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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부산,경남여행

밀양여행(전편) - 영남루, 월연정, 밀양호, 표충비 등 관람

by 삼도갈매기 2014. 5. 12.

 

 

 

 

2014년 5월 11일(일요일)

유유자적 회원 30여명과 경남 밀양으로 나들이 하였다.(밀양 이팝투어로 오랫만에 나들이였다...)

부산에서 신대구고속도로를 40여분 달려 첫번째 관람지 밀양 "영남루"(嶺南樓)에 도착하였다.

 

 

 

영남루 입구에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귀한 생명들에 대한 리본이 마음을 울적하게 한다..

부디 아픔없는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잠드시길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 영남루(嶺南樓) 및 주변 관람

 

 

밀양시 내일동에 자리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누각건축인 "영남루"(嶺南樓)

유유히 흐르는 밀양강과 함께 강위 교각(橋閣)에서 아름다운 영남루를 조망해 본다..

 

 

 

밀양영남루(密陽嶺南樓)- 보물 제147호.

신라 법흥왕 때 세워진 영남사(嶺南寺)의 작은 누각 자리에 1365년(공민왕 14) 김주(金湊)가 창건한 것이다.

그후 여러 차례 소실과 재건이 거듭되었는데,1611년(광해군 3) 객사를 영남루 북쪽에 새로 지으면서 부터이다.

지금의 건물은 1844년(헌종 10)에 부사 이인재(李寅在)에 의해 마지막으로 재건된 것이다.

 

 

 

영남루의 동쪽에는 능파각(凌波閣), 서쪽에는 침류각(枕流閣)이라는 2채의 부속건물이 있는데

그 중 낮게 위치한 침류각은 3단계로 낮아지는 계단건물로 연결되어 있어 전체 외관에 변화와 조화를 추구한 점이 주목된다.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라고 편액된 누각답게 밀양강을 끼고 절벽 위에서 굽어보는 주변 경관이 뛰어나

진주의 촉석루(矗石樓), 평양의 부벽루(浮碧樓)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누각으로 불린다.(Daum백과사전에서....)

 

 

 

영남루각에서 바라본 밀양강 주변 풍경(위 아래 사진)

영남루 야경(夜景)은 밀양 8경중 하나며...사진속에 보이는 밀양강을 끌어안은 풍광은 아름다움 자체이며,

누각의 처마 끝은 눈을 감으면 시(詩)한수에 풍류를 즐겼을 성현들의 즐거움이 베여 있는듯 하다.

 

 

 

 

 

영남루와 마주하고 있는 "만덕문"(萬德門)을 지난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천진궁이 나타난다. 만덕문은 천진궁의 정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천진궁(天眞宮)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7호)

조선 현종 6년(1665)에 처음 건립하였으며 본디 이 건물은 역대 왕조 시조의 위패를 모신 拱振館의 부속 건물로 사용하다가 경종 2년(1772)부터 공진관을 대신해 위패를 봉안하여 객사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 헌병대가 역대 시조의 위패를 땅에 묻고 건물을 감옥으로 쓰기도 하였다.

 

천진궁은 남쪽을 향해 중앙에 단군의 영정과 위패를, 그 왼쪽 벽에 부여, 고구려, 가야의 시조 왕과 고려 태조의 위패를, 오른쪽 벽에는 신라, 백제의 시조 왕과 발해 고왕, 조선 태조의 위패를 각각 모셨다.1957년 대종교 산하단체인 단군봉안회에서 건물의 이름을 천진궁이라 하고 정문을 만덕문이라 하였다. 이후 매년 음력 3월 15일 御天大祭, 음력 10월 3일 開天大祭를 지낸다. 천진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주심포식 건물로 대리석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높은 기둥을 세웠다.(근처 표지판에서...)

 

 

 

천진궁 바로 옆에 세워진 "단군 할아버지 석상"

오른쪽 비석을 보면 12자의 글자가 암각되어 있는데...가방끈이 짧아서....ㅋ

 

 

 

 

이고장 출신 박정희 해설사를 모시고 밀양 여행을 하였다...

밀양아리랑 노래비가 새겨진 곳에서 "밀양아리랑" 노래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근처에 이고장 출신의 작곡가 박시춘 선생의 생가도 있다..)

.

 

 

밀양아리랑 노래비가 세워진 계단을 따라 오르면

사진속 "사명대사동상"(四溟大師銅像)을 만난다.(아래사진 참조)

 

 

 

 

영남루 왼쪽에 "무봉사"(舞鳳寺) 사찰을 찾아간다.

무봉사(舞鳳寺)는 밀양강을 굽어 강 언덕에 우뚝 솟은 영남루와 조화로 그림같은 풍경을 지닌 운치있는 사찰로 신라 제36대 혜공왕 9년(773)에 法照선사가 蘇寒山 영남사에 주석하던 중 하루는 하늘 나라 큰 봉황새가 춤을 추며 이 절터에 내려앉는지라 대중이 상서라 하여 환희하며 큰 선사를 받들어 모셨는데 마침 혜공왕이 영남사에 참배하였다가 선사의 법문에 개심하여 법은을 갚고자 하여 암자를 지어 무봉암이라 하고 산 이름을 무봉산이라 하였다

 

조선 선조 25년(1592) 조일전쟁으로 이 사찰이 불타자 선조 38년(1605) 慧澄선사가 법당, 칠성각, 수월루, 요사를 중창하였다.

현대에 와서 허물어진 법당과 요사를 중창하고, 범종 2,500근을 조성하여 밀양 8경의 하나인 ‘무봉암 晩鐘’을 갖추었다.

1991년 법당 7칸과 요사 5칸을 중창, 종각, 일주문, 대문 등을 창건하고 5층석탑, 무봉사 사적비를 세웠다. 현재는 통도사의 포교당임.(다음 백과사전에서...)

 

 

 

 

무봉사 대웅전정면 7칸, 측면 2칸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대웅전 내부에는 보물 제 493호인 석조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신중단, 지장보살, 대세지보살, 독성 산신탱이 봉안되어 있다.

 

 

 

 

무봉사 사찰에서 바라다본 밀양강 풍경

약간 더운 날씨였는데...강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니 사찰에서 들리는 풍경소리와 함께....

 

 

 

 

영남루 아래에 자리한 "아랑사"(阿嫏祠)를 찾아가는 길이다..

아랑사는 죽음으로 순결을 지킨 아랑의 전설 주인공인 아랑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아랑사 내부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6호)

조선 명종(1545~1567 재위)때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여 마을 사람들이 사당을 세워 혼백을 위로했다고 전하지만 자세한 사실은

알 수 없다, 1930년 영남루를 중수하면서 "정순아랑지비"라는 비를 세우고 비각을 지어 아랑사라 하였단다.(아랑이야기는 생략)

지금의 아랑사는 1965년 낡은 비각을 헐고 그 자리에 3칸짜리 사당과 삼문의 정문을 다시 지었다. 매년4월 16일 아랑제를 지낸다.

 

 

 

잔잔한 밀양강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후...

근처 주차장에서 전용버스로 용평동에 자리한 "월연정"(月淵亭)으로 향하였다...

 

 

 

 

- "월연정"(月淵亭) 관람

 

조선시대 별장 건물로 중종 15년(1520)에 조선 중기 문신인 월연 이태가 지은 정자다.
이태는 중종 14년(1519)에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인 이곳으로 내려와 월영사(月影寺)가 있던 옛 절터에 월연정을 지었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영조 33년(1757)에 6대손 월암 이지복이 복원하였고, 고종 3년(1866)에 다시 고쳐 지으면서 근처에 있던 월연대(月淵臺)를 수리하였다. 월연정과 월연대가 한데 어우러져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정자의 기능을 잘 살리고 있는 곳이다.

 

 

 

월연정 입구에 도착하였다.

사진 왼편에 커다란 "월연터널"이 보인다...

예전엔 월연터널은 기찻길이였는데 지금은 보수하여 자동차가 다니고 있다.

 

터널 길이 130m, 폭 3m이며, 백송터널이라고도 불리며, 주변경관이 아름다워 영화 "똥개"의 촬영지란다..

 

 

 

 

 

낡은 다리를 건너서 월연정을 찾아가는 길이다..

2년전 가을에 밀양 둘레길을 걸을때 이곳에 왔었는데....감회가 새롭다.

 

 

 

월연정 주변에 흰소나무 "백송"(白松) 한그루

이곳의 백송은 천연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되었다가 최근에 해제 되었단다. 

일전에 충남 예산에서 보았던 백송보다 더 하얀색을 띄고 있으니....어찌 소나무가 흰색일까?...

 

 

 

우뚝 솟은 언덕에 자리한 "월연정"

2년전에 왔을떄도 출입문이 굳게 잠겨 있더니....오늘도 잠겨있다. 

 

 

 

 

월연대 관람을 못하고 근처에 있는 "쌍경당"(雙鏡堂)을 관람하였다.

덥기도 하여 일행은 마루에 걸터 앉아서 이고장 출신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이 건물들 외에 탄금암, 쌍천교 등의 유적과 백송, 오죽(烏竹) 등의 희귀한 나무들이 있다.

 

 

 

 

- 밀양 다목적댐 관람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에 있는 밀양다목적댐은 지역에 수도물과 전력을 공급하고 홍수를 조절하기 위해

2001년에 완공하였으며, 높이 89m, 길이 535m, 총저수량 7,360만톤 규모의 다목적 댐이다..

 

 

 

기존 댐과는 달리 수몰지역에서 키운 수목으로 자연생태공원을 조성하는 등 환경친화적으로 건설되었으며

전망대와 자연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주변에는 가지산, 운문산, 천황산, 영취산 등이 있어 주변경관 또한 아름답다.

 

 

 

 

밀양정수장 물이 세계 물맛대회에서 10위 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

밀양은 산과 계곡이 깊어 깨끗한 수질을 자랑하는 곳임에 틀림없는듯 하다.

 

 

 

 

- 이팝나무 가로수 길에서...

 

이번 여행이 "밀양 이팦나무 투어"였으니...

근처 표충사 가는 길목의 이팝나무 가로수길에서 잠시 차량을 멈추고 인증샷을 담는다.

 

 

 

매년 5-6월경이면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아불마을에서 밀양댐까지 6km구간에

눈꽃처럼 하얗게 피어난 이팝나무의 빼어난 경관이 펼쳐진다.

 

 

 

올해 8회째 열리는 이팝나무축제는 밀양댐에서 평리마을까지 2km 구간의 이팝꽃길걷기대회를 비롯해,

메밀묵만들기, 뗏목타기, 평리마을 전경사진콘테스트 등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로 자연과 환경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하는데...올해는 세월호 여객선 참사로 인하여 축제가 취소되었다고 한다...

 

 

 

 

 

이팝나무라고 불리우게된 경위가 재미있다...

매년 이맘때 24절기중 하나인 "입하"절기에 피는 꽃이라고 하여 입하가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와

쌀밥(이밥이라고도 함)처럼 보인다 하여 이팝나무라고 불려지게 되었다는데...아무튼 둘 중 하나임엔 틀림없을 듯..

 

 

 

 

이팝나무 가로수 길에서 바라다 본 밀양의 아름다운 풍경

 

 

 

 

- 땀 흘리는 비석 - 표충비(表忠碑) 관람

 

밀양시 무안면 무안리 무안지서 바로 옆에 자리한 시도유형문화재 15호로 지정된 "표충비"를 관람하였다.

국가 유사시 땀을 흘린다고 했으니....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땀을 흘리는지 여부를 확인차 이곳에 찾아왔다..

 

 

 

 

"삼비문"(三碑門) 출입문 앞에서...

사명대사의 충절을 기리고 있는 비(碑)로, 일명 ‘사명대사비’라고도 불리운다.

 

밀양에는 예로부터 4대 기적이 전해 오고 있는데...그 중 하나가 땀 흘리는 비석으로 유명한 표충비이다.

1742년(영조 18)사명대사의 5대 법손인 태허당 남붕(太虛堂 南鵬)선사가 사명대사와 서산대사의 공적을 기리고자 세운 것으로

오석(烏石)이라 불리는 검은 돌로 만들어졌는데...이 비석은 나라에 큰 일이 생길때 땀을 흘리는 신비의 비석으로 유명세를 탄다.

 

 

 

삼비문을 통과하면 잘 가꾸어진 잔디밭을 지나 정면의 표충비를 바라다 볼수 있다...

표충비의 땀은 짠맛이 나며, 죽어서도 나라를 걱정하는 사명대사의 눈물이라는 설이 있지만 그 원인은 풀지못했다고 한다..

 

 

 

표충비 앞에 자라고 있는 300년된 향나무 - 경상남도 기념물 제119호

향나무는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제사 때 향을 피우는 용도로도 쓰이며 정원수·공원수로 많이 심는다. 밀양 무안리의 향나무는 무안리 표충비각 뜰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나이는 3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5m, 가슴높이 둘레 1.1m 이다. 향나무는 원래 곧게 자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이 나무는 원줄기를 자르고 옆가지가 팔방으로 뻗게 하여 녹색의 큰 나무 양산을 펼쳐 세워 놓은 것 같은 모습으로 다듬고 가꾼 형태이다. 이와 같은 모양으로 가꿔진 향나무는 전국에서 이곳 밖에 없다. 유래를 보면 1738년에 사명대사의 5대 제자인 남붕선사가 사명대사의 표충비(表忠碑)를 세운 기념으로 심었다고 한다. 밀양 무안리의 향나무는 오랜 세월 사람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서 자라온 희귀한 형태의 나무로, 현재는 밀양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표충비각(表忠碑閣) 앞에서...

비각 앞에서 참배를 드리는 사람이 많다...(여행중 유일한 내모습, 카페에서 옮김)

 

비각을 보호하기 위해서 창살로 촘촘히 막아 두었는데....사진기로 겨우 사진을 담아본다..

세월호 참사로 시국이 어수선하니 표충비각은 땀을 흘리고 있을까?...전혀 흘리고 있지 않았다.

 

 

 

비(碑)는 네모난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맨 위에 머릿돌을 얹은 구조로, 특이하게도 비몸은 까만 대리석을 사용하였다.

비문에는 표충사(表忠寺)의 내력, 서산대사의 행적, 사명대사의 행적 등을 4면에 고루 새겨 놓아, 서산대사의 제자이기도 한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당시 스승의 뒤를 이어 의병을 일으켜 활약한 사실, 가토 기요마사와의 담판내용, 정유재란 이후 선조의 어명을 받들어 일본에 건너가 포로 3천여명을 데리고 온 사실 등을 적고 있다.

 

조선 영조 18년(1742)에 세운 비로, 이의현이 비문을 짓고, 김진상이 글씨를 썼다. 앞면 윗쪽에 새겨 놓은 비의 명칭은 유척기의 글씨이다.

국가에 큰 어려움이나 전쟁 등의 불안한 징조가 보일 때에 비에서 땀이 흐른다 하여 ‘땀 흘리는 표충비 ’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사명대사의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지금까지 전해진 결과라 하여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과연 표충비는 언제쯤 다시 땀을 흘릴까?

해설사 설명에 의하면 금년 1월에 땀을 흘렸는데...그게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을듯 하다고 했으니...

 

 

 

죽어서도 나라를 걱정하는 사명대사의 눈물이 땀으로 표출된 것일까?

일제때는 땀 흘리는 비석을 두려워 하는 일본 경찰이 비석을 조각내어 땅에 묻었을 정도라고 했으니...

 

전통문화와 충효예절을 숭상하는 유서깊은 학문의 고장 밀양여행 전편을 마치면서...

후편은 사명대사 생가와 유적지 그리고 영산정사(寺)와 이팝나무 등이 아름다운 위양지 관람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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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밀양 8경(八景)

제 1경 ; 영남루 야경                   제 2경 ; 밀양 호박소

제 3경 ; 표충사 사계(四季)           제 4경 ; 월연정 풍경

제 5경 ; 위양못 이팝나무             제 6경 ; 만어사 운해

제 7경 ; 종남산 진달래                제 8경 ; 재약산 억새

 

 

참고 ; 밀양의 3대 신비(神祕)

- 여름에 얼음이 어는 얼음골

- 사명대사 비석에 흐르는 땀

- 종소리 나는 만어사의 경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