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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장거리 여행

충남 공주시 공산성(公山城), 마곡사(麻谷寺) 답사여행

by 삼도갈매기 2012. 10. 22.

 

 

 

2012년 10월 20일

부산유유자적클럽회원 84명과 충남 공주시 공산성과 마곡사 그리고 근처 부여(夫餘) 부소산성을 답사 여행하였다.

 

오전 07;00시에 부산을 출발 4시간이 소요되어 충남 공주시 소재한 옛 백제의 도읍지며 왕궁이였고 사적 제 12호로 지정된

백제의 대표적인 고대 성곽인 "공산성(公山城)"에 도착하여 여행을 시작하였다.

 

 

 

 

 

- 공주 공산성(公州 公山城) 답사

 

공산성은 백제의 수도가 공주였을 때, 공주를 지키던 백제의 산성이다.

금강변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산성(山城)으로 원래는 흙으로 쌓은 토성(土城)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석성(石城)으로 고쳤다.

 

 

 

 

사적 제12호인 공산성은 쌓은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며,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공산성)으로 조선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렀다. 4방에 문터가 확인되는데, 남문인 진남루와 북문인 공북루가 남아있고 동문과 서문은 터만 남아있었는데, 1993년에 동문터에는 영동루, 서문터에는 금서루를 복원하였다. 일행은 시간상 서쪽에 자리한 금서루만 답사 하였다.

 

 

금서루(錦西樓)가 세워진 서쪽문터로 향하는 일행.

금서루 입구에 즐비한 비석은 이고장 도백들의 공덕비문인듯 하다...

 

 

금서루(錦西樓)는 공산성의 4대 성문 중 서쪽에 있는 문루(門樓)다.

성안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가 1993년에 복원되었다. 매주 주말에

왕성을 호위하던 수문병의 근무를 재현한 "웅진성 수문병 근무 교대식"과 다양한 백제문화 체험행사가 금서루 일원에서 열린다.

 

 

서문쪽 성벽에 올랐다.

공산성은 백제의 대표적인 성곽으로 공주의 역사, 문화 제1번지로 불리어지는 곳이다. 문주왕 원년(475년) 위례성에서 이곳으로

천도하여 성왕 16년(538)에 사비성(지금의 부여)으로 옮길 때까지 64년간(5代) 왕도를 지킨 곳이다. 문화유적들이 즐비한 산책로와

비단처럼 아름다운 금강의 흐름을 따라 걷는 성곽길이 이어지는 명품 걷기코스를 걸으며 백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몇백년은 됨직한 커다란 팽나무 아래에서

이고장 출신의 해설사가 공산성의 유래에 대해서 유창하고 설명을 하고 계신다...

 

 

 

쌍수정 사적비(雙樹亭 史蹟碑)

도시정유형문화재 제 35호인 사적비는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이곳에 머물렀던(인조 2년 2월 13~23일) 10일간 내용을 새긴 비문이다. 비문(碑文)은 인조때 영의정을 지낸 신흠(申欽)이 지은 것으로 글씨는 숙종때 영의정을 지낸 남구만(南九萬)이 썼다.

허나 아쉽게 이곳 사적비 내부 비문을 사진으로 담을수 없었다.

 

 

 

추정왕궁지(推定王宮址)

백제가 한성에서 웅진으로 수도를 옮긴 웅진시대 초기의 왕궁터로 추정된다.

1985~1986년에 발굴 조사때 10칸, 20칸 등의 큰 건물터와 돌로 쌓은 둥근 연못터 등 각종 유적이 확인되었고,

백제의 연꽃무늬 수막새를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쌍수정(雙樹亭) - 문화재자료 제 49호

쌍수정은 조선 인조가 이괄의 난(亂)을 피하여 일시 파천(播遷)한 곳이다. 쌍수(雙樹)에 기대어 왕도를 걱정하던 인조가

난을 평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여 이 쌍수에 통훈대부(通訓大夫)의 영(令)을 내리셨다는 유래가 있는 곳이다

계단위에 쌍수정의 건물이 보이며.....그 아래 계단에선 이고장 출신 해설사의 설명이 계속 이어진다...

 

 

 

 

 

 

 

공산성에서 공주시내를 한눈에 볼수 있다.

공주에는 주변에 볼수 있는 관광지 및 유적지가 많다. 무령왕릉을 비롯하여 국립공주박물관, 석장리박물관, 박동진판소리전수관

그리고 가을 단풍의 명소인 계룡산국립공원내에 있는 동학사, 갑사  그리고 마곡사, 신원사 등이 많은 볼거리가 있는 곳이다.

 

 

 

공산성 금서루 성벽에서 함께 답사한 80여명의 회원들과 함께 단체사진을 담았다.

사진 오른쪽 뒤편에 부산갈매기의 모습도 보인다....(유유자적 카페에서 옮김)

 

 

 

공주 맛기행 - 새이학가든의 "공주국밥"  

공산성 답사를 마치고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서 바로 근처에 있는 새이학가든인 공주국밥 집을 찾았다.

 

새이학가든의 전신인 이학(二鶴)식당은 고봉덕 여사가 1950년대 처음 문을 열어 오늘날까지 공주의 전통 맛을 지키고 있는데,

큰형님이 어머니의 '이학식당' 상호를 쓰고 막내 며느리가 대를 이어 위 사진 오른쪽의 "새이학가든"이라는 상호로 분가하여

공주 전통의 맛을 지키고 있단다. (위 사진과 설명은 유유자적 카페에서 옮김)

 

 

 

공주의 대표음식인 "공주국밥"은 원래 ‘공주장국’이라 불렸다 한다.

구수하고 시원한 국물 맛을 내기 위해 사골을 가마솥에 푹 고아낸 다음 양지머리와 사태를 삶아 넣고 파와 무 마늘, 고추 등 갖은

양념을 넣어 고기국물과 야채가 어우러져 장국이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국물과 밥을 따로 내놓기 시작하면서 ‘따로국밥’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이곳 공주국밥이 유명한 이유는 역대대통령과 주요 정치인들이 공주를 찾아오면 이곳을 찾았다고 하며 현재 청와대 주인이신

이명박 대통령까지 그리고 이곳이 고향인 박세리, 박찬호, 신성일, 엄앵란, 장사익 등 유명인들이 공주에 들를 때 모두 이 집을 찾을

정도로 유명한 집이라고 한다....우리 일행도 막걸리와 함께 이곳의 장국밥을 허겁지겁 맛있게 먹었다.

 

식사후 국밥집 근처에 자리한 아름다운 금강을 배경으로 사진을 담았다.(날씨가 약간 흐리더니......)

 

 

 

공주시는 1995년 공주군과 통합되었다. 남쪽으로 금강이 흐르는 분지상에 입지한 백제의 옛 도읍지로서 백제문화의 중심지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충청남도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경부선이 대전을 지나면서 행정적, 경제적 중심이 대전으로

이전되었으나, 서해안 개발시대를 맞아 수려한 자연경관과 풍부한 문화유적 등으로 많은 발전잠재력을 가진 도시로 평가된다.

공주시는 유구읍, 사곡면 등 1개읍 10개면 6개동이 있다.(법정동 기준은 24개). 면적 940.74㎢, 인구(2006년 기준) 130,595명.

 

 

 

 

 

 

- 천년고찰 마곡사(麻谷寺) 답사

 

 

공주 공산성 답사를 마치고 근처 사곡면 운암리 태화산(泰華·614m) 남쪽에 위치한 마곡사(麻谷寺)를 찾았다.

마곡사(麻谷寺)는 백제 의자왕 2년(642) 신라 사람인 자장율사가 창건하였고 고려시대에 와서 보조국사(1158-1210)가 중창하여

크게 일어선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다.

 

 마곡사는 "가을 갑사, 봄 마곡"이라고 불릴 만큼 주위의 경관이 빼어나고 계곡이 깊으며 주변 산과 물의 형태가 태극형이라 하여

'산태극 수태극(山太極 水太極)으로 불린다. 택리지, 정감록 등에서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꼽힌다.

 

 

 

마곡사 입구에 도착하니 가을정취가 물씬 풍기는 쌕스폰소리가 요란하다

위 사진에서 보듯이 일행이 토요일에 이곳을 찾았으니 때마침 "마곡사 토요무대"가 열리고 있었다.

고인이 된 최헌씨의 희트곡 "가을비 우산속"에라는 쌕소폰 연주가 한창이다, 이곳에 한참을 머물러 쌕소폰 소리를 들었다.

 

 

 

주차장에서 5분쯤 걸어들어가니 "태화산 마곡사" 일주문이 방문객을 반긴다.

 

절 이름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유학할 때의 스승인 마곡 보철화상을 기려 이름을 땄다고도 하고, 보조국사가 고려 명종 2년(1172) 이 절을 재건할 때 구경 오는 사람들로 골짜기가 꽉 찬 모습이 삼밭에 삼[麻]이 선 것과 같아서 붙었다고도 한다.

절이 세워지기 전에 마(麻)씨 성을 지닌 토족이 살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지만 어느게 확실한지는 알수 없다고 한다.

 

 

"가을 갑사, 봄 마곡"이라고 하더니

봄에 마곡사를 찾아야 하는데 가을에 찾아왔지만 마곡사도 단풍이 곱게 물들어 간다..

특히 길 오른쪽으로 계곡물이 흘러내리니 이곳에 비치는 단풍의 모습에 많은 진사들을 유혹하는듯 하다.

 

 

 

 

 

 

해탈문(解脫門)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 66호

마곡사 정문으로서 이문을 지나면 속세를 벋어나 불교세계로 들어가게 되며 해탈을 하겠다는 마음을 갖게된다 하여 해탈문이라 한다. 중앙 통로 양편에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과 보현(普賢), 문수(文殊) 동자상을 모시고 있다. 고종 1년(1864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위 해탈문과 두번째 문인 천왕문(天王門)을 지나면 아름다운 극락교를 만난다.

 

 

 

위 극락교(橋)를 건너면서 주위 풍경을 보니 약간 이른감은 있지만 마곡사 단풍이 곱다...

아래 사진은 극락교에서 계곡물에 반영된 단풍나무의 음영을 담아본다....

 

 

 

대광보전(보물 제 802호)

대광보전은 대웅보전과 함께 마곡사의 본전(本殿)이다. 원래 건물은 임진왜란(1592년)때 불타 없어졌는데 1813년(순조 13년)에 다시 지었다. 건물내부에는 참나무로 만든 돗자리가 깔려있고 그 위에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으며 부처님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앉아있는것이 특이하다. 건축양식은 외관이 장대하면서도 화려한 특징을 갖는 다포식(多包式)이며, 건물 앞쪽에 다양한 무늬의 꽃살무늬의 문을 달았다. 내부의 화려한 공간 구성과 함께 조선후기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훌륭한 전통 목조건물이다(표지판에서..) 

 

 

 

오층석탑(보물 제 799호)

대광보전 앞에 위치하며 다보탑 또는 금탑이라고도 불리운다.

탑의 전체높이는 8.67m로 1층 몸돌 남면에는 자물쇠 모양이, 2층 몸돌 네면에는 소박한 솜씨로 사방불(四方佛)을 양각하였다.

사방불의 조각은 밀교적 의미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상륜부에는 청동제인 풍마동(風磨銅)으로 만들었는데 라마식 보탑과 유사하여 중국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것으로 보인다. 국내의 다른 사찰에서 볼수 없는 귀중한 탑으로 나라의 기근을 3일간 막을수 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대웅보전(보물 제 801호)

대광보전 뒤편에 우뚝솟은 건축물로 원래건물은 임진왜란(1592년)때 불타 없어졌고 현재의 건물은 1651년(효종 2년)에 각순대사(覺淳大師)와 공주목사 이주연(李湊淵)이 다시 지은 것이다. 외관상으론 2층건물 형태인 중층(中層)이나 내부는 하나의 공간이다.

현존하는 전통 목조건물 가운데 많지않은 중층건물로 목조건물의 아름다운 조형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응진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5호)

이 건물은 부처님을 중심으로 제자인 16나한을 모시고 있는 전각이다. 16나한은 중생에게 복을 주며 바른길로 인도하기를 원하는 성자(聖子)를 말한다. 철종 3년(1852)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건물 전면에는 창호를 달아 출입을 하도록 하고 나머지 삼면은 회사벽(灰沙壁)으로 마감한 특징이 있다. 

 

 

김구(金九)선생 은거 기념 식수

마곡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며 독립운동의 지도자인 백범 김구(白凡 金九 1876 ~1949)선생이 1896년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분노로 황해도 안악에서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 후 이곳에 은거하여 1898년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으로 잠시 출가 수도하였던

곳이다. 조국 해방후 선생이 이곳을 찾아 대광보전 주련의 去來觀世間 猶如夢中事(거래관세간 유여몽중사)를 보시고 더욱 감개무량

하여 그 때를 회상하여 향나무를 한그루 심어 놓았다.(향나무 앞 표지판에서 옮김)

 

 

 

 

마곡사를 감싸안고 흐르는 "청계수"

아름다운 산봉우리 국사봉에서 발원한 마곡천이 S자의 만곡을 이루며 이른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형국을 이룬다.

세속의 티를 씻어 거울같이 맑은 심성을 지니게 해주는 맑은 시냇물이 이곳 계곡을 따라 유유히 흐른다.

 

 

 

 

 

 

많은 사찰들이 그랬듯이 왜란과 호란 때에 황폐해졌고

특히 1782년에는 이곳에 큰 화재가 발생하여 500여 칸의 전각들이 불타 버렸다고 전한다. 그러므로 지금 건물들은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전반에 세운 것들이어서 고찰다운 풍모가 덜하지만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보물급 전각들이 많이 산재해 있다.

 

 

 

 

영산전(靈山殿) - 보물 제 800호

영산전은 이 절에서 가장 오래 된 건물로 조선 중기의 목조 건축양식을 대표할 만한하다.

그 현판은 세조가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을 만나러 왔다가 거절당하자 그를 그리며 남긴 필적이라 한다.

영산전은 현재 보수중이라 실물을 볼수 없었고 근처에 실제 사진이 있기에 그 사진을 찍어 이곳에 담았다.

 

 

 

 

 마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本寺)로 현재 충청남도 70여 개 사찰을 관리하고 있다.

"태화산마곡사사적입안 (泰華山麻谷寺事蹟立案)"에 따르면 640년(신라 선덕여왕 9)에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慈藏)율사가

통도사, 월정사와 함께 창건한 절로 여러 차례 화재가 있었으나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 지눌(知訥)에 의해 중건되었다고 한다..

 

사찰 이름에 대해서는 2가지 설(說)이 있는데, 자장이 절을 완공한 후 설법했을 때 사람들이 '삼'(麻)과 같이 빽빽하게 모여들었다고 해서 마곡사라 했다는 설과 신라 무선(無禪)대사가 당나라 마곡보철(麻谷普澈)선사에게 배웠기 때문에 스승을 사모하는 마음에서 마곡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이상 유유자적 카페와 인터넷에서 부분 옮김)

 

또한 마곡사 뒷편에 "태화산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으며 이곳 등산로는 봄철에 산수유와 왕벗꽃 등이 피어나 그 아름다움이 선경을

방불케 한다고 해서 "춘마곡(春麻谷)"이라 불리는데 태화산 능선에 조성된 송림욕장은 무성한 송림과 계곡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

며 5Km에 달하는 코스로 송림 중 태화산의 소나무는 상당수가 적송림으로 건강 삼림욕을 즐길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공주 공산성과 천년고찰 마곡사 답사여행을 마치고 백제의 옛 도읍지 부여군(扶餘郡)에 소재한 부소산성으로 향하였다.

다음편의 부소산성은 백마강, 낙화암과 고란사 그리고 연꽃으로 유명한 궁남지의 모습을 보여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