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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장거리 여행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주 한옥마을" 관람

by 삼도갈매기 2014. 1. 21.

 

 

 

 

2014년 1월 19일(일요일)

부산유유자적회원들과 함께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에 자리한 "전주 한옥마을"에 다녀왔다.

오전 7시 부산을 출발하여 10;30분쯤 전주시 완산구 교동, 풍남동 일대 25만2,000여에 800여채의

전통 한옥으로 이뤄져 있는 특별한 곳, 전주 한옥마을 전용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전주를 말하면 "가장 한국적인 전통도시" 또는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이며

500년 조선왕조의 발상지이자 멀리 후백제의 왕도이기도 했던 명실상부한 천년고도이기도 하다.

 

전주의 참모습을 가장 쉽게, 그리고 제대로 보는 데에는 "전주 한옥마을"이 최고라고 한다.

도심지에 800여채가 넘는 한옥이 보존되고 지금도 주거지로 활용되어 전국적으로도 보기 드문 공간이기도 하다.

 

 

 

 

 

이분들께 미안하다...

빨리 인증샷을 담고 자리를 비워줬더라면 좋았을텐데...

 

 

 

은행나무길 "전주최씨종대(全州崔氏宗垈)"를 배경으로....

"은행나무 길 ; 전주에는 향교와 풍남동 길목에 500년 됨직한 은행나무가 서있다,

은행나무는 벌레가 슬지않는 나무로 관직에 진출할 유생들이 부정에 물들지 말라는 뜻에서 향교에 많이들 심었다고 한다.

사진속 은행나무는 조선 개국공신 월당 최담선생이 귀향한 후 후진양성을 위해 학당을 세우면서 전주 최씨 종대 뜰 안에

심은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전주 사람들은 정겹고 유서깊은 이름 "은행나무 골목"을 사랑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옥마을 은행나무길 한켠에 자리한 "은행나무정자"를 배경으로...

 

 

 

최명희 문학관에서...

“魂불”의 작가 최명희는 1947년 10월10일, 전북 전주시 풍남동에서 출생하였다.

최명희는 전주 풍남초등학교와 전주 사범병설중학교를 거쳐 전주 기전여자 고등학교와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72년부터 74년까지는 모교인 전주 기전여자 고등학교에서, 그리고 74년 봄부터 81년 2월까지는 서울 보성여자 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 많은 제자들을 키워내면서 ‘가장 잊지 못할 스승’으로 존경받기도 했다.

 

일찍이 학창시절부터 전국의 백일장을 휩쓸면서 탁월한 감성과 뛰어난 문장력으로 문학적 역량을 인정받은 그는 80년,

단편소설 ‘쓰러지는 빛’이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면서 등단했다. 다음 해인 81년에는 동아일보가 창간 60주년 기념으로

공모한 장편소설 모집에 ‘혼불’(제1부)이 당선되면서 세간의 관심을 모았으나 안타깝게도 1998년 12월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인터넷에서 발췌...)

 

 

 

최명희 문학관 내부에 들어오면 "ㄷ"자 형태의 기와집 벽에 그녀의 소설에 대한 자료가 가득하다...

십여년전에 최명희의 대표소설 "혼불"을 분명 읽었는데...관람하면서 갑자기 내용이 생각키지 않아서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혼불은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초 전라북도 남원을 배경으로 몰락해가는 종가(宗家)의 종부(宗婦) 3대가 겪는 삶의 역정을 그려낸

작품으로 역사적 사건의 추이를 더듬는 여느 대하소설들과는 달리 한국인의 세시풍속, 무속신앙, 관혼상제, 관제, 직제, 신분제도,

의상, 가구, 침선, 음식, 풍수 등 당대의 습속과 풍물·가치를 눈에 잡힐 듯 환하고 꼼꼼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란다...

 

 

 

특히 17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혼불" 전집이

문학관 내부공간 중앙에 차곡차곡 쌓여 전시되어 있다...

 

 

 

 

"태조로"(太祖路)에 접어들었다...

전주 한옥마을의 길은 위 사진에서 처럼 시멘트와 아스팔트도 아닌 돌(石)을 정교하게 다듬어 만들었는데...

아쉽다면 큰길 및 골목골목을 차량들이 출입하여 이곳을 관람하는 보행자들에게 지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가장 높은 "전동성당(殿洞聖堂)"

전주한옥마을에 있는 전동성당(사적 제288호)은 프와넬 신부가 설계한 천주교 성당으로써 1908년에 완공되었다.

 

한국 천주교의 최초 순교자였던 윤지충(1759-1791)의 순교지 위에 지어진 전동성당은 서울의 명동성당, 대구의 계산성당과

함께 대한민국의 3대 성당으로 손꼽힌다. 성당을 건축할 때 국내 기술이 미흡해 청나라 도공을 불러 공사를 했다는 일화가 있다.

곡선미가 강조된 아름다운 전동성당은 영화 “약속”, “전우치”등에 등장하기도 하였다.

 

 

 

전동성당은 얼핏 서울의 명동성당과 흡사하게 보인다고 한다...

명동성당은 고딕양식, 이곳 전동성당은 비잔틴 풍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되어

명동성당은 아버지 성당 그리고 전동성당은 어머니 성당에 비유되고 있단다.

 

 

 

호남지역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 중앙의 종탑과 양쪽 계단에는 비잔틴 양식의 뾰족 돔을 올렸으며,

성당내부의 석조 기둥에도 비잔틴 양식이 녹아 있다, 곡선미를 최대로 살린 로마네스크 및 비잔틴 양식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이 동양에서 제일가는 성당 건물로 꼽히는 곳이다.

 

 

 

웅장한 성당내부를 장식하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압권으로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해 천주교 신자들못지 않게 일반 관광객들도 많이 방문하는 명소다.  

 

 

 

 

전동성당 앞마당에는

한국 천주교 최초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의 순교 당시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전주에 왔으니...주변분들의 추천으로 전주 비빔밥을 먹었다.(12,000원짜리 비빔밥 반찬)

놋그릇에 비빔밥이 나왔는데...맛이 별로였다...출발할때 전주에는 비빔밥외에도 "콩나물국밥, 전주한정식" 등을 권했는데...

전주 비빔밥...소문난 잔치 먹을게 없다고 했던가?...맛이 없던 그집 상호를 이곳에 올릴수도 없고...초라한 비빔밥은 생략함..

 

 

 

 

식사후 "경기전(慶基殿)"을 관람하였다.

경기전(慶基殿•사적 제339호)은 전주 한옥마을의 대표적인 건물로

조선왕조를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왕의 초상화)을 봉안하기 위해 태종 10년(1410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이고장 출신 해설가 "김경심 해설사"가 열심히 설명을 하신다..

경기전 매표소를 지나 사진속 홍살문앞에서 가장 안쪽에 보관된 이성계의 어진이 보관되어 있음을 알린다..

 

 

 

이성계의 어진이 보관된 건물과

그 건물 안쪽에 자리한 이성계의 어진(사진 아래)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전주뿐만 아니라

경주, 평양, 개경, 영흥 등 총 6곳에 봉안되었으나 오직 전주의 어진만이 현존하고 있다.

1442년까지만 해도 경기전은 어용전(御容殿)이라고 불리었으며 조선왕조실록이 보관되기도 하였다.

정유재란 때 불에 타 소실되었던 경기전은 광해군 6년(1614년)에 복원되어 현재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경기전 내부에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보관고"가 세워져 있다(위 사진)

건물 내부에 들어가면 아래사진에서 처럼 실록이 만들어져 보관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경기전 경내에 조성된 "어진박물관" 관람.

어진박물관에는 조선시대 왕의 영정과 그들의 행적의 자료가 보관되어 있는 박물관이다.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조선대의 왕의 영정모습

좌측으로 부터....세종어진, 영조, 정조, 철종, 고종 그리고 순종어진 여섯분의 왕이 모셔져 있었다.

 

 

 

여섯분의 어진중 가장 정치를 잘하신 "정조어진(正祖御眞)"  

정조어진은 이길범화백이 추정하여 그린 것으로 1989년 국가 표준영정으로 공인되었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로 조선왕조의 중흥을 꾀한 군주이다. 정조는 규장각을 설치해 학문을 발전시켰으며, 탕평정치를 전개해

붕당의 폐단을 해소하고, 왕권을 강화해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는 큰 포부를 갖고 화성을 축조하여 천도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어진박물관 내부에는 위 아래 사진에서 처럼

그 옛날 전주천 다리주변 풍경과 경기전의 연표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전주공예품전시관은 전시관, 체험관, 쇼핑몰로 나뉘어져 있다.

공예관과 기획관에서는 공예관련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고, 체험관에서는 공예체험을 할 수 있다.

명품특산관, 생활공예점에서는 공예품을 쇼핑할 수 있다. 전주공예품전시관은 전주대학교에서 운영을 하고 있다.

 

 

 

오목대(梧木臺)를 오르면서...

800채쯤 되는 한옥들의 까만 기와지붕들이

고풍스럽게 장관을 이루어 고도 전주를 고스란히 담을 수 있게 해준다....

 

 

 

 

 

"오목대"라고 새겨진 비석과 누각

오목대는 조선시대 왕실과 관련된 유적지이다.
그 중 오목대는 후에 조선을 세운 이성계 장군이 당시 군사를 이끌고 잠시 쉬어가던 장소이다.

 

 

 

오목대에서 길 건너편 "이목대(梨木臺)"를 바라보며 해설사의 설명은 이어진다.

오목대와 이목대는 작은 다리를 건너야 갈수 있는 곳으로 일행은 이목대를 찾아간다.

 

 

 

 

 

이목대는 태조의 5대조인 목조 이안사의 출생지로 알려진 곳으로,

이목대 누각엔 고종이 직접 쓴 비문을 통해 조선 왕조의 시조인 이안사가 이곳에 살았었음을 알수 있다..

 

 

 

이목대 근처에 자리한 "한벽당(寒碧堂)"관람

한벽당은 절벽을 깎은 자리에 세운 작은 누각으로 전주 8경의 하나인 한벽청연에 자리하고 있다.

앞으로 흐르는 전주천과 정면의 남고산을 바라보는 풍광은 운치있는 한폭의 그림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였다.

 

 

 

 

 

 

한벽당 내부 모습(신발을 벋고 마루로 올라야 하는데....)

조선의 개국공신 최담선생이 태조 8년(1404년)에 그의 별장으로 지은 건물로..

한겨울 가믐에 아래사진의 전주천이 수량이 풍부하지않지만...그 옛날엔 이곳 전주천이 아름다웠다고 한다. 

 

 

 

 

 

한벽당 관람을 마치고

음식점이 즐비한 음식문화거리 주변의 "향교길"에 접어들었다.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향교길에 자리한 "전주향교(全州鄕校)" - 사적 379호

전주향교는 고려시대에 처음 지어졌다고 전해지며. 처음에 한옥마을 경기전 인근에 있었으나,

조선 태종때에 전주성 근처로 옮겼다가 임진왜란 이후 관찰사 장만에 의해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만화루를 지나면 작은 "일월문"이 나타난다

전주향교는 대성전을 중심으로 명륜당, 계성당, 동무, 서무 등 16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향교는 조선시대의 지방 사립교육기관이었는데, 그 중 전주향교는 지금까지 원형이 많이 남아있는 향교 중 하나란다.

 

 

 

일월루를 지나면 "대성전(大成殿)이 보인다, 대성전은 1907년에 중수되었다.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이며 공자를 위시하여 4대 성인, 10명의 철학자와

송나라 육현을 봉안하고 있고, 아래사진은 공자님의 초상화가 그려진 대성전 내부모습..


 

 

 

 

명륜당과 보호수로 지정된 400년된 은행나무

전주향교에는 유독 4~500년된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많다.

 

 

 

 

전주향교 관람을 마치고 근처의 "강암서예관"(剛菴書藝館)을 찾았다.

이곳은 1990년 서예계의 대가 강암 송성영 선생께서 서화작품 및 서예관 부지등의 소유재산을 전주시에 기부한 곳이다.

이곳은 1995년 4월에 개관하였으며 1,162점의 서화, 서적, 서첩, 인장 등이 보관되어 있는 지하 1층, 지상 2층 한옥기와집.

 

 

 

 

2층 벽면을 가득 채운 강암선생의 서예와 서화가 눈길을 끈다.

 

 

 

한용운 선생의 친필 "단심정각즉불"(禪心正覺卽佛)

설마 원본은 아닐테고...아마도 사본인듯 한데...정확한 뜻은 나도 잘 모르겠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친필도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전두환 대통령의 친필도 있었다.)

 

아래사진은 강암세예관 전면에 전주천이 흐르고 있었고,

그 전주천 주변에 은빛 억새가 활짝피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쉽게 전주 한옥마을 관람을 마쳤다.

 

 

 

전주한옥마을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의 풍남동과 교동 일원에 있는 면적 252,000의 전통 기와마을이다.

현재 995가구, 2,202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총 708동의 건물 중에 한옥이 543개이고 비한옥이 165개이다.

전주에는 지금으로부터 약 1만 5천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추측되고 있으며. 원래 자연부락 형태의 마을들이

산자락에 형성되었었으나 665년 신라 문무왕 때 완산주(完山州)가 설치되면서 주거지가 평지로 이동했다고 전한다..

 

전주읍성을 중심으로 고려시대에는 한벽당 오목대 간납대 등이 지어졌고, 그 주위로 옥류동, 자만동과 같은 마을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며. 이 마을들이 현재 한옥마을의 모태며. 전주한옥마을이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을사늑약(1905년) 이후다.

 

일제 강점기 전주성이 철거되고 일본인들이 시내에까지 상권과 거주 지역을 넓혀오자 그에 대한 저항으로 생겨난 곳으로

1930년 무렵부터 성내(城內)에 해당되었던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마을이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에 대한 반발심, 그리고 일본식 주택에 대한 대립과 우리 전통 한옥에 대한 긍지를 표현하려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여기에다 선교사들의 서양식 가옥과 성당이 어우러져 지금까지 전통과 근대가 어우러지는 아주 독특한 풍광을 선보이고 있다.

 

한편으로는 무분별한 근대화, 산업화에 대한 특유의 고집스런 표현으로도 읽혀져 그 원형 보존상태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2년 월드컵을 기해 본격적으로 한옥마을 육성사업이 진행 중이며. 현재는 명실상부한 전주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한옥마을이지만 중심 도로는 도심 유흥가 못지않게 인파로 북적이며, 의외로 젊은이들이 많아 자못 신선하기까지 하였다. 

 

참고 ; 전주 8경

제1경 기린토월(麒麟土月):기린봉

- '기린의 상'인 수호봉의 정상에 솟아오르는 달을 상찬한 것

제2경 남고모종(南固暮鐘):남고산성

- 남고사의 범종, 철고 소리가 삼라만상에 두루 적시는 불심의 느낌을 상찬한 것

제3경 한벽청연 (寒碧晴烟):한벽당

- 한벽당의 청하한 조망, 풍정

제4경 다가사후(多佳射帿):다가산
- 다가천변 전주 한량들이 호연지기를 겨루는 오시관중의 과녁판 울림의 장관, 삼현육각 선율에 기녀들의 춤가락이 옥색바람에

   묻혀드는 풍정과 기백

제5경 덕진채연(德津採蓮):덕진공원
-
풍월정자의 저녁노을, 뜸부기 우는 달밤, 가얏고 선율이 내려앉은 호연어화, 연꽃풍정

제6경 동포귀범(東逋歸帆):마그네다리 부근
-
거울 같은 봉상, 봉실봉을 내다보며 고산천을 돌고, 나가내 선창부두, 마가리천을 돌아 닫는 소금배, 젓가리배, 시탄배, 생강배,

   곡식배

제7경 비비락안(飛飛落雁):비비정
- 달빛, 당풍에 천만쪽으로 부서지고, 꿈실은 고깃배 오르내리는 한내천 백사장 갈숲에 사뿐이 내려앉은 기러기떼

제8경 위봉폭포(威鳳瀑布):위봉폭포

- 추졸산의 위봉산성, 여기에다 남천표모, 곤지망월을 합치면 전주10경이 된다.

 

전주 주변에는 김제 백련사/군산항만길/새만금길/변산/격포/내소사/청보리밭/고인돌공원/선운사/내장산/금산사/강천산/

강천사/고추장단지/광한루/흥부마을/지리산둘레길/최명희혼불마을/의견비/관촌사선대/마이산/무주구천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