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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장거리 여행

전남 장흥군 "천관산" 산행기

by 삼도갈매기 2010. 10. 10.

 

 

2010년 10월 9일 토요일

전라남도 장흥군에 소재한 "천관산(天冠山-723m)"을 다녀왔다

 

이곳 천관산은 전남 장흥군 관산읍과 대덕읍 경계에 위치해 있으며,

경관이 아주 수려하여 지리산, 내장산, 월출산, 능가산(내소사 뒷산 혹은 변산)과 더불어

호남 5대 명산 중의 하나로 꼽히며 도립공원이고, 우리나라 100대 명산에 포함된 이름있는 산이다.

(부산에서 이곳 천관산 입구까지 차량으로 4시간 소요 - 부산 솔바람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산행함)

 

 

위 산행지도에서 보듯이 천관산 산행지도의 파란색을 따라

장천재 - 체육공원 - 선인봉 - 종봉 - 금강굴 - 구정봉 - 환희대 - 억새군락지

- 천관산(723m) - 연대봉 - 정원석 - 봉황봉 - 장안사를 경유하여

주차장으로 원점회귀 코스로 하였다(산행 소요시간 4시간 소요)  

 

 

 

장천재 주차장에 차량을 두고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관리사무소 앞에 이르러

산행대장의 구령에 맞추어 가볍게 몸을 풀고 산행을 시작하기 위해 입구에 이르면 

자연석으로 "湖南第一支提靈山(호남제일지제영산)"이라고 새긴 표지석이 눈길을 끈다.(사진 위) 

이 표지석을 보니 천관산의 옛 이름이 지제산이었음을 은연중 알려주고 있었다.

 

 

 

산행을 시작하여 조금만 올라가면 장천재 사적비(長川齋 事蹟碑)가 나온다

장천재에 대한 이야기와 이곳 장흥의 학자 위백규(魏伯珪) 선비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장천재(長川齋)는 조선 초기(1450년 무렵) 장흥 위씨(魏氏)들이 장천암(長川庵) 터에 세운

장흥 위씨의 재각이면서 학문을 탐구하는 서재로 이용하던 건물로 1870년 무렵 중건하였다.

조선 정조 때의 학자 존재 위백규(存齋 魏伯珪)가 이곳에서 공부하였던 곳이기도 하고,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었으며, 주변의 풍치가 뛰어나고, 위백규의 학풍이 두터워

도처에서 선비들이 이곳을 찾아와서 함께 학문을 논하던 곳이기도 하단다. 

  

 

장흥군이 자랑하는 호남 실학의 대표격인 위백규는 실학자로 관산읍 방촌리에서 태어났으며,

그는 사회개혁과 정치개혁을 부르짖었고,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90여 년 전에

이미 중국과 일본을 상상하여 그린 지도와 한양, 평양 지방의 지도를 포함한

64장의 도해를 곁들여 만든 지리지인 <환영지(?瀛誌)>를 남겼다고 한다.

 

또한 그는 실학자이자 성리학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여 많은 경전탐구와 저술에 힘썼으며,

특히 천관산의 사찰, 봉우리, 전설 등을 모두 기록한 <지제지(支提誌)>를 남겨 천관산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장천재에서 2~3분 올라가면 오른편 산기슭에 위씨네들 무덤이 있는걸 보면

예전엔 희성(稀姓)인 위(魏)씨들이 행세했던 고장인게 확실한것 같았다.

 

 

이곳 장천재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 72호로 지정되었으며

위 사진에서 보는 큰 소나무는 600년쯤 되는 거송(巨松)으로 이곳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2 ~ 3분쯤 오르면 갈림길 모퉁이에 꽤 오래된 동백나무 군락지도 있어

한겨울엔 이곳에서 아름답게 핀 붉은 동백꽃도 구경할수 있을것 같았다(사진 위) 

동백나무 군락지 오른편으로 금수굴과 환희대에 오르는 체육공원이 나타난다.(사진 아래) 

 

 

 

이제부터 산행 시작이다

오른편 능선을 향해 4~5분 올라가면 위에 보이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금강굴과 환희대를 향하여 숲이 우거진 너덜길을 치고 오른다,

휴일이라 많은 산악인들이 여기저기 힘든산행하는  모습이 보인다

 

 

울창한 숲속으로 30여분 능선을 향해 올라가면

왼편으로 전망이 트이면서 고흥반도 앞 득량만이 한눈에 들어오고,

눈앞에 펼쳐진 능선은 마치 설악산의 공룡능선처럼 뾰족뾰족한 바위가 이어져 있으며,

따가운 가을 햇살에 모자챙에서는 땀이 비오듯이 쏟아지며 다리는 천근만근 무겁기 시작하였다

힘들어서 잠깐 쉬고 이곳저곳 사진을 찍다보니 함께 산행했던 부산솔바람 산악회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후 능선을 따라 올라가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등산로를 찾을 필요 없이 능선만 따라가면 된다.

산악길은 경사가 급하고 너덜지대가 많아서 위험하여 주변 경관을 제대로 보지 못할정도다

그저 땀을 비오듯이 흘리며 숨을 헐떡거리고 올라가기만 해야 하는가 보다.

중간중간 쉬면서 이곳의 풍경을 사진기에 담는것도 힘든 일이다 

 

 

  

 

이곳의 바위는 설악산처럼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그보다 한결 정교하고 오묘하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있는 월출산과도 또 다른 형태미를 지니고 있는듯 하다.

월출산의 기암들은 웅장한 멋은 있지만 산세가 워낙 험하여 

기암들을 다양하게 감상하기 어려운데 비하여 천관산의 바위는 순한 모습을 보인다. 

 

 

 

 

무수한 기암들은 모두 능선 위에 있어서 감상하면서 산행을 할 수 있고,

바위가 더러 막아서면 우회로가 있어서 위험하지는 않는듯 하다.

주차장에서 1시간 30여분쯤 올라가면 위에 보이는 금강굴(金剛窟) 앞에 다다른다.

종봉 바로 밑에 있는 금강굴의 천정에서는 물이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으며,

금강굴 안에는 촛불 등으로 치성을 드린 흔적이 남아 있는 모습이다.

 

 

이어서 환희대(歡喜臺)에 이르는 능선 길을 걷는 동안

기암괴석과 바위봉우리들이 연출하는 웅장한 경치가 시종일관 눈을 황홀하게 한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노승봉과 대세봉, 문수보현봉, 천주봉, 대장봉 등의 암봉들이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금수봉 능선 너머로 천관산 정상인 연대봉이 여인네의 젖봉우리 처럼 봉긋히 솟아  보인다.

 

  

 

 

종봉의 정상도 전망이 매우 좋다.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솟은 대세봉의 웅장한 암봉이 위압적으로 다가와서

마치 월출산이나 설악산의 한 자락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천주봉을 떠나 대장봉을 돌아서 환희대에 올랐다.

환희대는 해발 720m로서 널찍한 바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명 대장봉이라고도 하고,

억새의 장관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며 사방으로 시야가 열려 있으며 

이곳에서 정상인 천관산까지는 억새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산악회 대장님이 후미에 쳐진 나를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 환희봉 정상에서 기념사진)   

 

  

가을이면 환희대에서 연대봉까지의 주능선 좌우에는 약 40만평에 달하는 광활한 억새밭이 장관을 이루며,

이 억새평원이 천관산의 명물이어서 해마다 이곳에서 "천관산 억새제"가 개최되며 2010년에도 개최되었다고 한다 

 

 헌데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찾아볼 수 없는 평원에 억새밭이 펼쳐져서 천관산이 헐벗어 보이는데,

거기에는 그럴만한 역사적인 아픈 내력이 있어서 이 고장 출신의 소설가 이청준(李淸俊;1939-2008)은

그의 소설 <신화의 시대>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멀리로는 고려조 때의 일본 공략에 나선 여몽연합군의 군선 건조를 위해 산의 수림이 크게 남벌 당했고,

다음으로 조선조 왜란 때 우리 군선 건조와 왜인들의 방화 약탈로 다시 울창한 수목과 사찰들이 큰 수난을 겪었으며,

봉수제도가 폐지된 한말 이후 일제 강점기부터는 일본인 회사들의 건축재 반출사업으로 온산이 크게 헐벗게 되었다.”

 

 

 

 

 

 

 

천관산의 연대봉은 장흥에서 가장 높고 전망이 뛰어난 곳이어서 봉수대의 입지로는 최고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여기서는 제암산은 물론 완도의 상황봉, 해남의 두륜산, 영암의 월출산, 광주의 무등산까지 다 보이며,

날씨가 쾌청한 날은 제주도의 한라산과 부산갈매기기의 고향인 "거문도"가 보인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벼를 생산하는 논이 없는 거문도 사람들은 예전에 지붕을 엮을 볏짚과 쌀 그리고 송아지 등을 이곳 장흥에서 조달했다)

  

천관산 정상은 또 계절에 따라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는데.

봄에는 신록의 신선함과 생동감, 여름에는 기운 넘치는 초원, 가을에는 은빛 찬란한 억새로 바뀌면서 장관을 거듭하며,

정상에는 흰 연기와 함께 신비로운 기운이 서린다 하여 신산(神山)이라 부르기도 했단다. 

 

 

위 사진의 연대봉 봉수대는 1149년(고려 의종 3년)에 처음 설치하여 계속적인 개축을 해왔으며,

지금의 봉수대는 기단만 남아 있었던 것을 1986년에 마을사람들이 뜻을 모아 복원한 것이라고 하며

정상에는 돌로 4각형의 축대를 쌓아서 봉수대를 복구하여 그 위에 전망 안내도가 있다.

(전망 안내도엔 남해안의 작은 섬 "거문도" 지도가 표시되어 있었다)

 

 

정상 봉수대에서 내가 하산할 곳을 사진에 담았다

함께한 일행은 먼저 하산하고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렇게 사진을 찍는다고 헤찰을 부리고 있으니 당연히 늦어질수 밖에

하산길은 봉황봉을 거쳐 장안사 그리고 주차장까지이며 대략 1시간 30여분쯤 소요되었다

 

 

하산길에 반대편 종봉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사진 위)

위 사진 종봉은 정상을 향하여 산행했던 길이며 암릉이 산의 위용을 자랑하는듯 하다

책을 차곡차곡 쌓아둔 형상을 한 "책 바위"모습(사진 아래)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장천재 쪽으로 내려가기 30여분,

봉항봉 가기전에 우뚝솟은 양근암(陽根岩)이라 이름 붙여진 바위를 만난다.

아무리 봐도 정말 잘 생긴 대물이다. 저리도 빳빳이 치켜들고 있으니 남성의 상징물답게 장엄하다.  

많은 여성들이 양근암을 손으로 만지고 앞에서 기념사진도 박는다, 어떤이는 뽀뽀도 하는것 같았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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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산 정상에서 이곳 주차장까지 내리막길이 험했다

2009년 4월경 산행 후 하산길에 접지른 다리 때문에 조심했더니 더욱 힘들었다

쭉 ~ 쉬다가 3개월만의 산행이였으니....앞으로 시간이 나면 자주 산행을 해야할까 보다

  

천관산이 있는 전남 장흥은 우리나라의 정남진(正南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에 정동진(正東津)이 있듯이 전라남도 장흥군에는 정남진이 있다.

 

이런 정남진이 있는 장흥에 위치한 천관산은 그 이름부터가 특이하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수십 개의 바위봉우리가 주옥으로 장식한 천자의 면류관을 닮았다 하여 천관산(天冠山),

즉 "하늘의 갓"이라 하였으니 그 이름에 걸맞게 경관이 참으로 기기묘묘하게 아름답고, 마치 바위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그리고 가끔 정상에 흰 연기와 같은 이상한 기운이 서린다 하여 신산(神山)이라 불리기도 했고,

북쪽에 솟은 관음봉이 부처의 두상을 닮았다 해서 불두산이라 했으며,

이처럼 여러 이름으로 불려왔으나 대체로 그 이름들이 불교와 깊은 연관이 있는 지명이니

그래서 천관산이 불교 성지인 까닭이기도 하다.

 

금년 10월들어 처음으로 이곳 불러그에 글을 올려본다 

이제 선선한 가을이 되었으니 아름다운 단풍모습과 은빛 물결의 억새모습을 구경해야 하는데?.....

다음주에는 시간이 허락한다면 아름다운 지리산의 둘레길을 걸어보고 싶다.

힘든 산행보다는 터벅거리며 걷는 둘레길이 내겐 딱인것 같은데...그날 날씨가 좋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