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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장거리 여행

충북 제천시 한국 천주교의 성지 "배론성지"관람

by 삼도갈매기 2014. 9. 18.

 

 

 

 

충북 제천여행을 다녀온지 4일쯤 되었는데 기록을 하지 않으니 자꾸 잊혀지려고 한다....

다산 선생의 "둔필승총"(鈍筆勝聰, 둔한 기록이 총명한 머리보다 낫다) 라는 말씀을 다시한번 새긴다..

 

 

 

제천 10경중 제1경인 "의림지"관람을 마치고,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에 자리한 "배론성지"로 향하였다.

배론성지는 제천 10경으로 첩첩산중 계곡이 깊어 마치 배(船) 밑바닥 같다고 주론(舟論)또는 배론이라 부르며,

배론성지는 한국 천주교 전파의 진원지이며, 천주교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곳이라고 한다...

 

 

 

배론성지에 도착하니 잘 가꾸어진 파란잔디 위에 아담한 성당이 보인다.

이곳은 1801년 신유박해때 천주교인들의 운둔생활지였으며,

우리나라 최초 근대식 학교인 성요셉 신학교가 있던 곳이다..

 

 

 

 

 

위 사진의 "묵주의 기도(로사리오)길"을 따라 조금 위쪽으로 걸어가면

아래 사진의 "성모님께서 예수를 잉태하심"이란 글이 새겨진 표지판을 지난다...

 

 

 

 

 

"순례자들의 집" 전경

건물이 특이하다 했더니 입구 기둥에 "자랑스런 건축상 최우상 건축물"이란다..

본 건물내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예약했으니...저렴한 가격에 식사를 할수 있으며, 미리 예약해야 한다.

 

 

 

순례자들의 집 내부 모습(위 사진에 재밌는 글이 있기에.....ㅋ)

 

"알려드릴께여~~ 식사 맛있게 하시고 반납하실때 말입니다, 고걸 포개지 말고 그냥 낱개로 주실래여?

왜냐면유, 고곳이 생각보다 분리하기가 간단치 않더라구유~ 밍구스럽구먼유"....충청도에 왔음을 실감했다....ㅋ

 

 

 

 

 

반찬은 5가지로 소박했지만, 뷔페식으로 자율배식이다..

특히 도토리 묵이 맛있으며, 시원한 아욱국이 입맛을 돋기에 충분하였다.

 

 

 

 

아침 일찍 출발한 관계로 아침밥을 걸렀더니 배가 고프다

식사량이 많은 오른쪽이 서방님 밥이요, 왼쪽은 다이어트 중인 마님 밥....ㅋ

 

 

 

 

 

 

배론성지는 천주교사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충청북도 기념물 제118호로 지정되었고,

인들을 위한 순례코스를 만들어 두었는데, 약식코스, 기본코스, 묵주기도코스, 박달재 산행코스, 묘재,

용소막코스, 제천관광경유코스가 있다. 피정은 개인피정과 단체피정이 있어 미리 신청하고 방문하면 된단다..

 

 

 

 

 

 

성지 한켠엔 기독교 서적 등을 전시판매하고 있었다.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물품을 구입하는 듯...

 

 

 

 

현지식으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양업교(橋)에 집결, 유경옥 해설사의 배론성지와 관련된 설명을 듣는 중

교각명은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사제가 된 최양업(崔良業) 신부를 기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崔良業도마神父기념성당"

최양업신부의 성덕을 기리며 시복시성을 기원하기 위해 건립된 이 성당은 배(船)모양으로 시공되어 있었으며

노아의 방주를 연상해 건립했다는 설명...사나운 세상의 풍랑속에서 안전하게 하느님 나라를 향하는 배를 연상시켰으리라.

 

 

 

 

 

성당앞 최양업신부의 동상앞에서....

갓을 쓰고 한복을 입은 최양업신부는 불굴의 선교의지를 보이신 분으로 부모님들도 순교자다..

1836년 12월 김대건, 최방제 등과 중국 마카오와 프랑스로 유학, 신학교육을 받고 1849년 4월 중국 상해에서 사제로 서품....

 

 

 

 

 

배론성당내부 모습

배론대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천장이 배(船) 모형으로 둥글게 곡선을 이루고 있다.

입장할때부터 모두 모자를 벗고 입장하였으니 경건한 맘으로 잠시 묵상에 잠겼다.

 

 

 

 

 

성당 뒷편에 있는 "최양업신부 조각공원"에 도착하였다..

조각공원이라지만, 조각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은 아니고, 제사를 지내는 중앙제대를 중심으로

최양업신부의 일대기가 조소판에 새겨져 있다. 그 앞에는 지역에서 순교하신 분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들이 놓여져 있었다.

 

 

 

 

 

 

최양업신부의 일대기를 천천히 읽어보면서

문경에서 선종할떄까지 12년 동안 사제의 본분에 힘쓰신 내용을 새기면 좋겠지만 시간이 없어서.....

 

 

 

 

 

 

배론성지는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인 성지 중 한 곳으로,

조선후기 천주교도였던 황사영이 머무르며 '백서'를 썼던 토굴과

성요셉 신학교, 최양업 신부의 묘가 있는 곳으로 대성당, 배론성당, 성요셉성당, 소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순교자의 집" 앞에서 유경옥 해설사의 설명은 계속 이어진다..

이곳은 한국 천주교의 두번째 사제인 최양업신부의 묘소가 있는 곳이며,

한국 천주교의 103인 성인 중 장주기가 활동했던 곳으로 한국 천주교 신학교의 요람인 성 요셉신학당이 자리하고 있다.

 

 

 

황사영순교현양탑(黃嗣永殉敎顯揚塔)

현양탑 높이 20m, 입체사면 종탑 누각형으로, 앞에는 순교자 황사영의 동상이 서있다.

그는 어린시절 진사에 합격했으니 나이가 차면 버슬을 얻게 되었지만 안락한 삶을 버리고

이곳 옹기가마로 위장한 토굴속에서 8개월 숨어 살다가 안타깝게 순교했다고 전한다...

 

 

 

 

 

성요셉신학교 정문...

1801년 신유박해를 피해 많은 천주교인이 숨어든 배론의 산골에서

천주교 지도자 황사영은 북경 주교에게 조선의 박해상황과 구원을 요청하는 백서를 썼다가 발각된다,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군대를 보내달라는 내용이 화근이였다. 이곳에서 옹기를 구우며 신앙생활을 하던 신도들은 모두 처형을 당한다.

 

 

 

 

 

聖요셉聖堂

프랑스 신부들이 세운 이 신학교는 어린학생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치는 동시에

성직자를 양성했으며, 1866년 병인 박해로 많은 신부와 신도가 처형당하고 학교도 폐쇄되었다.

 

 

 

 

황사영순교헌양탑 오른편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배론으로 숨어 들어와

화전과 옹기를 구어 생계를 유지하였던 가마터인 "황사영 토굴"을 모형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었다.

 

 

 

 

 

초가집으로 복원된 당시의 배론 신학교

관련 내용은 아래 사진으로 갈음함.

 

 

 

 

 

초가집인 배론 신학교 내부 모습.

신학교(神學校)는 천주교 성직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시키는 학교로 프랑스인 신부들이 설립했다.

교과목은 철학과 신학을 중심으로 서양의 학문과 문물을 주로 가르쳤으며, 동.식물.지리학.의학도 가르쳤지만, 라틴어가 특히 중시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초.중.고등교육을 함께 실시한 근대 학교로, 충북기념물 제118호로 지정되었으며, 6.25전쟁때 불탄 성요셉신학교는

2003년 복원되었고, 신학교 마당에는 당시 학생들을 가르치던 신부님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고, 학교 안에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조형물과 함께 전시하고 있었다.

 

 

 

 

 

 

 

성요셉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외국인 교수 동상

사진 오른쪽 성요셉 신학교 교수 - 프리나 콜라 신부(1866년 3월 새남터에서 순교)

사진 왼쪽 성요셉 신학교 교수 - 푸르티에 신부(1866년 3월 새남터에서 순교)

 

 

 

 

배론 신학교 뒷편에

"황사영 백서가 쓰여진 토굴"

 

 

 

 

 

토굴안는 실물크기의 "백서"(帛書)가 전시되어 있다.

하이텍 펜으로 쓴것으로 비단종이에 빽빽히 적혀 있었는데 어두운 곳에서 어떻게 작은 글씨를 썼을까?

백서를 전달하지도 못하고 순교 당했지만 불행중 다행인 것은 백서의 원본은 로마 교황청에 보관되어 있단다.

(참고 ; 백서는 가로 62cm, 세로 38cm되는 흰 명주 비단에 한줄에 110자씩 122행 13,384자로 작성됨)

 

 

 

한옥누각으로 된 배론성지 본당 옆으로는 두 팔을 벌리신 예수상과 성모마리아상이

연못속에 그대로 반영되어 배론성지의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단풍이 곱게 물들어가는

배론성지의 초가을 풍경을 연못은 말없이 슬픔을 간직한체 옛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다.

 

 

 

 

배론성지는 우리나라 개화의 출발지라는 또다른 의미도 있으며

성지 경내에는 아담한 정원과 성당들, 사제들의 묘소와 호젓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박해"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고,주변 경치가 아름다워 제천 10경에 선정되기에 충분했다.

"윤경씨, 오늘 배론성지에서 천주교 관련 공부를 많이 했는데...성당에 다닐까유?"

 

 

 

 

배론 대성당을 정면에는 빨간색 원형으로 표현된 '약속의 땅으로 가는길' 미로가 그려져 있다.

미로는 인생여정을 나타내는 것으로, 유소년기를 거쳐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가 있듯 인생은

어느 과정을 생략하지 못하고 일일이 거쳐야만 목적지에 다다르는 지름길없는 인생임을 표현하고 있다.

참고 견디면서 묵묵히 걸으면 반드시 약속의 땅으로 갈 수 있으니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인생길을 짚어갈 것을 이야기하는듯...

 

 

 

 

70여채의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배론은 조선후기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면서

천주교인들이 숨을 곳을 찾아 배론으로 하나둘씩 모여들어 자연스럽게 천주교 신자촌이 형성되었다.

지금은 각지에서 성지순례 신자들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한국 천주교의 성지가 되었지만,

그 옛날엔 살기 위한 피신처로서의 슬픈 역사의 배론이였으리라.

(참고 ; 그외 천주교 원주교구인 베론성지 안내 http://www.baeron.or.kr/ )

 

 

천주교 신자였더라면 내용을 더욱 알차게 꾸며 많은분들에게 호응을 받았을텐데....

그렇치 못함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시기 바라며, 제천여행 마지막편은 해발 531m 비봉산을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서 제천의 명물 "청풍호"(충주호)의 푸른 자태를 감상했던 이야기로 꾸밉니다, 감사합니다..

 

 

 

                   - 참고 ; 제천 10경(景) -

 

제 1경 ; 의림지                       제 6경 ; 용하구곡
제 2경 ; 박달재                       제 7경 ; 송계계곡
제 3경 ; 월악산                       제 8경 ; 옥순봉
제 4경 ; 청풍문화재단지            제 9경 ; 탁사정
제 5경 ; 금수산                       제10경 ; 배론성지

 

P.S ; 제천 10景 바로가기 → http://tour.okjc.net/main/culture/tourism/contentList.do?menuNo=14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