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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삶의 흔적들

경북 영천시에 있는 "국립영천호국원"에 다녀왔다.

by 삼도갈매기 2012. 9. 28.

 

 

 

 

2012년 9월 26일(수요일)

경북 영천시에 소재한 "국립영천호국원"에 아내와 함께 다녀왔다.

(참고 : 국립영천호국원이 2006년 1월 30일 "국립묘지" 로 승격 되었음)

 

국립영천호국원은 국가유공자 등을 모시는 곳으로 7년전 세상을 떠나신 장인 어르신(아내의 친정아버님)이 잠드신 곳이다.

 

 

 

국립영천호국원 중앙에 국가 유공자 묘역임을 알리는 "영천대첩비"가 세워져 있다.

 

이곳은 조국수호를 위하여 신명을 바치신 국가유공자 및 참전유공자들이 영면하시는 호국성지로 이곳에 안장된 호국영령들은

6.25전쟁시 조국을 지키고, 어려움에 처한 우방국을 돕기 위해 월남참전에 참전하여 선봉적 역할을 하신 분들을 모시는 곳이다.

 

 

 

 

장인 어른이 세상을 뜨신지 어언 7년이 되었다.

어느해엔 장모님을 모시고 이곳 호국원묘역에 장인어르신을 뵈러온적도 있었고

또 어느땐 우리가족 모두가 이곳을 찾아와 세상떠나신 할아버지의 뜻을 아이들에게 가르켜 주기도 하였는데.....

 

지난달 대전에 사는 외손녀가 동생을 보기(낳기)위해 엄마랑 함께 부산에 왔기에 손녀랑 함께 찾았으니....

이곳에 잠들어 계신 증조 할아버지도 기뻐하실 것이고, 나름 신고식을 겸해 인사 드리기로 하였다.

 

 

 

 

아내(할머니)와 함께 아장아장 걸어가는 손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대견하련만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든다...

저기 걸어가는 손녀가 증조할아버지를 뵌적은 없지만, 보이지 않는 어떤 기운에 이끌려가듯 앞장서서 걷는듯 하다...

 

아내는 장인 어른신께 큰딸이며 외동딸이였다...

아내가 낳은 딸이 어르신께 첫번째 손녀였으니 그 손녀가 얼마나 귀여웠을까?...그 귀여운 손녀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으니

그 아이가 어르신의 증손녀일텐데...이렇게 묘역을 찾아가고 있으니, 먼 발치에서 보신다면 얼마나 흐믓해 하실까 하는 생각이다.

 

 

 

간단하게 준비한 과일과 떡 그리고 생전에 좋아하시던 소주 한잔을 따르고 장인 어르신께 인사를 하였다. 

우리를 반기듯 근처에 잠자리와 나비가 날으니...손녀가 나비를 쫓아 묘역 주변을 신나게 뛰어 다닌다.

(비석에 노랑나비가 앉아 있지만 실제가 아니고...고인의 존함을 가리기 위함이다)

 

 

 

 

어르신은 한국전쟁(육이오) 참전 용사로

1950년 10월 ~ 1953년 7월까지 조국을 수호하신 공로로 이곳 국립영천호국원 유공자 묘역에 잠들어 계신다.

 

고인은 한국전쟁 참전 1년 후 부상을 당해 국군병원에서 6개월쯤 치료 한후에

다시 전투에 참여하셨다고 생전에 말씀하시면서 다시는 이땅에 전쟁의 참혹함이 없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하나야.....저기 하늘나라에 증조 할아버지가 보이냐?" 하고 물어보니

뭐가 보이는것 처럼 뒤짐을 지고 먼 산을 쳐다보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련만 어쩐지 애처롭기도 하다...

 

 

 

어르신께 내년에 다시 이곳을 찾아 오겠다며

작별 인사를 하고 근처 야외장에 전시된 각종 유물전시품을 둘러보았다. 

 

 

 

국립영천호국원에 들어오면 제일먼저 눈에 띠는게 사진에서 처럼 실물크기의 전투기,

탱크, 각종 포 등이 전시되어 있어 이곳이 조국을 위해 순국하신 분들의 넋을 기리는 국립묘지임을 말해주는듯 하다..

 

 

 

실물크기의 전투기가 전시되어 있는 야외광장에 대려가니 손녀가 뛰어다니기 바쁘다

가만히 서 있으면 사진찍기에 좋으련만....풀밭에 뛰어 다니는 메뚜기도 이 녀석에게는 좋은 장난감이다...  

 

(참고 ; 위 경비행기는 T - 37 훈련기로 1973년 미국에서 도입하여 30여년동안 대한민국 공군의 훈련기로 사용하다가

퇴역한 후 이곳에 전시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전투기 길이 8.7m, 폭 10.12m, 높이 2,75m, 탑승인원 2명)

 

 

 

F - 86F 전투기 앞에서....

한국전쟁 당시 소련 최신예 전투기 MIG -15 와의 공중전에서 승리하여 유엔의 제공권 장악에 결정적인 역할을한 전투기.

 

 

 

 

어르신께 내년에 다시 찾아오겠다는 작별인사를 드리고 부산으로 귀가하였다.  

부산에서 이곳 영천시 영천호국원까지는 승용차로 1시간 30분이 소요된는 거리다...

매년 이곳을 다니면서 느끼는 일이지만 어르신 기일쯤엔 가을의 길목에 접어드는 시기이니

들판엔 곡식이 노랗게 읶어가고, 길섶엔 가을의 전령인 코스모스가 가을바람에 한들거리는 그 모습도 담았다..  

 

 

 

 

 

 

이곳의 코스모스가 워낙  키가 크니...

손녀 혼자 꽃 앞에 세워둘 수 없어서 덕분에 아내까지 꽃속에서 망중한을 즐겼다....

 

"하나야....너를 대리고 증조 할아버지께 잘 온듯 하구나....

내년부터는 엄마랑 이곳에 찾아와서 증조 할아버지께 인사 드리는것 잊지 말아라?" ...

 

 

 

 

 

 

 

 

 

경북지방이라 이곳 근처에 사과가 탐스럽게 열렸었는데....

몇일전 무서운 태풍이 4개가 올라와 한반도를 휩쓸었지만 이곳은 전혀 피해가 없는듯....

부산으로 귀가하던 길에 사진에서 처럼 노랗게 읶은 벼가 금년 가을의 풍요로움을 말해주는듯 하다

 

 

 

 

201

(이 노래는 고인이 평소 즐겨 부르시던....)

 

 

어르신 기일이 팔월추석 열흘전인데...기일전에 이곳을 찾으려고 하였으나 16호 태풍 산바의 영향으로

찾아뵙지 못하다가 추석을 몇일 앞두고 손녀와 함께 찾아뵈어 인사드렸으니 고인도 기뻐하실 것이라 믿는다.

 

장인 어르신은 7년전 이맘때 75세의 짧은 생을 살다가 세상을 떠나셨는데....나는 어르신을 쉽게 잊을수가 없다. 

결혼 후 신혼여행지에서 돌아오니 조용히 나를 불러 당신의 여식을 나에게 당부하시던 그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어느 아비가 자식사랑을 그렇게 하시겠는가?....난 그 말씀 하나하나 가슴에 새겨 두었다가 5년전 내 딸아이가 결혼할때

내 사위에게 장인 어르신이 나에게 들려주셨던 그 말씀 그대로 당부했으니...어쩌면 고인은 내 인생의 영원한 멘토였다..

 

어르신은 생전에 40여년 동안 외항선에 승선하시어 드넓은 바다를 누비시며 가족과 떨어져 외롭게 갈매기를 벗삼아

지내셨으니 우리들에게 가족의 중요함을 일깨워 주시고, 손수 모범을 보여주신 분으로 어느땐 형님처럼, 또는 친구처럼 

늘 우리를 사랑으로 대해 주셨으며 특히 사위인 나에겐 각별하셔서 언제나 내편이 되어 주셨던 세상에 둘도 없는 분이셨다.

이별한지 7년이란 세월이 흐르다 보니 안타깝게도 어르신이 점점 잊혀지는게 마음으로 느껴지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

옛말에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까지 멀어진다"고 하더니, 그래서 고인을 잊지 않으려고 이렇게 글로서 그리움을 담아보았다.

 

"아버님....저는 아버님을 결코 잊을수가 없습니다,

아버님이 저를 사랑했듯 저도 아버님을 사랑합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편안하시기 바랍니다".


수정

 

 

내가 사는 아파트 화단에 초가을에 핀다는 꽃무릇이 한창이다.

꽃무릇 속에 세워두고 사진을 찍지만, 손녀가 워낙 바지런을 떨어대니 제대로된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수 없이 샷터를 눌렀지만 겨우 두장 건졌다....이제 25개월된 손녀의 모습은 언제 어떻게 보아도 귀엽기 그지없다.

 

요즘 말을 배워 한창 조잘거리며.....가수 싸이가 부른 "강남 스타일"노래에 맞춰서 말춤도 잘 추는데....

다음달쯤에 이 녀석이 대전으로 떠나버리면....아 ~ 생각만해도 끔직한데...이 녀석 가버리면 심심해서 우짜노?.....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