물이다.

참고 ; 위 조사당 오른쪽에 쇠창살안에...선비화라는 지팡이가.....

 

 

 

조사당 한켠에 붉은 단풍나무가 자리하고 있으니

사진 찍기에 명당이라고 자리를 잡고 모두가 인증샷을 담는다.

 

 

 

조사당 앞에 "선비화(禪扉花)"라는 나무가 쇠창살 속에 보호되어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 나무는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조사(義湘租師)가 중생을 위하여 집고 다니시던 지팡이를

이곳 조사당(租師堂) 처마밑에 꽂았더니 가지가 돋아나고 잎이 피어 오늘에 이르렀다 하며 비와 이슬을 맞지 않고서도

항상 푸르게 자라고 있다, 일찍 퇴계 이황(退溪李滉) 선생이 부석사를 찾아와 이 선비화에 대한 시를 짓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 선비화의 학명(學名)은 골담초(骨擔草)라고 부른다..

 

 

 

응진전과 자인당을 찾아가는 길.

이곳에 단풍도 곱게 물들어 있었다.

 

 

 

 

응진전(應眞殿)

자인당과 함께 거의 일렬로 남향하여 일곽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응진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신 전각으로 내부에 석고로 만든 석가삼존불과 십육나한상이 안치되어 있다.

 

 

 

자인전(慈忍殿)

자인당은 선방의 용도로 사용되던 건물로 부석사에서 동쪽으로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폐사지에서 옮겨 온 석불을

이곳에 이안하고 당호를 '자인당'이라고 고쳤다. 이는 부처님을 자인(慈忍)대사라고 하는데서 따온 것이라 한다.
현재 실내에는 석조 삼존여래 좌상을 모셨는데 가운데는 석가여래이고 좌우는 비로자나불(보물 제220호)이다.

 

 

 

단하각(丹霞閣)

부석사 단하각은 자인당, 응진전 동쪽뒤편에 있는 1칸짜리 맞배집으로 작은 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나한이란 불제자가 이를 수 있는 최고의 단계를 말하며, 여기 모신 나한상은 단하소불이라고도 불리는데,

 단하스님이라는 유명한 불제자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단하소불의 손에 생쥐가 있는 특이한 형상입니다. 

 

옛날부터 부석사의 봉황산에 생쥐가 많아서 봉황의 알을 야금야금 깨어 먹는다 해서

단하각을 짓고 손에 생쥐를 든 단하소불을 모셔 생쥐가 봉황의 알을 해치지 못하게 했다는군요.

 

 

 

무량수전 서쪽에 "부석(浮石)"이라는 바위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돌이라 부른데서 연유하였다고 한다.

부석사가 사랑받는 것은 조금은 불경(不敬)스러운 생각일런지 모르지만 이렇게 인간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은근슬쩍 깃들어 있는 것도 하나의 원인(遠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바위 한켠에 浮石이란 글이 보인다) 

 

 

 

 

 

멀리서 바라다본 보물 제249호인 "부석사3층석탑"

 

 

 

관람을 마치고 왔던길을 천천히 내려가는 중이다.

 

 

 

 

 

 

 

"부석사 은행나무 단풍길" -

제목에서 보듯이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길 양쪽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부석사 그리고 의상대사 및 선묘낭자에 얽힌 설화

신라 문무왕 1년(661년)에 의상스님이 화엄학을 공부하기 위해 당나라(지금의 중국등주) 에 갔을때 그곳 고을의 선묘라는 낭자가 의상스님의 출중한 외모에 반하여 청혼을 하였다, 그러나 의상은 출가한 스님으로 공부를 마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기때문에 청혼을 할 수없다고 하였으나 선묘는 의상을 향한 마음에  병을 얻었다고한다, 

 

의상은 10년동안 화엄학의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뱃전에 올랐을때 이 소식을 듣고 뒤늣게 달려온 선묘는 의상이 탄 배가 모진 풍랑을 만나위험에 처했을 때 바다에 뛰어들어 용으로 변신을 하여 사랑하는 의상스님이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갈수 있도록 뱃전을 인도해 주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의상스님은 영주땅에 절을 지으려고 하자 산적과 이교도들이 나타나 방해를 하였다고 한다 이때 선묘혼령이 나타나 조화를 부려서 이 바위를 공중으로 들어올려 물리쳤다고 하여 이 바위를 부석이 불렀다고하며 바위를 뜨게하는 신통력을 보여 의상스님이 절을 짓는것을 방해하는 산적들과 이교도들을 물리쳐서 의상스님이 무사히 절을짓게 하였다고한다, 

 

지금도 부석사 무량수전 옆에는 부석이라는 뜬돌이 있으며  조선숙종때 이종환의 택리지 기록에 의하면 아랫바위와 윗바위 사이에 약간틈이있어 실을넣어 당기면 걸림없이 드나들어 뜬 돌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고 적혀있다, 이리하여 이 절의 이름을 부석사(浮石寺)라 불렀으며  그 후 신묘룡이 부석사를 지키기 위해 석룡으로 변신하여 무량전 뜰아래 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곳 부석사 관람을 마치고 영주시 평은동에 자리한  연꽃이 물위에 떠있는 형국의 "무섬마을"로 향하였다.

무섬마을은 낙동강지류인 내성천과 서천이 합류하여 마을 전체를 태극모양으로 한바퀴 휘감아 흐르는데

마을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섬과 같다고 하여 "무섬"이라고 불리는 마을로 외나무다리축제가 열리는 고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