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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먼나라(해외)여행

발칸반도 여행(7편) - 크로아티아 "드브로브닉"(구 시가지 및 성벽투어 등)

by 삼도갈매기 2015. 5. 31.

 

 

 

 

 

 

 

 

크로아티아의 "스플릿"(Split)을 출발

아드리아해(海) 보석, 지구상의 낙원 "드브로브닉"(Dubrovnik)으로 이동하였다.

 

 

 

 

 

스플릿에서 드브로브닉까지는 전용버스로 4시간이 소요된다..

 

4시간이 지루하지 않는 것은 아름다운 아드리아해의 바다를 조망하면서

1,100여개의 유, 무인섬들을 감상할수 있으니 지루할 틈이 없었다...

 

 

 

 

 

 

 

아드리안 해안 남부의 드브로브닉을 찾아가는 해안길...

이 해안길은 1991년 내전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주변국의 도움으로 복구되어 현재는 전세계 관광객이 찾는 길이다.

 

 

 

 

 

 

 

 

이번 발칸반도 4개국 여행 중

가장 아름다운 도시 "드브로브닉"(Dubrovnik)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지중해 중심도시로 16~17세기때 베네치아와 함께 무역도시로 번창한 곳이다.

 

돌출된 바위 지형에 두브로브닉 시(市, 주)가 생겨난 것은 7세기 경,

전쟁등의 격정적 역사를 거치고 때로는 여러나라들과 타협을 해야할 상황이였지만

19세기에 이르기까지 크로아티아에서 유일하게 값진 독립을 유지해온 지역이다.

 

 

 

두브로브닉(Dubrovnik)시는 강한 바위벽으로 둘러 쌓였고

관공서와 광장, 좁은 중세거리의 주택들은 로마와 고딕시대 스타일을 띠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강한 자부심으로 현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도시다.

 

 

 

 

 

 

 

 

 

- 스르지산(山) 전망대에서 "드브로브닉"을 조망

 

드브로브닉에 도착 케이블카를 타고

구시가지를 감싸고 있는 "스르지산"(山)에 올랐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케이블카가 운항하지 않아 택시로 이동하여야 한다.

 

 

 

 

케이블카에 탑승하여 주변 풍경을 감상한다...

사진은 많이 담았지만, 지면상 전부를 보여줄수 없음이 안타깝다..

 

 

 

케이블카 탑승 5분만에 산정상에 도착하였다.

 

정상엔 관광객들이 잠시 쉴수 있는 작은 노천카페와

내전당시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십자가가

이 도시의 슬픔을 말해주는듯 새워져 있다.

 

 

 

유럽인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휴양지,

세계인들이 모두 인정하는 "아드리아해의 진주"

그리고 크로아티아 여행에서 절대로 빼 놓아서는 안될 도시

이곳이 바로 크로아티아의 대표적인 해안도시 드브로브닉의 풍경이다

 

이 장면을 보기위해 이번 발칸반도를 여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으니...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쪽빛의 바다와 주황색의 지붕들...

오랜 세월 굳건히 견뎌온 성벽안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구시가지의 아담한 지붕들 모습이

지금까지 다녀온 다른나라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또하나의 새로운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듯 하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드브로브닉의 시가지가 끝없이 펼쳐지는데...

저녁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아름다운 아드리아해를 붉게 물들이려고 한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이곳에서 아드리아해의 저녁노을을 함께 감상할수 있다면...

 

 

 

 

산 정상에는 관광객들의 안전을 위해 안전펜스가 설치되어 좋은데...

인물 사진을 찍기에는 펜스가 뒷 배경을 가리니 아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안전펜스로 뒷배경이 흐려 인물사진에 방해가 되어

통제구역을 벗어나 바위에 걸터 앉아 사진을 담아본다...

 

사진속 바위 아래는 깍아지른 절벽으로 위험한 구역인데....

아내 친구가 "김치"하다가 뒤로 넘어질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으니.....ㅋ

 

 

 

좌측의 "로크룸 섬"(Lokrum Island)

드브로부닉항에 인접한 섬으로 유네스코 특별산림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으며, 1023년 베네딕트 수도원으로 알려진 섬.

베네딕트 수도원은 1667년 대지진으로 흔적만 남아 있으며, 1859년 오스트리아 막시밀리안 황제가 별장을 지었다

86m의 산 정상에는 프랑스군이 건설한 Port Royal Castle이 있으며, 지금은 막시밀리언 탑이라고 불린다.

섬에서 수영이 가능하며 이곳은 누드수영장으로 유명하며 섬내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된 곳이다.

 

 

 

20여분쯤 머물다가 케이블카로 내려가는 중이다.

산 위에서 본 드브로브닉의 수채화 같은 풍경은 오랫토록 기억될것이다.

 

 

 

이후,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드브로브닉 구시가지 투어에 나섰다.

 

 

 

 

 

 

 

 

- 드브로브닉 구(舊)시가지 투어

 

어제는 스르지산 전망대에서 드브로브닉의 옛 시가지를 조망 했다면

오늘은 어제 조망한 구시가지를 걸으며 그곳의 주요 명소들을 둘러보기로 한다.

 

 

 

구시가지의 서쪽 출입문 "레문"(Pile Gate)

1471년 건축가 파스코예 밀리체비츠(Paskoje Milicevic)에 의해 건설된 고딕양식의 석조물.

석조다리와 필레문 사이에는 목재 도개교가 놓여있는데 출입 통제로 도시를 방어하는 역할을 했단다.

아치형으로된 문 위에는 수호성인 성블라이세(Sveti Vlaho)석상이 있다,.

 

 

 

필레문을 통하여 성안으로 들어오면 사진에서 처럼 좌우로 르네상스식 고딕 건물들이 즐비하다..

대리석이 깔려있는 이 거리를 "플라차 거리"라고 하며, 이곳의 중심거리며 보행자 거리라고 한다.

단조로운 건물들은 1667년 대지진 전까지는 화려했지만 이후 재건축하면서 화려함을 잃었다고 한다

 

 

 

종탑이 있는 "루자광장"(Trg Luza)

프라차거리 동쪽 끝에 있는 스폰자 궁, 구 시청사, 렉타궁전, 대성당과 인접해 있다.

종탑앞에는 오노프리오 분수를 만든 건축가의 다른 작품인 작은 분수가 있다.

1816년 화재로 인해 소실되고 1882년 재건되어 지금은 시의회로 사용중이다.

 

 

 

스폰자 궁(Place Sponza)

구시가지의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중 하나로

입구 필레문을 건설한 건축가 파스코예 밀리체비츠의 또다른 작품이다.

성 사비오르 성당에 이어 1667년 대지진에도 손상을 입지 않았으며

고딕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을 함께 볼수 있는 특징이다.

 

교역물을 취급한 세관 건물로 지었는데 그후 병기고로도 사용되었다,

현재는 내전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사용된다.

 

 

 

성 블라이세 성당(Crkva svetoga Vlaho)

도시의 수호성인 성 블라이세를 기리는 성당으로 전면부 지붕 위에는 금빛 추교관을 쓰고

한손에는 구시가지, 다른손에는 주교봉을 끼고 있다. 14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었으며

베네치아 건축가 마리노 그로펠리에 의해 재건축된 성당이다

 

성당 앞(사진 오른쪽)에는 칼을 든 "롤랑의 기둥"(Oriandov Stup)이 세워져 있다.

이 기둥은 중세유럽 최대 서사시 "롤랑의 노래" 주인공으로 롤랑(Roland)의 손에는 칼(검)이,

왼손에는 방패가 들려 있다, 칼의 이름은 "듀란달"이라 부르며, 천사가 하사한 명검으로

죽을때까지 충성을 다한 중세기사의 모범을 보여주는 롤랑의 기둥은 자유와 평화를 상징한다..

 

 

 

"마린 드르치지"(Marin Drizc)

16세기 크로아티아의 유명한 극작가.

이분의 코, 손, 무릎 등이 유독 반질거리는데,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설(說) 때문이란다

 

 

 

렉타 궁전(Knezev Dvor)

드브로브닉 행정의 중심 건물로 공화국의 집무실로 사용되던 건물.

1435년 폭발로 오노프리오 델리카바에 의해 고딕양식으로 복원되었으며,

그후 1463년 두번째 폭발과 1667년 대지진으로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이 가미되었다,

 

현재는 도시 박물관으로 사용되며,

건물입구에는 사후에 자신의 재산을 기부한" 미호 프리겟" 흉상이 재작되어 있다,

 

 

 

렉타궁전 2층에서 바라다

본 드브로브닉 구시가지 건축물들

 

 

 

드브로브닉 대사원

성 브라이세의 유품과 드브로브닉의 금 세공사가 만든 138개의 금 세공품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이외에도 구시가지 플라차 거리에는 오노플리안 분수, 프란체스코 수도원, 성 사비오성당 등이 있지만

지면상 이곳에 보여주지 못했으며 이곳 성당들의 특징은 화려함 보다는 경건함과 소박함을 중시한듯 하다.

 

 

 

드브로브닉 구시가지의 옛 건축물들은

일직선상 280m정도의 거리로 2~3시간이면 투어를 마칠수 있었다...

구 시가지 서문으로 입장하여 동문으로 나오니 푸른 바다 아드리해가 반긴다..

 

 

 

 

 

 

 

 

 

- 드브로브닉 "연안 크루즈" 투어

 

크루즈 투어라고 하니 거창하게 들리는데...

작은 보트를 타고 아름다운 아드리아해를 감상하면서

드브로브닉 성벽 해안 절경을 2시간쯤 투어했던 이야기다.

 

 

 

작은 보트에 올랐다.

바다, 배(船), 파도 이야기만 하면 뱃멀미를 하는 아내인데...

 

 

 

 

쪽빛으로 물들인 아드리아해(海)

무섭게 파도가 치면 더욱 운치가 있을텐데...

드브로브닉의 성벽이 바다에서 보니 제법 높고 웅장하다

 

 

 

 

31명 전원이 보트에 몸을 실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의 유일한 단체사진이다....ㅋ

잘 생긴 크로아티아 선원이 한국의 뇨자들에게 반했는지 음료수를 한잔씩...ㅋ

 

 

 

어제 스르지산에서 보았던 "로크룸섬"(島)을 지나며..

설명에 의하면 여름에는 해안에 나체 수영객들이 장사진을 친단다

 

 

 

 

 

대략 2시간쯤 크루즈 유람을 마치고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지난번 블레드 호수에서 처럼 뱃사공이 "산타루치아"를 불러 주었더라면?....ㅋ

 

 

 

 

 

 

 

- 드브로브닉 성벽(城壁) 투어

 

케이블카를 이용 스르지산 전망대에서 구시가지를 조망하고,

드브로브닉 구시가지에서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을 감상하였으며

아름다운 아드리아해변에서 요트로 투어 했다면

마지막으로 드브로브닉 성벽(城壁)을 거닐면서 구시가지를 감상하였다.

 

성벽투어는 돌을 쌓아서 만든 성을 따라 꼬불꼬불한 성벽 길을 걸으며

주황색 지붕이 물결처럼 펼쳐진 구시가의 풍경과 푸른 아드리아해도 감상한다.

오래된 집에서 옹기종기 모여 사는 주민의 일상도 들여다 볼 수 있다.

 

 

 

서쪽 출입문 필레트 성문쪽 성벽으로 출입문이 있다.

무척 더웠는데, 해변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힌다.

 

 

 

 

구시가지의 도미니크회 수도원 탑과

아드리아해에 정박된 대형 크루즈 여객선,

공작새가 살고 있다는 푸른 로크룸 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성벽에서 바라다 본 플라차 거리

성 내부에는 차량은 출입할수 없고 인가된 차량만 출입가능

 

 

 

 

 

성벽투어는 좁다란 성벽길을 따라 걷는다,

성벽의 길이 2Km거리며, 성벽 높이 6~25m,

성벽 넓이는 육지쪽엔 6m, 바다쪽엔 3m를 이룬다,

그 옛날 외세의 침략으로 성벽을 튼튼하게 지었으리라.

 

 

 

주민들이 살고 있는 주황색 지붕의 모습들..

우리에겐 이곳이 특별한 곳이고 관광이지만

누군가에겐 평범한 삶의 하루를 보내는 보금자리이다.

 

 

 

 

성벽중 가장 높은 "민세타 요새"

1319년 건축가 리치포르리니나에 의해 건축되었으며

원통형으로 좁은 계단을 따라 상부에 요새처럼 크게 만들어져 있다

 

 

 

 

건너편에 보이는 "로브리예나체 요새"

공연, 연극, 연주회 등이 열리며, "미드 왕좌의 게임" 촬영지 라는데...

 

 

 

 

성벽에서 바라다 본 스르지산

어제 케이블카로 스르지산에 올랐었다.

 

 

 

성벽에서 구시가지를 내려다 보니

"오노플리안 분수" 주변에 관광객들이 많다.

 

 

 

 

해안쪽으로 내려가는 출입문이 있다.

그 출입문 근처에는 "부자카페"(Buza Cafe)가 있는데...

꽃보다 누나에서 김휘애, 이승귀가 그곳에서 레몬맥주를 마셨데나 뭐래나...

(참고 ; Buza란 "구멍"(Holl)이란 뜻이란다, 난 부자들만 가는줄 알았더니?....ㅋ)

 

 

 

대략 2시간 동안의 드브로부닉 성벽투어를 마쳤다,

성벽에 올라 드브로부닉의 구시가지와

아름다운 아드리아해를 볼수 있었으니 멋진 투어였다.

 

 

 

성벽 주변 바다가 보이는 음식점에서

시원한 맥주한잔과 오징어 먹물과 새우, 홍합 등을 이용한 "리조또"로 점심을 해결하였다..

 

크로아티아의 화룡점정(睛) 드브로브닉 투어를 마치고,

2006년 신유고연방으로 부터 독립한 몬테네그로의 해안도시 "코토르"로 이동하였다,

다음편은 몬테네그로 성곽도시 코토르 편입니다...감사합니다.

 

 

 

 

 

발칸반도는 오랫동안 "유럽의 화약고" 또는 "사라예보 사건" 등으로 각인된 곳이라 우리에게는 멀고도 낯선 곳이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여배우가 커피 광고를 찍어서 보여주고, 국내 모 방송프로 "꽃보다 누나"에서 크로아티아를 다녀오자,

마침내 발음하기도 어려운 크로아티아 "드브로브닉"를 향해 너도나도 여행가방을 싸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929년 극작가 "버나드 쇼"가 드브로브닉의 아름다움에 반해 “지상에서 천국을 맛보려면 드브로브닉를 찾아라" 고 권했다.

그가 발견한 천국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모르지만, 바이런은 “아드리아해의 진주”라는 애칭으로 이곳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로버트 카플란이 “영광스러운 불사조 도시 드브로브닉”라고 쓴 것이  아름다운 자연환경 때문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1991년 유고 내전 당시 연방으로부터 독립하려는 크로아티아를 저지하기 위해 8개월이나 계속된 세르비아군의 폭격에 맞서,

프랑스 작가 장 도르메송 등 유럽의 지성인과 부호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이 도시를 더 이상 파괴하지 말라며 인간방패를

자처한 것도 일상적인 일은 아니었다. 필시 그들은 찬탄을 자아내는 자연환경 너머의 어떤 의미들을 가치있게 여겼던 것일 테다.

 

이 도시는 천년을 이어온 해운 공화국으로 7세기부터 베네치아와 경쟁하며 발전하며 해상무역으로 막강한 부를 축적했다.

그들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뜻밖의 시스템을 갖추었다. 예를 들어, 이미 13세기에 보육시설을 갖췄고, 15세기에는 의료 체제와

무상 공교육이 시행되었으며,1436년에는 스르지 산에서 내려오는 물로 상수도 시설을 정비해 24시간 모든 가정에 공급했다.


비단 도시의 공공 시스템만이 아니었다. 1389년 코소보 전투 후 공화국은 오스만 제국의 동맹이었음에도,

패전국인 세르비아의 왕자들이 망명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했으며, 또한 1416년에는 지중해에서 수지맞는 노예무역을 포기하고,

유럽에서 처음으로 노예매매제를 폐지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정직과 자유를 모토로 삼았고 허세를 부리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드브로브닉의 작가 이반 군둘리치(Ivan Franov Gundulić, 1589-1638년)는 이렇게 외쳤다.

신은 우리에게 세상의 보물인 자유를 주었다. 자유만이 드브로브닉을 빛내는 유일한 장식이다.

세상의 모든 금(金)을 주어도 아름답게 빛나는 자유와 바꾸지 않는다" 이렇게 장담하는 자긍심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민주주의와 인권이 된서리를 맞기도 하는 이 땅에서, 수백 년 전부터 자유를 귀하게 여기고 타인의 자유와 권리까지

소중하게 여기며, 소박하되 명예롭게 살 줄 알았던 드브로브닉의 역사가 더 없이 부러웠다...