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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먼나라(해외)여행

베네룩스3국(제5편) - 네덜란드 편,<델프트-마르크트 광장>, <암스테르담-유람선탑승, 담 광장 등>

by 삼도갈매기 2024. 10. 12.

베네룩스 3국 여행, 제5편도 4편에 이어 "네덜란드" 편으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도자기의 고장 "델프트"로 이동하여 시청사 광장에서 도자기 감상하고,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으로 이동, 유람선을 타고 운하를 감상, 이후 암스테르담의 중심 "담 광장"을 여행한 이야기 입니다.

 

 

- 도자기의 고장 "델프트"

델프트는 로테르담 근교에 있는 작은 도시로 운하가 아름다운 매력적인 도시이다,. 특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화가 베르메르가 일생을 보낸 곳으로 그의 많은 작품들의 배경이 되기도 한 도시이다. 그의 명작 '델프트 풍경' 또한 델프트 운하를 배경으로 그렸으며, 해당 작품은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헤이그에서 전용버스로 약 1시간 거리인 "델프트"에 도착,

일행과 함께 델프트 시가지를 걸으며 델프트의 시청사 광장을 찾아 간다.

 

 

델프트는 운하가 아름답다고 하더니...

시내 곳곳에 운하들이 아름다움을 더하는듯 하다..

아쉽다면 어제에 이어 오늘도 흐린 날씨를 보이는게 안타깝다.

 

 

 

마르크트 광장(Markt) 도착하였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17세기에 지어진 사진속 시청사(Stadhuis)로,

내부에는 시의회의실, 결혼식장 등이 있다는데 이른 아침이라 출입문은 닫혀있었다.

 

 

마르크트 광장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시청사 광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시청사 맞은편에 있는 신교회로 종탑 높이108.7m, 종탑 꼭대기까지 376개 계단이 있으며, 일정액을 지불하면 종탑에 오르며, 근처 로테르담과 헤이그 시내 모습을 조망할수 있단다.(지금 생각해 보니 종탑에 오르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럽다..ㅋㅋ)

 

 

신교회 앞에 세워진 국제법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네델란드의 법학자 "휴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의 동상이 있고, 그의 묘는 신교회내에 있다고 한다.

 

 

 

광장 한켠 매장 오른쪽 벽면에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 베르메르가 이곳 델프트에서 일생을 보냈다고 하더니...

입간판도 "베르메르의 집"(HOUSE of VERMEER)이라고 적혀 있으니,

이 도시는 화가 베르메르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위한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게 안에는 흰 바탕에 푸른색 문양이 들어간 도자기를 판매하고 있는데, "델프트 블루"라고 하며 광광객들에게 인기 상품이였으니, 아내도 사진 중앙에 있는 풍차 도자기를 손녀 선물용으로 구입하였다...ㅋ

 

 

 

델프트의 특산품, 흰색 바탕에 푸른색을 입힌 도자기 "델프트 블루"가 정말 아름다웠다.

이 도자기는 17 ~ 19세기 무렵 유럽 전역에 영향을 미치며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시내 곳곳엔 도자기와 타일 등을 판매하는 숍이 많다고 한다.

 

 

 

중국 청나라에서 도입되었다는 설(說)과 이태리 베니스 상인들에 의해 도입 되었다는데,

내 생각엔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백제의 도자기가 이곳으로 흘러 들어간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ㅋ.

 

 

 

델프트 도자기 관광을 마치고 네델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으로 출발(1시간 소요)

 

 

 

 

- 운하의 도시 "암스테르담"  - 

네델란드 수도인 암스테르담은 13세기에 어민들이 암스텔 강(江)에 둑을 설치하고 정착하게 된 것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암스텔"(Amstel, 강의 둑)은 해양 무역의 황금기인 17세기 때부터 부채꼴 모양의 운하를 그대로 간직한 곳으로 운하를 따라 500여개의 다리로 세계적인 무역, 관광 도시이다. 그 다리와 함께 운하를 따라 걷노라면 화가 고흐의 예술세계와 황금시대의 자취를 만날수 있는 곳이다..

 

 

도심 한가운데,

운하를 따라 걷노라면 그 아름다움에 전혀 지루할 틈이 없으니..

 

 

길을 건너고, 또 건너고 

도심 한가운데에 운치있는 전차도 지나가고...

일행은 지금 암스테르담 도심을 가로 질러 걷는 중이다.

 

 

오늘 일정은 암스테르담에서 유람선을 탑승

사진속 운하를 관광을 하기 위해, 도심을 가로 질러 가고 있다.

 

 

다이아몬드 박물관 앞에 도착..

암스테르담은 다이아몬드 연마 기술이 발달하여 가공 수출하는 나라다.

(일행은 들어가서 구경하자는데, 일정에 없으니 안된다는 가이드 말에 모두가 조용해 졌다)...ㅋ

 

 

위 사진 중앙에

'반 고흐'(Van Gogh) 미술관 앞을 지나며,

일정표에 내일 미술관을 입장하기로 되어 있으니...

 

 

암스테르담의 중심 "담 광장"(Dam Square)에 있는 사진속 "중앙역"까지 왔다.

외곽에 전용 버스를 세워두고, 시내 중심까지 걸어 왔으니, 약 30여분 걸었다.

여행은 힘든 여정이니 당연히  체력과의 싸움이 틀림없다..

 

 

 

 

 

암스테르담에서 "유람선 탑승"

운하 도시답게 부채살 모양의 운하들이 골목골목 뻗어 있다, 운하 주변에는 17~18세기에 지어진 고급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으며, 각 건물들이 섬세한 세공과 정면 장식들이 아름답다. 주택 정면에는 도르래가 달린 독특한 양식의 들보가 돌출해 있고, 좁고 가파른 계단이 있는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암스테르담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에 충분하였다.

 

 

이 보슈 윤경씨, 

어디서 그런 큰 나막신을 구입하였소?

그나저나 그걸 신고 무거워서 어디 다닐수 있겠소?

(유람선 선착장 입구에 만들어진 네덜란드 상징 나막신 조형물)

 

 

사진속 유람선에 탑승하여

약 1시간 가량 암스테르담 운하 주변 주택가를 유람하였다..

 

 

이렇게 일행과 함께

유람선에 탑승하여 좌우 주변을 관광하였다..

 

 

유람선 수신기에 리시버를 꼽으면...

한국어(語)로 호수 주변의 건물들을 설명하고 있으니,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이 많이 상승했음을 실감할수 있었다...^^

 

 

고풍스럽고 눈에 읶은 건물...

설명에 의하면 네델란드에서 가장 큰 중국식당이라고 한다..

어쩐지 건물이 중국스럽다고 생각했더니, 과연 그렇다...ㅋ

 

 

수신기에서 들을땐 대충 알았는데...

아둔한 머리에 그걸 어찌 다 기억하겠는가?...ㅋ

대략 1시간 동안 유람선(자기들은 크루즈라고 함)에 탑승 유람하였다.

 

 

이렇게 외국인 함께 탑승하여...ㅋ

그러고 보니 할배 모습이 안보여 한장 실었다,

 

 

호수 주변에 건물들을 짓다 보니

지반이 약해서 호수 주변 건물들은 약간씩 기울었다고 한다..

(이태리 피사의 사탑이 여기도 있단다...ㅋ)

 

 

교각 밑으로 건너편 '다리 7개를 볼수 있는 곳'이 있다 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유람선이 흔들려서 사진이 흐리게 나와 이곳에서 보여줄수 없으니...ㅋㅋ

 

.

 

이렇게 유람을 끝내고 육지로 이동하였다.

뱃멀미를 하는 아내가 멀쩡한걸 보니, 운하가 잔잔했던가 보다...ㅋ

 

 

 

 

 

 암스테르담의 중심 "담 광장"(Dam Square)

과거에 시내 중심부를 'Y"자형으로 흐르는 암스텔 강(江)을 막으려고 댐을 건설한 것이 지금의 담 광장이 되었다, 광장 중앙에는 제 2차 세계대전의 전사자 위령탑(National Monument)이 서있고, 그 주변으로는 왕궁과 신교회 등 오래된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시민들과 관광객으로 붐비는 담 광장은 각종 공식 행사와 축제, 콘서트, 노천시장이 펼쳐지는 곳이다.

 

 

 

 

암스테르담 중앙 광장(암스테르담 역)쪽에서 담 광장을 향하여 걷는다..

 

 

담 광장에 도착했다...

이 건물이 무슨 쇼핑쎈터라고 했는데,..

 

 

이곳도 무슨 백화점...

 

 

담 광장에 자리한 "왕궁"(Koninklijk Paleis) 

네덜란드 전성기인 1655년 예술의 우수성을 집약해서 시청사를 만들었다. 이후 프랑스 점령기인 1808년 나폴레옹의 동생 루이 보나파르트가 처음 궁전으로 사용하였고, 이후 네덜란드 왕실에서 접수, 현재는 왕실 영빈관으로 이용하고 있다,.왕실의 7개출입문은 네덜란드 독립을 결정한 7개 주를 상징하며, 돔에는 아틀라스 신상이 있다, 현재 왕궁은 매년 여름 건물 내부를 일반인들에게 공개한다.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참전, 전사한 군인들을 위한 위령탑

네덜란드 5월 4일은 우리나라 현충일과 비슷한데, 이 날에는 이 위령탑 앞에 왕을 비롯한 많은 시민들이 모여 후손들에게 전쟁의 기억을 각인 시킨다고 한다, 이 날 오후 8시부터 2분간 침묵을 하는데, 방송사들은 해마다 현충일에 2분간 침묵의 필요성을 시민들에게 알린다고 한다.

 

 

담 광장을 독특하게 찍은 모습으로 이곳은 광장으로서의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게 아니고 주변에 있는 암스텔강의 범람에 대비한 안전지대의 성격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담(Dam)이라는 뜻도 댐이라는 뜻이고 암스테르담도 아스텔 댐이라는 뜻이다. 이 광장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담투소 밀랍인형 박물관과 왕궁, 그리고 광장 주변에는 히피들의 요람답게 이색적인 인테리어의 분위기 좋은 카페들이 즐비하다고 한다.

 

 

 

담 광장 한켠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기에  아내가 확인차 들여다 보았더니, 

감자 튀김을 파는데, 유럽인 특히 네델란드 사람들의 감자 사랑은 대단했다.

(이번 베네룩스 여행에서 감자 튀김 많이 먹었으니, 한국에서 거의 1년치를 먹은 듯하다...ㅋ)

 

 

 

 

 

<안네 프랑크 집 방문>

안네 프랑크의 집(Anne Frankhuis)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박물관으로,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유대인이었던 안네 프랑크가 숨어 살았던 집으로 안네가 있었던 다락방 및 안네의 일기, 사진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나치 정권의 학살에 관한 잔혹한 자료와 사진 등을 전시하고 있는 자료관도 있다.(일정표에 없었는데, 가이드와 함께 다녀 왔다)

 

 

위 건물은 1960년에 안네 프랑크의 집으로 개관해 박물관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는데, 안네 프랑크에게 덮친 불행한 유태인 박해를 교훈으로 유태인 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활동도 겸하고 있다.

 

건물 1, 2층 부분은 개선되어 당시의 모습은 없지만, 내부는 당시의 생활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은둔지(뒤편의 건물)에 통하는 입구를 숨긴 회전식의 책장장, 안네의 일기를 쓴 지붕 밑의 방도 있어, 전쟁의 비참함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연간 약 100만명이 방문하는데, 우리들은 여행 일정에 없었으니, 건물에 들어가지 못했으니 아쉬웠다..

 

 

안네 프랑크 소녀를 만나러 왔었는데,

사진에서 처럼 현대식 건물앞에서 사진만 찍고 왔으니, 못내 아쉬웠지만 어쩔수 없었다..

(호주머니에 우산이 있는걸 보니 이 날도 간간히 비가 내렸던가 보다)

 

 

 

안네 프랑크 생애(간략하게)

위 "안네 프랑크 집"을 방문했던 분의 기록을 간략하게 옮겨본다.

 

 

본   명 ; 아넬리스 마리 안네 프랑크(Anneles Marie "Anne" Frank)

국   적 ; 1)바이마르 공화국(1929 ~ 1933),  2) 나치 독일(1933~1941),  3) 무국적(1941~1945)

출   생 ; 1929년 6월 12일 - 바이마르 공하국, 프랑크푸르트

사   망 ; 1945년 3월 12일(향년 15세) - 나치 독일 니더작센 유대인 강제수용소

대표작 ; 안네의 일기.

 

 

 

책장으로 위장된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안네가 머물렀던 은신처가 나온다, 창고 공간과 작은 다락방을 개조해 은신처로 사용했기 때문에 모든 공간은 좁고 불편했다, 이 작은 공간에서 죽음의 두려움에 떨면서도 자신의 삶을 일기장에 꾹꾹 눌러 담으며 희망을 꿈꿨던 안네의 모습에서 마음이 숙연해짐을 느낀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은 그녀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에 의해 출판되었다. 수용소에서 나온후 소식이 없는 가족들을 찾아 다니며 힘겨운 시간을 보낸 아버지의 이야기와 그 당시 안네의 비밀공간을 밀고한 사람(같은 유대인이였으며 자신 가족의 안위를 위해 폭로했다고 함)에 대한 배신감에 눈물을 훔치는 생존자들의 인터뷰, 나치가 유대인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했던 별 표식, 유대인 제한구역 지도 등이 생생하게 담겨져 있어서 그 당시 나치의 만행이 얼마나 야만적이고 비극적이였는지 여실히 느낄수 있었다.(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 됨)

 

좁은 안네의 은신처를 둘러보면서 그 당시의 시대상과 암울한 상황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안네의 삶을 느껴 보면서 인간의 존엄성과 존중과 존경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번 꺠닫게 되는 애뜻한 시간이였다.(위 내용은 안네의 집을 방문했던 분의 글을 부분적으로 옮겼습니다)

 

다음 베네룩스 3국 여행  제 6편은 "인상주의의 거장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을 관람했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