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19일 ~ 10월 24일까지(5박 6일)
중국 사천성(四川省, 쓰촨성) 구채구(九綵溝, 지우자이거우) 여행 3편이 이어진다.
에메랄드 빛의 구채구 풍경구를 감상하고,
오후 늦게 구채구 시내에서 "천고정(千古情) SHOW"를 감상하였다.
- 구채구 천고정(송성가무) 쇼 관람
천고정(송성가무) 쇼는 장족인들의 삶과 사천성의 지진 피해와 복구 등
사천성의 전설을 화려하고 거대한 가무쇼로 5D영상으로 감상하는 최신 뮤지컬 이라고 한다.
(천고정 쇼는 옵션 상품으로 우리돈 5만원 별도 지불함)
구채구 시내에 있는 천고정 쇼 공연장 입구에 도착하였다.
화려한 조명과 몰려드는 인파로 주변은 그야말로 소란스럽기 그지없다...
오늘 관람하는 쇼의 줄거리가 위 포스터 처럼 4편으로 펼쳐진다.
왼편 1편의 장밀(藏密)은 장족이 신의 계시를 받고 삶을 이루는 과정 담은 내용이며
2편은 쓰촨성 대지진으로 폐허가된 곳을 중국인들의 노력으로 일구어가는 과정을 뮤지컬식으로 보여주며...
3편과 4편은 장족인들의 사랑과 삶을 화려한 무희들이 춤과 노래를 다양하게 펼치는 무대로 대략 1시간 동안 펼쳐진다...
제 1편 장족인들의 삶을 무희들이 춤과 노래로 펼친다.
관람석이 3천석이라고 하는데...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없이 꽉찬 객석 중앙에서 관람하였다...
제 2편 스촨성의 대지진을 묘사한 무대가 펼쳐진다...
이곳 구채구에서 지진의 현장까지는 120Km거리라고 하는데...
지진으로 인해 건물들이 무너지고, 아비규환의 현장을 생생한 장면을 보여준다...
지진으로 인해 강물이 범람할땐
실제로 객석에 물이 쏟아지는 장면도 연출되기도 했다...
지진으로 인해 거대한 땜이 무너지고
복구공사를 하면서 많은 중국인들의 노력이 생생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구채구 최고의 대형가무쇼인 천구정 쇼는
전세계 최초의 5D영상으로 쓰촨성 최대,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는 쇼라고 한다..
마지막 장면으로 전 출연진이 무대에 나와서 인사를 하고
무대위에 각종 커텐(?)들이 서시히 무대위로 내려오면서 화려한 천구정 쇼는 막을 내렸다.
구채구풍경구에서 둘쨋날을 보내고 "성도"(成都)로 향하였다.(구채구 → 성도....버스로 8시간 소요)
성도(成都, Chengdu 청두)는 유명한 시인 이태백과 소통파의 고향으로
중국 서부지역의 금융, 문화, 교통의 중심지로 현재까지 소비문화가 활발한곳 중 한곳이다.
- 청나라 귀족들이 살던 "관착항자(寬窄巷子)" 관람
쓰촨성 성도(청두)에 오후 늦게 도착하여 옛 거리인 "관착항자"를 관람하였다.
관착항자는 청나라 때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오래된 거리, 조용하고 깨끗한 거리, 꽃무늬 새겨진 기와,
푸른 잎으로 가득한 흑색담장 등 마치 세월이 몇백년전으로 돌아간 듯 청나라의 옛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관착항자는 넓고, 또 좁은 골목거리(寬:넓고, 窄:좁은, 巷子: 골목)라는 뜻으로
이름 처럼 넓은 골목, 좁은 골목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상점이 늘어져 있다.
오후 10시 이후에는 골목 골목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낮과는 다른 분위기로 변신한다.
관착항자 거리를 축소한 입간판 앞에서...
주변을 관람하면서 골목길을 천천히 돌면 1시간이 소요된다...
관착항자는 말그대로 넓고 좁은 골목의 청나라 옛 거리를
새로 정비하여 명소로 만들어둔 곳으로. 아마도 서울의 북촌 한옥마을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옛 거리였지만 미국의 스타벅스도 입점했으니
어쩜 옛것과 현대의 만남이 이루어진 거리쯤으로 생각하면 될 듯....
소묘로 인물화를 묘사한 곳에서 잠시.,..
아내도 언젠가 이분들처럼 번잡한 거리 한곳을 장식하겠지?....ㅋ
말(馬)을 입체적으로 만들어둔 포토죤 앞에서.
이 장면을 사진기에 담기 위해 무려 5분 동안 기다렸으니.....ㅋ
입간판 "관항자(寬巷子)" 건물 앞에서...
중국인들이 이곳 앞에서 사진을 담는다....나도 그냥 담았는데..
이곳 관항자가 중국의 유명한 TV에 방영되어 그 유명세가 대단하다고 한다..
성도는 중국에서도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가 많은 지역으로 손꼽히는 풍요로운 도시다.
또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 구채구, 황룡, 낙산, 아미산, 티벳자치구 관광지 등과 인접하여
중국인들은 물론 전세계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명성이 대단한 곳이란다..
- 유비와 제갈공명의 묘가 안치된 "무후사" 관람
무후사는 삼국지의 역사 속 인물들을 한 곳에서 느껴볼 수 있는 곳으로서, 중국 3세기를 풍미한 유비와 장비 관우 등
촉나라의 여러 명장을 거느린 전설의 전략가, 제갈공명, 그 제갈량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사당이다.
무후사의 이름은 제갈량이 죽은 후의 시호인 충무후(忠無候)에서 유래되었다.
경내로 들어가면 유비전과 제갈량전, 촉한의 문·무관 28위의 동상 및 '제갈고(諸葛鼓)'라 칭해지는 북, 동고(銅鼓) 등의 문화재가 보관되어 있다. 유비전은 정문으로 들어가 최초의 건물인데 황금의 유비상이 안치되어 있고 벽에는 공명의 정치·군사상의 전략사항으로 유명한 융중대(隆中對)의 액자가 걸려있다. 관우, 장비 등의 문·무관 28인의 상은 옆 동(棟)에 있고 벽에는 그들의 문장과 업적을 기리는 액자와 연(聯)이 전시되어 있다. 제갈고는 공명이 남쪽을 정벌하면서 만든 것으로 낮에는 그것으로 밥을 짓고 밤에는 경보를 발했다고 한다. 또 무후사 뒤편에는 제갈공명의 묘가 위치하고 유비의 묘인 혜릉(惠陵)과 문장, 서법, 석각에 모두 뛰어나 삼절(三絶)로 꼽힌 당비(唐碑)가 있다.
무후사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삼국시대의 사당으로 여겨지며 1961년 국무원에 의해서 전국 중요 문물 보호단위로 정해졌다. 무후사가 정확하게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략 6세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존재하는 무후사는 청대 강희 11년(1672년)에 옛 터 위에 중건된 것이다.(여행사 홈피에서....)
한소열묘(漢昭烈廟) 편액이 걸린 무후사 입구에 도착하였다.
무후사 입구에는 한소열묘라는 편액이 걸렸는데 한나라 황족의 후예였던 유비는
촉한의 황제로서 "소열제"(昭烈帝)라는 시효를 받는데...사후에 이곳에 사당을 세우고 한소열묘라고 했다.
성도 10景 "무후사(武候祠)"
중국에서 유일하게 군주와 신하가 합사된 곳, 무후사는 중국 여러곳에 있다.
무후사 입구 편액에 "명량천고"(明良千古, "밝은 어짐이 천년을 간다"는 뜻)
유비와 공명이 같이 이뤄낸 업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두사람이 훌륭한 점은 끝까지 사이가 좋았다는 것이다
밝을 명(明)자에 날 日자가 아니고, 눈 目을 쓴것은 유비가 인재를 뽑는 눈이 탁월했음을 뜻한다고 한다.
제갈량이 황제 유선에게 바친 출사표가 음각화 되어있다...
전출사표는 중국 삼국시대(220~280)에 당시 촉한(蜀漢)의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 184~234)이
후주(後主)의 유선(劉禪)에게 북벌을 하기 위해 올린 상소문으로...후세 사람들이 이글을 보고 울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라고 할 정도였단다...이 글은 남송의 장군 악비(岳飛)가 쓴 친필이라고 한다..
(참고 ; 후세에 많은 사람들이 "출사표를 던지다" 라는 소리가 이글에서 유래되었단다.)
여러 장수들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유비와 제갈량 조자룡과 조운 그리고 손건, 관우(관운장), 황충 등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무후사라는 편액이 걸린 출입구에서 잠시 인원점검.....ㅋ
이곳 무후사에도 28인의 장수들의 조형물이 있다는데....묘하게 일행도 28명이다.
유명지(무후사)에 왔으니 아내와 인증샷을...
28명중 부부는 우리(아내와 나)뿐이였으니 일행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였다.
"명수우주"(名垂宇宙)라는 편액이 걸린 지붕위 조형물은 제갈량과 관련된 것이란다...
(참고 ; 명수우주란 제갈공명의 이름이 온 천하에 알려진다는 뜻)
유비(161~223)의 조형물...
자는 현덕으로 하북성 탁주에서 태어났으며, 한나라말 의병을 모집해 천하를 다투었다.
221년 성도에서 황제로 칭하였으며, 국호는 한(후세에서는 촉한으로 불림)
유비의 조형물 주변에 관우, 장비 등 28인의 무관과 무장의 조형물이 함께 만들어져 있다.
제갈량(181~234)의 조형물
제갈량은 자는 공명으로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정치가 겸 전략가
유비를 도와 적벽에서 조조의 대군을 물리치고 촉한의 승상을 지냄, 명성이 높아 와룡선생이라고 불림.
좌측의 공명부인은 추녀라는 설이 있지만, 사실은 미녀였으며...
천문, 지리 병법까지 능한 현명한 아내로 남편을 내조하다가 그가 죽자 그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제 유비묘소로 향한다.....
유비릉으로 가는 적벽(붉은 벽)길과 대나무가 울창하다.
한소열황제지릉(漢昭烈皇帝之陵)
유비 현덕의 묘소입구...1700년간 유비를 흠모하여 단 한번도 도굴되지 않았다고 한다..
일행이 걷고 있는 왼편에 우뚝 솟은 곳이 유비의 가묘 혜릉(惠陵).
둘레 180m, 높이 12m...감(甘) 부인과 오(吳)부인이 함께 묻혔다고 한다..
무후사 정원을 거닐어 본다...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으나...숲속엔 새들의 지저귐이 요란하다.
삼국지의 3인의 명장.....유비와 관우 그리고 장비.....
비록 같은날에 태어나진 못했지만, 바라건대 훗날 같은날 함께 죽기를 다짐했던 도원결의...
관우가 형주 싸움에서 조조와 손을잡은 손권에게 죽임을 당하자 자기 성질을 억누르지 못한 장비마저 부하인 범강과 장달에게
허무한 죽임을 당했다는 비보를 접한 유비는 불타 오르는 복수심에 냉철한 평상심을 잃고 제갈량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촉나라의 수도였던 성도를 제갈량에게 맡기고 손권의 오나라를 치기위해 군사를 이끌고 진군을 했지만....
222년 6월 이릉 전투에서 더위를 피해 숲속에 주둔해 있던 유비의 군사들은 손권의 부하 육손의 화공작전에 철저하게 패하고
간신히 살아 돌아와 의형제들을 잃은 슬픔과 손권의 함정에 빠져 군사를 잃고 말았다는 자책감에 이듬해인 223년 4월
제갈량에게 후사를 맡기고 지금의 사천성 중경시인 백제성에서 생을 마감한다...
사진속엔 없지만 이곳외에도 "삼의묘"(三義廟)도 관람을 했는데....
삼의 묘는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삼결의(挑園三結義)를 기념하는 곳으로
청나라 강희(康熙, 1662~1722)때 세웠으며, 성도시(成都市)시급 문화재 보호대상지라고 한다.
이곳 관람을 마치고 근처 음식점에서 오늘의 하일라이트인 "사천요리"로 특식을 하였다.
사천요리는 중국의 4대 요리로, 사천성에서 즐기는 정통요리 중 하나이다.
사천고추의 매운맛과 독특한 향신료가 자극적인 맛을 내는데 우리들의 입맛에 제격이였다...
다음편은 낙산으로 이동한후 절벽에 깍아 만든 "낙산대불" 등을 관람했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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