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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부산,경남여행

경남 통영시 소매물도에서(후편)

by 삼도갈매기 2010. 6. 3.

 

 

소매물도 등대섬에 도착하였다

등대섬에서 바라본 소매물도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좋은 카메라였으면 화각이 넓어 섬 전체를 담을 수 있었지만

주머니 속에 들어가는 휴대용 디지털 카메라이니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소매물도 등대섬은 "국가지정 문화제 명승 제 18호"로 지정되어 

여행작가들로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등대로 평가받아

여행관련 잡지에도 자주 소개되며, 각종 영화의 촬영지로도 각광받고 있는 곳이다.

하루에 2회 썰물때가 되면 소매물도의 본섬과 등대섬 사이에는 약 70여m폭의 자갈길(모세의 기적)이 열린다.

(이런 자연현상을 모세의 기적이라고 부르니, 예언자 "모세"가 살아 있었다면 웃지 않을까?.....ㅋ)

  

물 위로 드러난 몽돌해변을 지나 등대섬으로 건너가면

깍아지른 암벽과 갖가지 형상의 바위들, 눈이 시리도록 새파란 물빛과 아스라한 수평선,

들꽃이 흐드러지게 핀 초원과 우뚝 솟은 등대와의 어울림은 형용하기 어려운  감동을 준다.
 

 

 

소매물도 등대는

일제강점기때인 1917년 8월에 건립되었으며, 등탑은 콘크리트 구조, 높이는 16m.

(잠깐, 한마디...부산갈매기의 고향 거문도 등대는 1905년도에 건립 되었음)

 

하얀색의 원형 등탑은 자태가 고풍스러울 뿐만 아니라 프리즘 렌즈를 사용한 대형 등명기를 이용해

약 48km거리까지 불빛을 비추며 남해안을 지나는 선박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소매물도 등대는

주변 자연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그 모양 또한 고풍스러운 느낌을 준다

등대불을 밝히는 등명기는 2209 X 1085Cm의 대형 프리즘 렌즈를 사용하고 있어

규모가 웅장하면서 남해안을 지나가는 선박들의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광파(불빛)표지 ; 시인거리 약 46Km,  섬백광 13초 1섬광.

음파(소리)표지 ; 청취거리 약  9Km 

 

 

 

아내와 함께 이곳을 왔더라면

늙은 내모습을 이곳에 올리지않고 아내의 모습으로 대체할건데....

그래도 어쩌랴...이곳에 왔다는 증명을 할려면 이 방법 뿐이니?....ㅎ

 

1984년... 이곳 소매물도 등대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등탑 바로 옆에 조그마한 단층건물인 사무실이 있었는데,

지금은 노후화되어 헐어버리고 빈터만 남아있는 모습이다

 

등대탑에서 10여미터 거리에 있는 기적실(사진 아래)

기적실이라는 표시는 없지만 육안으로 봤을때 틀림없는 모습이다

불빛이 보이지 않을 만큼 안개가 자욱한 날은 이곳 기적실에서 음파(소리)로

항해하는 선박에게 소매물도 등대가 가까이에 있다고 알려줄 것이다 

 

 

 

멀리 보이는 섬이 대매물도 

대매물도와 이곳 등대섬 사이에 "공룡바위" 가 보인다

공룡 머리 부분이 대매물도 쪽을 보고 있으며, 꼬리부분이 몽돌밭에 얹혀있는 형상이다

머리를 꺄웃하면서 잘 모르겠으면, 확대된 아래 사진을 찬찬히 보면 잘 보일것 같다

 

그냥 육안으로 보았을땐 자세하게 보이자 않더니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확실하게 공룡이 바다에 길게 앉아있는 모습이다

 

 

 

진시황의 사자가 불로초 구하러 왔던 "글씽이 굴"

 

빼어난 경치 때문에 남해의 진주, 해금강에 비할만 하다 하여 해금도라고 불리기도 하는 등대섬 뒤의 절벽에는 아치형의 커다란

동굴 입구가 나타난다. 동굴 모양이 열십자처럼 생겼다 해서 십자동굴이라고도 하고, 글씨가 쓰인 바위가 동굴을 이루고 있어

글씽이굴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 굴은 중국의 진시황제 서자 서불이 3천의 동남동녀를 거느리고 불로초를 구하러 이곳까지 왔다가

이 동굴을 보고 천장 위에 "서불과차-이곳에 다녀간다(徐不過此)"라고 써놓고 갔다고 전해진다.

그 후에 누가 글쓴거를 보고와서 이야기를 했는데 글 쓰여져 있는 곳, 글쓴데 ==> 글씬데 라는 뜻으로 글씽대 라고 불리고

여기에 있는 굴을 글씽이 굴이라 불리우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글씽이 굴 주위에 있는 용바위, 매바위, 촛대바위 등도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서 있다.

동굴 밑으로 보트를 타고 들어가서 구석구석을 감상할 수 있는데, 특히 글씽이 굴은 배를 타고 아슬아슬하게 통과 할수 있어

한층 묘미가 더하는 곳이며, 오랜 세월 동안 파도가 만든 절묘한 동굴 모습에 탄성을 자아내게 된다.  

그러한 이름난 바위들을 보려면 마을의 선박을 이용하여 섬 주위를 둘러보면 자세히 볼수 있다

 

예전에 이곳에 근무할때 노젖는 오마리(무동력선)를 타고 섬 주위를 한바퀴 돌았던 경험이 있다

 

 

 

 

 

등대섬 관람을 마치고 다시 마을 선착장으로 되돌아 가는 길이다

이곳에 갔던 날이 일요일이라서 많은 관람객들이 이곳 소매물도를 찾았었다

여러가지 자료와 많은분들의 설명에 의하면 여름철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제대로 구경도 할수 없다고 하니...이곳 여행을 계획 하신다면 봄 가을에 구경하는게 좋을듯 하다

  

 

예전에 사람들이 이곳을 찾지 않을때

지금 보이는 몽돌을 하나씩 들추면 커다란 고동(소라가 아님)이 널려 있었다

자루와 양동이를 들고 이곳에 와서 껍데기에 파래가 낀 커다란 고동을 잡아서

어깨에 메고 집에 가져가 삶아서 술 안주로 그리고 반찬으로 만들어 먹었던 기억이 있다

 

 

 

망태봉을 경유하여 선착장이 있는 마을로 내려왔다 

예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낡은 집 앞에서 할머님 두분이

섬 주위에 널려있는 미역과 김, 톳 등 해조류를 관광객들에게 팔고 계신다

 

 

전편에서 잠깐 언급하였던

현지 주민이면서 회사 동료였던 배(裵)아무개씨가 살던 집(사진 위)

지금도 그분 가족이 살고 계신가 하고 대문을 열고 들어 갔더니

전혀 쌩뚱맞은 사람들이 이곳을 민박집으로 개조하여 살고 있었으며

외지에서 이곳으로 이사온지 10년쯤 된다며...그런분은 잘 모른다고 말한다 

 

우리 가족이 이곳 소매물도 마을에 살때

배 아무개씨 부인에게 여러가지 도움을 받았던게 참으로 많았었는데

섬 생활이 낯설은 아내가 힘들어 할때...하나 둘 가르쳐주며 보살펴줬는데

특히 그분의 막네딸 "영아"가 우리집 아이들을 참으로 귀여워해 주었으며

그 당시 영아가 이 마을에서 초등학교 5학년으로 제일 큰 처자(?)였는데...

우리집 큰 아이보다 6살이 많으니 지금쯤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것이다

(영아와 우리집 아이들이 함께 찍은 사진도 있는데.....스켄이 없으니 보여줄 수 가 없다)

 

 

선착장 옆 "폭풍의 언덕"에 올라서 마을전체의 모습을 담았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내가 살던 그당시에도 물이 귀하던 시절이였다

일주일에 한 두번씩 멀리 통영에서 물 실은 배가 이곳에 도착하면

마을 사람들이 물통을 들고 이곳 선착장에 내려와서 물을 얻어갔다.

 

나도 예외없이 지게에 푸라스틱 물통을 지고 내가 사는집(왼쪽 팬션 자리)으로

물을 길어 나르기 시작한다...고향에서 지게질했던 경험만 믿고 물을 날으다가

힘에 겨워 넘어졌는데....지게는 지게대로, 푸라스틱 물통은 박살이 나서 물이 흐르며 

이곳저곳으로 뒹구르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듯 하여 나도 모르게 미소가 떠오른다

 

오후 4시경에 우리 일행을 싣고

경남 거제시 저구항으로 출항하려고 준비중이 "매물도 구경호" 유람선 모습(사진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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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2월 ~ 6월까지 4개월간 이곳에서 생활하였다

처음 왔을땐 어려움이 많았지만 차츰 적응하면서 이곳 생활이 재미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봄에 갔으니 산에 올라 다니면서 널려있는 산딸기를 우리집 아이들과 따 먹었던 기억들,

장대끝에 큰 낚시바늘을 묶고 바닷가에서 해삼과 군소 그리고 게를 잡아 반찬했던 기억들

몇일간 바람이 불어 여객선이 오가지 못하면 물자가 떨어져 세끼니를 라면만 끓여먹던 기억들,

바람 때문에 피난온 고깃배에서 횟감용 "망상어"를 구입한후 망상어 뱃속에 가득찬 어린새끼를

신기한듯 보며, 꼬물거리는 어린고기를 초장에 버물려 날로 먹으며 쌉쓰름하니 맛있다던 아내의 모습,

(참고 ; 망상어는 알로 부화하는 고기가 아니고, 어린새끼로 부화하는 횟감용 고기임)

 

모기에 물려 아이들의 얼굴과 몸에 부스럼이 생겨 부산까지 나와 병원에서 치료했던 기억과

화장실에서 엄청 많은 모기떼들의 공격을 받고 제대로 일도 못보고 쫓겨나오던 아내의 모습

그 당시에는 사진기가 귀하던 시절, 소매물도 분교 졸업식과 봄 소풍때 현지에 초대를 받고

아이들 모습을 찍어 현상해줬더니 주민들이 고맙다며 맛있는 반찬을 줘서 얻어 먹었던 기억들 

그 많은 기억들을 이곳에 낱낱히 기록할 수 없으니 안타깝기도 하고...한편으론 그립기도 하다.    

 

특히 아래 지도에서 보듯이

이곳 소매물도에서 남동쪽으로 20Km쯤 떨어진 홍도(鴻島)에 놀러갔던 기억이 되살아 난다 

홍도하면 전라남도 흑산도의 홍도만 기억하는데 "큰 기러기 홍(鴻)"으로 시작하는 홍도가 이곳에도 있다

홍도는 통영항에서 45Km 떨어진 망망대해에 자리잡고 있으며 행정구역상 경남 통영군 한산면 매죽리이며

괭이갈매기 번식지로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335호로 지정돼 현재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된 섬이다.

허나 그시절엔 누구나 입도(入島)할수 있었으니.......

 

아마도 그해 5월 중순쯤으로 기억된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소형어선(통통배)를 빌려 타고

우리 직원과 가족들, 소매물도 등대직원 그리고 섬 주민 몇몇이 홍도에 구경 갔었다.

말로만 듣던 갈매기 섬이 였는데....홍도섬에 도착하여 홍도등대를 찾아 계단을 올라갔다

(홍도 등대직원과 소매물도 등대직원은 자주 교류하다보니 아주 낯읶은 사이였다)

홍도 등대를 찾아가는 길 풀섶에 괭이 갈매기 알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는데 외부인의 방문에

놀란 갈매기의 공격도 만만치 않았던 걸로 기억되며, 세월이 흘렀으니 하는 이야기지만

그때 주워온 부화되지 않는 괭이갈매기 알을 주민들과 나누어서 몇일간 포식했던 기억도 있다.

괭이 갈매기의 알은 달걀보다는 약간 작으며, 메추리 알처럼 밖에 회색반점이 있던걸로 기억된다.

 

내가 만든 공간이라고 혼자서 많이 떠든것 같아.....여기서 마칠까 합니다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희노애락의 추억이 서린곳이 어디 한두곳만 되겠습니까??

기쁠땐 기뻐서 좋고, 슬픈땐 눈물 흘리며 슬퍼했으니 우리의 기억에 오랫토록 남는것 같습니다

세월이 흘러 나이들면 그러한 기억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어 혼자 미소 지을 수 있는

아름다운 옛 추억들 많이 만드시길 당부 합니다....

긴 내용 끝까지 읽으신 당신에게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참고 ; 아래 사진은 경남 "홍도(鴻島)" 위치를 표시한 사진임)

 

※ 통영시 섬 관광사이트 www.badaland.com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