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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먼나라(해외)여행

터키여행(2편) - 이스탄불(성소피아 성당), 앙카라(한국공원, 소금호수)

by 삼도갈매기 2014. 4. 3.

 

 

 

"여행이란 설레임으로 시작하여, 아쉬움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터키여행 첫번째 이야기에 이어서 터키여행 두번째 이야기는

터키 이스탄불의 "성소피아 성당"을 관람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참고 ; 터키 여행기 2편부터 보시지 말고, 1편부터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공존하는 "성 소피아 성당"(The Hagia Sophia Museum)

 

성 소피아 성당은 마치 이스탄불에 산재해 있는 여느 모스크(사원)와 비슷해 보인다.

간혹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마주보고 있는 블루모스크와 아주 흡사하다고 느낄 것이다.

성 소피아 성당은 현재 성 소피아 박물관이라는 정식 명칭을 가지고 있지만 이곳은 최초에는 성당이었다.

 

 

 

성 소피아 성당(박물관)에 입장하기전에

일행에게 수신기를 나눠주면서 사용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수신기(Receiver)란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수 있는 기기로 주변이 시끄러울때 유용하게 사용하는 기기.

 

 

 

아름다운 "성 소피아 성당".

성 소피아 성당은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규모면에서도 세계 최대를 자랑했으며

오늘날까지도 비잔틴 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비잔틴 제국 시대에 그리스도교를 처음으로 공인하고 이 곳에 거하기로 정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새로운 도시의 큰사원"으로 325년 창건했던 성 소피아 성당은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명에 따라

532년~537년에 다시 크게 개축되었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은 성 소피아 사원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이후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정복당한 이곳은 회교사원, 즉 모스크로 그 용도가 바뀌면서

성당안벽은 회칠로 덮이고 그위에 이슬람교 코란의 금문자와 문양들로 채워졌으니. 

모마리아의 모자이크는 사라졌다.

 

 

 

1934년 성 소피아 박물관이란 이름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복원작업이 진행되어

두꺼운 회칠이 벗겨지면서 성모마리아를 비롯한 비잔틴 시대의 화려한 흔적들이 드러났다....

성당(박물관) 입구에서 가이드의 설명은 계속된다, (중앙에 붉은색 깃발을 들고 서있는 분이 터키여행의 가이드(교민)

 

 

 

성 소피아 성당(아야 소피아 박물관으로도 불리움) 정문으로 입장하였다...

출입문은 2중으로 되어 있었으며...또다른 출입문을 만난다.

 

 

 

첫번째 출입문을 열면 위 벽화그림이 눈에 띈다...

가운데 앉아계신 예수의 양족 옆으로 둥근 원이 그려져 있는데,

오른쪽 원에는 띠를 든 천사 가브리엘, 왼쪽 원에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모자이크 되어 있다...

예수의 오른쪽 발 아래에는 레오 6세 황제가 무릎을 꿇고 재혼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하는 모습이란다...

예수의 왼손에 들린 책의 글귀는 그리스어로 "너에게 평화를, 나는 세상의 빛이다" 라는 복음서의 문구가 적혀있다.

 

 

 

두번째 출입문(본당) 앞에섰다..

본당으로 들어가는 중앙의 대형문을 "제국의 문"(황제의 문)이라고 불리며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지만, 제지하는 사람이 없으니 누구든지 드나들고 있다.

 

 

 

성당 내부의 웅장함에 그져 놀라움을 금치못한다...

거대한 돔을 기둥하나 세우지않고 이렇게 멋지게 완성했다니 그시대의 공학기술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세계문화유산이므로 국제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보존했으면 좋을듯 한데, 현재 돔이 기울고 있어 한켠에선 보수중이였다.

 

 

 

성당 전면의 모습을 가까이 담아본다...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면서 내부 곳곳 둥근 원판에 아랍글자들이 적혀있는데...

그 글의 내용은 알라신과 모하메드 그리고 이슬람 성직자들의 이름이라고 한다.

 

 

 

성당 중앙에 서서 방금 들어왔던 성당 출입문쪽을 바라다 본다...

성 소피아 성당의 중앙에 서면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공존하는 기묘한 장면이 연출되는 역사적인 장소임을 실감하게 된다.

 

본당의 넓이는 75m X 70m로 7,570평방미터에 달하고 천장높이는 55.6m, 돔의 지름은 33m,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높이이며, 40개의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구조이다.

또한, 영국 텔레그래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10선"에 선정되기도 한 건축물이다.

 

 

 

55.6m 천장 모습으로 둥근 원형돔 4곳에는 천사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으나

덪칠후 벗기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훼손되어 원형이 변하여 안타깝다고 한다...

허나 4곳중 한곳(사진 오른쪽 상단부분)엔 원래의 천사모습이 그나마 보이니 다행이다.

 

 

 

 

1층 관람을 마치고 2층으로 올라간다..

2층으로 오르는 구조는 계단식으로 되어있지 않았으며, 발밑에 돌들은 달아서 반질거렸다.

 

 

 

2층에서 내려다 본 성당내부의 중앙 홀 전경(사진 왼쪽에 수리중임)

현재의 건축기술로도 기둥하나 없이 짓기가 쉽지않는데 1,500년전에 지었다니 놀라울뿐이다.

 

 

 

성 소피아 성당 내부의 벽화중에 가장 유명한 그림앞에서 가이드의 설명은 계속된다..

위 벽화는 회칠을 벋기는 과정에서 상당부분이 훼손됨을 알수 있다...(아래 원본그림과 비교)

 

중앙에 그리스도를 향하여 왼쪽에 성모마리아,

오른쪽엔 세레요한이 인간의 죄를 사해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하는 장면이다..

특이한 것은 예수님의 눈동자가 좌우 어느방향이든지 보는사람을 향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수없이 많은 벽화가 훼손되어 있었으며...

 

위 벽화는 중앙의 성모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있는 모습으로

요한 콤네노스 2세 황제와 이레인 황후의 모자이크 그림으로 성금주머니와 봉납 명세서를 받치는 모습이다..

 

 

 

예수님이 중앙에 앉아 계시고

그 옆에는 조여왕과 그녀의 세번째 남편인 콘스탄틴 모노마쿠스 모습의 모자이크 벽화...

가이드로 부터 자세한 설명은 들었지만...무슨뜻으로 이렇게 함께 그려졌는지는 생각이 나지않는다. 

 

 

 

사진속엔 없지만 성당 1층 출입구쪽에는 커다란 구멍(Holl)이 있는데..

그 구멍에 엄지 손가락을 넣어 떼지않고 완전히 한바퀴 돌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니...긴 줄이 장난이 아니였다...ㅋ

 

 

 

 

 

2층에서 복도를 따라 내려가며 만나는 벽화(세분의 벽화)

좌측의 주스티니안 황제, 중앙에 성모마리아와 예수 그리고 우측에 콘스탄틴 대제의 모습..

 

 

 

대략 1시간 동안의 성 소피아 성당의 관람을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터키에서는 이곳 성 소피아 성당을 "아야 소피아 성당"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성스러울 성(聖)"은 그리스어로 "아기아"이며, 터키어로는 "아야"로 발음한단다

 

 

 

웅장한 성소피아 성당을 배경으로 다시 한번 사진을 담는다...

 

 

 

성 소피아 성당 관람을 마치고 전용버스에 탑승하려는 순간 아빠와 함께 걸어가는 아랍소년을 만났다...

하도 귀여워 아내와 사진을 찍는데..."오늘 할레의식을 행하러 간다"는 아빠의 말에 모두가 깜짝 놀랬다....ㅋ

 

 

 

이스탄불의 어느 가게앞에서(사진 위)

그리고 이스탄불의 어느 음식점 앞에서(사진 아래)

 

 

 

 

 

 

- 터키의 수도 "앙카라"로 이동중...

 

이스탄불에서 터키의 수도 앙카라 까지는 420Km거리며

소요시간은 대략 6시간쯤 소요된다고 하니....푸른 초원의 고속도로를 전용버스로 달렸다..

 

 

 

이스탄불 관람을 마치고 전용버스편으로 터키의 수도 앙카라를 향하는 중이다...

위 사진속 다리는 이스탄불 유럽쪽과 아시아쪽을 이어주는 "갈라타 다리"(교각)의 모습...

 

 

 

이스탄불 유럽지역인 구시가지 부두와 

신시가지 카라쾨이 부두를 연결하는 다리로 "골든혼" 바다를 가로지른다 

1845년에 나무다리였는데, 화재로소실된후 다시지은 갈라타 다리에는 낚시가 한창이다.(위 아래 사진)

참고 ; 갈라타 다리는 고등어 케밥을 파는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갈라타 다리와 연결된 교각을 건너는 중이다

교각 아래로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건너는 중이다...

보스포러스 해협은 이런 교각이 2개인데....최근에 한국 모기업에서 세번째 다리를 건설중이라고 한다...

(참고 ; 위 사진은 이스탄불의 유럽쪽 건축물이며, 아래사진은 이스탄불의 아시아쪽 건축물의 모습)

 

 

 

 

앙카라로 이동하는 중에 가이드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터키여행으로 비잔틴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공부를 했다고 하지만

내가 아는 상식은 일부분에 불과 했으니 여행덕분에 터키의 역사공부까지 덤으로 할수 있었다....

 

 

가이드 설명에 의한 터키 이스탄불에 대한 역사공부를 잠시해보면

기원전 660년 그리스 문명시대에는 현재의 이스탄불을 "비잔티움"이라고 불렀으며

서기 330년경 로마 황제였던 콘스탄티노프 1세가 동로마제국의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기면서

도시 이름은 콘스탄티노프 폴리스로 불리었다고 한다...

 

콘스탄티노프 황제가 서기 330년 수도를 이곳으로 이전한 후 천년간 로마의 수도역할을 하다가

1453년 술탄메메드 2세가 이곳을 정복한 후 오스만 제국을 세워서 오스만제국의 중심도시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리스 로마시대로 부터 오스만 제국시대까지 1,600여년간을 수도역할을 해온 현재의 이스탄불은

유서깊은 유물들과 유적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도시임에 틀림없다.

1923년 터키 공화국을 세워 수도를 앙카라로 옮기면서 이스탄불은 수도로서의 기능을 잃었지만 번영은 거듭하였다고 한다...

 

 

 

 

 

 

- 터키의 수도 "앙카라"(Ankara)에 도착.

 

이스탄불에서 터키의 수도 앙카라까지 전용버스로 6시간 소요되어 도착하였다..

앙카라에 도착하니 저녁 늦은 시간이라 "TURIST Hotel"에서 호텔식으로 저녁을 먹고 터키여행 이틀째 밤을 보냈다.

TURIS Hotel은 앙카라 근처 공항(Esenboge Air port)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호텔로 도심에서 가까운 호텔이였다.

이번 여행에서는 앙카라는 "카파도키아"를 가기위해 잠시 정차하는 도시로 오전중에 "한국공원"만 참배할 예정이다. 

 

 

 

6.25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참전비가 세워진 "한국공원"에 도착하였다.

터키의 참전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1973년 한국정부가 앙카라시에 헌납한 공원이라고 한다

경주 불국사 다보탑을 본떠 만든 탑인듯...이역만리 타국에서 잠든분들의 고귀한 넋을 잠시 위로하였다.. 

 

 

 

외국에 나오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고 하더니..

이역만리에서 희생된 영령들에게 모두가 잠시 묵념을 올리는데...한사람은 예외였으니...ㅋ

 

 

 

"한국참전토이기기념탑" 앞에서

 

터키는 6.25 한국전쟁에 3번째로 많은 군인을 파병했다.

그래서 전사자도 다른 나라보도다 많았는데 총 전사자가 1,200여명

앙카라 한국공원에는 700명 정도가 묻혀있고,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500명 정도가 잠들어있다고 한다.

이 분들의 희생으로 인해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을수 있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고 옷깃을 여미게 한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역대 대통령 누구도 이곳을 방문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고인이 되신 노무현 대통령께서 최초로 터키의 한국공원을 방문하셨다고 한다...

그 전까지는 초라하게 방치된 공원이였는데, 이후 한국여행자들도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한국공원에는 기념탑외에는 특별할게 없는 평범한 공원이지만 앙카라에 들린다면 꼭 방문해 보길 권해본다...

한국전에 목숨을 걸고 참전한 터키인들을 기리는 의미가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그 느낌이 남달랐다.

짧은 시간 머물렀지만 많은걸 생각하고 느끼며, 가슴 뭉클한 시간이였다.

 

 

참고 ; 터키의 수도 앙카라는 중앙 아나톨리아의 심장부에 위치하고 있는 터키의 수도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에 술탄제를 폐지하고 터키 공화국을 세운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urk)는

이전까지 터키의 수도였던 이스탄불을 제치고 앙카라를 수도로 정한다.

 

앙카라의 뜻은 닻이다. 이 앙키라는 그 후 로마인들과 로마인 이후에는 비잔틴인들에게 지배당하였다.

그러다 1079년 셀주크 투르크가 앙키라를 점령하였으며 그후 이곳은 1402년까지 약 3세기동안 셀쥬크 투르크에 의해 지배된다.

그후 오트만 사람들에 의해 세워진 오스만투르크가 지배하게 되며, 이 지배는 독일편에 서서 1차세계대전을 치루어 국가의 독립이

위태로워진 상황에서 1922년 11월 케말 아타튀르크가 술탄제를 없애고 공화국을 세울때까지 지속된다.

 

케말 아타튀르크는 1923년 10월 13일에 앙카라를 새로운 터키공화국(Republic of Turkey)의 수도로 선포한다.

이 도시는 이 때부터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신 시가지와 수천년 동안 시가지를 이루었던 구 시가지로 나뉘어진다.

이 신 시가지에 케말 아타튀르크의 묘가 있다.

 

 

 

 

- 앙카라를 출발 "카파토키아"(Cappadocia)로...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낄수 있는 카파토키아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참고 ; 수도 앙카라에서 카파도키아까지는 전용버스로 대략 5시간 소요)

 

터키의 수도인 앙카라에서 남쪽으로 300K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카파도키아.

마치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버섯 모양의 기암괴석들이 드넓은 계곡지대에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물론 이 곳에서는 터키의 다른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북적거리는 시장이나 양파모양의 사원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카파도키아의 참 매력은 좀 더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으니. 원뿔을 엎어 놓은 듯한 용암층 바위 속에 이곳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삶의 터전을 마련해두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곳을 찾아서 출발하였다...

 

 

 

 

 

 

- 세계에서 두번째 "소금호수"(Salt Lake)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카파토키아를 향하여 100Km쯤 달리면 거대한 "소금호수"(Salt Lake)에 도착한다...

표지판에서 처럼 터키어, 영어, 프랑스어, 이태리어, 일본어, 스페인어...6개 나라의 언어로 쓰여져 있다.

 

소금호수도 구경하며, 휴식도 취하고, 잠시 화장실(유료)에도 들릴겸 이곳에서 정차했다.

 

 

 

 

 

주변이 온통 소금이며 호수(바닷)물이 끝도 없이 펼쳐져있다.

호수물에 손을 적셔 맛을 보았더니 짠맛의 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옛날 이곳이 바다였는데, 지각변동으로 인해서 육지로 바뀌었다니 자연의 힘이 경이롭다.

 

 

 

 

소금호수(Salt Lake)가 끝도 보이지않게 넓게 펼쳐져 있으니

아내와 인증샷을 담아본다...터키 소금의 60%가 이곳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소금호수 주변에 유료화장실 풍경

- 화장실 입장, 대소변 관계없이 1인당 50센트(2인 ; 1달러)

- 물론 생수도 500ml(미리릿터)  1병에 50센트(2병 ; 1달러)

고속도로 화장실이 유로인걸 보니 세상에서 제일 살기 좋은 나라는 대한민국이다....ㅋ

 

 

 

달리는 버스에서 담은 사진으로

끝없이 펼쳐진 소금호수 풍경이 대단함을 알수 있다.

 

 

터키는 사계절이 있다고 한다

기후는 한국보다 약간 더운 날씨였으며, 4월말부터는 반팔을 입어야하는데...

카파도키아를 찾아가는 고속도로변의 5천미터급 주변산의 설경이 경이롭기만 하다.

 

 

 

터키의 수도 앙카라를 출발하여 중간에 소금호수를 잠시 구경하고 5시간쯤 소요되어 "카파도키아"에 도착하였다.

터키여행(3편)은 신과 인간이 만든 환상적인 경관으로 유명한 카파도키아의 버섯모양의 기암괴석들과

기독교 박해를 피해 땅속에 집을 지어 최대 3만명을 수용했다는 대규모 지하도시 "데린구유"(Derinkuyu) 등을 보여드림다.

 

몇년전 부터 많은분들이 터키여행을 권하였다.

몇번을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아내와 결혼기념으로 다녀왔는데...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무척 힘든 여행이였다.

10시간 넘는 비행시간에서 부터....도시와 도시를 이어주는 3 ~ 6시간 버스 탑승, 그리고 건조한 날씨에 무더위까지.

특히 밀(Wheat)을 주식으로 하는 터키인들의 식사와 향신료로 인해 우리와 다른 음식 문화차이의 이질감까지...

(터키는 우리나라 교민들이 많치 않아서 중간에 우리음식을 먹을 기회가 다른나라보다 많지 않았던 것도 원인중 하나)

 

"비싼 돈들어서 해외여행 다녀와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 하시겠지만 여행기란 내가 느낀바를 기록한 것이니...

누가 뭐라케도 꼭 터키여행 만큼은 다녀오고 싶다면 나이 한살이라도 젊었을때 다녀오실 것을 감히 권해 보면서...

세계 어느나라와 비교해도 제일 살기좋은 나라는 "대한민국"이라고 분명히 말씀드리면서 마칩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