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삶의 흔적들

나를 슬프게 하는것들 - 소설 "엄마를 부탁해"

by 삼도갈매기 2009. 12. 26.

 

 

나이가 들어가니 마음이 약해지고

마음이 약해지니 눈물이 많아지면서 점점 감성적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이곳 부산 북구 디지털 도서관에 매월 2~3번 책을 빌리러 다닌다

딱히 언제라고는 생각이 나지않지만 도서관에 가면 찾는 책이 있다

신경숙 작(作) - “엄마를 부탁해”

책 내용은 각종 매체를 통하여 대략 알고 있었지만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했으니 두 눈으로 직접 읽어봐야 직성이 풀릴 수 밖에...

도서관에 비치된 책 목록을 보면 분명이 위 책이 도서관에 있는것 같은데

정작 빌리려 가면 누군가 먼저 빌려가버리는걸 보면 이책의 인기를 가름할 수 있는것 같다

 

몇일전 내 생일이였다

생일 선물로 서울에서 직장생활하는 딸내미가 “엄마를 부탁해” 책을 보내왔다

아내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서 있었던 이야기를 아이에게 했던가 보다

 

어제 저녁에 조용한 시간을 이용하여 문제의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30여 페이지쯤 읽었을까?.....옛 생각 때문에 책을 읽을수가 없었다....ㅠ

책에서 눈을 떼고 멀거니 천장을 보아도 자꾸 눈물이 나며 목이 메인다

옆에서 신문을 보던 아내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나를 힐끗 쳐다본다

내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하고 아내에게 챙피하기도 하여 시원한 냉수를 찾아

목을 축이고, 다시 책을 펼쳐 읽어내려 간다

 

 (딸내미가 아빠 생일선물로 보내온 책 - 엄마를 부탁해) 

 

 

치매를 앓고 있는 엄마를 서울역에서 잃어버렸다

잃어버린 엄마를 회상하면서 어린시절 엄마와의 이런저런 일들을 생각한 내용이다

 

 

(책 본문 요약) - 21쪽에서 부터 23쪽 중 발췌 

“처음 쓴 편지는 엄마가 도시로 나간 큰오빠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받아적는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

큰오빠는 소읍(小邑)에서 정규 고등학교를 마치고 일년 동안 혼자서 공무원시험 공부를 한 뒤에 발령을 받아 도시로 나갔다.

자신이 낳은 자식과 엄마의 첫 작별이었다. 전화가 없던 그때의 유일한 통신수단은 편지를 쓰는것이었다.

도시로 간 오빠는 편지지에 큼직큼직한 글씨로 엄마에게 편지를 써보내곤 했다. 

엄마는 오빠의 편지가 도착하는 날을 귀신같이 알았다. 오빠의 편지가 오는 날에 엄마는 밭에 있다가도

도랑에서 빨래를 하다가도 집에 들어와 우편집배원이 전해주는 오빠의 편지를 직접 받곤 했다.

그러고는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는 뒷마루로 가서 오빠의 편지를 꺼내 내밀었다.

'큰 소리로 읽어보라' 했다. 집을 떠난 오빠의 편지는 ”어머님 전상서“로 시작되었다.(중략) 

 

밥은 잘 사먹고 있고, 동사무소 숙직실에서 당번을 서주는 일로 숙소도 얻었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

오빠는 도시에 나오니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고 썼다.

꼭 성공해서 언젠가는 엄마를 편하게 해줄 것이라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스무살이던 오빠는 능청스럽고 늠름하게도, '그러니 어머님 제 걱정은 마시고 아무쪼록 어머님 건강을 챙기셔야 합니다'라고도 썼다. 오빠의 편지를 큰소리로 읽다가 편지지 너머로 엄마를 넘겨다보면 엄마는 뒤란의 토란대나 장항아리를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응시하고 있었다. 편지를 읽어주는 내 목소리를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엄마의 귀는 토끼처럼 쫑긋 세워져 있었다. 편지를 다 읽고 나면 엄마가 부르는 말을 편지지에 적으라고 했다.

엄마가 불러주는 첫 마디는 '형철이에게' 였다. 형철이는 큰오빠 이름이다.

엄마가 형철아 라고 부르면 “형철아”라고 적었다.(중략). 

엄마의 다음말을 기다렸다. '날씨가 차 졌구나' 라고 불러주면 그대로 썼다.

형철이에게라고 불러준뒤 엄마의 다음 말은 날씨에 관한 것이였다.(중략).

 

엄마가 사투리를 쓰지 않을 때는 오빠에게 편지를 불러줄 때 뿐이였다.

'아무쪼록 여기걱정은 말고 네 한몸 건사 잘하길 바란다. 어미가 바라는 것은 그것 하나뿐이다.'

형철이에게로 시작한 엄마의 말은 '네게 아무 도움이 되지못해서 어미가 미안하다'로 감정의 급물살을 탔다.

편지지에 또박또박 엄마의 말을 받아적을때 엄마의 손등엔 굵은 눈물이 툭, 떨어지곤 했다.

엄마가 불러주는 마지막 말은 늘 똑 같았다. '아무쪼록 밥은 굶지말고 다니거라' 엄마가" (이하 생략)

 

 

 

 

 

본문을 이곳에 옮기면서 다시 읽어보니 어제와는 또다른 느낌이 든다

그랬었다...나도 소설내용과 어쩜 그렇게 똑 같은 상황을 어머님과 함께 연출했는지 모른다.

아마도 그 시절땐...세상의 어머님들이 위 소설처럼 똑 같이 그랬을것이다 

 

1960년대 중반쯤 나보다 일곱살 연상이신 형님이 군(軍)에 입대하셨을 때다

(그 시절 군대는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힘든 병영생활이였다)

그때 형님 편지가 집으로 배달되면 나도 어머님에게 또박또박 읽어 주었다.

한자 한자 읽어 내려가는 나도, 그리고 말없이 듣고 계신 어머님도 눈물을 글썽였으니...

한참을 추스린 후....내 어머님도 나에게 편지지를 주시면서 받아 적으라고 하며

“00아 보아라”로 시작된 눈물의 편지를 불러 주신다,(00은 내 형님 이름)

위 편지처럼 ‘이곳의 걱정은 하지말고 윗분들 말씀 잘듣고 부디 배 곯지말라’는 내용이였으니

그때의 장면이 떠 올라 책을 읽다가 그 생각이 나서 한참 목이 메였던 것이다

 

60년대 후반쯤

이번엔 내가 부산으로 유학을 와서 어머님에게 편지를 보냈던게 생각이 났다.

위 편지처럼 ‘어머님 전상서’로 시작된 장문의 편지는

늘 추위와 배고픔과 그리고 힘들었던 학교생활이 편지의 전부였으며

‘성공하여 어머님 편히 모시겠습니다’라는 내용이 덧붙혀져 있었을 것이다.

이번엔 남동생이 어머님이 불러준대로 받아써서 나에게 답장을 보낸다.

“00아 보아라”로 시작된 어머님의 편지에는 받아쓴 동생의 눈물인지

불러주시는 어머님의 눈물인지 모르는 눈물자욱이 선연했던걸로 기억되며,

위 편지에서 처럼 ‘밥 굶지말고, 부디 공부 열심히하여 성공하길 빈다’로

끝맺음했던 걸로 기억되니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님생각에 서글퍼졌던 것이다

 

그 후로도 형님은 군대에서 제대하셔서 외항선을 타셨고

수없이 많은 편지를 어머님께 보내셨으며 어머님 또한 수없이 많은 눈물을 흘리시며

누군가에게 답장을 받아쓰게 하셨을걸 생각하며 그렇게 모진 삶을 사셨던 내 어머님을 생각하니

불효했던 지난 일들이 갑자기 생각나 눈물이 글썽거리며 목이 메였던 같다

세월이 흘러 곧 손주를 볼 나이지만 어머님 생각만하면 목이 메이고 눈물이 흐르니

아마도 나는 늙어서 정신을 잃은날까지 어머님을 그리며 살수밖에 없는 운명인것 같다.  

 

“엄마를 부탁해“

이제 읽기 시작했으니 책의 정확한 내용은 알수 없지만

잃어버린 어머님을 찾아 나서면서 어머님과의 추억들이 적나라하게 나올 것 같은 예감이다

어머님과의 추억이라면 누군들 가슴 먹먹하고 서글픈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나도 자식을 낳아 키워서 멀리 떠나보내 놓으니 내부모님 생각이 더욱 절실하다

‘자식인 나를 멀리 떠나보내고 부모님은 얼마나 쓸쓸 하셨을까?’ 하는 생각에

가끔은 목이 메여 눈물을 훔칠때가 있으니 말이다..

 

             

 

 

자 ~ 그럼...

신경숙님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

계속 읽어 보고, 내용이 좋으면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