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7일 (일요일) 여수에서 초등학교 동창 송년모임이 있었다.
고향(거문도)에서 자라고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으니 졸업생이라고 해봐야 고작 25명....
그 25명중 이런저런 사정에 의해 동창회 모임에 참석하는 친구는 16명이며, 오늘 참석할 친구는 12명이였다.
부산에 사는 초등학교 친구 7명이서 승용차 2대에 나눠타고 송년모임이 열리는 여수시 문수동 "백도선어"횟집으로 출발하였다.
초등학교 동창 친구가 운영하는 "백도선어"에 이렇게 모였다.
지금으로부터 47년전인 1964년 1월.....코 흘리게 친구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가난에 찌들렸던 그때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게 변해버린 친구들의 환한 모습에서
세월의 격세지감을 느끼기에 충분하였으며 그 시절의 어려움을 떨쳐버리듯 지금은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워서
어디에서 누구와 대적하더래도 전혀 손색이 없을만큼 훌륭한 어버이들이 되었으니.....친구들아, 장하고...정말 장하다....
여수시 문수동 백도선어 횟집에서 거문도산 삼치와 벵어, 볼락 그리고 소라, 전복, 쭈꾸미에 쐬주한잔을 걸치고
거문도에서 생산된 참몰(모자반)로 끓인 시원한 삼치국에 점심을 곁들이고....가까운 여수 오동도로 출발하였다.
이곳 여수 오동도 근처엔
"2012 여수해양세계박람회(여수엑스포)"준비로 예전에 못보던 건축물이 우뚝솟아 있었으며
여수해양세계박람회 준비로 인하여 그 어느때보다도 분주한 움직임을 피부로 감지할수 있었다.
(위 사진 우뚝솟은 건물이 박람회 기간중에 이곳을 찾는 세계인들이 머무를 숙박시설이라고 한다)
쐬주 한잔 걸치고, 여수 오동도 다리를 건너와서 이렇게 다시 모였다.
분명 12명이 참석했는데....아무리 세어봐도 한사람이 모자란듯 하다.
그중 한명은 이곳을 오다가 누군가에게 반해서 따라간듯.....그렇담 돌팔이 찍사 부산갈매기는 어디에 있을까?
반백년이 흘러 환갑이 지났지만, 어린아이 처럼 순수하게 허공에 손가락으로 V(브이)를 나타내고 있다....
오동도의 명물 "동백열차"가 오늘은 운행을 멈추고 있었다.
오동도의 방파제는 약 1km 남짓한 거리인데, 관광열차가 운행되고 있으니 이 열차를 타고 들어갈 수도 있다.
또한 오동도는 임진왜란 당시 수군 연병장으로 이용하였다고 전한다.
거북선과 판옥선 그리고 기념비가 세워진 오동도 광장앞에서..........
먼길 마다하지 않고 서울에서 비행기 타고 모임에 참석한 친구
아내도 함께 왔더라면 했는데....성경 말씀대로 주일날은 쉬는 날이라 참석치 못했다고 한다
지난 가을에 아드님 결혼시키더니 귀여운 손자도 봤다고 하니 이래저래 복 터진 친구인듯 하다.
(위 사진 찍을때..."친구 고개좀 숙이게" 했더니 아래 사진은 보란듯이 고개를 높이 들고 눈을 지긋이 감고 있다....재밌다.)
처음엔 분수가 조용했는데 우리일행이 이곳에 도착하니 음악과 함께 분수가 물을 뿜는다
멀리서 이곳 오동도까지 왔다고 축하를 해 주는듯 하다...이곳 분수는 전국 최대의 분수라고 하는데
밤에 보는 형형색색의 분수쇼의 모습이 정말로 멋지게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아무리 세어봐도 한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사진으로 다시 보아도 사랑하는 친구들이 하나같이 선남선녀들이다.
환갑이 지나니 자녀들이 하나 둘 결혼하여 귀여운 손주들이 생겼으니 손주자랑도 빼 놓을수 없다
"어이 ~ 친구들.....이곳에 올라온 사진이 필요하면 말씀하시게.....다음에 만날때 현상해서 드릴테니....?"
오동도 맨 꼭대기에 설치된 오동도 등대의 등탑 모습
1952년 5월에 처음으로 불을 밝혔다고 한다.....언젠가 제 불러그에 오동도 등대를 소개했으니...오늘은 생략
동백꽃은 피지 않았지만 오동도의 아름다운 동백숲을 걸었다.
여수 오동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동백명소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오래 전부터 오동도하면 동백이 떠오를 정도로 오동도의 동백은 유명하며
이곳은 다른 지역의 동백보다 키가 큰 편이며 밑둥에서 부터 여러 줄기로 갈라져 자란 동백나무가 많은 곳이다.
대략 2시간 동안의 오동도 구경을 마치고 근처 노랫방으로 직행하였다.
노랫방에 도착하니...오동도에서 행방불명 되었던 친구가 먼저 노랫방에 도착되어 있었다......ㅋ
대한민국에서 노래못하는 사람은 없는듯 하다
마이크 잡으면 노래 부르고 노랫소리 흘러나오면 엉뎅이 흔드는것은 누가 가르쳐 주었는지?
이곳에선 오후 5시부터 2시간 동안 몸과 마음속에 숨겨 두었던
끼를 마음껏 발산하면서 친구들과의 우정을 돈독히 하였으니...
고향 친구들은 춤추고 노래하는데는 독보적인 존재들임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ㅋ
1964년 1월, 남해안의 조그만 섬마을 거문도(巨文島)에서
25명의 코 흘리게 친구들이 빛나는 졸업장을 받으며 초등학교를 졸업했으며
그 졸업생들이 매년 한번씩 모여 우정을 다짐하니, 그로부터 47년 후...2011년 11월 27일(일요일)
전국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있는 친구들 모두가 모여 이제껏 힘들게 살아왔던 지난 옛 이야기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이야기를 들려주며 서로가 손을 맞잡고 화기애애하게 기분좋게 하루를 보냈다.
초등학교때인 1960년대에는 모두가 어려운 시절이라 그야말로 초근목피로 배고픔을 달래였으니
하루 세끼중 단 한끼라도 밥을 먹을 수 있었다면 그 집은 잘사는 집에 속했으며 부러움의 대상이였다
그 한끼도 고구마가 주식이였으며...주식인 고구마가 상하기라도 하면 하루종일 굶을 수 밖에 없었으니
산속을 헤매며 칡뿌리와 각종 열매로 허기를 달래였고, 바닷가의 톳으로 죽을 끓여 먹던 고달프고 힘든 시절이였다.
그런 힘든시절을 용케도 견디어 냈으니....그때 단련된 몸이 지금의 건강을 유지하게된 원동력이 되었던가 보다.
12명의 친구들이 노랫방에서 신나게 놀고 나오니 오후 7시....
고향 거문도에서 공수된 삼치고기로 죽을 끓여 오늘 쐬주로 찌들린 뱃속을 말끔히 청소까지 한 후
각자 왔던길을 다시 찾아가면서....아쉬움에 손을 흔들고 내년에 다시만날것을 약속하였다.
(PS ; 오늘 이곳에 보이는 친구들은 "거문도 덕촌초등학교 제 25회 졸업생"임)
"이 보게 친구들...내년에 우리 다시 만날때까지 모두들 건강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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