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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장거리 여행

전라남도 장성 백양사 단풍구경

by 삼도갈매기 2008. 11. 17.

 

전북 정읍시의 내장산 단풍구경을 마치고

전남 장성군의 백양사로 가는 중이다

산 하나를 경계삼아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경계를 이룬다

 

구불구불한 도로의 산을 넘으면 정상에 쉬어가는 곳이 있다(사진 아래)

정상에서 내장산을 다시한번 내려다 본다, 사진 왼쪽이 주차장이다

 

단풍이 절정일때 이곳 정상에 오르면 산이 붉게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내장산에서 승용차로 20여분 달리니 단풍이 아름다운 백양사에 도착하였다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양수리에 있는 백양사는

25교구 본사의 하나로 백제 무왕 33년(632)에 여환이 처음 지은 후 여러 차례의 공사와 명칭의 변경이 있었던 사찰이다.

지금의 백양사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조선 선조 7년(1574) 환양이 다시 지은 이후부터라고 한다.

환양이 백양사에 있으면서 매일 『법화경』을 읽을 때

흰 양이 경을 읽는 소리를 듣고 몰려오는 일이 많아지자 절 이름을 백양사라고 고쳤다고 한다.

 

 

백양사 절 입구 일주문(사진 위)

평일이지만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조선팔경 국립공원 "백암산 백양사" 표지석이 반갑게 맞이한다(사진 아래)

 

이곳에서도 주차장에서 백양사 절까지 20여분쯤 걷는다

길 양편에 울긋불긋 단풍이 관람객을 유혹한다

아휴 ~~ 유혹에 푹 빠지고 싶어라....ㅎ

 

 

  

 

내장산에 비해서

이곳 백암산(백양사)는 계곡물이 마르지 않았다

계곡물이 있으니 물위에 비친 백양사의 가을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백양사 쌍계루(白羊寺 雙溪樓)

작품사진을 담기위하여 백양사에 가면 이곳 쌍계루에서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계곡물에 비추는 쌍계루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단풍과 어울려 한폭의 수채화가 되는데

아쉽게도 계곡물이 말라있었으며, 단풍도 많이 시들어 좋은 풍경사진을 얻지 못한것 정말로 아쉽다 

 

 

쌍계루(雙溪樓)는 백양사 앞에있는 누각으로

고려말에 홍수로 제방과 누각이 무너져 없어지자 다시 중창하였다고 한다

백암사(백양사의 옛 이름)의 스님이 간청하여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기문을 쓰고, 포은선생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쌍계루에 당시 포은선생이 지은[기제쌍계루(寄題雙溪樓)] 가 걸려있다 

 

좋은 카메라와 적절한 시기에 오면 쌍계루의 모습을 이렇게 담을수 있다고 한다 - 사진 아래(퍼왔슴)

(아래 멋진 사진을 보니 내사진은 사진도 아니네?....ㅎ)

 

 

 

 

(참고) 백양사의 유래 

(긴 내용이니 불교에 관심 있으신분만 읽어 보세요) 

 

백양사는 1400여년전 백제시대의 고찰로 유구한 역사와 주변의 빼어난 경관으로 이름이 높으며

또한 산내 10여개 암자 중 유서 깊은 운문암은 고려시대 때부터 납자들의 정진도량으로 유명한 곳이다.

다만 우리나라 대부분 사찰들이 그러하듯 백양사 역시 창건과 연혁을 전하는 자료가 충분하게 전하지 않는데다

정토사(淨土寺)· 백암사(白巖寺) 등의 다른 이름으로도 존재했던 사찰이기 때문에 그 역사에 관한 서술은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

백양사가 언제 창건되었으며, 그 창건주가 누구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몇 가지 다음의 자료를 검토해 본다.


정도전(鄭道傳, 1337~1398)이 고려말 1337년(우왕 3)에 지었다는 '백암산정토사교루기(白巖山淨土寺橋樓記)'의 일부 내용을 보면,

오직 이 산은 장성군 북쪽 30리에 있는데 그 이름을 백암(白巖)이라 하였으며 암석이 모두 흰 색깔이라서 그렇게 이름 하였다한다.

석벽은 깎아지른 듯 험하고 산봉우리는 중첩하여 맑고 기이하며 웅장한 모습이 실로 이 지역의 명승지가 될 만하므로

신라 때의 어떤 이승(異僧)이 처음으로 절을 짓고 살면서 이름을 백암사(白巖寺)로 하였다.


중국 송나라 경평 연간(423~424)에 이르러 정토선원(淨土禪院)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그 문도인 중연선사가 이를 이어 전당과 문무, 방장실, 요사 등 80여 칸을 다시 지었다. 중연선사의 문도가 차례로 전해 오다가

일린(一麟)스님이 그 사찰을 주관하여 처음의 법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1911년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에 실린 '백암산정토산교루기'는

백양사의 창건 내용을 전하는 가장 오래된 자료이며 여기서 백양사 창건과 관련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창건은 신라 때 이루어졌고 창건주는 법명은 알 수 없지만,

'이승'이라고 표현된 점으로 보아 상당한 이적행(異蹟行)을 해온 승려일 것이라는 점이다.

아울러 백양사의 창건 때 이름은 '백암사'였으며, 창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토선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사실도 확인된다.

또한 창건 이후 중연선사와 일린스님에 의해 백양사의 법맥이 계속 이어져 왔음을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정도전이 지은 이 자료의 모든 내용을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할 것인가는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

특히 백암사에서 정토선원으로 사찰명이 바뀌는 시기가 중국 남송시대인 5세기 초반이라고 서술한 부분은

시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대상이다. 이 시기는 신라의 불교 공인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때이며,

더욱이 그 같은 상태에서 신라 스님이 백제 영토에 들어와 사찰을 창건하였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양사의 창건주가 신라 스님이었다는 점 그리고 백암사와 정토선원이라는

본래의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은 역사적 사실임에 분명하다.

극렬한 배불론자였던 정도전의 '백암산정토사교루기'가 백양사 창건을 전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라는 사실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기도 하다.

또 이 기록은 이후에도 그대로 전승되어 오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그 내용이 좀 더 구체화된다.


일반적으로 통하는 백양사의 유래는 백양사는 백제 무왕때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명찰로 본래 이름은 백암사였고,

1034년 중연선사가 크게 보수한 뒤 정토사로 불려졌다. 조선 선조때 환양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하는데

수많은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법회가 3일째 되던 날 하얀 양이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들었고,

7일간 계속되는 법회가 끝난 날 밤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나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양으로 변했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다시 환생하여 천국으로 가게 되었다'고 절을 하였다 한다.

이튿날 영천암 아래에 흰 양이 죽어 있었으며 그 이후 절 이름을 백양사라고 고쳐 불렀다.

 

고불총림 백양사(古佛叢林 白羊寺)에서 발췌함...찾아가기 - (www.baekyangsa.org/)

 

 

백양사 대웅전(시도유형 문화재 43호)
대웅전은 1917년 절이 다시 지어질 때 같이 세운 것으로,

안에는 석가여래삼존불상과 10척 높이의 불상, 용두관음탱화를 모시고 있다.

또한 오른쪽으로는 바늘귀를 꿰는 모습, 등을 긁는 모습 등 우스운 모습을 하고 있는 나한의 그림 16점이 있다.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며 규모가 큰 법당에 속한다.

2단의 긴 돌로 쌓은 기단 가운데로 계단을 두었다.

 
백양사 대웅전은 일제시대 초기에 지어진 건물로

조선 후기의 화려한 다포 양식에서 후퇴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30년전 이곳 백양사에서 내장산까지 도보 여행을 했던 경험이 있었는데

오늘 다시 이곳에 와서 보니 감회가 무척이나 새롭다

30년이 지났으니 강산이 분명 3번 변했을만도 한데

예나 지금이나 백양사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메스콤이나 여러가지 자료를 보면

가을 단풍하면 이구동성으로 내장산 단풍이라고 하지만

오늘 다시 확인했드시 백암산(백양사) 단풍이 더 아름답다

이곳 백양사 단풍축제는 매년 10월 중순경에 열린다고 하니

가까이에 계신분들은 한번쯤 이곳에 구경할것을 권해 본다

추측하건데 아마도 단풍의 절정기는 11월 초순경일것 같다

 

백양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깜짝 놀랬다

주차장 입구에 감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엄청 많았다

대한민국의 모든 감들이 이곳 백양사에 모아둔것 같았다

상인들에게 확인해보니 이곳의 기후가 감 생산에 제격이라고 한다

 

곶감에서부터 홍시 그리고 대봉감까지

가격도 저렴하기에 대봉감 한상자와 약간의 밤(栗)을 구입하여 귀경길에 올랐다

평일이라 고속도로는 한가하였으니 오후 5시에 출발하여 밤 9시쯤 부산에 도착

정말로 멀고도 먼길, 힘든 하루였지만 아름다운 단풍의 유혹에 푸욱~ 빠진 하루였다

 

함께하신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