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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먼나라(해외)여행

터키여행(5편) - 파묵깔레, 쉬린제 마을, 에페소 유적 등...

by 삼도갈매기 2014. 4. 9.

 

 

 

 

지중해 연안 안탈리아(칼레이지) 해변과 시내 유적(이블리 탑, 하드리아누스의 문 등)을 관람하고

자연이 만들어 낸 경이로운 산물인 노천온천수로 유명한 파묵깔레로 이동하였다.(안탈리아에서 파묵깔레 2시간 소요)

 

 

 

 

- "히에라폴리스"유적과 "목화의 성"을 만나는"파묵깔레"

 

파묵깔레는 지면에서 뿜어나온 35도 온천수가 산 표면으로 흘러나와 "노천온천"을 만들어 냈으며,

그 온천수가 흘러 넘쳐 크림색 종유석이 형성되어 "목화의 성(城)"을 본뜬 세계에서 둘도 없는 경관을 만든다.

이곳은 석회붕 온천수로 인해 만들어진 환상적인 경관과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의 풍부한 볼거리가 조합된 곳이다.

 

 

 

드넓게 펼쳐진 평원을 감싸고 있는 산허리에 하얀성이 자리하고 있었다.(위 사진) 

2km 전방에서 보면 순백색의 새하얀 목화솜을 쌓아올린 성(城) 같기도 하고,

소금산과 비슷한 비경을 보이는 파묵깔레의 목화의 성.(파묵깔레는 터키어로 "목면의 성"이란 뜻)

 

 

 

길을 따라 성스러운 도시의 대명사 "히에라폴리스" 유적이 즐비한 출입구로 입장한다...

히에라폴리스는 기원전 190년에 유메네스 2세때 세워져 로마시대의 온천지로서 2, 3세기에 가장 번영했던 고대도시다.

 

 

 

파묵칼레를 끼고 히에라폴리스라는

도시가 형성돼 있기에 파묵칼레는 역사적 유적지로서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히에라폴리스는 로마를 거쳐 동로마제국(비잔틴 제국) 시대까지 번성했으나

셀주크 투르크에 의해 정복당하고, 1350년대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고 말았다.



 

 

 

일행은 백색의 온천수가 내려다 보이는 이곳에

신발과 양말을 벗어놓고 맨발로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35도의 따뜻한 온천수가 산 아래로 소리내어 흘러간다...

너도나도 석회암 수로(水路)에 발을 담그고 피곤했던 몸을 추스리고 있다.

 

조물주는 이땅에 자연과 시간의 합작품이자 걸작품을 주었을까?.

부러움을 느끼며 정상에서 바라보니 정말로 입이 떡 벌어진다.

 

 

 

콸콸콸...

웅덩이에 쉼없이 솟아 흐르는 온천수를 만져보니 발을 담그기에 적당한 온도다.

발 아래엔 흰색 머드팩이 수북히 쌓여있으니 약간 끈적거리며 미끌미끌한 감촉이였다.

 

 

 

아저씨 뉘요?....ㅋ

 

 

 

산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소금산에 쪽빛 호수가 군데군데 있는 듯했다.

그런 광경을 보고있으려니 신의 선물치고는 너무 멋진 광경을 연출하고 있는듯....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로움 그 자체인 파묵칼레는

석회 성분을 포함한 온천수가 지하에서 솟아 공기와 만나면서 석회암으로 변한 것이다.

온천수가 산 경사면을 따라 흐르면서 물웅덩이와 종유석 등을 만들어 버렸다.

온천수에 다량 함유된 석회성분이 오랜 세월 침전되면서 순백의 비경이 탄생한 것이다.

 

 

 

파묵칼레가 형성되는 데는 무려 1만4천년이라는 영겁의 세월이 흘렀으며 1년 동안 1mm씩 증가한다.

계단식으로 형성된 새하얀 석회석 밑에는 작은 쪽빛 호수들이 군데군데 펼쳐져있어 온천욕을 즐기기에 그만이지만.
지난 1988년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한 이후 입욕을 금지시키고 맨발로만 걷게 했으니 족욕만 가능하단다.

 

 

 

 

 

 

19세기에 발굴돼 그 모습을 드러낸 히에라폴리스는 인구 15만을 자랑하는 내륙도시였다고 한다.

공중 목욕탕과 원형극장, 수로, 성벽 등 그 옛날 도시민들 삶의 흔적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기원전 1천년 전부터 파묵칼레를 찾은 그리스와 이집트인들이 있었다니, 파묵칼레의 온천수가 그만큼 효험이 있다고 한다.

파묵칼레 온천수는 심장병과 소화기 장애, 신경통, 피부질환에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로마 황제들은 물론이고

이집트 여왕인 "클레오파트라"가 가끔 목욕을 즐기고 사랑을 나눴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파트너는 안토니우스였으리라.

 

 

참고 ; 안토니우스가 등장하니 로마사 한 대목이 뇌리를 스친다.
안토니우스는 경쟁자이던 옥타비아누스 어머니와 사랑을 나누던 사이였으나, 시저가 타살되기 전 작성한 유서를 통해 후계자로 생질녀의 아들인 옥타비아누스(후에 아우구스투스)를 세우자 그리스와 소아시아(지금의 터키), 이집트 지방의 집정관으로 간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어머니와의 염문도 종지부를 찍게 된다. 안토니우스는 그 이후 알렉산드리아에서 클레오파트라를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지게 되고 이때부터 정사를 팽개치고 이집트 복장을 하며 사랑놀이를 즐기느라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 둘의 세기의 사랑이 과했을까.

옥타비아누스군에 의해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은 대패하고 안토니우스는 자결을 하며, 클레오파트라는 스스로 독사에 물려 생을 마감한다. 그의 이름과 사랑을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도록 남기고... 클레오파트라는 시저와의 사이에 아들 한 명을 두었으며, 안토니우스와의 사이에서 아들 둘을 둔 것으로 전해진다. 
 

 

 

히에라폴리스 유적 사이로 하루 해가 뉘엿뉘엿 진다...

터키의 자연경관 1호인 파묵깔레를 관람하고...터키여행 5일째 근처 호텔(C&H Hotel)에서 여장을 풀었다...

 

 

 

 

- 와인으로 유명한 "쉬린제 마을"

 

파묵깔레에서 조식후 에페소 유적이 있는 썰죽으로 이동중 와인으로 유명한 "쉬린제 마을"을 관람하였다.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로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산속을 한참 지나니 아담한 농촌마을이 나타난다..

 

 

 

쉬린제 마을 풍경

이곳 마을의 가옥들은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기 이전에

그리스 사람들이 살던 곳이라서 그리스 양식의 가옥들을 만날수 있단다...

 

 

 

 

쉬린제 마을 상점에 재미있는 장난감들이 있기에...

이 마을이 고양이의 전설이 숨어있는 마을인듯...

 

 

 

 

원래는 고즈녁하고 조용한 마을이였는데...

관광객들이 찾아오니 가정집을 개조해서 작은 가게들이 형성된듯 하다..

터키분들은 손재주가 뛰어났으니... 거의가 수공예품이리라...개구장이 스머프도 보인다(아래)

 

 

 

 

1500년 역사를 가진 산악마을로 그리스인들이 살다가 1924년부터 터키인들이 정착했단다.

이곳에 한국인이 운영한 가게가 있었는데...그곳에서 석류원액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기도 하였다...

 

 

 

 

- 소중한 유산이 가득한 역사도시 "에페소"(Ephesos)

 

 

휘황찬란했던 문명과 영화는 어디로 가고 폐허와 그리고 역사로만 남아있는 에페소.

성경에서 그 이름을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 "에페소"(에베소)에 도착.(쉬린제 마을에서 2시간 소요)

 

 

 

에페소 유적지 입구에 국내 모기업이 제공한 안내판.

한국인들의 위상을 알수 있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무척 반가웠다..

 

 

 

쉬린제 마을을 지나 에페소 주차장에 도착하니 대리석 기둥들이 마음을 바쁘게 한다.

고등학교 세계사에서 터키 역사속에서만 존재한다고 들었는데 그 현장에 도착하였으니.... 

 

 

 

에페소(에페수스)는 과거 로마제국의 화려한 역사를 간직한 고대도시다.

이탈리아 폼페이와 함께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기독교도들에겐 성지순례지로 각광을 받는 곳.

 

 

 

"바리우스(Varius) 목욕탕"

당시에 냉탕, 온탕, 열탕 등으로 구분되어 있었으며, 사우나 시설도 있었단다...

황토색 토관은 당시 사용하던 수도시설 토관으로 그 옛날에 이런 토관으로 수도시설을 했다니 정말 놀랍다..

 

 

 

천천히 둘러보며 아래쪽으로 내려가니 과거 로마시대와 헬레니즘 시대의 성벽 터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바실리카 열주(列柱)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늘어선 옆으로 소극장터인 "오데온 소극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1,500석, 23개의 계단 "오데온 소극장", 오디오라는 어원이 오데온에서 나왔단다.

2천년 전에 시낭송회와 음악회 장소였다니 인간과 역사의 숨결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먹고 살기에도 고단한 삶인줄 알았는데, 로마 귀족들은 2천 년 전에도 문화생활을 즐겼었구나!

 

 

 

아직도 형태를 띠고 있는 아치형 대리석물을 지나서 유물터를 찾아간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던 유물들이 속속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리라.

 

 

 

주변에 뒹구는 돌들은 그냥 돌이 아니라 고대에 조각된 대리석 파편이다.

두 동강으로 부러진 기둥도 알고보면 정교한 조각이 새겨진 아름다운 신전을 지탱했던 귀중한 유산.

발에 밟히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에페수스의 소중한 유산이고 보배이리라...

 

 

 

엠마우스 기념비

Emmaus("엠마우스") 의 뜻은? =따뜻한 샘물  또는 온천이란다.

 

엠마우스(EMMAUS)는 성서(누가복음 24장)에 나오는 지역명으로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후,

그를 믿는 이들이 슬픔과 실의에 빠져 있었는데. 그때 두사람의 제자가 엠마우스로 피신하여 가던 도중에,

알지 못하는 여행자와 동행하게 되었다. 엠마우스에 도착했을 때 날이 저물자,

두 제자는 그 여행자에게 "날이 저물었으니 우리와 함께 머물러 주십시요." 했다가

그 여행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임을 알고 용기와 희망을 되찾은 곳이다.

엠마우스는 용기와 희망이라는 뜻도 내포되어 있단다.(표지판에서 부분 옮김) 

 

 

 

지금도 한창 복원중인 에페소는 이곳저곳 많은 유물들이 널려있었고

그 유물들을 소중히 다루는 모습에서 옛 유적의 소중함을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곳곳엔 유물들이 산재해 있었으니...

헤라크레스의 문, 메듀사 신상, 헤르메스 신상 등의 유적들이 온통 어지럽게 널려있다...

 

 

 

니케의 여신상

승리의 여신 니케의 부조로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키의 모티브인 니케는

유일하게 날개가 있는 신으로 왼손엔 월계관, 오른손에 종려나무잎이 들려있다...

니케여신상 가슴을 만지면 복이 온다는 낭설로 가슴부위가 많이 닳았다...물론 나도 만졌다.....ㅋ

 

 

 

크레테스 거리(Curetes Street)

마차가 지나다닌 길인 중앙로의 대리석은 닳고 닳아 반질반질하나

여전히 포장도로 구실을 하고 있을 정도여서 세월의 풍상을 무색케 한다.

가장 번성했을 3,4세기엔 얼마나 웅장하고 화려했을까를 상상하면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현재의 건축기술로 볼때도 어마어마한 기술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로마 황제 오현(五賢)중 한분인 "하드리아누스의 신전" 앞에서 인증샷을 담아본다..

하드리아누스 신전은 도미티안 신전 이후 두번째로 로마 황제에게 바쳐진 신전이다.

AD.138년에 시민들에 의해 지어져 로마의 황제였던 하디리아누스 황제에게 바쳐졌다고 한다.

신전 전면 4개의 기둥 중 2개의 기둥을 잇는 아치는 이곳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유적이다.

 

 

 

여행사 인솔자 Miss Kim과 함께...

출발하면서 부터 귀국할때까지 일행과 함께한 H여행사 인솔자...

(터키 현지 한국인 교민 가이드가 별도로 동승하여 일행을 안내하고 설명해주었다)

 

 

 

스콜라스티카 목욕탕과 하드리아누스 신전 사이에 있는 공중 화장실인데 .

지극히 친환경적인 수세식 화장실 이었다고 한다....2천년전 수세식 화장실이라 믿기지 않는다.

 

 

 

에페소 유적중 가장 훌륭한 것으로 손꼽히는 "셀수스 도서관"은 

전면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의 화려한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셀수스 도서관은 A,D 135 년 C,Aquila에 의해 아시아 지역의 통치자였던

그의 아버지 셀수스 폴레마이아누스를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다.

 

 

 

이 도서관에는 세개의 문이 있는데

각각의 상단은 지혜, 운명, 지식을 상징하는 정결한 여성상들로 장식되어 있고, 한때 12,000권의 책이

소장되었던 대규모 도서관이었다고 한다..종이가 로마에 전해지기 이전이어서 양가죽을 두루마리처럼 말아

책을 제작했다고 하니까 로마가 대제국을 그냥 건설한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셀수스 도서관은 1층은 이오니아식이고, 2층은 코린트 양식 건물로 웅장, 화려, 섬세함,

아름다움의 극치라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여서 고대 건축물의 최고봉이란 찬사를 받을 만하다. .

 

 

 

아고라 장터 거리..

셀수스 도서관을 벗어나자 아고라 광장이다. 아고라 광장 우측은 각종 물품을 파는 시장이 있었다고 한다.
수천 년 동안 왁자지껄했던 시장골목이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성시를 이루니 그 어떤 개인도,

조직도, 국가도, 왕조도, 흥망성쇠 앞엔 한갓 바람 앞의 등불임이 틀린 말이 아님을 되새겨본다.

 

 

 

옛날엔 이곳이 바다와 가까운 지역이였는데

강에서 밀린 토사와 화산재로 인해 육지화 되었다고 한다..

 

 

"원형 대극장" 

피온의 언덕에 자리한 원형극장으로 리시마쿠스 시대에 지었으며, 트라야누스 황제때 모습이 남아 있다.

수용인원 25,000명이며, 지름 154m, 높이 38m의 반원형 형태이고 18m의 무대는 3층으로 되어 있으며

각종 부조와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현재도 에페소 문화예술 축제기간 중에는 이곳을 공연장으로 사용한단다.

 

 

 

로마의 황제들은 시민의 불만을 잠재우고자 도시마다 원형경기장을 짓게 했단다.

지배자들은 언제나 주민을 통제할 수단을 강구하는 법이니까.

그렇다고 볼때 에페소스의 당시 인구는 대략 25만 명쯤 된다.

이 원형경기장은 사도 바울이 주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설교를 했던 곳이자,

맹수들과의 대결에서 신비스런 강풍과 비바람에 의해 목숨을 부지했던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란다.

(객석에 앉아 있는 33명의 우리 일행들은 옛날의 그런 전설같은 이야기를 알랑가 몰라?....ㅋ)

 

 

지름 40m의 중앙무대는 청동과 도자기로 만든 확성기가 설치되어 음향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실제로 무대 한가운데에 서 있는분이 터키 민속음악을 부르는데 주변이 울림을 알수 있었다.

 

 

 

에페수스는 기원전 7세기~6세기에 최전성기를 누렸다.

에페수스 아르테미스 신전은 이 시기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에페수스는 페르시아 지배를 받으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가 헬레니즘 시대에 이르러 다시 부흥했다.

하지만 도시는 4세기 때 지진으로 완전히 폐허로 변해 버렸다. 그 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대략 2시간 동안의 에페소 유적지를 둘러보고

출입구(북쪽)로 나가기전에 뒤돌아 본 "원형 대극장"의 전경과 흩트러진 유물들의 모습들...

 

 

참고 ; 에페소의 또다른 이야기..

에페소스는 BC 7세기에 전성기를 이룬다. BC 6세기 후반에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쇠퇴하다가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과 그 부하 장수인 리시마코스에 의해 재건설돼 화려하게 부흥한다. 수십 킬로 밖에서 물을 끌어오고 흙을 밟지 않고도 살 수 있으며, 목욕문화를 즐기고 책을 읽으며 생활할 정도로 현대의 도시 모습을 창조했던 에페소스는 소아시아 최고의 항구도시로, 로마 다음가는 도시로 번성하다가 급격히 쇄락의 길을 걷는다. 지진과 화산으로 바다 밑 지각이 융기하는가 하면 지형이 변하면서 10세기부터는 아예 물이 범람해 물웅덩이가 생기고 그 웅덩이에 서식하던 모기가 말라리아를 창궐시켰다.

소아시아와 지중해, 에게해 연안의 최대의 항구도시 에페소스는 버려진 도시가 된다. 특히 수차례의 지진과 화산활동은 에페소스를 중심으로 한 이오니아 지역을,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도시를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잿더미 속에 묻어버렸다. 중세와 근세까지만 해도 간간히 전해진 역사와 성경 속에서만 존재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당시의 영화가 그마나 세상의 주목을 다시 받은 것은 130년 전부터 발굴 작업이 시작되면서부터다.

밤만 되면 가로등이 켜졌다는 에페소스는 찬란했던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성지로 인식되고 있다. 터키의 많은 유적지 가운데 성지순례지의 으뜸인 곳도 에페소스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이후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을 하며 에페소스 시민을 상대로 주 예수를 믿어 구원에 이르라고 설파했던 곳. 바울이 로마에서 전도를 하다 붙잡혀 투옥된 뒤 에페소스 교회에 보낸 편지가 신약성서의 에베소서다.

"너희는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남편을 존경하라"는 성경 구절(2천 년 전에 부인을 사랑하라니…상상이 되는 시대던가?)이 에베소서에 나온다. 에페소스는 특히 사도 요한이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성경의 요한서와 요한계시록을 쓰며 예수의 12제자 가운데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고 98세에 하늘나라로 간 곳이기도 하다. 부근에 사도 요한 기념교회와 묘가 있다...(위 내용 옮긴 글입니다)

 

 

 

에페소 유적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유적과 관련된 토산품을 팔고 있는 가게가 즐비하다... 

로마 황제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와 이곳에 체류하기도한 로마시대의 대도시 에페소 관람을 마쳤다.

 

 

 

에페소에서 버스로 3시간 거리인 "아이발릭"으로 향한다...

아이발릭으로 이동하는 중 "에게해(海)"를 배경으로 차창 풍경을 담는다...

 

 

오후 늦게 "에게해" 해변의 "Mare Hotel"에 도착하였다...

호텔 앞에 에게해의 푸른 바다물을 자세히 볼수 없음이 안타깝다.(사진 아래)

 

 

아이발릭은 위 사진속 에게해(海)의 휴양도시다...

아이발릭(Ayvalik)해변은 한여름에는 맑고 시원하며, 해변의 모래는 금빛으로 빛난다고 한다...

이곳 아이발릭 근교에는 많은 섬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쿤다섬"은 아이발릭과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일몰이 장관이라고 한다...

 

다음편(6편)은 터키여행의 마지막 편으로 "차나칼레"로 이동하여 고대도시 "트로이"에 도착하여, "호모"의 소설 트로이 목마와

트로이 유적지를 관람하고, 터키여행의 출발지였던 이스탄불로 이동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