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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먼나라(해외)여행

중국 북경 여행(3편) - 호동골목, 천안문광장, 자금성 관람

by 삼도갈매기 2011. 10. 31.

 

 

 

북경 여행 3일째

아침에 눈(眼)을 뜨기가 바쁘게 날씨가 궁금하여 창문을 열어보니.....염려했던 대로 비(雨)가 내리고 있었다.

북경에선 여행중 비를 만나면 행운이 온다고 하더니...오늘 가장 중요한 천안문과 자금성 관광이 염려가 된다...

그래도 불행중 다행인것은 많은 비는 내리지않고...가랑비가 내리니 가랑비에 옷을 적셔보기로 하였다.  

 

 

 

 

 

 

- 북경의 옛길 "호동(胡同)" 골목길 관람

 

천안문광장과 자금성을 관람하기 전에 근처에 있는 북경의 옛 골목을 관광하기로 하였다

북경 사람들은 골목길을 "후통(胡同)"이라 부르며....서울의 종로 효자동 쯤의 옛 가옥밀집 지역과 비슷한 골목길을 말한다.

 

 

북경엔 최근 이름이 붙여지거나 공식적인 골목길이 6,000여개가 넘고

이름이 붙여지지 않는 골목길이 1,300여개가 넘는다고 하니 이런 크고 작은 골목길을 연결하면 또하나의 만리장성이 된다는 설(說)이 과장만은 아닌듯 싶다. 이곳 북경에서는 "이름있는 골목길은 360개, 이름없는 골목길은 소털과 같다"라는 말이 회자된단다...

 

 

 

북경의 골목길을 돌아서 정사각형 구조로 만들어진 옛 가옥을 일행이 직접 방문하였다.

이 집은 정부로 부터 매달 일정액의 보조금을 받으면서 옛방식 그대로 가옥을 보존하고 있었으며

대지가 50여평 되는데...북경을 찾는 외지인들의 민박집으로 활용하며...현재 시세가 우리돈으로 50억쯤 된다고 한다.

 

 

현지 가이드가 이곳 주택의 구조에 대한 설명을 한다

대문 위에 튀어나온 파란색 기둥의 숫자에 따라 이곳에 사는 사람의 지위를 나타내고,

대문 입구 좌우에 새져진 석주(石柱)에 따라 무관(장고, 북 등)과 문관(책 등)으로 집안 내력을 구별한다고 한다.

 

 

골목길을 따라 걸으며....일행들과 함께 30여분간 인력거 투어도 하였다.(사진 위)

이런 후통의 골목길에 양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벽으로 구성된 것의 실체는 북경 사람들의

전통 주택양식인 "사합원(四合院)"이며 동서남북 네면으로 세워진 집들이 함께 에워싸여 하나의 정원을 이룬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대문을 가운데 만들지 않고 한쪽 구석에 만드는게 특징이라고 하며

팔괘방위(八卦方位) 설계의 오행의 원리를 따라서 짓는다고 하며 이제는 현대화의 물결로 인하여 서서히 없어지는 추세라고 한다.

 

 

이번 북경여행을 했던 18명의 여행객들과 함께 처음으로 단체사진을 찍었다.

첫날...처음 만나서는 서먹서먹하더니 하룻밤을 함께 지낸후엔 다정한 친구가 된다 

사진에서 보듯이 그래도 남자가 6명이나 되니...세상에 이렇게 커다란 위안이 될줄이야...

가랑비는 내리지만 우산 때문에 사진이 흐릴것을 염려하여 비를 그냥 맞는분들이 훨씬 많다.

(이번 여행에 함께하신분 중에 위 사진이 필요하시면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바로 보내드리겠심다) 

 

 

 

 

 

 

 

- 중국 민주화의 상징 "천안문광장(天安門廣場)"  관람

 

북경 시내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천안문 광장은 중국사람들의 드넓은 기개를 대표하는 명소다.
천안문 광장은 원래 1651년에 설계되었다가 1958년에 시멘트로 접합되고 4배나 큰 현재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전체 면적이 44만㎡이며, 동시에 백만명을 수용할 수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큰 광장 중의 하나로 꼽힌다.

 

또한 여러개의 인상깊은 건축물들이 주변에 들어서 있다.

광장을 중심으로 해서 북쪽은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천안문, 동쪽은 중국 국가박물관, 서쪽은 인민 대회당,

그리고 남쪽에는 모택동 기념당이 있다. 광장의 중심에는 중국 인민영웅기념비가 서 있다.

천안문 광장은 옛부터 대규모 군중시위, 집회, 행렬, 경축 행사 등이 이어졌다.

 

 

광장의 중심에 서있는 "인민영웅 기념비"(위 사진) 
천안문 광장의 정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인민영웅기념탑은 1952년에 세워진 기념비로

높이 37.94미터에 탑 토대만 3천여 평방미터의 중국 역사상 최대의 기념비이다.

탑신은 견고한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탑의 주변은 소박한 미의 한백옥으로 만들어진 2층의 난간이 두르고 있다.

탑에는 모택동 주석의 친필로 쓴 " 인민영웅영수불후(人民英雄永垂不朽)' 8글자와 중국 현대사가 대형 부조로 새겨져 있다.


 

 

중국 국가 박물관(위 사진) 
천안문광장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중국 국가박물관은 2003년 2월28일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1959년에 세워진 중국 역사박물관과 1961년에 세워진 중국 혁명박물관이 합쳐져 만들어진 곳으로 건물높이 33미터,

길이 313미터, 너비 100미터의 웅장한 기세를 가졌다. 인민 대회당과 서로 마주보고있으며 지속적으로 개보수를 진행하고 있다.

 

 

인민대회당(위 사진)
광장의 서쪽에 위치하는 인민대회당은 높이 46미터, 길이 336미터, 너비 206미터에 건축면적이 17만 평방미터에 달한다.

대회당의 정면에는 높이가 25미터에 달하는 12개의 대리석 문주가 있으며, 중앙의 로비로 들어가면 연분홍색 대리석으로 깔린 바닥과 한백옥으로 만들어진 석주가 서있으며, 천장에는 수정 샹들리에가 걸려져 있다. 중앙로비를 지나면 우아한 인테리어의 대강당이 나오고 대회당의 북부로 가면 5천개의 좌석을 가진 연회장이 나온다.

모든 건축물은 중국의 전통 건축양식에 외국의 인테리어 분위기를 가미하여 화려하면서도 고풍스럽다.

 

 

모주석 기념당
천안문 광장의 남쪽에 있는 모택동주석 기념당은 1977년 9월에 지어졌다.

건축물은 대추색의 화강암으로 지어졌으며, 기념당은 북청,첨앙청과 남청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으며,

방부처리된 모택동의 시신이 첨앙청 내에 수정관에 뉘어져 있고 주위에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진귀한 꽃들이 관을 두르고 있다.

북청 상층에는 모택동, 주은래 등의 개국원로의 혁명업적이 나열되어 있는 곳이다.


 

 

중국 민주화의 상징인 "천안문"
천안문은 광장의 북쪽에 위치해 있고,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명 영락(永樂)연간인 1417년에 지어졌으며, 옛날에는 황제가 사는 성의 정문이었다.

그당시에는 승천문(承天門)이라고 불렸다가 청대에 개조된 후부터는 '천하를 편안하게 하다'라는 뜻의 '천안문'이라 불리게 되었다.

33.7m 높이의 천안문은 황제의 대형 의식이나 새 군대 파견을 위한 행사를 위해 이용되었으며 황금색 기와 지붕과, 높이 추켜든 추녀, 그림과 조각으로 단장된 대들보, 그리고 주홍색의 웅장한 기둥들은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하얀색 대리석 위에 새겨진 조각들은 하늘의 평화와 황제의 권력을 상징한다.

 

자금성으로 입장하기 위해 천안문을 통과하면서

위에 걸린 모주석 초상회를 카메라로 담으려고 하니 주위에 서있던 공안(경찰)이 손사례를 치며 사진을 찍지말라고 한다

멀리서는 사진을 찍어도 되지만 가까이에선 안된다고 하니...모주석이 웃을 일이 아닌가?....모야 이게?....ㅎ  


 

사진속엔 보이지않지만.....넓은 광장이다보니 설상가상으로 세찬 비 바람이 몰아친다,

사진을 한번 찍으면 비 바람에 렌즈에 빗물이 젖어 버리니 다시 사진을 찍으려면 빗물을 딱아내고 찍어야 한다

 

천안문 광장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천안문 사태"로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1989년 4월 중국 전총서기이자 개혁가였던 후야오방(胡耀邦)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이운동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가 점차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확산이 되어 서로 손을 맞잡고 천안문 광장으로 점차 운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위기를 느낀 당시 지도자였던 덩샤오핑(登小平)은 이들을 진압할 방법을 강구하던 끝에 결국은 같은 해 6월 4일 천안문 광장에 모여있던 학생과 시민들을 기관총 난사와 전차 동원 등의 무력을 이용해서 강제 진압함으로서 사건을 마무리시켰다.

이후부터 천안문 광장은 중국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곳이기도 하다.

 

 

 

 

 

 

 

- 마지막 황제의 배경인  "자금성(紫禁城)"  관람

 

위 사진속 천안문을 지나면 자금성으로 이어진다

북경시의 중심에 위치한 명, 청대의 황궁으로, 천안문 정문으로 들어가 울창한 가로수 길을 따라 단문과 오문을 지나 보이는 곳이다.

 

중국에서는 고궁(故宮)이라는 이름이 더 친근하게 이용되고 있으며 "자금성"이라는 이름은 "천자의 궁전은 천제가 사는 '자궁(紫宮)'과 같은 금지 구역(禁地)이다"는 데에서 연유된 것이다. 전체 면적은 72만㎡이며, 총 9,999개의 방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고대 궁전 건축물이다. 1406 ~ 1420년에 건조된 이래로 56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15명의 명나라 황제와 9명의 청나라 황제가 일생을 보냈고, 현재는 105만점의 희귀하고 진귀한 문물이 전시, 소장되어 있는 곳이다.

 

일반적으로 자금성은 외조와 내정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오문과 태화문을 지나면 흔히 3전(三殿)"이라 부르는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이 나타난다.

3전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자금성의 내정에 이르게 되고 이곳에는 건천궁, 교태전, 곤녕궁 등이 있으며

동쪽과 서쪽에는 각각 동육궁과 서육궁이 자리잡고 있다.(위 사진은 "오문(午門)", 아래 사진은 "태화문(太和門)")

 

 

 

 

 


방어의 목적으로 궁전 밖에는 10m 높이의 담이 있으며,

사방에는 성루가 있고 밖에는 넓이 52미터, 깊이 6미터의 호성강(護城河)이 흐른다.

4면의 담에는 각기 문 하나씩이 나있는데 남쪽에 오문(午門), 북쪽에 신무문(神武門), 동쪽에 동화문(東華門), 서쪽에 서화문(西華門)이 있다. 1988년 개봉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꼼꼼하게 관광을 하는 데에는 하루가 꼬박 걸리고 그냥 가로질러 가는 데에만도 2시간 정도가 걸릴 만큼 넓은 곳이다.(위 사진 태화전(太和殿) 


 

 

각 궁궐 입구엔 사진에서 보듯이 커다란 청동 그릇이 설치되어 있는데

설명에 의하면 화재를 대비해서 물을 보관하는 방화수 그릇 역할을 하기 위해서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

 

 

 

 

 

요즘에는 이곳에서 세계적인 문화공연도 종종 열려

문화유적지나 관광지로서 뿐 아니라 중국시민의 휴식장소, 문화장소로서도 이용되고 있다.

1987년에 이르러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위 사진 중화전과 아래사진은 중화전 내부 모습)


 

 

 

보화전 모습(위 사진)과 보화전 내부 모습(아래 사진)

좌우로의 건축물이 포함하지 않아도 이런 건축물이 15채(?)가 나란히 설치되었다고 하는데.... 

 

자금성 삼전(三殿)중에서 제일 뒷쪽에 위치한 전각인 보화전의 모습으로 태화전과 중화전과 마찬가지로 3층으로 조성된

거대한 월대위에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다.보화전은 태화전과는 달리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웅장함이나 화려함을 배제한

식용적인 건물이라고 할수 있다....우리나라 건축과는 달리 누런 황금빛으로 장식되어 있다.

 

 

 

 

 

보화전에서 내려다본 "건청궁(乾淸宮)"

건청문에서 보화전까지 황제가 이동하는 통로가 있고 양쪽으로 넓은 마당이 펼쳐져 있다.

설명에 의하면 자금성 내에서 가장 경계가 심했던 곳이 이곳 건청궁이며, 자금성에서 평생을 보내는 황실가족이나

궁인, 환관들의 입장에서는 실질적으로 외부와 내부를 구분 짓는 곳이기도 하다.

 

 

 

 

 

교태전(위 사진)과 교태전 내부 모습(아래 사진)

태화전 뒷쪽편에는 황제의 사적인 공간인 건청궁이 있고 스 건물 뒷편에는 황후가 공식적으로 머물던 공간인 교태전이 있다.

서울 경복궁의 교태전과는 달리 침실과 같은 사적인 공간은 아닌것으로 보이며, 주로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활용한듯 보인다.

 

 

 

자금성 뒤쪽에는 어화원이란 정원이 있는데

어화원은 제한된 공간안에 이상적인 자연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중국 전통 정원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자금성 안에서 유일하게 나무가 심겨져 있는 공간이다.
자연의 미를 그대로 보여주는 창덕궁 후원에 비해 매우 인공적인 느낌이 드는 중국식의 정원이다. 

 

 

 

그 중 도수산은 인공으로 돌을 쌓아 만든 산인데

서태후가 궐밖의 부모님을 그리워하던 곳으로 유명하며
9월 9일에는 왕과 왕비가 이곳에 올라 하늘에 뜬 달을 보며 즐기던 곳이라고 한다.


 

 

 

다리가 아프도록 걸어서 자금성을 돌아보면 "신무문(위 사진)"으로 나오게 된다.
자금성의 북문인 신무문에는 현재의 자금성의 명칭인 "고궁박물관"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밖에서 본 자금성은 높이가 11m인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장벽의 사방 둘레는 인공으로 52m의 하천을 판 호성하(護城河)가 둘러져 있어서 외부로 부터 궁궐을 격리시켜 보호하였다고 한다. 

 

 

신무문을 나서면 바로 맞은 편에 황실의 공원인 경산공원(景山公園)이 있다.
원래 북경은 평지인지라 
풍수지리학적으로 나쁜 기운(모래 바람)을 막기 위해 자금성 북쪽에 인공산을 쌓았다.
앞에 보이는 산이 경산공원을 이루는 해발 108m의 나지막한 산인데
궁궐 주위의 해자를 만들때 파낸 흙으로 쌓은 산이라고 한다. 

 

 

 

위에서 잠시 언급한 대로 자금성벽의 사방 둘레는
인공으로 52m의 하천을 판 "호성강(護城江)"이 둘러져 있어서 외
부로 부터 궁궐을 격리시켜 보호하였다고 하니

일종의 해자 역활을 한 셈이다...이곳 해자를 판 흙으로 108m의 산을 만들었다니 중국은 역시 대단한 나라다

 

이곳의 마지막 문을 나오면 많은 인파와 함께 차량이 지나다니는 일반도로다

비 바람이 몰아졌지만 우리일행은 그것에 굴하지않고 거의 2시간 동안 자금성 관람을 힘들게 마쳤다.  

 

 

 

 

현재 천안문광장에서 가장 인기있는 볼거리는 해가 뜨는 새벽에 거행되는 국기 게양식이라고 한다.

행진곡과 함께 군인들이 정렬하여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게양하는데, 이 의식에 걸리는 시간만 거의 30분 정도 소요된다.

게양식이 거행될 때에는 자전거를 타고 광장을 지나갈 수 없고 대신,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는 것은 괜찮다 하니.....

 

오늘로써 중국 북경여행 3일째.....

첫날은 흐린날씨로 인하여 시야가 답답하더니, 둘쨋날은 짙은 안개로 만리장성의 풍경을 보지 못했으며

오늘 셋째날은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비가 내리더니......설상가상 북경바람까지 세차게 불어 힘든 하루를 보냈다.

이제 내일은 북경의 마지막날....바라옵건데....제발 날씨가 좋았으면 하는데....과연 북경의 행운은 언제쯤 우리를 찾아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