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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삶의 흔적들

옛 추억을 회상하며, 부산 영도(影島)를 찾았다.

by 삼도갈매기 2024. 12. 22.

 

 

부산에서 반평생(50년) 넘게 살았다..

옛 기억을 더듬어 보니, 196X년 부산으로 단신 유학을 와서

1년간 동구 초량동(168개 계단 근처)에 살았고, 그 후 2년간 영도에 살면서 고등학교를 다녔다..(학교 다니면서, 부산에 살고 계신 외가댁 신세를 많이 졌다)

어렵던 시절 힘들게 공부하면서 타향 객지 부산에서 3년간 학창시절을 보냈으니, 많은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감히 이룰수 없었던 여정이였다. (허긴 누군들 그 시절에 어렵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겠는가?...)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러  오늘에 이르렀으니,

그 시절 힘들게 공부했던 부산 영도(영선동, 신선동, 봉래동, 남항동, 대교동, 대평동)에 가보고 싶어서 길을 나섰다, 그곳을 떠나온지 50년도 훨씬 지났는데, 과연 영도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드디어 오늘(2024년 12월 17일) 그 뜻을 이루었다. 

 

무심하고 한심한 남자가 

그 어렵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영도로 추억 여행을 떠나본다...ㅋ

 

부산지하철 1호선 남포동 역에서 하차후,

영도행 버스를 이용하여 영도다리를 건너간다...

(여행일자 ; 2024년 12월 17일)

 

 

 

 

 

스마트 폰에 "램블러 앱"을 켜고 출발하면

위 사진에서 처럼 내가 걸었던 내역이 나오는데..

 

버스 편으로 영도다리를 건너 "영선동 119센터" 앞에서 하차 -

영선동 - 신선동 - 봉래동 - 남항동(전차종점) - 대평동(깡깡이 마을) - 대교동 이후

걸어서 영도다리를 건너 자갈차 시장을 경유 - 남포동 지하철역에서 걷기를 마쳤다.

부산 영도 지도위에 내가 걸었던 내역이 붉게 표시됨을 알수 있다.

(6Km 거리, 약 2시간 동안 걸었다)

 

 

"영선 1동 동사무소" 앞을 지나는데..

관공서 건물이 무슨 가정집 같은 풍경이다.

예전에도 이곳에 동사무소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영도초등학교 교문 앞...

학교 지킴이가 학교내로 들어가는것을 막으며..

학생들 공부하는데 방해가 된다며 사진 찍는 것도 못하게 한다...

할배 행색이 초라하고 험상굳게 생겼는던가 보다...ㅋ

 

 

 

"영도초등학교" 전경...

그 시절 이곳 근처에 살면서 영도초등학교와 관련된 추억이 많았는데...

학교 근처에서 살았으니, 일요일에는 아이들과 이곳에서 놀았던 추억들..

(그 후 10여년이 지나 지금의 아내를 이곳 운동장에서 처음 만났던 추억이 있다...ㅋ)

 

 

 

 

내가 살았던 영도구 신신동 집을 찾아가면서...

그 시절 이용했던 "강남의원"이 그 자리에 있으니, 너무 반가웠다.

학창시절에 눈에 다래끼로 인해 이곳 병원을 다니면서 치료했던 기억까지....ㅋ

(근처에 "관제의원"도 있었는데, 그 병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 아쉬웠다)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볼수 있습니다.

 

 

 

영도 산복도로 위에서...

영도구 신선동 2가쯤에 살았는데...그 주변을 3번 돌았지만 그 집을 찾을수 가 없었다...

정확하게 이야기 하면 그런 집은 없어지고, 멋진 양옥집으로 바뀌었으니, 찾을 수 없는게 정답이다.

 

"이 ~ 무심한 사람아, 

강산이 5번이나 바뀌어서 찾아 왔으니,

학창시절 자취하던 그 낡은 집이 있을 턱이 있냐"?...ㅠㅠ

 

 

 

50여년전에 공부하면 살았던 집은 찾을수 없으니...

영도 산복도로에 올라서 멀리 부산 전경을 사진으로 남겨본다.

(사진속 멀리 "암남동 천마산, 승학산 기상관측소, 용두산 타워" 가 보인다)

 

이후, 봉래동 4가, 봉래동 2가에서 살았던 곳을 찾았지만 그곳이 어디쯤인지

또한 그곳이 어떻게 변했는지 찾을수 없어서....봉래동 시장통으로 발길을 돌려 내려왔다... 

(봉래동 4가, 봉래동 2가 근처에서 사진이라도 몇장 찍어 올걸 후회스럽다)

 

사진을 클릭하면 사진을 크게 볼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다닐때  내 모습

 

 

 

 

봉래동 시장통 벤치에 앉아서

아침에 아내가 싸준 "제주 오메기떡"으로 잠시 허기를 달랜다.

 

 

근처에 그 시절 이 지역 국회의원 '예춘호'가 세운 "영도 도서관"이 있었는데,

영도 도서관은 무료라서 자주 다니면 공부도 하고 했던 도서관인데,

주변 상인께 물었더니, 오 ~ 래전에 헐고 그자리에 커다란 병원을 세웠다고 한다.

 

 

 

영도에서 가장 큰 "봉래시장" 앞에서... 그시절엔 커다란 시장이였는데...

지금은 규모도 작아지고 출입하는 상인들도 없으니...안타까웠다..

 

그렇다면 이번엔 영도 남항동 방향으로 발길을 돌려 보자...

 

 

 

남항동에 도착 " 영도전차종점기념비"앞에서...

기억을 되살려 보니, 예전에 이곳까지 전차를 타고 왔던것 같은데??...ㅋ

 

영도다리가 개통된 다음 해인 1935년부터 전차가 운행되었던 곳을 기념하는 비로.

1968년 시내 전차 운행이 폐지되어 선로가 철거 되면서 전차운행이 막을 내렸으나

1991년 영도 전차종점 자리에 전차와 함께 한 옛 추억을 되새기기 위하여 건립하였으며,

근대유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영도구청 홈피에서...)

 

 

강산이 5번이 바뀔때까지 찾아오지 않은 무심한 남자

그래도 인증샷은 남겨야 하겠기에...ㅋㅋ

(쎌카로 찍었더니 할배 얼굴이 절구통만 하다...ㅋ)

 

 

 

남항동 전차종점 근처에 유명한 "7번가 양복점"을 찾아서...

위 사진속 '복권 판매점' 자리에 있던 양복점은 주인도 바뀌고 상호도 바뀌었으니...

그 때 양복점 주인은 어디로 가셨을까?...(7번가에서 양복도 마추어 입었는데...)

 

 

 

남항동 전차종점을 지나서...

대평동 깡강이예술마을, 영도경찰서를 경유 영도대교를 지나

유라리 광장 그리고 자갈치시장과 남포동 지하철역까지 계속 걸었다.

 

 

 

대평동 깡깡이예술마을을 자나간다..

 

깡깡이 예술마을은 영도구 대평동 소재, 자갈치시장 건너편, 영도대교 남항대교 맞닿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수리조선마을이다. 행정동명은 '부산광역시 영도구 남항동'으로. 두 군데의 물양장에는 배들이 가득 들어차있고 십여 곳에 달하는 수리조선소가 여전히 운영 중에 있다. ‘깡깡이’라는 이름은 수리조선소에서 배 표면을 망치로 두드릴때 ‘깡깡’ 소리가 난다 하여 생겨난 말이다.

 

 

 

 

대평동 물량장에 각종 선박들이 가득하다...

사진속에 자갈치 사장 건물과 용두산 타워 모습이 보인다.

예전엔 이곳을 '잇까선창"이라고 불렸는데, 아마도 오징어배가 많이 정박했던가 보다.

 

 

 

대평동 물항장을 지나서,

영도 경찰서 뒷쪽에서 남포동 자갈치 시장 방향으로 사진을 찍는다..

 

자갈치 시장 ; 자갈라는 이름은 생선 자갈치에서 나온 게 아니라 바닥에 자갈이 많아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물론 시장 내부를 현대적으로 단장한 지금은 자갈을 찾아볼 수 없다. 치라는 말은 언덕 치()에서 따왔다고 하는 어원도 있고 '자갈이 있는 곳'[處]의 처가 치로 변했다는 어원도 있다.

 

 

 

위 사진을 조금 넓게 찍은 사진으로...

자갈치 시장과 용두산 타워를 볼수 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볼수 있습니다.

 

 

 

영도경찰서 앞에 세워진 "현인 선생 동상" 앞을 지나며..

 

"영도 다리 난간 위에 초승달만 외로히 떴다"...

현인 선생의 목소리로 구슬픈 노래 소리가 흘러 나온다.

 



 

 

잠깐, 현인 선생의 목소리로..."굳세어라 금순아"

노래 들으시며 화면속에서 잊혀진 얼굴들, 그리운 얼굴들 찾아 보세요...ㅠ

 

 

 

 

영도다리를 건너간다...날씨는 맑은데, 바람이 세차게 분다...

 

예전에 영도에서 학교 다닐떄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이곳을 걸어 다녔다...

(학생이 돈이 없었으니, 버스를 타고 다녔던 기억은 전혀 없다..)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볼수 있습니다.

 

 

영도대교(影島大橋)는 부산광역시 영도구 대교동1가와 중구구 남포동을 연결하는 교량(다리)이다. 1934년 11월 23일 길이 약 214.63m, 너비 약 18m로 준공되었다. 개통 당시는 다리 이름이 부산대교였다.1966년 9월 영도구의 인구증가에 따른 교통량의 증가로 도개를 중단하고 전차궤도도 철거되었다.1980년 1월 30일 부산대교가 개통되어 영도대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나 기존의 영도대교가 노후화되면서 안정성이 문제가 되어 기존 다리를 철거하고도개식 교량으로 복원하였다.

 

복원된 영도대교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14;00)부터 15분 동안 교량 상판이 들어 올려지는데 이 드는 다리의 길이는 31.3m, 무게는 590톤으로, 2분여 만에 75도 각도로 세워진다.  (위키백과에서..)

 

 

오늘 추억 여행을 하였던 영도 지도

(영선동, 신선동, 봉래동, 남항동, 대평동, 대교동 모습)

 

 

 

사진속 영도다리를 건너서  "유라리 광장"에 도착.

 

유라리 광장은 피난민들의 애환이 서린 형상의 조형물과 함께 건어물시장과 영도대교 사이 해변 280m 구간에 들어섰으며, 해변산책로 형태의 광장은 폭이 20m에 이르러 휴식 공간은 물론, 영도대교 도개장면과 자갈치 앞바다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대표 장소로 꼽힌다. '유라리'는 유럽(유)과 아시아(라) 사람들이 함께 마을에 모여 즐긴다(리)는 의미로, 전국 공모를 통해 선정됐다.

 

이후 자갈치 시장을 경유하여 남포동 지하철역에서 오늘 영도 추억여행을 마쳤다.

50년도 훨씬 지난 옛 추억을 회상하면서. 오늘의 나를 있게 해주신 모든분들께 감사를 드리면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