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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부산,경남여행

경남 창녕군 "우포늪"탐방과 의령군 이병철, 곽재우, 안희제 생가 방문기.

by 삼도갈매기 2013. 10. 15.

 

 

 

2013년 10월 13일 일요일....구름 한점 없이 맑은 전형적인 가을날이였다.

 

부산 유유자적여행자클럽회원 40여명과 경상남도 창녕군에 자리한 국내 최대의 자연늪 "우포늪"

의령군 정곡면에 있는 국내 최고의 재벌가 "호암 이병철" 선생의 생가 그리고 임진왜란때 홍의장군으로 명성을 떨친

"곽재우" 장군 생가와 근처에 있는 일제강정기에 공복운동에 헌신한 애국지사 "백산 안희제" 선생의 생가를 방문했으며...

 

후편에선 은빛 억새가 장관을 이룬 아름다운 창녕군 남지읍에 자리한  "낙동강 개비리 옛길"과 창원시 의창구에 있는

180만평의 "주남저수지" 그리고 주천강변에 위치한 주남 돌다리까지 구경하였다...(하룻동안 겁나게 많이 보았네) 

 

 

 

 

- 국내 최대의 자연늪 "우포늪" 관람

 

 

우포늪은...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최대의 자연 늪지이며, 철새 도래지이며,

지금은 자연생태 관광지로도 유명한 곳이며. 1988년 3월에 국제 람사르협약에 등록되었고,

1999년 2월 환경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2011년 1월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우포늪은 경남 창녕군 대합면, 이방면, 유어면 일대에 우포 ‧ 목포 ‧ 사지포 ‧ 쪽지벌의 네 개 늪이 있는데,

통상 이 네 개의 늪을 통틀어 우포늪이라 한다. 92만5천 평의 넓이로 서울 여의도의 면적에 근접하며,

가장 큰 우포는 51만 평으로 여의도광장의 다섯 배에 달하는 넓이다.

 

 

 

우포늪 입구에 세워진 돌표지석

우포늪을 단 몇시간에 전부 관람하기엔 어렵고 전체를 보려면 최소 1박 2일쯤 소요된단다...

입구에 1인용, 2 ~ 3인용 자전거가 비치되어 있으니 가족끼리 연인끼리 바람을 가르며 달려보는것도 좋을듯 하다.

 

 

 

우포늪 이인수 생태해설사를 소개하시는 유유자적 임대장님

이인수 해설사(오른쪽에 계신분)가 일행들에게 우포늪에 대한 설명을 하시며, 관람시 주의사항을 당부하신다. 

 

 

 

우포늪 생명길 출발점 입구에 세워진 조형물앞에서...

우포늪은 한마디로 습지의 땅이다, 습지란 물에 젖은 땅이니 물이 주변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 식물의 생태를

조절하는 주된 역할을 하는곳이며, 이런 습지는 물가에 사는 새들을 비롯한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는 공간이 되기도 하는곳이다.

 

 

 

"우포늪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라는 조형물 앞에서

우포늪의 생성시기와 각 늪의 명칭유래 습지의 기능을 설명하고 계신 이인수 해설사

 

 

 

 

 

 92만5천 평의 넓이로 서울 여의도의 면적과 비슷하다는 우포늪,

근처 대제방길에 올라서 바라다 보니 아득하니 정말로 끝이 보이지 않는다...

 

대제방길 반대편에는 누렇게 읶은 벼가 풍년이 왔음을 알리는데....

이곳도 몇년후 매입하여 우포늪으로 편입한단다...(아래사진)

 

 

 

 

일행이 우포늪 전망대로 오르는 목재 계단을 따라...

임대장님 카메라에 담긴 내모습...유유자적 카페에서 옮김(아래사진)

 

 

 

 

 

계단을 오르니 가장 높은곳에 우포늪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높은곳에 오르니 우포늪의 조망이 시야에 들어오면서...시원한 가을바람까지....

 

 

 

 

우포늪 조감도가 만들어져 있는 곳에서 해설사가 설명을 곁들인다..

전망대 안에는 쌍안경이 설치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우포늪을 구경할수 있었으며.

주변 벽에는 우포늪의 사계절의 풍경과 따오기 복원에 대한 설명 등이 일목요연하게 전시되어있었다.

 

 

 

전망대에서 나와서 짧은 산길을 따라 처음 출발했던 곳(주차장)으로 향하였다.

자연의 순수와 신비를 보고 느끼며 도시 생활에 찌든 심신의 피로를 씻어낼 수 있는 곳, 우포늪은 그런 곳이다.

 

 

 

그야말로 수박 겉할기식으로 1시간 동안 우포늪을 보았으니 아쉽다.

오른쪽 사각형 건물은 우포늪생태관으로 그곳에 가면 우포늪에 관한 설명도 있으련만....

아래사진은 생태관 입구에 조성되어 있는 우포늪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를 형상한 조형물도 있었다.

 

 

 

 

생태관 입구에 "우포의 사계절" 사진 전시중 "우포의 봄"을 알리는 사진

우포에 봄이 찾아오면 늪 주변에서는 버드나무가 힘찬 녹색 움을 띄우고, 겨울 철새가 사라진 곳에선 자주빛갈의 자운영과

위사진속 붉은색의 영산홍이 축제를 벌인단다...봄 기운과 더불어 쇠물닭 등의 철새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개구리알이

부화를 시작하고 개구리밥이 물위로 올라와서 기지개를 켠단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늪지에 개구리밥, 생이가래, 물억새, 창포, 부들, 가시연꽃 등

수 많은 물풀들이 수면을 덮고 있고, 나무들이 물속에 하반신을 담그고 있는 모습은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이곳 우포늪에는 340여 종의 식물과 62종의 조류, 78종의 어류가 서식하고 있는 우리나라 최대의 내륙 습지다.

 

대략 1시간동안의 관람을 마치고 전용버스를 이용하여 근처 의령군으로 향하였다.

 

 

{참고 ; 우포늪 8景}

제 1景 ; 왕버들수림(장재마을 앞 수중에 있는 왕버들 군락은 한폭의 동양화다.

제 2경 ; 늪반딧불이 축제(환경오염이 안된 곳에서만 살고 있는 늪반딧불이는 여름밤 우포를 훤히 밝힌다.

제 3경 ; 물품의 융단(여름 우포늪은 물품이 수면을 뒤덮어 장관을 이룬다.

제 4경 ; 기러기의 비상(우포늪을 찾는 대표적인 철새로 수천마리가 떼 지어 날아 오른다.

제 5경 ; 가시연꽃(물품의 왕으로 국내식물 중 잎이 가장 크며 우포늪을 더욱 신비롭게 한다.

제 6경 ; 고니의 사랑(1962년 고니도래지로 지정될 정도로 겨울의 우포늪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제 7경 ; 장대 나룻배(사람도 자연의 일부로 장대를 저어가는 모습은 그 자체가 현편의 시가 된다.

제 8경 ; 별자리 이야기(우포늪 주변에는 다른 빛이 없기 때문에 북두칠성, 카시오페아 자리 등 별이 유난히 빛난다.

 

 

 

 

- 의령군에 자리한 "호암 이병철" 선생 생가 방문

 

호암 이병철 생가는 경남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 있다,

이병철 선생은 삼성그룹의 창업자로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이끈 대표적 기업가로 이곳은 그분이 태어난 집이다.

일자형 평면 형태로 지어졌으며 그동안 몇차례의 증, 개축을 거쳐 은은하고 고고한 멋을 풍기는 지금의 모습으로 단장되었다.

 이곳 생가는 2007년 11월 부터  일반에게 공개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호암 선생의 생가를 방문하기 위해 전용버스에서 내리니

"의령 9경의 안내표지판"이 새워져 있으며....호암 선생의 생가가 있는 이길을 "부자길"이라고 부른단다.

 

 

 

부자길이란 마을답게 기(氣) 받는 저금통을 파는 가게가 있었고

이마을 음식점 간판들은 대채로 접두사로 "부자"라는 단어를 붙인  곳이 눈에 많이 띄었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서 의령에 유명하다는 망개떡을 샀는데 망개떡집 이름도 "의령 부자 망개떡"이였다.

 

 

 

 

 

호암 생가를 찾아가는 길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길 한켠에 동네 할머니들이 가을걷이인 오이와 가지 그리고 밤, 대추, 감 등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었다.

(밤(栗)이 하도 저렴하기에 구입했는데....낱알이 작은 재래식 밤으로 맛은 꿀밤이였다...좀 많이 사올걸 후회했었다)

 

 

 

호암생가 조감도

풍수지리에 의하면, 이 집은 곡식을 쌓아 놓은 것 같은 노적봉(露積峯)형상을 하고 있는 주변 산의 기가

산자락의 끝에 위치한 생가 터에 혈(穴)이 되어 맺혀 있어 그 지세가 융성할 뿐만 아니라, 멀리 흐르는 남강 물이

빨리 흘러들어가지 않고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역수(逆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한다.

위 사진에서 처럼 호암 생가는  안채, 사랑채, 대문채, 광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위)와 안채(아래) 

호암(湖巖) 가문이 중교리에 터를 잡은 것은 지금부터 510여 년 전 연산군 시대에 16대조가  낙향하면서부터 라고 한다.

生家는 고 이병철 회장의 조부인 문산 이홍석공이 지었다고 한다. 안채 지붕마루에 수평으로 걸린 종도리 하단부에

"辛亥年(1851)癸巳月辛卯日乙未時立柱上樑"란 상량문은 생가 복원시 본채가 지어진 연대를 남기기 위해 옮겨 놓았다고 한다.

이를 통해 1851년부터 집을 짓고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사랑채와 안채엔 마당 한가운데 우물이 있었으며

우물안에는 물이 가득 고여있었으나 관리 소홀로 음용수로는 부적합한듯 하다.

 

 

의령군청 소속인 박순선 해설가로 부터

호암 선생의 생가에 대한 설명을 경청하고 있는 일행들(유유자적 카페에서...)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대복바위(위 사진)

곡식을 쌓아놓은 것 같은 露積峰(노적봉)의 형상을 하고 있는 주변산의 기(氣)가 산자락의 끝에 위치한 田字 모양의 바위로

모인다고 한다. 바위 모양이 마치 벼 가마니를 쌓아놓은 것 같아 재물이 모이는 명당이 되기도 한다는 설(說)이 있는 바위다.

 

그러다보니 일행이 위 바위를 만지기 시작하였고 부산갈매기도 인간이라 속물근성이 발동하여 여러번 어루만졌으니

이제 부자되는것은 시간문제이니,....오늘이나 내일 사이에 복권이나 사볼까 생각하는 중이다.....ㅋ

 

 

 

생가 한켠에는 조그마한 곡식창고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곳 내부엔 처음 정미소 사업을 시작할 무렵 사용했던 집기들과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위 아래사진)

 

 

 

 

 

건물은 깨끗하게 잘 보존돼 있는데 사랑채는 몇차례 증.개축을 거쳤으며

국내 최고 대목수인 신응수씨가 최초의 형태로 복원해 놓았다고 한다. 이회장은  안채 우측방에서

융희4년(1910년 )2월 12일 부친 경주이씨인 술산 이찬우공과 안동권씨 모친 사이의 4남매중 막내로 태어났다고 한다.

 

참고 ; 의령 9景

제 1경 ; 충익사(홍의장군 곽재우와 애국충절 장령들을 기리는 곳)

제 2경 ; 자굴산(산새가 너무 아름다우며, 산의 정기로 인물이 많이 나오는 명산(897m)

제 3경 ; 봉황대와 일붕사(가락국 숙왕때 출여의 낭자와 황세장군에 전설이 있고, 여의각이 세워져 있는 곳)

제 4경 ; 백계관광지(벽계저수지와 봉황대, 벽계계곡 있는곳으로 여름철 피서지로 유명한 곳)

제 5경 ; 정암루와 솥바위( 의령과 함안의 경계사이를 흐르는 남강의 도선장을 이르는 솥모양의 바위)

제 6경 ; 탑바위(커다란 바위가 아랫부분을 받치고 있으며 그 위로 높이 8m가량의 작은 바위가 천연탑층을 이루고 있는곳)

제 7경 ; 수도사(해인사 말사이며, 662년(신라 문무왕2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100여명의 제자와 함께 수도한 사찰)

제 8경 ;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

제 9경 ; 호암 이병철 선생의 생가

 

 

 

 

 

- 임란의병 홍의장군 "곽재우" 생가 방문

 

 

곽재우 장군은 홍의장군으로 임진왜란 의병대장이다.

1552년 8월 28일 경남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에서 황해도 감사를 지낸 아버지 곽 월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첫 의병을 일으킨 4월 22일에 생가 근처 충익사 사당에서 추모제향을 올리며. 2005년에는 장군의 생가를 복원했단다.

홍의장군의 생가에서 나라를 걱정하던 장군의 옛 모습을 떠 올리며 자신을 되돌아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의령 세간리(宜寧 世干里)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2호)

곽재우 홍의장군 생가를 찾아가는 길에 만난 은행나무로 수령 약 6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21m, 둘레 10.3m로서 밑둥에서  2m부터 가지가 뻗어있어 여느 은행나무와 비교할수 없이 크고 우람한 나무다.

 

 

 

 

곽재우 장군의 생가에서...

장군은 8세에 글 공부를 시작하여 목사를 지낸 외할아버지와 친구사이인 남명 조식 선생으로부터 공부를 했으며,

16세 때 스승인 남명 선생의 외손녀와 결혼을 하였다.

 

1585년인 34세에 별시의 정시에 2등으로 뽑혔으나, 지은 글이 왕의 뜻에 거슬린다고 하여 발표된 지 수일만에 무효선언을 받았다.

그러다가 1592년 4월 13일 일본군이 부산으로 쳐들어오고 관군이 물러나는 등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장군이 태어났던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 마을 앞에 있는 느티나무에 북을 매달아 치면서 의병을 일으켰는데 이 때가 1592년 4월 22일이요 우리나라 첫 의병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해 5월에 낙동강과 남강이 합류하는 지점인 의령군 지정면 성산리 거름강(岐江) 전투에서 첫 승리를 거둔데 이어 6월에는 의령의 관문인 정암진에서 대승을 거두게 된다. 정암진 전투는 장군의 의병활동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전공을 세운 싸움이며, 그 의미 또한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왜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신출귀몰한 장군의 뛰어난 전술과 전략을 바탕으로 강변의 깊고 얕음의 지형을 이용한 게릴라전을 비롯해 여러 장군들에게 붉은 옷을 입게 하여 누가 곽재우 장군인지 헷갈리게 하였으며, 그리고 50에서 80미터 정도 되는 조총의 사정거리를 파악하여 130미터 정도 날아가는 활을 이용하여 적을 무찔렀던 것이다.

 

1592년 10월에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에서 승리를 거두는데 일조 하였고,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이 때는 창녕 화왕산성에서 왜군을 물리치는 등 많은 승리를 거두었으며 한번도 패하지 않았다.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1592년 41세의 나이로 첫 벼슬에 나간 이후 1616년 65세에 이르기까지 24년간 29회에 걸쳐 관직에 임명되었다, 장군은 1617년 4월 10일 낙동강변에 있던 망우정에서 마침내 파란만장한 생애를 접고 향년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현재 1978년 12월 22일에 준공한 충익사에서 곽재우 장군과 17장령 및 수많은 의병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의령군에서는 매년 4월에 의병제전을 열고 첫 의병을 일으킨 4월 22일 아침에 충익사 사당에서 추모제향을 올리고 있다.

장군이 사용하던 칼과 갓끈, 사자철인, 명나라 왕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벼루와 팔각대접, 말안장 등 곽망우당유물은 보물 671호로 지정받았으며, 현재 충익사 기념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2005년에는 장군의 생가를 복원했다.

옛 장군의 생가터에 조선초기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는데 안채 등 7동의 건물과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한국 전통의 미를 보여주는 이 생가는 정겹고 아담함을 느끼게 해 준다. 더불어 곽재우 장군의 그 위대한 영혼을 읽게 해 준다. 곽재우 홍의장군의 생가에서 나라를 걱정하고 용맹스런 장군의 옛 모습을 떠 올리며 자신을 되돌아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장군의 생가는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클 뿐만 아니라 관광지로도 활용되고 있다.

 

장군의 정신은 망신우국의 애국정신, 멸사봉공의 애족정신, 살신성인의 도의정신, 무소불위의 정의정신, 자조자율의 자주자립정신, 강한 절의의 청렴결백정신, 지용겸전의 창의정신에 있다. (위 내용은 아름다운 미술관 카페에서 옮김)

 

 

 

 

 

이번 여행을 주선하신 유유자적 길라잡이 임대장님의 멋진 모습

한사코 사진 찍는것을 싫어하셨는데....유유자적 앰블런이 걸린 전용버스 앞에서...(이분과 지난번 백두산에 함께 갔었다.)

 

 

 

의령 세간리(宜寧 世干里) 현고수(縣鼓樹) - 천연기념물 제493호

이 느티나무의 수령은 600여년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20m, 둘레 8.4m, 수관폭 동서 16m, 남북 15m 정도로 가지가 뻗어있다. 

현고수(縣鼓樹)는 북을 매단 나무라는 뜻으로 1592년(선조25년) 4월 13일 왜군이 부산포에 침입하자 41세의 유생이던 곽재우가

4월 22일 이곳 유곡리 세간리의 느티나무에 큰 북을 매달아 놓고 전국 최초의 의병을 모아 훈련 시켰던 곳에서 유래한다...

임진왜란때 의병이 처음으로 일어난 곳이라는 역사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나무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600년된 느티나무 앞에는 사진에서 처럼 북을 매단 정자가 세워져 있다.

그 옛날 곽재우 장군이 의병을 모을때 사용했던 북으로 일행중에 북채를 들고 북을 치기도 하였다.

 

 

 

곽재우 장군 생가에서 대략 30여분 머물고

근처에 자리한 백산 안희제 선생의 생가를 찾아가는 중...풍요로운 농촌의 모습을 담아본다

 

 

 

 

- 애국지사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 방문

 

백산 안희제는(白山 安熙濟1885-1943)는 1885년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부산 최초의 무역회사 백산상회를 설립했다. 일반적인 회사는 이익을 추구하여 부를 축척이 목적이었지만

백산의 의식은 달랐다. 교육자이면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항일 독립투사였다.

 

 

 

 

 

백산 안희제 선생의 생가 출입문....

선생의 생가는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 193호로 지정되었다.

 

 

백산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근대화 운동에 앞장섰던 실업가이면서 조국의 광복운동에 헌신했던 애국지사로.

부산과 의령 등지에 여러 학교를 세우는 한편 대동청년당을 조직하여 국권회복운동에도 참여하였으며,

이후 백산상회를 경영하여 무역업에 종사하면서 기미육영회를 조직하여 청년교육을 지원하였으며,

중외일보를 인수하여 민족 언론 창달에도 선구자적 역할을 하신분이다...(위 글 유유자적 카페에서)

 

 

 

호암 이병철 생가에서부터 해설을 담당하신 이고장 출신 박순선 해설가로 부터

이곳 백산 생가에 대한 내역을 설명을 하고 있으며, 일행은 마루에 걸터 앉아 경청하고 있는 모습...

 

 

 

 

백산 안희제 생가 관람을 마치고 근처 창녕군 남지읍에 자리한 "낙동강 남지 개비리 옛길"을 걷기위해서 이동하였다.

'남지 개비리' 옛길은 낙동강 칠백리 길 중에서 가장 예쁜 길이며, 나라 안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아름다운 길이란다.

다음편은 낙동강을 바라보면서 낙동강 벼랑에 만들어져 있는 2.7Km의 옛길을 걸었던 이야기와 창원시 의창구에 있는

국내 최대 철새 도래지 "주남저수지" 탐방했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